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27

사랑의 시학

한 때 사랑은 신의 것이었다. 신의 조화 또는 신이었다. 비너스와 큐피드에 대한 신화는 사랑이 이 세상의 것이 아니고 인간의 것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그 시작과 끝이, 그 기제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탓일 것이다. 도무지 알 수 없고 내게는 없는 것, 그러나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 그러기에 인간은 신에게서 사랑을 구한 것이다. 사랑을 철학으로 정의하는 소크라테스는 이런 초월적 사랑관을 위한 기발한 변명을 제시한 셈이다. 계몽의 시대가 오면서 사정은 달라진다. 단순한 피조물에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이 탄생했다. 이 현대인에게 사랑은 신의 허락 없이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 혹은 이 세상에서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재규정된다. 현대의 모든 가치들과 마찬가지로 사랑 역시 신이 아닌 인간에게서 구할 수 있는 세속의 것이 되었다.  


티티안(Titian)의 비너스와 큐피드(1550경)


세계대전과 공황, 냉전 등 세계역사적 인간 드라마로 점철됐던 격동의 20세기를 살았던 위스턴 휴 오든Wystan Hugh Auden(1907-1973)은 「자장가」(1936)에서 이런 “인간의 사랑”을 위한 탁월한 변명을 내놓는다. 자장가는 무엇보다 위무의 노래다. 아프고 쓰린 것을 어루만져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고 사랑하는 대상을 위한 것이다. 원수에게 자장가를 불러줄 리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이 시에서 화자의 자장가를 들어주는 대상은 다름 아닌 인간이다. 강아지와 고양이에 대비된 인간이 아니라 신에 대비된 인간이다. 그런 점에서 자장가를 듣는 이는 화자의 연인이면서 동시에 모든 인간이다. 신이 아닌 존재이기에 고통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같은 입장의 다른 인간이 들려주는 위무의 노래, 오든의 자장가를 읊조리면 살맛이 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인이 화자의 팔을 베고 잠들어 있다. 자장가는 원래 잠이 들라고 불러주는 노래이지만 이 시에서는 자고 있는 연인을 내려다보며 불러준다. 일종의 독백인 셈이다. 독백은 진지한 형식이다. 듣는 이로부터 피드백이 없으므로 인간관계와 관련된 일체의 허식으로부터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잠든 연인을 내려다보며 왜 자신이 그 연인을 사랑하는지 되새기며 자신의 사랑을 다시 한 번 다짐하는 독백의 자장가다. 그러기에 화자의 어조는 진지하며 심지어 예언적이기까지 하다. 화자의 눈에 비친 잠든 여인은 무엇보다 인간이란 존재다.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한없이 약하며, 쉽게 변하며, 그리고 지은 죄가 많다. 언젠가는 썩어버릴 육체로만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불완전하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불길한 소식으로 애써 퍼뜨리려는 인간들도 많다. 하지만 화자는 알고 있다. 육체에 얽매인 인간이지만 육체와 육체를 묶어주는 인간적인 사랑을 통해 인간은 신의 경지로 초월할 수 있다. 그러기에 화자는 이 순간 이후 인간인 연인을 더욱 더 사랑하기로 다짐한다. 모든 인간의 이름으로. 



Lullaby(1936)


- W. H. Auden  


Lay your sleeping head, my love, 사랑하는 이여, 편안히 주무세요,

Human on my faithless arm; 인간의 모습으로, 믿음 약한 제 팔을 베고.

Time and fevers burn away 세월이 흐르고 번민이 겹치면

Individual beauty from 한 때 생각 많은 아이들도  

Thoughtful children, and the grave 그 아름다움이 소진되는 법입니다. 무덤이 

Proves the child ephemeral: 말하잖습니까, 그 아이가 얼마나 덧없었는지.

But in my arms till break of day 하지만 새 날이 밝을 때까지 제 품 안에 

Let the living creature lie, 주무세요, 그대 살아야 하는 육신,

Mortal, guilty, but to me         필사의 몸, 죄 많은 몸, 하지만 나에겐

The entirely beautiful. 오로지 아름답기만 한 사람이여.


Soul and body have no bounds: 영혼과 육체에는 경계가 없습니다.

To lovers as they lie upon 너그러운 비너스는 

Her tolerant enchanted slope 자신의 마법의 언덕에 누워

In their ordinary swoon,         일상적인 황홀경에 빠진 연인들에게

Grave the vision Venus sends 장엄한 깨달음을 보내줍니다,

Of supernatural sympathy, 초자연적인 공감의 깨달음,

Universal love and hope;         보편적인 사랑과 희망의 깨달음을.

