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08

세월호가 들려주는 말, 우리가 들어야 할 말

저자소개

이명호
1963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나 자라다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고향을 떠났다. 책만 죽어라 읽어보려고 경희대 국문과에 들어갔다. 4학년 때도 대학도서관에서 책만 읽다 졸업하고 갈 데 없어 잠시 실업자 생활을 했다. 주로 책과 관련한 일을 하며 입에 풀칠하다 서평전문잡지 《출판저널》 편집장을 끝으로 직장생활을 정리했다. 본디 직함은 남이 붙여줘야 하거늘, 스스로 도서평론가라 칭하며 글 쓰고 강의하는 재미로 살고 있다. 그동안 『어느 게으름뱅이의 책읽기』, 『각주와 이크의 책읽기』, 『책과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 『죽도록 책만 읽는』, 『책, 휘어진 그래서 지키는』, 『여행자의 서재』, 『책읽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 『고전 한 책 깊이 읽기』, 『책읽기의 달인, 호모부커스』, 『살아 보니, 진화』(공저), 『살아 보니, 시간』(공저), 『살아 보니, 지능』(공저) 등을 펴냈다.



2014년 7월 한국인들에게 자연의 시간은 봄에서 여름으로 흐르고 있지만, 마음의 시간은 ‘세월호 트라우마’가 남긴 잔인한 4월에 멈추어 섰다. 4월 16일 이후 한국인들은 날짜를 세는 불행한 계산법 하나를 새로 갖게 되었다. ‘세월호 이후 몇일’이라는 셈법이 우리 마음 속에 생겨난 것이다. 이 새로운 산법은 세월호 참사가 한국인들의 집단정신에 남긴 트라우마적 흔적이다. 참사에 직접적으로 연루된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 그리고 구조의 행운을 얻은 생존자들뿐 아니라 한국인 전체가 이 지독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은 한국인의 시간감각에 새로운 분기점, ‘포스트 세월호 시간’이라 부를 수 있는 분수령이 되었다. 

   

이 슬픈 시간법을 살아내는 일은 힘겹고 고통스럽다. ‘세월호 이후’라 부르지만 실상 우리는 ‘이후’를 살지 못한다. 세월호는 세월도 가라앉혀 버렸기 때문이다. 4월 16일 이후 시간은 더 이상 흐르지 않고 진도 팽목항을 한없이 맴돌고 있다. 그날 이후 팽목항은 한국인의 집단 트라우마가 각인된 고통의 장소가 되었다. 바다 속으로 침몰하는 세월호의 선체, 배를 뒤덮어버린 검은 물살,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 승객들을 내버려두고 도망치는 선장과 선원들, 배 안에 갇힌 단 한명의 승객도 구하지 못한 무능한 국가, 진도 앞바다에 휘날리는 노란 리본과 그 위에 적힌 무수한 사연과 기도들, 한국인이라면 어느 누구도 이 광경을 기억에서 지울 수 없을 것이다. TV 화면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는 이 이미지들의 급습에서 도망칠 수 있는 사람 역시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2014년 7월 4일 현재 세월호 침몰 80일째, 사망자 293명, 실종자 11명. 이 무심한 숫자가 우리들 가슴에 화인火印으로 박혀 있다. 

   

