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21

젊은이여, 토익 만점을 비웃어라! ③

토익, 성공, 그리고 청춘의 고민



『나의 토익 만점 수기』는 방황하는 청춘의 자화상이다. 성공에, 취직에, 토익에, 사회의 요구와 틀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괴로워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소설 속 주인공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우리로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주인공의 고민이 곧 우리의 고민이었고, 모든 청춘의 고민이었으니까. 『나의 토익 만점 수기』를 읽고 느끼는 바가 없는 20대는 많지 않을 것이다. 모두 같은 고민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소설을 통해 확인했기 때문인지, 우리는 작가와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이석경 


전 장녀인데 부모님의 기대에 따라 경제학과를 가려고하니 정말 싫었어요. 그래서 인문학을 하고 싶다고 고집을 부려서 인문대를 왔어요. 그런데 막상 와보니 기대와 달랐어요. 뭔가를 보여줄 줄 알았는데 계속 방황 중이었고요.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토익 만점을 받기는 하지만, 소설 전체적으로는 ‘정말 중요한 건 다른 데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책을 보면서 많이 생각했어요.



심재천 


저도 자신을 증명하는 일에 지쳤어요. 토익이니, 대학교니, 학점이니. 대학교 올라가면서부터 그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처음엔 제가 듣고 싶은 것만 들었어요. 고급영화 회화를 2학년 때 들었는데 그건 3학년 이상이 듣는 강의였어요. 교수가 수강 취소하라고 (전원웃음) 권유하는 사상초유의 사건이 일어났죠. 저는 등록금이 아까워서 그냥 들었죠. 그런 식으로밖에 반항을 못했어요. 한 번도 안 빠지고 들었는데 D가 나왔어요.



김다은 


너무 하시는데요.



심재천 


교양영어 사상 D는 처음이 아닌가 싶은데 그럼에도 저는 계속 듣고 싶은걸 듣자고 생각했어요. 학점도 포기하고 독일어강독을 들었는데 그 강의도 C를 받았어요. 그때부터 약간 눈을 떴지요. 무언가를 하려면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구나. 부모님도 만족시키고 내 인생도 갈 순 없구나. 기자도 사실 재밌는 직업이긴 해요. 그럼에도 굳이 불투명한 작가의 길을 왔는데, 둘 다 할 순 없으니까 고민도 많이 했었죠. 



김다은 


저도 과가 별로 마음에 안 든다고 말씀드렸는데, 외부에서 강요받아서 경제학과를 선택했던 건 아니었어요. 저는 제가 불안해서 적성과는 상관없이 남들이 좋다는 대로 따라왔어요.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스스로 생각하지도 않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대로 맞춰서 살아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심재천 


다 그렇죠. 저도 그랬고요. 저는 더 심했던 것 같은데요. 지금이야 문학상도 받고 했으니까 제가 이렇게 얘기하는 거지 아무런 성취 없이 계속 내 길을 갔다면 정신분열증 환자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기 위해서는 인생을 걸만한 용기 ‘한 번’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 길의 끝에 정신분열증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말이다. 



김봉준 


막상 서울대 오고 토익시험에서 만점을 받아도 별 의미는 없다고 봐요. 이런 식의 목표들이 허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거기 얽매이지 않고 좀 더 자유롭게 살 수 있다면 좋겠지요. 그래서 살면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추구할 목표가 무엇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심재천 


그냥 좋은 여자 만나서 데리고 사는 것 아닐까요? (웃음) 돌고래처럼 동물적으로 사는 거죠. 하고 싶을 때 하고, 그렇게 살다 가는 거죠. 이게 다른 사람한테는 안 맞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정글북 같은 삶도 좋다고 봐요. 답이 어디 있겠어요. 저야 서울대에 가고 싶었는데 안 됐던 거고, 이제 와서 그런 데 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죠. 만약 제가 서울대에 들어갔다면 끝까지 달려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자기의 운과 재능을 시험해보며 살아도 좋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런 문제는 십년 간 면벽수행 한 사람들이 대답할 수 있겠네요. 



김봉준 


마지막으로 요즈음 고민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심재천 


진짜 내밀한 것은 말 못하고, 공식적인 것만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조만간 토지문화관에 들어가서 장편을 쓸 계획이에요. 그 곳에 집필실이 따로 있어요. 그리로 들어가서 후속 장편을 쓸 거예요. 작품을 쓰고 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소설도 쉬운 길이 아니구나 싶어요. 다들 똑같이 살아요. 폼 잡는 사람이 이상한 거죠.  



김봉준 


장편소설 나오면 꼭 소장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토익 만점 수기』)책을 가져왔는데 괜찮으시다면 싸인 좀 부탁드립니다. 



심재천 


네. 사셨어요? 고맙군요. (독특한 글씨체로 두 사람의 이름을 쓰고 그 사이를 구불구불한 선으로 이으며) 이렇게 우리가 이어져있다는, 말도 안 되는 제 생각을 표현한 거예요. 어때요?



김봉준 


아, 진심이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심재천 


나중에 정말로 여러분이 작가가 되어서 다시 만날 수도 있겠지요?



김봉준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저희가 글을 쓰면 제일 먼저 보여드려도 될까요?



심재천 


좋죠. 좋은 글을 쓰시기 바랍니다.



어느새 작가를 만난 지 2시간이 훌쩍 넘어 있었다. 헤어질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두서없는 질문들이었지만 진솔하게 답변해준 심 작가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준비가 충실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기도 했지만 많은 것을 얻은 뜻 깊은 시간이었다. 


늦은 봄날의 오후, 남양주시 어느 카페에서 이루어진 이 짧은 만남은, 쉬이 잊히지 않을 추억으로 우리 세 사람의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