While an abstract insight wakes         한편, 관념적인 깨달음을 얻은

Among the glaciers and the rocks 은둔 수도자는 빙하와 바위에 둘러싸여 

The hermit's carnal ecstasy. 육체의 황홀경에 빠져듭니다.


Certainty, fidelity         확신과 충절은

On the stroke of midnight pass 자정을 울리자마자 

Like vibrations of a bell,         종소리의 떨림처럼 사라집니다.

And fashionable madmen raise 그리고 시류에 빠른 미친놈들은 소리 높여 외쳐대지요,

Their pedantic boring cry: 현학적이고도 지루한 말씀을, 

Every farthing of the cost, 불길한 타로 카드가 입을 모아 예언하는

All the dreaded cards foretell, 그 대가를 한 푼도 빠짐없이

Shall be paid, but from this night      치르게 될 거라고. 하지만 이 밤부터 전

Not a whisper, not a thought, 놓치지 않을 겁니다, 그대의 속삭임 하나, 생각 하나,

Not a kiss nor look be lost. 입맞춤 하나, 표정 하나까지도. 


Beauty, midnight, vision dies: 아름다움, 한 밤, 비전은 모두 스러지는 것.

Let the winds of dawn that blow 그대의 꿈꾸는 머리 주위로 부드럽게 불어오는

Softly round your dreaming head 새벽바람으로 날이 밝아옵니다. 이 날이 

Such a day of welcome show 그대를 반갑게 맞이해주는 날이 되었으면,

Eye and knocking heart may bless, 그대의 눈과 두근거리는 가슴이 축복할 수 있는 하루,

Find the mortal world enough; 그리고 이 필멸의 세상으로도 충분함을 깨닫는 날이 되었으면.

Noons of dryness find you fed 메마른 한 낮 그대는

By the involuntary powers, 어쩔 수 없는 힘들의 꼭두각시로 지낼지라도

Nights of insult let you pass 오욕의 밤에는 

Watched by every human love. 모든 인간의 사랑으로 보호받을 거니까요.

 

오든은 당대 최고의 시인 엘리엇T. S. Eliot의 눈에 들어 첫 시집을 출판했을 만큼 갖가지 정형시의 형식을 자유자재로 이용할 줄 아는 시인이었다. 하지만 오든은 「자장가」에서 정형시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유시도 아닌 애매한 형식의 구조를 사용한다. 이 시의 정형성은 행과 연의 구성원리에서 드러난다. 열 개의 행으로 각 연을 구성하고, 모두 네 개의 연으로 전체를 이룸으로써 마치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로 완결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각 행의 마지막 음, 즉 운은 거의 아무런 원칙 없이(그렇다고 완전히 없는 건 아니지만) 배열되어 있다. 운의 규칙적인 배열은 영국 정형시의 필수요소이거니와, 이것이 빠져있는 시라면 자유로운 리듬감을 중시하는 자유시와 다름없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정형시 같지만 실은 정형성을 결여하고 있는 이 어중간한 형식은 인간의 사랑을 정당화하는 이 시의 전체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데 도움을 준다. 신은 완벽하다. 사랑이 신의 것이라면, 또는 신을 대상으로 하거나 신이 하는 사랑이라면 완벽할 것이다. 그렇지만 화자가 사랑하는 이는 인간이다. 그리고 화자는 그의 연인이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사랑한다. 인간 불완전성의 완전성이라는 주제를 전달하는데 이 어정쩡한 형식 이외에 더 효과적인 게 있을까.


첫 번째 연에서는 상황이 설정되고 문제가 제기된다. 화자의 팔베개를 베고 연인이 잠들어 있다. 연인을 내려다보며 화자는 생각한다. 인간의 모습으로 역시 믿음이 약하여 언제나 변할 수 있는 나의 품에 안긴 나의 연인은 모든 인간의 숙명적인 한계를 고스란히 가진 죄 많은 인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게는 “오로지 아름답기만 하다.” 불완전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한다는 것. 이 아이러니가 화자가 풀어보는 문제다. 당연히, 그 답은 사랑일 것이다. 그래서 이 시는 인간 사랑을 위한 변명이 된다.


Lay your sleeping head, my love,         사랑하는 이여, 편안히 주무세요,

Human on my faithless arm; 인간의 모습으로, 믿음 약한 제 팔을 베고.

Time and fevers burn away 세월이 흐르고 번민이 겹치면

Individual beauty from 한 때 생각 많은 아이들도  

Thoughtful children, and the grave 그 아름다움이 소진되는 법입니다. 무덤이 

Proves the child ephemeral: 말하잖습니까, 그 아이가 얼마나 덧없었는지.

