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17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저자소개

이명호
1963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자라다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고향을 떠났다. 책만 죽어라 읽어보려고 경희대 국문과에 들어갔다. 4학년 때도 대학도서관에서 책만 읽다 졸업하고 갈 데 없어 잠시 실업자 생활을 했다. 주로 책과 관련한 일을 하며 입에 풀칠하다 서평전문잡지 《출판저널》 편집장을 끝으로 직장생활을 정리했다. 본디 직함은 남이 붙여줘야 하거늘, 스스로 도서평론가라 칭하며 글 쓰고 강의하는 재미로 살고 있다. 그동안 『어느 게으름뱅이의 책읽기』, 『각주와 이크의 책읽기』, 『책과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 『죽도록 책만 읽는』, 『책, 휘어진 그래서 지키는』, 『여행자의 서재』, 『책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 『고전 한 책 깊이 읽기』, 『책읽기의 달인, 호모부커스』, 『살아 보니, 진화』(공저), 『살아 보니, 시간』(공저), 『살아 보니, 지능』(공저) 등을 펴냈다.


        

                                                   

 “이것이 인간인가.” 이 구절은 프리모 레비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온 후 쓴 증언록 제목이다. 나치 절멸수용소에서 인간성의 바닥을 만진 그가 참혹했던 당시 경험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던졌던 물음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작년 출간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창비, 2014)의 작중 인물 김은숙이 자신이 편집했으나 검열에 걸려 책으로 출간하지 못한 원고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김은숙은 5.18 당시 여고 3년생으로 주검 수습을 담당했다가 계엄군이 광주 도청을 진압하기 전날 밤 빠져나왔다. 중학교 2학년생 동호를 그곳에 남겨두고 왔다는 죄책감은 그의 이후 삶을 지배한다. 그해 유월 분수대에서 물줄기가 터져 나올 때 은숙은 참지 못하고 도청 민원실에 전화를 건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69쪽) 짐승처럼 도륙당한 사람들의 몸이 채 썩기도 전에 어떻게 살아남은 자들이 햇빛 속에 반짝이는 물줄기를 볼 수 있는가? 그럴 수는 없다. 도저히 그럴 수는 없다. “하나하나의 물방울들이 내쏘는 햇빛의 예리한 파편들이, 달궈진 눈꺼풀 안쪽까지 파고들어 (그의) 눈동자를 찔렀”기 때문이다.(69쪽) 햇살의 파편에 찔린 눈은 눈부신 유월의 거리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활보하는 사람들을 볼 수가 없다. 그 눈이 불과 한 달 전에 본 것은 인간이 인간 이하로 내몰리는 처참한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또 이렇게 말한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내는 순간”(213쪽)이 떠오른다. ‘오월 광주’는 학살과 고문과 강제진압에 맞서 인간 ‘존엄’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이 만든 ‘에티카’였다. 그런 사람들이 폭력에 짓밟히는 광경을 목격한 은숙이 “인간은 무엇인가?”라고 물을 때, 그 질문은 명령으로 바뀌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문장은 의문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명령문에 가깝다. 


 『소년이 온다』는 이 명령문을 따르기 위해 죽음으로 건너간 사람들, 죽음보다 더한 치욕과 굴욕을 겪어야 했던 사람들, 이 명령문이 거대한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기 모멸감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 내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러므로 소설은 인간 존엄의 증언이면서 그 파괴의 기록이기도 하다. 존엄과 모욕, 인간과 짐승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 속에 공존한다. 인간은 유리처럼 부서지기 쉬운 존재다. 그러나 인간은 또한 이 존재론적 취약성 속에서 존엄을 지키려 고투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광주’는 인간의 가장 고귀한 것을 힘으로 짓밟은 것들, 그러나 동시에 그 힘에 맞서 존엄을 지키려는 자들을 가리키는 보편명사다. 


소설 제목에 들어있는 ‘소년’ 강동호가 자진해서 시신을 수습하러 상무관에 들어간 것도, 계엄군이 들어오기 전날 밤 쏘지 못할 총을 들고 도청에 남은 것도 그의 내면에서 울려오는 양심의 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 집 문간방에 세 들어 살던 친구 정대가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았으면서도 돕지 못했다는 자책은 동호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러고도 네가 친구냐,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야.”(36쪽)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날 집으로 돌아와 정대가 누나와 함께 세들어 살던 문간방에 혼자 누웠을 때, 동호는 정미 누나가 던지는 힐난의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는 그의 가슴을 뚫고 들어와 심장에 박힌다. 물론 정미 누나가 이런 말을 한 적은 없다. 그녀 역시 그해 여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도청 안마당에 차가운 시신으로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이 양심의 가책은 열일곱 소년 동호의 삶을 가르는 윤리적 명령이 된다. 