실종자失踪者, 이 세 음절 단어가 진도 앞바다를 휘감고 도는 물살처럼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주검으로도 돌아오지 못하는 종적 없는 자. 텅 빈 바다를 향해 ‘돌아와’를 외치는 가족들의 절규가 귓전을 맴돌고, 아들의 귀환을 바라며 아버지가 팽목항 선창에 갖다놓은 아들의 낡은 축구화가 눈앞을 떠나지 않는다. 한밤 중 눈을 뜨면 수장된 아이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우리가 물속에 가라앉는 것이 보이지 않나요?” “왜 우리가 죽어야 하나요?” 죽은 이들이 보내는 저 힐난에 찬 물음에 답하지 않는 한 나는, 그리고 당신은, 이들의 죽음을 영원히 미제의 실종사건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우리는 끔찍한 사건을 주기적으로 경험하지만 그 경험이 오래가는 일은 드물다. 개인적 수준에서뿐 아니라 사회적 수준에서도 우리는 참혹한 경험을 부정하거나 억압하고, 기억의 회로에서 분리시킨다. 기억상실의 속도가 유달리 빠른 한국사회는 망각의 방식으로 트라우마에 대응해왔다. 아니나 다를까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죽음의 의미를 부정하는 언사들이 공론장에 활개를 치고 돌아다녔다. 이름 있는 개신교 목사가 했다는 저 불순한 계급분할의 언어, “가난한 집 아이들이 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느냐?”는 발언이 유족들의 가슴을 후벼 팠다. 한 언론사 간부는 세월호 사건을 교통사고에 비유함으로써 이 참사의 비극성을 애써 지우려고 했다. 일부 언론과 보수 세력은 추모군중을 사회불안세력으로 몰아붙였다.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를 국가개조의 전환점으로 삼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읍소했지만, 당면한 선거 마케팅 이상의 진정성을 찾기는 힘들었다. 이 위악적 국가개조의 언술에서 우리가 본 것은 개조대상이 개조의 주체를 사칭하는 의식의 전도현상이었다. 대통령의 눈물은 선거에서 보수세력을 결집시키는 정치적 효과를 발휘한 후 곧바로 말라버렸다. 대통령은 인사청문회를 통과시킬 새 총리 물색에 실패하자 세월호 사건에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했던 전 총리를 유임시킴으로써 ‘책임의 실종’을 만천하에 공표했다. 세월호 내각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내각에 천거된 인사들은 하나같이 상식선의 국민 눈높이에도 미치지 못할 개조대상의 인물이었다. 어렵게 열린 국회 국정조사 특별회의에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부처는 자료제출을 미루며 사실상 진상조사를 방해하고 있다. 유족들이 방청석에 앉아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음에도 국방장관은 이임식에 가기 위해 자리를 뜨고 여당 국회의원은 천연덕스럽게 졸고 있다. 그의 졸음은 유족들이 가족의 생사를 걱정하며 노심초사하고 있는 진도 체육관에서 컵라면을 먹는 교육부 장관의 무신경함을 복제하고 있다. 

   

카프카는 다른 모든 죄를 낳는 인간의 주된 죄 두 가지를 꼽는다면 그것은 초조함과 무관심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인간은 초조함 때문에 천국에서 쫓겨났고 무관심 때문에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천국으로의 복귀를 가로막는 이 무관심의 죄를 우리는 국가 개조를 내세우는 정치인들의 얼굴에서 본다. 그들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모르는 무신경함의 죄를 죄인 줄로 모르고 저지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공감의 부재를 생존의 알리바이로 삼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무한경쟁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타인의 아픔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생존의 공포는 공감능력을 억압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우리는 슬픔을 슬픔으로 느낄 줄 모르는 무심한 존재가 되었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은 망각을 유도하는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넘지 못했다. 그것은 아픔을 지워버리는 울음, 재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감정적 알리바이로서의 울음을 떨쳐내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결코 무심해질 수 없는 것이 있다. 침몰하는 배에 갇혀 속절없이 죽어간 이들의, 저 힐난에 찬 물음과 한 맺힌 외침이 그것이다. 우리는 ‘가만히 있으라’라는 지시를 따르며 애타게 구조를 기다렸던 아이들의 절규를 듣지 않을 수 없다. “왜 우리가 물속에 가라앉아야 하나요?” “왜 우리가 죽어야 하나요?” 우리는 이 트라우마적 물음에 답할 말을 찾았는가? 우리는 선실 바닥으로 물이 차오르는 마지막 순간 한 아이가 카톡으로 띄워 보낸 “무서워, 엄마. 사랑해”라는 문자의 수신자가 될 자격이 있는가? 죽음의 바다를 건너온 이 문자를 우리는 제대로 해독했는가?  우리는 이 문자가 전달하는 절체절명의 공포와 그 순간 죽어가는 아이가 세상에 내보내는 사랑의 메시지를 공유하고 있는가?      