But in my arms till break of day          하지만 새 날이 밝을 때까지 제 품 안에 

Let the living creature lie,         주무세요, 그대 살아야 하는 육신,

Mortal, guilty, but to me         필사의 몸, 죄 많은 몸, 하지만 나에겐

The entirely beautiful. 오로지 아름답기만 한 사람이여.


사람을 사람이라 부르는 것은 아주 특별한 문맥을 제외하면 동어반복이다. 동어반복은 무의미하다. “넌 사람이구나.” “뭐, 그럼 날 짐승으로 알았어?” 이런 문맥이 아니라면 입 밖에 낼 수 없는 진술이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굳이 연인을 “인간”(Human)이라 칭하는 것이 특별한 문맥을 상정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 문맥은 아이와 무덤이 나오는 바로 다음 구절로 형성된다. 아이와 무덤은 세월과 인생살이의 고단함(“Time and fevers”)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태어나 살다가 죽는 존재가 바로 인간인 것이다. 이런 생각의 흐름은 인간의 속성으로 제시되는 어구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잠시 존재하다 곧 사라지는” “언젠가 죽기 마련인,” “죄를 지은”(“ephemeral,” “mortal,” “guilty”) 인간들은 곧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살아가는 활동을 해야만 하는 피조물”(“the living creature”)이다. 즉 인간은  영원불멸이며 완벽한 신이 아닌 것이다. 연인을 인간이라 칭하는 화자의 진술이 의미를 갖게 되는 문맥이 ‘넌 신이 아니라 인간이구나’라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인 연인더러 ‘인간의 모습으로 역시 인간적으로 믿음이 약한 나의 품에서 편히 쉬라’(“Lay your sleeping head.../Human on my faithless arm”)는 화자의 진술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2행의 유사 목적격보어 “Human”은 연인의 특징이면서 화자의 속성인 “faithless”와 같은 의미가 된다. 신에 대비되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둘째 연은 수수께끼를 푸는 첫 번째 과정이다. 육체와 정신이 서로 통한다는 점을 입증함으로써 육체에 갇힌 인간들이 자신의 육체성을 초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해두는 것이다.


Soul and body have no bounds:         영혼과 육체에는 경계가 없습니다.

To lovers as they lie upon         너그러운 비너스는 

Her tolerant enchanted slope 자신의 마법의 언덕에 누워

In their ordinary swoon,         일상적인 황홀경에 빠진 연인들에게

Grave the vision Venus sends 장엄한 깨달음을 보내줍니다,

Of supernatural sympathy,         초자연적인 공감의 깨달음,

Universal love and hope;         보편적인 사랑과 희망의 깨달음을.

While an abstract insight wakes         한편, 관념적인 깨달음을 얻은

Among the glaciers and the rocks  은둔 수도자는 빙하와 바위에 둘러싸여 

The hermit's carnal ecstasy. 육체의 황홀경에 빠져듭니다.


경계가 없다는 것은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며,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은 서로 다르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2행 이후는 모두 이 진술을 입증하는 증빙자료들이다. 비너스는 연인들의 수호여신이다. 이 여신은 너그럽다(“her tolerant enchanted slope”). 사랑은 특별한 종류의 인간에게만 하락되는 것이 아니다. 소크라테스에서부터 살인마에게까지 허락되는 것이 사랑이다. 비너스의 언덕은 마치 마법의 숲과 같아 들어서는 누구나 사랑의 마법에 홀리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여기서 “slope”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 비너스의 영역이라는 공간을 의미하기도 하고 19세기 화풍에서 도드라지게 강조했던 비너스의 신체부위인 아랫배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 ‘비너스의 언덕’에 누운 연인들, 더군다나 ‘연인들이라면 “의례히 경험하는 황홀경”(“In their ordinary swoon”)’은 첫째 연에서 강조된 인간의 육체성을 떠올려보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종류의 황홀경이다. 육체와 육체의 결합을 통해 도달하는 황홀경인 것이다. 육체를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지고의 경험이다.


