2022-11-29

동사서독 오징어 게임

저자소개

손규리
독서동아리 ‘동사서독’ 회원


2021년 12월, ‘동사서독’동탄 사람들이 서둘러 만든 독서모임의 송년회 준비가 시작되었다. ‘동사서독’의 송년회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를 넘어 독서라는 건전함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파격적인, 품격 있는 놀이로 거듭날 수 있는지 증명하는 장이 된다. 작년에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우리 동사서독이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송년 모임은 해마다 돌아가며 맡게 되는 ‘동사서독’ 카페 매니저와 회원의 자발적인 참여로 준비한다. 2008년에 결성된 ‘동사서독’은 여성 회원 전용 독서동아리이며, 실명 대신 닉네임을 사용해 서로 간에 ‘님’으로 호칭한다. 실명을 모르는 경우가 많고 평소 늘 닉네임으로 부르다 보니 밖에서도 습관대로 ‘달빛 님’ ‘고래 님’ ‘꽃상추 님’ 하고 호칭해 종종 주변 사람들의 뜨악해하는 눈초리를 받기도 한다.


나는 ‘동사서독’ 송년회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에 앞장선다. 오래전 회사에서 행사 기획 일을 맡아 했을 때보다 몇 배나 더 큰 즐거움을 ‘동사서독’을 통해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년회의 시작은 드레스코드를 정하는 것이다. 해마다 드레스코드를 정하고 시상도 한다. 이 또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거나 인기가 많았던 키워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국정농단’이나 ‘동백꽃 필 무렵’이 드레스코드가 되기도 하고 ‘땡땡이무늬’나 ‘촌스러움’이 드레스코드가 되기도 한다. 게장 골목의 준기 엄마로 완벽하게 변신해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주인공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심어줘 박수갈채를 받았던 민트 님, 땡땡이 무늬 속옷을 겉옷 위에 착용하는 발칙함으로 모두를 기권하게 만들었던 달빛 님, 온몸에 깜빡이는 알전구를 감고 와 크리스마스트리를 표현했던 수국 님 등의 이야기는 송년회 드레스코드의 전설이 되었다. 작년 드레스코드는 ‘오징어 게임’이었는데 늘 드레스코드에 강한 모습을 보여준 수국 님이 오징어 게임 진행요원으로 완벽 변신해 작년에도 드레스 상을 수상했다.



나는 회원들에게 독서와 결합한 우리만의 오징어 게임을 만들겠다고 송년회를 예고함으로써 참여 의지에 불을 붙였다. ‘동사서독 오징어 게임’은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설탕 뽑기’ ‘줄다리기’로 구성했다. 그리고 마지막 게임은 보드게임 제작의 특출난 재주꾼인 비라고 님의 수제품 ‘동사서독 부루마블 게임’으로 대미를 장식하기로 했다. 먼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은 문장 완성하기로 변형했다. 작년에 ‘동사서독’에서 읽었던 책,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몇 개의 문장을 뽑은 후 어절 단위로 잘라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참여자들은 술래가 뒤돌아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는 동안 문장을 완성해야 하고 술래에게 움직임을 들키면 탈락한다. 문장의 길이가 비교적 길기도 했지만 번역된 문장 그대로 맞추는 것이라 쉽지 않다고 게임 중에 원성이 높았다. 번역한 책을 읽을 때는 잘 의식하지 못하지만, 문장을 직접 조합해 보니 번역문에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함께 공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두 번째 게임인 ‘설탕 뽑기’는 달고나 대신 그림 오리기로 변형했다. 구멍 뚫린 세모와 동그라미, 그리고 별 모양과 우산 그림을 무작위로 뽑아서 가장 빨리 가위로 잘 오리는 사람이 승리하는 것이다. 모두 성인이지만 가위질에 서툰 사람들에게는 의외로 난도가 높은 어려운 게임이 되어서 재미있었다. 모두 왁자지껄 가장 많이 웃었던 게임은 ‘줄다리기’였다. 줄다리기 역시 탁자에 앉아서 할 수 있도록 ‘종이 줄다리기 게임’으로 변형했다. A4용지를 손으로 가늘고 단단하게 말아서 둘씩 짝을 지어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다. 힘으로 종이 줄을 가져간 사람이 이기는데, 종이가 찢어진 경우는 줄의 길이가 더 긴 사람이 이긴다. 힘으로는 이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얼굴이 빨개지도록 힘을 써서 이기는 모습에 모두 배꼽을 잡고 웃었다.