5.18 당시 상무관에서 시민군으로 활동했던 교대 복학생과 여공 출신 미싱사 선주는, 이후 잔혹한 고문을 당하며 인간 존엄이란 것은 사건의 외부에 있었던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지어낸 거짓말이라는 회의에 시달린다. 당시 스물세 살의 교대 복학생은 강제 진압 이후 함께 고문을 겪었던 대학 신입생 김진수가 어떻게 부서져 내려 급기야 자살에 이르게 되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 총을 들었다는 이유로 극렬분자로 분류된 그들은 ‘빨갱이 새끼’라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위협적인 낙인이 찍혀 인간 이하로 내몰린다. 비녀 꽂기, 통닭구이, 물고문, 전기고문, 개미고문 같은 이름조차 섬뜩한 잔혹행위, 동료 수감자의 멀건 콩나물국을 탐냈던 치욕적인 허기와 갈증, 언제 닥칠지 모르는 구타와 고문의 공포, 거짓 자백의 죄책감은 고문 피해자들로 하여금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멸시하게 만든다. 그들이 서로에게서 본 것은 인간 영혼의 빛나는 광채나 불굴의 저항정신이 아니라 굶주린 짐승 같은 비천한 몸뚱어리였기 때문이다. 혹독한 고문의 피해자로서 그들은 서로에게 의지했지만 동시에 언제나 서로의 얼굴을 후려치고 싶어 했고, 지우고 싶어 했고, 밀어내고 싶어 했다. 김진수는 고문의 시간을 용케 견뎌냈지만 그의 삶은 학살 이전, 고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자살을 결행하기 전 김진수는 술에 취해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닌 건가. 

아니, 그건 무슨 유리 같은 건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 가거나 부서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려야 하니까.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는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 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유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던 걸 증명한 거야. (130쪽) 


‘우리는 부서지면서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는 역설이다. 인간성은 파괴되는 순간 환기되는 어떤 본성, 유리처럼 깨어지기 쉬운 취약한 자질이다. 하지만 이 역설의 삶을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은 인간에 대한 어떤 아름다운 언어도 믿지 못하고 끈질긴 의심과 고통스러운 치욕과 싸워야 했다. 김진수와 함께 고문을 겪었던 교대 복학생은 5.18 민주항쟁 참여자들의 죽음을 심리적으로 부검하기 위해 자신에게 증언을 요청하는 연구자를 향해 이렇게 되묻는다.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인 것입니까?”(134쪽) 


이 질문은 광주항쟁의 또 다른 가담 인물 선주가 공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식인이나 대학생이 아닌 여공 출신이었던 그녀는 “삼십 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 번 후벼들어” 오고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던” 극한의 고문을 당한 뒤 인간이라는 말이 연상시키는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무너뜨리며 도망” 치는 삶을 살아야 했다. 학출이 아닌 공순이 출신이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그녀는 성적 파괴에 이르는 잔혹한 고문을 겪어야 했다. 그녀가 가족이나 동료들과 인간적 교류를 나누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고립된 삶을 살게 된 것은 고문의 체험이 ‘인간’이라는 것, 인간들 사이의 ‘관계’라는 것, 합법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국가’라는 것, 그리고 ‘사회정의’라는 것에 대한 기존의 믿음을 송두리째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이른바 ‘트라우마’라고 부르는 사건이 그녀에게 일어난 것이다. 트라우마가 특별한 것은 참혹하거나 드물게 발생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로 인해 한 사회구성원이 공유하는 ‘기본 가정基本 假定’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이 가정은 실증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를 사회이게 만들어주는 ‘전제’이자 ‘믿음’이며, 사회를 구성하는 ‘가능성의 조건’이다. 이 믿음이 붕괴되면 사회는 존속할 수 없고, 개인은 정체성을 지닌 존재로 살아갈 수 없다. 국가와 사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믿음을 잃어버린 선주에게 “그 여름 이전으로 돌아갈 길은 끊어졌다.”(174쪽)


하지만 그해 여름 광주에서 보낸 열흘은 이들에게 인간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느낌을 가져다준 예외적 순간이기도 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114쪽)