육체를 통한 황홀경에서 연인들이 얻게 되는 것은 비너스가, 신이 보내주는 진지하면서도 장엄한(“Grave”) 깨달음이다. 이 깨달음의 내용은 “초자연적인 공감”(“supernatural sympathy”)의 깨달음이며, 이는 곧 “보편적인 사랑과 희망”(“Universal love and hope”)이다. ‘초자연’이 아닌 ‘자연’(nature) 그 자체는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대로의 상태이다. 자연법칙대로 작동하는 세계이므로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에 불과한 이상 자연을 초월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을 거꾸로 흐르게 할 수는 없는 법. 그렇지만 사랑을 완성한 인간들은 자연의 법칙, 즉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어 ‘초자연’에 달할 수 있다. 인간의 한계 너머는 신의 경지다. 완전성의 경지이며, 이 영역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위업은 다른 인간이 자신과 같은 존재임을 느끼는 ‘공감’(“sympathy”)이다. 너와 나의 경계를 넘어 하나로 느끼는 것. 같은 인간임을 느끼는 것, 이것이 사랑이 인간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상의 것이다. 그러기에 이 “초자연적인 공감”은 ‘누구나 사랑할 자격이 있으며 누구나 사랑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Universal love and hope”)이기도 한 것이다. 연인들의 예가 육체에서 정신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면 얼어붙은 설산의 황량한 골짜기에서 도를 깨치는 은둔 수도자의 경험은 정신이 육체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역시 육체와 정신이 서로 통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도를 깨치는 순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an abstract insight wakes...”로서 사물이 주어로 되어 있는 물주구문이다) 고행 수도자는 연인들이 사랑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육체적 황홀경에 빠져든다. 정신적 고양이 육체적 고양으로 연결되는 과정이다. 육체를 통해서도 득도할 가능성이 있는데 인간이 자신의 육체성을 한계로만 인식하고 시름에 잠겨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사랑할 일이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세상은 지금 사랑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인간이 인간의 한계 자체를 한계 극복의 기제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인 사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랑을 위해하는, 그래서 사랑의 적대세력이 되는 어리석은 인간들의 목소리가 드높은 곳이 지금의 세상인 것이다. 세 번째 연의 ‘미친 작자들’(“madmen”)이 그런 세상의 주역들이다.


Certainty, fidelity         확신과 충절은

On the stroke of midnight pass 자정을 울리자마자 

Like vibrations of a bell,         종소리의 떨림처럼 사라집니다.

And fashionable madmen raise 그리고 시류에 빠른 미친놈들은 소리 높여 외쳐대지요,

Their pedantic boring cry:  현학적이고도 지루한 말씀을, 

Every farthing of the cost,         불길한 타로 카드가 입을 모아 예언하는

All the dreaded cards foretell, 그 대가를 한 푼도 빠짐없이

Shall be paid, but from this night        치르게 될 거라고. 하지만 이 밤부터 전

Not a whisper, not a thought, 놓치지 않을 겁니다, 그대의 속삭임 하나, 생각 하나,

Not a kiss nor look be lost. 입맞춤 하나, 표정 하나까지도. 


현실은 암울하다. ‘남는 것 없다’던 장사꾼은 폭리를 취하고 ‘궁민에 의한, 궁민을 위한다’던 정치인은 사욕만 챙긴다. 확실한 것은 종소리가 곧 사위어지듯 빠르게 변해버린다. ‘오직 그대만’도 믿을 것이 못된다. 사람들은 변한다. 그리고 이런 믿지 못할 인간들의 행태는 현학적인 ‘먹물’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된다. 종말론적인 예언이 메아리친다. ‘세상이 이렇게 탐욕과 배신으로 가득 차 있으매, 인간들은 언젠가는 필히 그 대가를 치르리라(“Every farthing of the cost,/ All the dreaded cards foretell,/ Shall be paid”).’ 그렇지만, 또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 화자는 다짐한다. 세상을 가득 채운 탐욕과 불신은 결국 인간의 육체성이라는 한계에 기인하는 것이고, 인간의 육체성은 자신이 낸 상처를 아무르는 신비의 창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 위대한 사랑의 힘을 찬양하는 것만 남았다. ‘세상이 속일지라도’ 꿋꿋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인간의 한계를 고스란히 인간의 몫으로 인정하는 것.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것. 그런 인간적인, 그래서 영웅적인 위업을 해낼 수 있게 하는 힘. 그게 바로 사랑의 힘이기 때문이다.


Beauty, midnight, vision dies: 아름다움, 한 밤, 비전은 모두 스러지는 것.

Let the winds of dawn that blow         그대의 꿈꾸는 머리 주위로 부드럽게 불어오는

Softly round your dreaming head 새벽바람으로 날이 밝아옵니다. 이 날이 

Such a day of welcome show 그대를 반갑게 맞이해주는 날이 되었으면,

Eye and knocking heart may bless, 그대의 눈과 두근거리는 가슴이 축복할 수 있는 하루,

Find the mortal world enough; 그리고 이 필멸의 세상으로도 충분함을 깨닫는 날이 되었으면.

Noons of dryness find you fed 메마른 한 낮 그대는

By the involuntary powers, 어쩔 수 없는 힘들의 꼭두각시로 지낼지라도

Nights of insult let you pass 오욕의 밤에는 

Watched by every human love. 모든 인간의 사랑으로 보호받을 거니까요.