마지막 게임인 ‘동사서독 부루마블’은 부루마블 게임에서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땅에 나라 이름 대신 1년간 ‘동사서독’에서 읽은 책 제목을 써 놓았다. 주사위를 굴려 그 제목에 도착하면 책과 관련된 문장 하나를 말하고 점수를 얻는 것이다. 책 내용이나 정모 때 했던 이야기, 책이나 작가에 대한 정보 등 선발 주자가 했던 말과 겹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규칙으로, 정모 때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고 되새기는 계기가 되어 특히 의미 있었다.



‘동사서독’은 한 달에 두 번 정모를 갖는데 아이들이 집에 있는 방학 때 잠시 쉬는 것을 제외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빠지지 않고 만난다.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대면 모임이 어려웠을 때는 온라인으로 만남을 이어가 14년 동안 270회가 넘는 정기모임을 진행했다. 정모 때 독립영화 등을 같이 보거나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소풍을 가기도 했는데, 현재까지 같이 읽은 책이 175권이다. 분량이 많고 어려운 책은 몇 번에 나눠서 읽기도 하고, 가정의 달에는 ‘가’ ‘정’ ‘의’ ‘달’ 글자로 시작하는 제목의 책을 읽고 서로 소개하는 이벤트 독서를 하기도 했다. 우리는 재미있고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고 다양한 시도를 한다.


동아리 안에는 몇 개의 소그룹 모임이 있다. 그중 하나가 글쓰기 프로젝트 모임이다. 첫해에는 100일 동안 매일 짧은 글을 써서 올리는 일명 ‘곰 프로젝트’를 했고, 두 번째 해에는 좀 더 긴 글을 일 년간 격주로 올리는 ‘동프프동사서독 프락시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올해는 일 년 동안 이미지를 포함한 글을 매주 올리는 ‘오이프52주 프로젝트’를 11명이 진행하고 있다. 일부는 책을 출간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글을 직접 써봄으로써 글의 구조를 볼 수 있도록 한다는 훈련의 의미가 크다. 글의 구조가 눈에 들어오면 독서의 질의 높아지고 시야가 넓어진다. 또한 글을 쓰면서 자기를 치유하기도 하고 글 쓰는 재능을 발견하기도 한다. 또 보드게임을 즐기는 소모임 회원들이 취미 활동에 머물지 않고 보드게임을 교육하고 개발하는 창작소를 운영하기도 한다. 보드게임 창작소에서는 보드게임 대회를 개최하기도 하고 화성시 지속가능발전협의회의 의뢰로 SDGs 교육용 보드게임을 개발하기도 했다.


우리 ‘동사서독’은 송년회를 통해 특별한 활동을 계획하기도 한다. 어떤 해에는 직접 연극을 하기도 하고, 어떤 해에는 모두가 참여해서 뮤직비디오를 찍기도 한다. 또한 ‘동사서독’ 신문을 발행하거나 독서 달력을 제작하고, 모두에게 상을 수여하기도 한다. 시를 암송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며 우리만의 다양한 독서게임을 직접 만들어서 논다. ‘동사서독’에 가입한 지 올해 10년이 되었다. 동아리 카페를 만든 창립 멤버도 있지만 우리는 해마다 매니저를 맡게 된 사람에게 카페를 양도한다. 카페를 양도하는 과정이 번거롭기도 하고 가끔 양도받은 회원에게 카페를 팔라는 위험한 제안이 오기도 하지만, 독서동아리가 성공을 위한 사업의 도구가 되거나 사교모임으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우리 모두 동아리의 주인이며 회원이라는 평등함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건전하게 노는 일에 모두가 즐겁고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나 또한 ‘동사서독’과 동행한 10년 동안이 즐겁고 행복했으며 앞으로의 동행이 벌써 그리워진다. 우리는 참여하는 사람 모두가 행복한 오징어 게임을 할 줄 안다. 참 감사한 일이다.



 

★2022 독서동아리 수기 공모전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책이 만나다」에 선정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