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1

응답하라, 과거의 기억이여 ②

저자소개

전소영
경희대학교 강사



또 한 가지 특이한 오세아니아의 세계관은 시간과 관련되어 있다. 당의 표어에 따르면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그렇다면 결국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와 미래를 모두 지배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당은 계속해서 과거의 기록을 흔적도 없이 제거하거나 현재의 결과에 맞게 과거의 기록을 끊임없이 조작한다. 그들에게 미래는 없으며 주인공이 일기를 쓰는 1984년 4월 4일조차도 정확히 그것이 1983년인지 2003년인지 확신할 수 없다. 윈스턴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일기를 쓰는 이유는 미래의 세대에게 현재의 기록을 남겨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일기를 후세의 누군가가 발견할지라도 미래가 현재와 같이 억압적이라면 그것은 폐기될 것이며, 자유롭다면 아무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윈스턴에게 일기를 쓰는 행위는 거짓이 진실이 되는 현실에 대한 저항의 몸짓이다. 어쩌면 오웰 또한 윈스턴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1984』가 후대까지 읽히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공산주의와 전체주의에 저항하고 작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했을 것이다.


역사는 멈췄으며 영원한 현재만 존재한다고 말하는 윈스턴에게 그의 애인 줄리아Julia는 그런 쓰레기 같은 소리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랑을 고백하며 다가온 줄리아를 만나기 전까지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외롭게 살았던 윈스턴. 줄리아와 육체적 사랑을 나누면서 새로운 감정이 생겨나고 인간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깨닫는다. 그녀는 그가 알고 있는 누구보다도 적극적이고 열정적이다. 창작국에 근무하며 소설 제작기를 다루는 그녀는 잼이나 신발처럼 책도 하나의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문학은 무차별적으로 복사하거나 기계적으로 생산하는 인터넷상의 하이퍼픽션과도 같다. 줄리아는 현실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당에 대한 의무를 완벽하게 수행하지만 마음속은 윈스턴만큼이나 이중적이고 체제전복적이다. 그녀에게 윈스턴과의 사랑은 사적인 감정을 초월한 당에 대한 전투적인 투쟁 행위다.


인간의 근원적 관계인 부모 자식 간에도 서로를 감시하는 오세아니아에서 윈스턴과 줄리아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을 실행한다. 그러나 윈스턴은 과거를 그리워했고 줄리아는 과거나 미래보다는 현실에 충실했다. 윈스턴은 당의 지시대로 행동하고 이중적으로 사고하지만 빅브라더와 텔레스크린의 눈을 피해 끊임없이 과거를 그리워하고 과거의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오웰이 고물상에 가는 것을 좋아했던 것처럼 윈스턴은 위험을 무릅쓰고 고물상에 찾아가서 특이한 과거의 물건들을 구경하고 싶어 한다. 또한 오래전에 헤어진 어머니에 대한 추억에 잠기곤 한다. 반복해서 꾸는 어머니에 대한 꿈은 상실한 자신의 근원을 발견하고자 하는 무의식이고 그에게 과거에 대한 향수는 잃어버린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한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자신들의 비밀스러운 만남이 언젠가는 들통나 둘 모두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에게 섹스는 단순한 남녀의 애정 관계를 넘어선 정치적 저항이었고 결국 그들은 사상경찰에 체포되어 잔인한 고문을 받게 된다. 윈스턴이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던 두 인물, 고물상 노인 차링턴과 체제전복을 도모하는 형제단의 일원으로 가장했던 내부 당원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을 속이고 감시했던 것이다. 차링턴이 부르던 옛날 노래의 끝부분인 “여기 그대 침실 밝혀줄 촛불이 오네, 여기 그대 목을 자를 도끼가 오네”는 바로 윈스턴의 비극적 운명을 예견한 것이었다. 윈스턴이 일기를 쓰고 문진이나 옛 노래를 좋아하며 줄리아와 은밀한 사랑을 나누는 것은 모두 반체제적인 행동이었고, 그들은 어쩌면 유일하게 남은 최후의 인간이었는지 모른다.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지독한 고문 속에서도 윈스턴이 계속 의식하는 것은 시간의 변화이다. 낮인지 밤인지 분간을 할 수 없으며 굶주림과 육체적 고통 속에서 며칠이 지났는지도 가늠할 수 없지만 그는 줄리아를 걱정한다. 그러나 고문으로 몸과 의식이 모두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죽음이 눈앞에 보이는 결정적인 공포의 순간이 되자 윈스턴은 인간의 끝을 경험한다. 자기 대신 줄리아를 죽이라는 비겁한 고백을 하고 만다.


