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1

응답하라, 과거의 기억이여 ①

저자소개

전소영
경희대학교 강사



몇 년째 계속 방영된 ‘응답하라’ 시리즈의 하나인 『응답하라 1988』은 최근 많은 대중들의 호응을 받았다.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이 된 1980년대로부터 거의 3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시대를 공유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그토록 인기몰이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과거에 대한 향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통계 수치가 증명하는 경제적 성장, 자본주의의 결과인 물질적 풍요, 최첨단의 과학기술의 발달 등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풍요의 시대를 누리는 것처럼 보이는 21세기에 우리는 왜 그토록 과거를 그리워하는가? 우리가 현실의 삶에서 찾을 수 없는 무언가가 그곳에 그리고 그때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곳에는 있고 지금 이곳에 없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헬조선’이라 할 수 있는 디스토피아적 현실에 없는 유토피아적 요소가 분명 추억의 그때에는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디스토피아 소설의 정전으로 잘 알려진 『1984』정회성 옮김, 민음사, 2003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 죽기 바로 전 해인 1949년 완성되었다. 그의 정치적 신념을 표현한 작품이지만 작품에서의 예언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적중하였고, 60여 년이 지난 지금 이곳에서도 다양한 현상과 사건들을 통해 현실이 되고 있다. 조지 오웰은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로부터 35년 뒤를 예측한 것처럼 보이나 그에게 1984는 단지 미래의 어떤 때를 상징하는 숫자에 불과했다. 그리고 1984년으로부터 또다시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유토피아보다는 그가 우려했던 디스토피아적 상황에 가까운 듯하다.


오웰은 문학의 목적이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문학을 맹목적 수단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사회주의자였지만 스탈린 공산주의를 비판했고, 미래에 닥칠지 모르는 과도한 전체주의의 폭력을 경고한 『1984』는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Winston Smith의 일기 쓰기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쓴 작품이었다. 오웰은 「나는 왜 글을 쓰는가」Why I Write에서 자신의 모든 저작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사회주의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직접 참전한 스페인 내전에서 공산주의자들의 비인간성을 목격하였고 『1984』를 통해 스탈린주의를 비판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 시대가 시작되면서 오웰의 작품은 그가 살아 있을 때보다 더 큰 대중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미국 해외정보국이 반공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1984』를 3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이 그가 비난했던 정치적인 선전 도구로 이용되었던 것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웰이 『1984』를 통해 현재까지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는 것은 작품에 드러난 정치적 신념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1984』의 등장인물이자 자신의 분신이기도 한 윈스턴의 이야기를 통해 과연 동물과 구별되는 존엄한 인간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파괴되기 쉬운 것인지 보여주고 있다. 또한 과거의 역사와 진실이 현재의 권력에 의해 끊임없이 조작되며 미래 역시 보이지 않는 디스토피아적 가상의 공간에서 사회로부터 소외된 주인공이 인간다운 삶을 위해 투쟁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은 오웰의 『1984』를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반유토피아 소설로 보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 윈스턴이 과거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 못지않게 미래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은 유토피아적 충동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1984』는 유토피아의 불가능성을 말하는 반유토피아 소설이 아니라 부정적 유토피아의 다른 형태인 ‘비판적 디스토피아’Critical Dystopia 소설로 분류할 수 있다. 비판적 디스토피아는 말 그대로 디스토피아적 세계의 재현으로 현실을 비판하고 위험을 경고하므로 근본적으로는 유토피아를 소망한다. 오웰은 권력을 향한 끊임없는 욕망 같은 인간의 부정적 본성을 강조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실적 상황이 힘든 디스토피아라 하더라도 노동계급이 깨어나면 희망이 있다는 것을 주장하려 하였다. 




『1984』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오세아니아는 전형적인 전체주의, 경찰국가체제다. 평화부, 애정부, 풍부부, 진리부가 각각 군사, 사상, 물자, 선전을 담당하며 이들 기관을 당이 통괄한다. 당은 노동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들의 마음을 차지하는 것은 힘든 육체노동, 가정과 아이에 대한 걱정, 이웃과의 사소한 말다툼, 영화, 축구, 맥주, 도박이다. 그들을 통제하기는 어렵지 않다. 몇 명의 사상경찰 정보원이 항상 그들 속에 섞여 활동하는 가운데 유언비어나 퍼뜨리면서 위험한 존재가 될 소지가 이는 사람들을 점찍어 두었다가 없애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당의 이데올로기를 가르칠 필요도 없다. 노동자들이 강한 정치의식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노동시간을 늘리거나 배급량을 줄이는 데 대해서 그들이 자연스럽게 호응하도록 당이 필요할 때마다 이용해먹을 수 있는 원시적인 애국심뿐이다. 그들은 불만이 있어도 일반적인 사상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달리 해소할 방법을 못 찾는다.(101쪽)


