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07

산책 같은 삶, 산책 같은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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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같은 삶, 

산책 같은 독서 


평창 ‘산책’



모이는 곳 

강원 평창 무위산방, 회원 공간


모이는 사람들 

30~50대 봉평 평촌리 마을 사람들


추천 도서  

『모모』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비룡소 펴냄

『사람으로 왔는데 중생으로 갈 수는 없잖아』 법혜 지음, 빈빈책방 펴냄

『어떤 날에도 위로는 필요하니까』 선미화 지음, 책밥 펴냄

『요한, 씨돌, 용현』 SBS 스페셜 제작팀·이큰별·이승미 지음, 가나출판사 펴냄


자연을 찾아 깃든 

사람들의 책 읽기


자작나무 숲이 눈이 시리게 아름답고 고요한 이 산골에는 빨리 어둠이 찾아온다. 이미 어둑해진 저녁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책을 펼친다. 책을 편안하게 산책하듯 읽자며 이름 지은 독서동아리 ‘산책’은 강원도 평창군 봉평 평촌리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독서 모임이다. 이들은 올해 초 의기투합해서 독서 모임을 만들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책을 매개로 어떻게 자연과 일치된 삶을 살 것인가, 혹은 삶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함께 고민하고 일상을 나누며 정을 쌓아간다.


회원들은 30~50대인데 부부가 두 쌍, 일러스트 작가와 커뮤니티 기획자, 요리 연구가와 스님, 초등학교 선생님 부부와 서비스·금융업 종사자 등 직업도 다양하다. 산골 마을 사람들의 직업이 이처럼 다양한 이유는 자연 속에서 살고 싶어 귀촌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산책’ 회원들은 함께 명상도 하고 책도 읽고 맛있는 간식을 나눠 먹으며 산골의 고요와 온기를 나눈다. 날씨가 추워지면 한 회원이 붕어빵을 사오곤 하는데, 그게 모든 회원들이 기다리는 최고의 별미 간식이라고. 딱히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각자 가져올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가져와 나눠 먹는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간식이니 뭔들 맛이 없겠는가?


자연이 좋아 시골로 들어온 이들은 자연, 생태, 제로 웨이스트 등 환경에 관심이 많아 지금까지 주로 환경 생태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첫 모임에서는 가벼운 책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 『모모』를 함께 읽었고, 코로나19 팬데믹이 심해지면서 모이기가 어려워지자 각자 관심 있는 책을 읽으며 독서 내공을 길다. 올해는 환경, 기후변화 등에 관심을 두고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자는 의미에서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를 함께 읽고 제로 웨이스트 실천을 고민했다. 회원들은 관심 분야가 달라서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읽은 뒤, 서로에게 소개하는 형식으로 모임을 진행한다. 그랬더니 소개한 책을 서로 빌려가며 읽는 경우가 많아 더 다양한 독서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느긋하고 편안한 

마을 사람들의 독서법


다들 책 읽는 것과 쓰는 것을 좋아하고 평소 자주 보는 사이다 보니, 특별히 규칙을 정하거나 제약하는 부분 없이 서로 좋아하는 책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느긋하게 모임을 즐긴다. 앞으로는 고전도 함께 읽어보려 계획 중이다.


“우리 회원들은 개성이 강하고 다양한 취향을 가졌지만 다행히 새로운 분야에 호기심이 많아 모르는 세계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좋아해요. 비록 살아가는 방식이 서로 달라도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어 회원들이 돈독하게 잘 지내죠.”라고 선미화 회원은 말했다. 한 회원은 “평소 일상에 관한 이야기만 나눴는데, 독서 모임을 함께 하면서 몰랐던 책도 알게 되고, 서로의 취향도 발견하며 시야가 넓어진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모임은 돌아가면서 집이나 작업 공간을 빌려 진행한다. 책 선정은 평소 팀원들과 이야기하면서 나왔던 내용을 토대로 원하는 책을 고르거나 다수결로 정한다. 같은 책을 읽은 달에는 책을 읽은 감상을 이야기한 뒤 서로 다르게 느낀 부분을 질문하고 토론하며, 각자 다른 책을 읽은 달에는 책을 소개하고 궁금한 점을 질문하는 형태로 진행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정리해서 밴드BAND에 공유한다.


느슨한 듯 끈끈한 

취향 존중의 독서


그렇다면 회원들은 주로 어떤 책을 읽을까? 어떤 회원은 건축과 숲, 정원과 관련한 책을 읽고 싶어 하고, 어떤 회원은 야생화, 어떤 회원은 약초에 관심이 있다. 회원들이 시골에 살면서 주변에 숲도 있고 작은 정원을 가꾸기 때문에, 이런 관심사가 일상인 동시에 평생 해야 할 일이라 그렇다. 회원들은 각자 공부하고 실천할 수 있는 분야를 탐색해 틈틈이 조금씩 책을 읽고 동아리 활동을 한다. “모두들 자신의 취향대로 느긋하게 책을 읽으며 사는 것 같다.”라고 최지훈 대표는 말했다. 한 회원은 “함께 책을 읽으면 억지로라도 책 한 권을 읽을 수 있는 게 좋고, 읽고 나서 당장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차곡차곡 지식이 쌓이는 느낌이 좋다.”라고 이야기했다.


독서 모임은 가급적 정기적으로 진행하려 하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언제라도 모일 수 있으니 정해진 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모습이었다. 동아리 모임을 쉬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서로의 상황이나 마음이 여의치 않으면 쉬어야죠. 필요하다면 마무리도 해야 할 거고… 그저 흐름대로 따라갈 뿐입니다.”라고 한 회원이 말했다. 강원도 사람 특유의 시크함일까? 자연 속에서 사는 ‘산책’ 회원들에겐 뭔가 초연한 분위기가 있었지만, 느슨한 듯 끈끈한 이 독서 모임이 부러웠다. 가을밤 불빛 환한 집으로 삼삼오오 책을 들고 모이는 풍경이 아름다웠던 산골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갔다. 




★인터뷰 및 글. 장시 독서동아리 길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