   

세월호 참사는 아직 애도될 수 없다. 무엇을 잃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잃어버린 것과의 이별이라는 애도작업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세월호 참사로 우리는 무엇을 잃었는가? 물론 유족들이 잃어버린 것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일 것이다. 사적인 차원에서 그들은 가족과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도할 수 있다. 하지만 세월호 희생자를 애도하는 국민들이 잃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적 죽음이나 일반적인 사건사고에서 발생한 죽음의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다. 국가적 참사에서 죽은 자를 집단적으로 애도한다고 할 때 죽은 자를 그 죽음의 원인이 된 사건의 ‘의미’로부터 떼어놓고 애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의 의미를 규명하지 않는 한 우리는 ‘왜 우리가 물속에 가라앉아야 하나요?’란 저 트라우마적 질문에 답할 수 없다.  

   

세월호 참사에는 그 규모와 인명 피해의 정도와는 별개로, 통상적인 사고의 잣대로는 잴 수 없는 어떤 것이 있다. 사고 공화국이라는 오명은 대한민국이 주기적으로 들어온 불명예스러운 진단이지만, 세월호 참사는 ‘사고’라는 범주로 묶이기에는 특별한 무엇이 있다. 그것은 부분적 해결책이나 일시적 미봉책으로 가릴 수 없는 사회의 근원적 ‘실패’를 노정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한국사회의 ‘국가적 트라우마’로 이해되어야 하는 이유다. 트라우마가 진정 특별한 사건이 되는 것은 드물게 발생했기 때문이 아니라 한 사회구성원이 공유하는 ‘기본 가정基本 假定'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이 가정은 실증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를 사회이게 만들어주는 ‘전제’이자 ‘믿음’이며, 사회를 구성하는 ‘가능성의 조건’이다. 세월호 사건을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믿었던 기본 가정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국가라는 공동체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한다는, 구성원 모두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가정 위에 성립한다. 이 가정이 무너질 때 국가는 존립할 수 없다. 세월호 이후 우리는 더 이상, 사회는 안전하고, 우리들 개개인은 가치가 있으며, 사회질서는 의미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 이제 대한민국호가 안전하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이 기본 가정을 깨뜨린 것이 무엇인지 직시하여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지 않는 한 죽은 자에 대한 공적 애도는 이루어질 수 없다. 참사의 원인이 규명되어 단절된 사회와의 관계가 복구되지 않는 한 피해자의 치유도 시작될 수 없다. 세월호 사건이 국가적 트라우마가 되는 것은 대형 사고라는 사실만이 아니라 이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를 작동시키는 기본 전제에 그어진 금, 어떤 미봉책으로도 메울 수 없는 근본적 분리와 분할을 목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금은 인간을 둘로, 아니 더 미세한 복수의 차이들로 가르는 분할의 선이다. 세월호가 규정을 무시하며 화물을 과적한 것, 화물과 승객을 더 싣기 위해 선체를 불법 증축한 것,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선장이 저임금의 계약직 직원이었다는 것, 그에 앞서 기한을 연장하여 선령을 초과한 배의 수입을 허용한 것, 그리고 이 모든 불법, 부정과 결탁된 관피아들과 학피아들, 이런 객관적 ‘사실들’은 실상 더 근본적인 분할의 매개 고리들이다. 그것은 사회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국민과 비국민, 인간과 비인간으로 갈라놓는 끔찍한 분할이다. 이 분할로 인해 인간이라는 척도가 붕괴되었다. 한쪽의 인간은 다른 쪽 인간의 비인간적 삶은 물론이고 비인간적 죽음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고 무신경하다. 이 무관심, 무신경 위에서만 삶이 가능하도록 만든 것이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우리 사회의 물적 토대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사회가 이미 오래 전 이런 분할의 물살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강의 기적은 세월호의 침몰을 내장하고 있었다.

   

4월 16일 진도 앞 바다 속으로 가라앉으며 한 아이가 보낸 카톡 문자, “무서워, 엄마”라는 메시지는 비인간적 죽음에 내몰린 한 인간이 토해내는 감정적 진실이다. 그 공포, 그 두려움, 그 불안을 나누지 못하는 한 우리는 세월호 트라우마의 증인이 될 수 없다. 세월호 참사에서 우리가 진정 사건의 주체가 되고자 한다면, 저 깊고 어두운 바다에 수장된 것이나 다름없는 아이들이 죽어가면서 느꼈던 두려움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하고, 이 감정적 공유가 우리 자신이 그 아이들을 비인간적 죽음으로 내몬 공범자였다는 아픈 각성으로 이어져야 한다. 