당에게 노동자는 이용하거나 통제해야 할 정치적 의식이 없는 대상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윈스턴은 만약 미래의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권력을 가진 당이 아니라 무산계급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찌감치 버마에서의 말단 경찰 생활과 스페인 내전의 경험으로 영국 제국주의와 스탈린주의에 신물이 난 오웰에게 유토피아의 근원은 노동자계급이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물화된 인간처럼 노동자의 유일한 가치는 상품으로서의 노동력이다. 오세아니아에서 인간은 곧 물건이고 그러한 사회에서 인간의 소외는 극에 달한다. 우연히 찾게 된 은신처라 할 수 있는 고물상 2층에서 윈스턴은 한 아낙네를 유심히 바라본다. 진리부가 작시기作詩器로 만든 쓰레기 같은 유행가를 부르며 기저귀를 널고 있는 중년의 노동자 아낙. 유행가는 그녀의 입을 통해 멋있는 가락으로 들려온다. 윈스턴은 황홀한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느낀다. 30년 이상의 노동으로 고된 나날을 보내지만 그녀는 여전히 노래를 부르고 있기에 노동자들은 불멸의 존재이고 당원들은 죽은 사람이다.



그러나 권력의 핵심인 당원들은 그들 무산계급을 단지 억압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사적인 공간을 포함한 모든 곳에서 파놉티콘과 같은 감시체계를 작동시킨다. 빅브라더가 그려진 포스터는 마치 신과 같은 존재처럼 모든 것을 보고 있다. 오세아니아는 ‘영국 사회주의’England Socialism의 약자인 ‘영사’INGSOC나 런던이라는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여 영국을 연상시키지만 외부로부터 철저히 격리된 푸코의 헤테로토피아와 같은 공간이다. 주변국과의 전쟁은 승패 없이 적대국을 바꿔가며 계속 지속되는데 그 목적은 오직 전시체제의 불안과 공포를 이용해 현재의 사회구조를 그대로 유지시키는 데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오세아니아가 외부와의 소통이 전혀 없는 폐쇄된 공간인 동시에 시간적으로도 과거와 단절된 곳이라는 점이다. 인구의 13%만을 차지하는 외부 당원으로 진리부에 근무하는 윈스턴은 당이 완전무결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과거의 기록을 계속해서 고치고 당에게 불리한 기록들은 가차 없이 ‘기억 구멍’으로 제거한다. 그는 나머지 85%의 대중과는 접촉하지 않으며, 날조된 허위 사실을 진실로 믿는 ‘이중사고’doublethink로 스스로를 철저히 통제하고, ‘영사’의 이념에 부응하는 행동과 말만 한다. 


따라서 개인적 차이나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들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오세아니아에서는 모든 것을 당이 결정하며 국민들은 모두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한다. 인간의 육체 또한 공장의 감정 없는 기계나 마찬가지다. 개인의 정체성은 없고 빅브라더라는 우상만을 숭배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에서도 주인공은 이중사고로 위장하며 끊임없이 과거를 그리워하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암시장에서 구한 노트에 금지된 일기를 쓴다. 헤어진 부인과의 섹스는 단지 아이를 생산하기 위한 기계적인 결합의 과정이었고 그들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오세아니아에서는 성관계가 사랑의 감정을 나누기 위한 행위가 아니며 심지어 성욕 자체를 죄악시한다.




당은 새로운 언어 체계인 ‘신어’Newspeak를 통해 인간의 의식마저 단순화시키려 한다. 신어를 창조하는 작업은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언어를 말살하고 단순화해 국민들을 우민화하는 것이다. 언어라는 것은 원래 자연스럽게 발전하고 변천하는 것이지만 신어는 인간의 창조성과 상상력을 없애기 위해 단어의 수를 최대한 줄이려고 한다. 따라서 단어의 파괴가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지는데 마치 요즘 현대인들이 단축어를 즐겨 사용하는 것과 같다. 단어를 합성하게 되면 발음은 더 편하지만 사고의 폭은 줄어들게 되고 신어의 목적 또한 인간의 의식을 축소시키기 위한 것이다. ‘국제공산당’Communist International은 인류애, 붉은 깃발, 마르크스, 파리 코뮌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코민테른’Comintern은 조직, 기관, 강령만을 떠오르게 한다. 한편 동사나 형용사의 사용은 큰 낭비로 여겨져 ‘좋은’good의 반대인 ‘나쁜’bad은 ‘좋지 않은’ungood으로 대체된다.


또한 그들의 이중사고는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 깊게 생각할 수 없도록 만든다. 이중사고는 자신의 고유한 생각을 가질 수 없게 하고 인간의 의식마저 정해진 기준에 따라 획일화시키기 위해 국가가 강요하는 사고 체계다. 한편 실체 없는 인물인 빅브라더가 주장하는 세계관은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는 반어법적인 표어에서 드러난다. 오세아니아의 국민들은 현재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위해 이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거짓을 의문할 수 없는 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진실에 대해 의문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당의 관심은 부, 행복, 불멸의 생명이 아니라 오직 권력이고 그 권력은 인간을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한 것이다.




(계속) 






 

 


Parse error: syntax error, unexpected $end, expecting ')' in /WEB/webuser/html/bbclone/var/last.php on line 2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