김진수가 부서지면서 그 존재를 증명했다고 말한 것이 바로 이 ‘양심’이라는 숭고한 느낌이다. 그것은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116쪽)이자 집단 속에서 발휘되는 “윤리적 파동”(95쪽)이다. 혈관의 박동으로 전달되는 도덕적 감성은 이성의 언어로 전달할 수 없는 정동affect의 언어다. 더욱이 이 정동은 개인의 내면에 고립된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부가 되었다는 집합적 느낌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항쟁 공동체 속에서 촉발된 양심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자유, 시민적 연대와 일체감을 일깨워주었다. 총으로 무장할 것을 강요당하고 벌거벗은 폭력 앞에 내던져진 이들이 시위 공동체에서 발견한 것은 양심이라는 인간적 감수성이다. 양심은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자질이다. 진압군의 총구 앞에 섰던 순간 그들을 흔들었던 것은 독재타도나 민주주의 쟁취였다기보다는 (설령 이런 구호를 외쳤다 하더라도) ‘인간이 되는 것’이었다. 짐승으로 살지 않기 위해, 아니 짐승으로 죽지 않기 위해 그들은 싸웠다. 그들이 죽은 이들의 시체를 태극기로 감쌌던 것은 그 시신을 도륙된 고깃덩어리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짐승으로 전락하는 순간 그들을 지켜준 것도 인간이었던 때의 기억이다. 배고픔에 시달리며 먹을 것을 두고 서로 으르렁거리는 그들 사이로 한 남자애가 더듬거리며 뱉었던 말 “우, 우리는…… 주, 죽을 가, 각오를 했었잖아요.”(119쪽)는 짐승으로 변했던 그들을 일순간이나마 인간으로 되돌려놓았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이 장례식이 된 것은 죽은 이들의 장례를 치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해 여름 광주에서 죽은 이들은 지금도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로 오고 있다. 작품의 제목 속 소년처럼 그들은 “온다.” 여기서 시제는 현재다. 소년을 도청에 두고 빠져나온 선주는 삼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수건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도 소년이 자신에게 오고 있다고 느낀다. 소년의 어머니는 아직도 꽃 핀 쪽으로 걸어가자던, 여섯 살 무렵 아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은숙은 자신이 교열을 봤지만 검열 때문에 출판하지 못한 희곡이 상연되고 있는 극장에서 동호의 이름을 부른다. 사복 경찰이 객석 뒤에서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배우들은 대사를 소리 내어 발음하지 못하고 입만 달싹인다. 그러나 은숙은 배우들의 입술 모양만 보고도 대사를 들을 수 있다. 수차례의 교열 끝에 책 속 문장들을 거의 다 외웠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는 열한두 살로 보이는 소년이 손에 해골을 들고 뛰어오른다. 소년 뒤에는 허리를 구십 도로 구부린 배우들이 따른다. 배우 한 명이 소년의 손에서 해골을 빼앗아 노파에게 건네준다. 순간 소년은 해골을 보듬고 있는 노파의 굽은 등허리에 바싹 몸을 붙인다. “업힌 어린아이처럼, 혼령처럼 살금살금 뒤를 따른다.”(102쪽) 이 장면에서 혼령이 된 소년은 역사가 강탈해간 엄마와의 재회를 완성한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99쪽) 배우의 달싹이는 입에서 읽어낸 이 문장은 은숙이 동호에게 건네는 사랑의 언어이면서 그녀 자신의 삶을 가리키는 언어이기도 하다. 무대 위 소년과 동호는 하나가 된다. 무대 위 소년이 엄마를 되찾듯이, 1980년 5월 광주에서 죽은 동호는 은숙과 다시 만난다. 은숙은 동호를 기억 속에서 불러내 그의 이름을 불러준다. “……동호야.”(102쪽) 그리고 그녀는 뜨거운 고름 같은 눈물을 흘리며 다음 문장을 만들어낸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 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102-3쪽)


위 인용은 무대 위 배우가 소리 없이 말하는 문장들이 은숙의 마음속으로 들어와 만들어진 것으로 소설 전체를 압축하는 시적 발화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은숙은 국법에 맞서 오빠의 시신을 매장하고자 했던 안티고네의 위치에 있다. 국가의 적이라는 실정법적 구획이 오빠의 시신을 규정할 수는 없다. 인간적 존엄을 지닌 단독적 개체로서 오빠는 오빠 자신으로 존중되어야 하고, 인간으로서 예를 갖추어 장례식을 치러줘야 한다. 인간됨의 도리를 지키려는 안티고네의 사랑과 헌신은 국가가 규정하는 법적 질서 너머를 향하고 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공동체가 지켜내야 하는 보편적 정의와 연관되어 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죽어간 사람들은 문민정권이 들어서면서 폭도에서 민주화 유공자로 명예를 회복하고 국가로부터 금전적 배상을 받는다. 그들의 시신이 묻힌 곳도 망월동 구묘역에서 국립 신묘역으로 바뀐다. 하지만 그들을 그런 죽음으로 몰아넣은 폭력적 배제의 사회구조는 모습을 바꾸어 계속되고 있다.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용산참사에서 ‘광주’가 재연되고 있음을 보았다고 말한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지켜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207쪽) 훼손되지 말아야 할 것을 훼손하는 사회적 기제가 온존하는 한 광주는 수없이 되살아나 피투성이로 재건된다. 2014년 우리는 광주가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집단 자살로, 세월호 참사로 되살아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광주에서 죽어간 사람들에게 사회적 장례식을 치러주는 일은 이 폭력구조 자체를 바꾸는 일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광주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치유하는 작업이 광주를 만들어낸 사회제도와 과정을 바꾸는 정치적 실천과 만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수많은 광주들과 그 사상자들이 돌아오는 것을 결코 막지 못할 것이다. 광주에서 죽은 소년은 지금도 우리에게 오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