   

일본 철학자 다카하시 테츠야는 재일조선인 학자 서경식과 나눈 한 대담에서 역사적 범죄에 대한 사법적 책임 못지않게 ‘응답 가능성으로서의 책임responsibility'의 중요성을 역설한 적이 있다. 


타자가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불가피하게 책임=응답가능성의 내부에 놓이게 된다. 이 점에서 내가 완전히 자유롭고자 한다면 타자의 존재를 없애는 수밖에 없다. 사람과 사람이 공존, 공생해 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신뢰관계로서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거기에 응답한다는 약속이 있다. 인간은 언어를 구사하고 타자와 함께 사회를 형성하는 존재인 한 이 약속에 구속된다.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100쪽)


언어를 구사하고 사회를 만들어가는 존재로서 인간이 타자의 부름에 응답해야 한다는 책임을 피할 길은 없다. 그러나 타자의 부름에 응답하려면 나는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폭력적인가에 대한 각성과 그 각성이 불러일으키는 부끄러움의 감정에 노출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타인의 부름을 듣지 못하거나 듣기를 적극적으로 거부해왔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국가적 영광과 경제적 부흥을 위해 소리 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외침을 우리는 듣지 못했다. 광주에서 용산과 밀양으로, 그리고 마침내 진도 팽목항으로 이어지는 숱한 참사에서 우리는 희생당한 이들의 살려달라는 울부짖음을 듣지 않았다. 앞서 대담에서 서경식이 우리 시대 가장 필요한 윤리적 과제로 듣기를 꼽은 것도 ‘듣기의 거부’가 폭력의 시대라 할 수 있는 20세기의 치명적 죄라 보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 그리고 그녀들의 증언을 증언으로 성립시키는가 아닌가가 그것을 듣는 쪽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리석음, 천박함, 이기적 보신, 자기중심적이며 근거 없는 낙관, 상상력의 빈곤과 공감력의 결여, 그 외 어떤 이유로서든지 증인의 모습을 보지 않고 증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여기에 20세기를 특징짓는 깊고 깊은 ‘단절’이 입을 벌리고 있다.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100쪽)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 역시 잘 듣는 일이다. 주의 깊게 귀 기울여 듣기란 쉽지 않다. 듣기, 아니 경청이란 기계적 청취가 아니다. 잘 듣기 위해서는 현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배제하거나 은폐했던 말, 현재의 삶을 지키기 위해 억압했던 말, 그 말을 들으면 우리가 더 이상 우리 자신일 수 없는 말에 귀를 열어놓아야 한다. 자신을 붕괴시킬 수도 있는 소리에 스스로를 개방하여 그 위험을 감내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듣는다’. 

   

테바이의 왕 오이디푸스가 진정 인간이 되는 순간은 그가 자신을 붕괴시키는 위험하고 불길한 소리를 끝내 외면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병이 창궐하는 도시 테바이에서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오이디푸스를 향해 “그대가 바로 이 나라를 오염시킨 범인”이라고 말할 때, 오이디푸스는 듣지 않는다. 그는 듣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는 불 같이 화를 내며 테이레시아스를 반역자로 몰아세운다. 그러나 이런 권력의 언어에 굴하지 않고 테이레시아스가 집요하게 “그대가 바로 그대가 찾고 있는 범인이란 말이오”라고 말할 때, 그리고 이 발언을 뒷받침할 증거들이 속속 드러날 때, 오이디푸스는 결국 눈먼 예언자의 말을 받아들인다. 비록 그 대가가 제 눈을 제 손으로 찔러 눈먼 추방자가 되는 길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오이디푸스에서 보는 것은 운명의 장난에 놀아나는 비극적 희생물이 아니다. 자신도 모르고 저지른 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인간의 지극한 윤리다. 

   

침몰하는 배 안에서 “무서워, 엄마”라는 문자를 내보냈던 소녀는 “사랑해”라는 마지막 전언을 추가한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그가 손가락으로 찍어 보냈던 저 세 음절 낱말은 우리가 존재의 무게를 담지 않고 남발하는 흔한 단어일 수 없다. 그것은 죽음의 한가운데서 세상에 내보내는 유대의 전언, 사랑의 메시지다. 이 메시지에는 죽어가는 소녀의 마지막 숨결이 담겨 있다. 나는, 그리고 당신은 그 숨결을 들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