인간의 세상에서 만사는 생성소멸을 피할 수 없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 품에 잠든 아름다운 연인도, 불길하건 기쁘건 모든 예언도, 그리고 연인들의 포옹을 포근하게 감싸는 한 밤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 존재하다 사라지는 과정은 시간의 흐름으로 진행된다. 시간은 흐른다. 날이 밝아 오는 것이다. 새벽은 미풍과 함께 온다. 서양에서 바람은 변화의 상징이며, 동시에 성스러운 기운을 불러일으키는 힘이다. 시인에게 시상을 가져다주는 영감이 바람의 모습으로 찾아오는 신으로 비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잠든 연인의 이마에 부는 부드럽고 상쾌한 새벽바람을 느끼며 화자는 기원한다. 날이 밝는구나. 새 날이 온다. 오늘은 신의 저 세상이 아닌 이 세상에 인간으로 사는 것이 행복하게 느껴지는 날이 되길 바란다(“Find the mortal world enough”). 어떻게? 육체를 가진 존재로서 목숨을 이어가는(“living”) 활동을 해야 하는 인간은 낮에는 어쩔 수 없이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 한다(“fed/ By involuntary powers”). 인간으로서는 정신적으로 불모인 따라서 비윤리적인 상태로 존재해야 하는 기간이다(Noons of dryness“). 그리고 밤이 찾아오면 회한에 젖게 된다(“nights of insult”). 하지만 이 밤은 인간이 불모의 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겨 인간적인 사랑, 모든 인간의 사랑을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let you pass/ Watched by every human love”). 힘든 세상, 하루를 살아내는 힘. 인간에게 주어진 그런 힘은 오직 사랑뿐이다.


「자장가」는 그리 쉬운 시는 아니다. 사랑을 위한 변명이라는 주제가 서구의 전통적인 인간관과 세계관을 기반으로 제시되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문장 자체가 어렵다. 주제의 폭과 깊이가 크기 때문에 “Night of insult let you pass...”처럼 행위주체를 분명히 드러내지 않기 위해 사물을 주어로 내세우는 영어 특유의 구문이 곳곳에 있기다. 이것은 간절한 기원을 담은 독백인 이 시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결과다. 어구의 순서가 뒤바뀐 이른바 도치문이 많고 수식하는 어구와 수식되는 어구가 멀리 떨어져 있거나 순서가 뒤바뀐 경우들도 있다. 대체로 이런 경우들은 영시의 전통에서 자장가나 동요에 즐겨 쓰이는 강약4보격trochaic tetrameter을 구현하기 위해서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 강약4보격에서는 바로 다음의 음절보다 앞의 음절을 더 강하게 읽도록 어구를 배치되는데, 이렇게 되면 “까치 까치 설날은...”에서처럼 귀엽고 경쾌한 느낌을 살리기 쉽다. 물론, 정형시와 자유시 사이의 어중간한 형식이기 때문에 이 리듬이 일관되게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역시 불완전한 인간의 존재를 그대로 담아내는 그릇의 일부이다.


이 시는 1936년에 발표됐다. 1930년대는 오든 개인에게 있어서나 세계사의 면에 있어서나 격동의 시기였다. 서구 자본주의의 위기로 간주되던 대공황이 맹위를 떨치고 있었고, 일차세계대전을 통해 이미 형성됐던 인간과 인간의 문명에 대한 회의가 더욱 짙어지던 때였다. 사랑에 관한한 언제나 급진적인 생각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실천해왔던 오든 역시 이 시기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완벽하게 동등한 입장에서의 결합을 이상적인 연인관계로 굳게 믿고 있던 오든에게 이 시기 허락됐던 것은 몇몇 짧은 만남뿐이었다. 그나마 이런 짧은 관계들에서도 오든 자신은 언제나 손해 보는 쪽이었던 것 같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시에서 오든은 “꼭 같은 애정을 주고받을 수 없다면/ 내가 더 사랑하는 쪽이 되리라”(If equal affection cannot be/ Let the more loving one be me")라고 토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급문화에서건 대중문화에서건 당대 영국문화계의 총아로 대접받고 있었지만 사적인 연애에 있어서는 오든은 약자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자장가」의 메시지는 더 감동적이다. 사랑의 실패 속에서도 사랑의 힘을 굳게 믿는 지극한 이상주의, 상처만 주는 다른 인간들에 대한 무한 신뢰와 애정, 사랑을 통한 인간 구원에 대한 열망이 정복자나 영웅의 입에서 나온다고 상상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