줄리아한테 하세요! 줄리아한테 하세요! 제게 하지 말고 줄리아한테 하세요! 그 여자한테는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어요! 얼굴을 갈기갈기 찢어도. 살갗을 벗겨 뼈를 발라내도 말예요. 저는 안 돼요! 줄리아한테 하세요! 저는 안됩니다! (401~402쪽)


인간으로서의 영혼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그였지만 육체의 극한 고통, 죽음의 공포 앞에서 그는 나약하고 비열하게 무너지고 만다. 외롭고도 위태로운 윈스턴의 삶을 동정하며 지켜보던 독자는 윈스턴의 갑작스러운 배신에 놀라고 인간의 나약함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윈스턴은 보잘것없는 인간으로서 자신의 의지가 남아 있는 한 끝까지 왜곡된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브라이언이 쥐와 덫을 이용하여 윈스턴을 잔인하게 고문하는 것을 서술한 부분은 카프카의 『구덩이와 추』Pit and Pendulum에서 주인공이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윈스턴은 독자가 전혀 예상치 못한 탈출구를 선택하지만 그의 선택을 비난하기는 어렵다. 온갖 고문으로 이성을 상실하고 자신의 존재마저 희미한 극한 상황에서 인간은 사랑하는 이의 목숨보다는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윈스턴은 이제 둘 더하기 둘은 다섯이고 하느님은 권력이라는 것을 진실로 인정한다. 죽다 살아난 윈스턴은 감옥에서 풀려나 줄리아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이제 그녀는 더 이상 과거의 줄리아가 아니다. 윈스턴과 줄리아 모두 심한 고문으로 인해 이중사고로 위장할 수 있는 정신력도, 진정한 사랑으로 자신들의 저항을 실행할 의지도 없다. 육체는 살아 있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이미 죽은 사람이고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한 몸에 불과하다. 서로를 배신하며 인간으로서의 마지막을 경험한 그들에게 이제 미래는 없다. “우거진 밤나무 아래에서 나 그대를 팔고, 그대 나를 팔았다네….” 줄리아와 헤어진 후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윈스턴은 눈물을 흘린다. 그것은 단순히 줄리아를 배신한 것에 대한 회한이라기보다는 최후의 인류로서의 죄책감이었으리라.


윈스턴은 지옥 같은 현실만이 끝없이 되풀이될 것이며 예기치 못한 순간에 죽음을 맞이할 것도 이미 알고 있다. 그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총알이 머리에 박히는 순간 또다시 두 줄기 눈물이 그의 코 양옆으로 흘러내렸다. 하지만 오웰은 “그러나 잘되었다. 모든 것이 잘되었다. 투쟁은 끝이 났다. 그는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브라더를 사랑했다”라고 소설을 마무리한다. 이러한 결말에 따르면 윈스턴이 결국은 전체주의에 굴복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오웰 역시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부인한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사회체제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리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마지막 인간으로서 윈스턴은 할 수 있는 한 자신과 끝까지 투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계급이 아무런 정치적 실천을 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그의 묘비에 “빅브라더를 사랑했다”라는 문구가 새겨질 것이다. 『1984』의 결말은 비록 비극적이지만 오웰은 윈스턴이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했다고 말함으로써 그의 유토피아적 충동을 기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