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1

서로를 응원하며 13년째 춤을 추고 있는 ‘고래’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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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응원하며 13년째 춤을 추고 있는 

‘고래’를 아시나요? 


서울 ‘고래’



모이는 곳 

서울시 구립 김영삼도서관

현재는 온라인 줌ZOOM


모이는 사람들 

성인


추천 도서  

『피부색깔=꿀색』 전정식 지음, 박정연 옮김, 길찾기 펴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지음, 돌베개 펴냄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에코리브르 펴냄

『살아있는 것들의 눈빛은 아름답다』 박종무 지음, 리수 펴냄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열린책들 펴냄



2009년 동작상도국주도서관이 개관하면서 탄생한 ‘고래’는 1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도서관과 함께 자라왔다. 동아리 이름은 독서로 소통하며 즐겁게 춤추는 ‘고래’가 되자는 의미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에서 따왔다. 2020년 10월말 김영삼도서관이 개관하고, 동작상도국주도서관이 폐관하면서 ‘고래’는 김영삼도서관으로 이관되었다. 소속만 바뀌었을 뿐 동아리는 그대로지만, 코로나19 국면이라 새 도서관에 모일 수 없었고 동아리 지원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위기가 찾아왔다. 그림 책, 화, 시, 독서 토론 등 주차별로 다양하게 진행하던 모임이 어려워진 것이다. 논의 끝에 회원들은 온라인으로 시를 공부하면서 모임을 지속하기로 뜻을 모았다. 당분간 ‘시’만 공부해보기로 한 것. 시를 쓰는 조재학 회원이 흔쾌히 마음을 보탰다. 도서관이 바뀌면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 ‘고래’는 벌써 1년 가까이 매주 4~5편의 시를 공부하고 있다. 10월 1일 금요일 오전 10시, 온라인 줌에서 시를 읽는 ‘고래’를 만났다.

 


‘고래’는 지금 

시의 매력에 푹 빠졌어요


시는 다가가기 어려웠는데 매주 시를 읽다 보니 어느 날 가슴으로 시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박영순 회원, 남들은 외롭다고 하는데 시를 읽는 이 시간이 그립고 좋아서 외로울 시간이 없다는 윤재숙 회원, 시의 매력에 푹 빠져서 삶의 오아시스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김정란 회원, 혼자서는 이해되지 않았던 신춘문예 시가 ‘고래’에서 함께 읽으니 와닿아서 감동했다는 김성희 회원의 이야기에서 어느덧 시와 하나가 된 ‘고래’를 느낄 수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이성미 회원이 지난 모임에서 함께 공부했던 마경덕 시인의 「물의 입」을 암송했다. 이성미 회원이 시를 암송하게 된 것은 조재학 회원의 열성적인 수업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다 점차 도전 의식이 생겨 더 열심히 시를 외우게 되었다. 처음엔 몸과 목소리의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질 정도였는데, 이제는 당당하고 여유 있게 시를 암송한다.


오늘의 시는 최승자의 시집 『이 시대의 사랑』 중에서 고른 네 편, 「일찌기 나는」, 「개 같은 가을이」, 「사랑 혹은 살의랄까 자폭」,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다. 조재학 회원은 시인을 알면 시가 더 잘 보인다며, 최승자 시인의 삶과 시대상을 함께 들려주면서 수업을 진행해나갔다. “이렇게 시대에 저항한 여성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미투 운동도 있는 게 아닐까요?”, “이 시를 보니 왠지 카타르시스가 느껴져요.”, “최승자 시인의 자기애가 눈물겨워서 가슴 아파요.” 자연스럽게 감상을 나누고 시를 낭송하며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었다.



금요일 오전 10시를 

기다리는 사람들


동아리를 운영해 온 세월의 무게만큼 숱한 고비가 있었을 텐데, 지금까지 잘 유지되는 비결은 뭘까? 김영삼도서관 사서로 ‘고래’를 담당하게 된 김현수 씨는 매주 금요일을 기다리며 빠짐없이 모임에 참석하는 회원들이 대단하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고래’가 유지되는 것은 조재학 선생님과 회원들 덕분이에요. ‘고래’의 활동이 계속되면 좋겠다는 마음에 ‘책사회’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어요, 내년에도 지원을 신청할 계획이에요.”


10월 15일, ‘고래’ 모임에 다시 접속했다. 어제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 미술 전시회를 다녀왔다는 회원들은 들떠 있었다. 오늘은 곽재구 시인의 시 중 「사평역에서」, 「새벽 편지」, 「겨울의 춤」, 「바람이 좋은 저녁」, 「받들어 꽃」 5편을 읽었는데, 전시회에서 느낀 이미지가 시와 겹쳐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고래’의 시작부터 함께 한 주성자 회원은 ‘고래’ 덕분에 일상에 시가 스며들었다며 지금 여기가 ‘우리들의 빛이 머무는 자리’라고 말했다. 공부할 시를 준비해서 메일로 보내는 회원, 공부가 끝나면 모임 후기를 정리해 단톡방에 공유하는 회원, 함께 읽었던 시를 암송하는 회원, 매주 온라인 모임방을 개설하고 초대하는 회원. 일주일 중 가장 충실하고 행복한 시간이라며 금요일을 기다리는 회원들. 그들이 서로에게 고맙다고, 덕분이라고 박수와 찬사를 보내는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렇듯 그들의 각별한 ‘고래’ 사랑이, 바로 비결 중의 비결이었다.



당신에게 ‘고래’는?


회원들에게 ‘고래’는 무슨 의미일까? “영혼의 밥”, “함께 가는 삶”, “쉼터”, “매주 금요일”, “치유와 행복의 시간”… 윤재숙 회원은 이해인 수녀의 시 「단추를 달 듯」으로 답을 대신했다.


“…… 산다는 일은/ 끊임없이 새 옷을 갈아입어도/ 떨어진 단추를 제자리에 달 듯/ 평범한 일들의 연속이지/ 탄탄한 실을 바늘에 꿰어/ 하나의 단추를 달 듯/ 제자리를 찾으며 살아야겠네/ 보는 이 없어도/ 함부로 살아 버릴 수 없는/ 나의 삶을 확인하며/ 단추를 다는 이 시간/ 그리 낯설던 행복이/ 가까이 웃고 있네”


다음 주 ‘고래’는 영화 관람을 할 예정이다. 놀라운 것은 전시회를 다녀와도 영화를 봐도 금요일 모임은 꼭 지킨다는 것이다. 금요일 오전 시간만큼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회원들의 마음. 이것이 13년의 세월을 지켜온 ‘고래’의 힘 아닐까? 서로 칭찬하며 함께 춤추는 ‘고래’. 앞으로는 어떤 춤을 출지 무척 기대된다. 





★인터뷰 및 글. 안영숙 독서동아리 길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