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4

김윤식이 오래전에 써둔 유서 같은 서문

저자소개

정윤수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 교수



“인생이 짧은 마당에 예술이 길 이치가 없다. 설사 길더라도 대단치 않을 것이다. 다만 환각이 남을 따름이리라. 황홀경의 환각만이 남을 뿐이리라. 그것을 나는 사랑하였다.”


김윤식은 1973년에 발간한, 김현과 함께 쓴 『한국문학사』의 초판 ‘서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문학에 대한 경멸과 白手에 대한 조소가 그 어느 때보다도 깊어져가고 있어 보이는 지금, 인간 정신의 가장 치열한 작업장인 문학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더할 수 없이 귀중한 자기 각성의 몸부림이다. 문학이 없는 시대는 정신이 죽은 시대이다.”


그로부터 45년가량이 흘렀고, 공저자 중 한 사람은 21세기를 보기도 전에 타계하였고 다른 공저자, 즉 김윤식이 며칠 전에 타계했다. 두 사람의 부재로 “문학이 없는 시대는 정신이 죽은 시대”라고 성급히 말할 수는 없으나 최소한 “인간 정신의 가장 치열한 작업장인 문학을 지킨다는 것”을 “각성의 몸부림”으로 여겼던 한 시대가 저물고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김윤식! 시간을 견뎌낸 중요한 저작들의 ‘서문’을 테마로 하는 이 연재에 언젠가는 다루게 될 것이라고 여겼으나 정작 그의 부고를 듣고 이렇게 몇 자 남기는 심정은, 비록 이른바 그 ‘문하門下’에서 배우지는 않았으나, 모국어로 생계를 잇는다는 점에서는 그 넓은 자장권 내에 있게 마련인 나로서도 한 줌의 감회가 없지는 않다.


누구나 김윤식의 책을 지도로 여기지 않았던가. 그가 종종 인용했던 ‘어떤 헝가리 비평가’를 되풀이하건대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며,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루카치, 『소설의 이론』 서문라는 문장은 적어도 한국 현대문학의 자장에서는 김윤식이 바로 그 ‘길의 지도’였다. 


김윤식의 ‘지도’는 상처투성이의 무르팍으로 그려진 것이다. 종종 말하여지듯이 그는 ‘읽다’와 ‘쓰다’의 주어이고 동사였는데, 평생 그러는 동안 그의 무르팍은 피딱지가 엉겨붙었다. 그 피딱지는 근대성의 해명, 그것의 극복, 그 과정에서 펼쳐진 문학주로는 소설이라는 상흔들, 그 작품 속에 짓이겨져 있는 혈흔을 채집하고 분석하여 우리의 20세기란 무엇인가를 끝없이 되묻는 지도였다.


1973년에 발간한 『한국근대문학의 이해』, 그 ‘서문’에서 김윤식은 이렇게 썼다. “出發이란 무릎이다. 무릎의 메타포가 出發인 것이다. K君, 君은 傷處 없는 무릎을 보았는가. 우리가 味知를 向할 때, 우리가 보다 멀리 손을 뻗치려 할 때, 그리고 우리가 일어서려 할 때, 피를 흘려야 하는 곳은 바로 이 무릎이었다.”


이처럼 김윤식의 문학은, 그 비평과 연구와 평론은 여느 창작자의 시와 소설에 못지않은 ‘문학’이었다. 그의 정신사의 해부학 작업은 날카롭고 차디찬 면모가 있지만, 그보다는 뜨거운 것이었다. 위의 서문에서 김윤식은 “어째서 너는 주름살이 늘 때마다 비굴한 몰골과 발맞추어 평범한 사나이가 되고 말았는가”라고 썼는데, 이때 ‘너’, 즉 ‘K君’은 김윤식 자신이기도 하고, 한국문학사 전체이기도 하다.


그의 두툼하고 어려운 신간을 다 읽기도 전에 또 다른 신간이 등장하여 사람을 질리게도 했던 김윤식은 어림잡아 200권가량의 책을 썼고, 그 책마다 핏자국이 배어 있는 ‘서문’을 써서 그것만 가려내어 『김윤식 서문집』이라는 책까지 있을 정도다. 그 중 내가 가장 애틋하게 읽은 것은 『황홀경의 사상』의 ‘서문’이다. 쉰을 바라보는 김윤식이 유토피아와 허무 사이에서 간신히 쓴 이 ‘서문’을 다시 읽어보니, 오래전에 써둔 유서 같다.


“인생이 짧은 마당에 예술이 길 이치가 없다. 설사 길더라도 대단치 않을 것이다. 다만 환각이 남을 따름이리라. 황홀경의 환각만이 남을 뿐이리라. 그것을 나는 사랑하였다.”

 

★ 이 글은 2018년 11월 12일자 주간경향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