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30

스무 살도 안된 병사들은 왜 총을 들었나

저자소개

정윤수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 교수




그들은 강제동원 상황에서 학교 선생님과 심지어 부모님의 추천과 권유를 받고 전투화를 신었다. 그리하여 스무 살도 채 안된 이 독일의 병사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참호로, 거기서 야전병원으로, 또 거기서 묘지로 실려 나갔다. 


어쩌면 진실은 전쟁보다 전투에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 『사상 최대의 작전』이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어떻게 그려지는가. 9000척의 선박, 100만이 넘는 군인들, 17만대의 차량, 702척의 전함, 200여척의 소해정이 집중되었다. 스펙터클 전쟁영화는 이 압도적인 물량공세를 ‘강렬한 구경거리’로 재현해낸다. 그러나 본격적인 작전이 전개된 1944년 6월 6일, 단 하루의 ‘전투’에서만 무려 연합군 2500여명이 사망했다.


정작 프랑스 사람들은, 특히 노르망디 주민들은 국가적으로 기념하지는 않는다. 전쟁의 참상과 독일군의 만행을 기억하는 기념관이 있긴 하지만, 드골이 이끄는 레지스탕스가 개선문을 통해 파리로 입성한 날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들은 영·미 연합군에 의해 자신들이 해방되었다는 것을 부정하려 한다.


노르망디 주민들은 두말할 것도 없다. 전쟁의 차원에서는 독일군을 패퇴시킨 역사적인 작전이지만 전투의 차원에서는 생지옥에 다름아니었다. 자기가 살던 마을이 양 진영의 대규모 화력으로 초토화되었고, 독일군이 점령했을 때나 연합군이 통제했을 때나 강제징발이나 학살이나 부녀자에 대한 성폭력은 크게 다르지 않게 자행되었다.


전쟁은 종종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로 전승되고 스펙터클 영화는 그것을 거대한 구경거리로 재현하지만 정작 전투는 생지옥에 다를 바 없는 처절함으로 짓이겨져 있다. 그래서 어쩌면 전쟁의 진실은 전투의 사실성에 박혀 있는 상흔일 수도 있는 것이다.




2차 대전 직후 이탈리아의 젊은 영화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가 연합군의 공습으로 도시 전체가 파괴된 베를린으로 급히 달려가서 찍은 영화가 있다. 『독일, 0년』이란 작품이다. 모든 것이 파괴되어 완전한 폐허, 즉 0zero의 상태에 처박힌 베를린. 그곳의 주민들은 2차 대전을 참회하고 있는가? 아니다. 그렇다고 불퇴전의 각오를 다지고 있는가. 그것도 아니다.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수치심에 처박혀 있을 뿐이다. 결국 소년은 폐허가 된 건물에 올라가 몸을 던진다. 이런 상황에서 히틀러나 처칠이나 무솔리니나 아이젠하워의 연설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들은 ‘사상 최대의 작전’을 명령했고 그에 따른 무자비한 전투와 영혼의 파괴는 힘없는 병사와 주민들의 몫이었다.


“이들이 국가에 대한 충성이 최고라고 지껄이는 동안 우리는 이미 죽음에 대한 공포가 훨씬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반역자가 되거나 탈영병이 되거나 겁쟁이가 된 것도 아니었다. 어른들은 걸핏하면 이런 표현들을 쓰곤 했다. 우리들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고향을 사랑했다. 그리고 우리는 공격이 시작되면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하여 스무 살도 채 안된 이 독일의 병사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참호로, 거기서 야전병원으로, 또 거기서 묘지로 실려 나갔다. 에리히 레마르크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 그 첫머리에 나오는 대목이다. 스무 살도 안된 세 명의 병사들. 그들은 강제동원 상황에서 학교 선생님과 심지어 부모님의 추천과 권유를 받고 전투화를 신었다. 그 추천서에는 ‘강철 같은 청춘’이라고 쓰여 있는데, 소설이 시작되자마자 병사는 “청춘이라고? 그건 다 오래 전의 일이다. 우리는 어느새 노인이 되었다”고 토로한다. 대부분의 소설이 그렇듯이 이 작품에도 달리 ‘서문’이 없는데, 그러나 이 연재를 위한 듯 영혼이 파괴되는 참담한 상황을 쓰기 전에 레마르크는 다음과 같은 ‘서언’을 맨 앞에 달았다. 전쟁보다 전투가 사실을, 나아가 진실을 담고 있음을 증명하는 서언이다.


“이 책은 고발도 고백도 아니다. 비록 포탄은 피했다 하더라도 전쟁으로 파멸한 세대에 대해 보고하는 것일 뿐이다.” 


 

★ 이 글은 2018년 11월 19일자 주간경향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