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16

20대 청춘이여, 독립을 연습하라 3

저자소개

황상민
공식적으로는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비공식적으로는 민간인의 언어를 구사하는 하버드대학교 심리학 박사, 한국인의 심리를 가장 정확히 꿰뚫는 심리학계의 셜록 홈즈,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인정한 세계 심리학계의 아이돌, 표정상담기법을 도입한 국내 유일의 심리전문가로 통한다. 그의 관심은 심리학을 넘어 사회, 문화, 경제, 일상의 영역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교과서 10번 반복해서 읽고 외우기’로 서울대학교에 입학, 고시 패스해서 번듯한 공무원이 되기를 원했던 부모님의 뜻과는 달리 ‘나는 왜 남들과 다를까’를 탐구하고 싶은 열망에 심리학과를 선택했다. 이후 ‘유학은 부자들이나 가는 것’이라며 코웃음을 치는 주변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하버드대학교에서 심리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하버드대학교 사이언스센터와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연구 활동을 했으며, 현재 한국 사회의 정체성과 마케팅 소비 심리 및 트렌드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연구법인 위즈덤센터(WISDOMCENTER.CO.KR)와 함께 한국인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다양한 심리를 탐구하고 있다. 저서로 《짝, 사랑》, 《부모 심리, 아이 심리》, 《한국인의 심리코드》, 《디지털 괴짜가 미래 소비를 결정한다》, 《대한민국 사람이 진짜 원하는 대통령》, 《사이버공간에 또 다른 내가 있다》, 《대한민국 사이버 신인류》, 《너 지금 컴퓨터로 뭐하니》(공저) 등이 있다.

부모로부터 독립하라


명변석


저는 생각되는 게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 저도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이지만, 주변에 그런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요. 뭔가 사명감, 책임감. 부모님도 “너희는 나보다 잘 살아야 한다. 그래서 힘들지만 서울로 보냈다.” 우리도 좀 놀거나 나태해지게 되면 굉장한 자책감과 죄책감을 느끼게 되거든요.



황상민 교수


‘우리 부모가 나를 위해서 이렇게 해줬는데 내가 그것에 대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해야 되지 않냐?’ 열심히 하는 건 본인 살기 위해서 열심히 하는 거지. 부모하고 무슨 관계가 있어요? 그렇다고 부모가 해준 거에 대해서 무시하라는 뜻은 아니에요. 부모가 해주면 고맙지. 그렇잖아요. 그런데 고마운 거 하고 내가 내 인생을 살아가는 거 하고는 다른 거예요. 저희 어머님이 몇 년 전에 돌아가셨을 때, 내가 좀 마음이 참 안 좋았었어요. 어머니 몸이 불편하시다고 할 때 항상 이렇게 생각했어요. 어머니가 부산에 계셨는데 ‘이번 주말에 내려가야지’ 하면 항상 일이 생기더라고요. 또 그러면 ‘다음 주말에 내려가야지’ 그러다가, 결국 어머님이 쓰러져서 의식을 잃었다고 할 때 내려갔어요. 하지만 내가 일주일 전에 내려갔더라도 어머니하고 이야기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참 나쁜 자식이죠. 어머니가 건강하셨을 때 부산을 내려가면 어머니하고 이야기를 많이 나눴느냐? 그렇지도 않았어요. 처음에 인사 하고 나면 더 이야기 나눈 적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웃기잖아요. 이제 그 말은 뭐냐면 어머니가 건강할 때도 제대로 안 했는데 이제 와서 무슨 죄책감을 느끼느냐는 거예요. 그저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어머님이 나를 자주 봤을 거야. 텔레비전에 나오는 걸 봤는지 라디오 나오는 걸 들으셨든지 나름대로 기뻐하셨을 거야.’ 어떡할 거예요? 돌아가신 분을 다시 불러올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럼, 나쁜 놈이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사실 나는 나의 삶에 있어서 내가 게으른 사람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어머니를 잘 챙기지 못한) 그 부분에 대해서 실은 조금 게으른 부분도 사실 있긴 하죠. 그렇다고 어떡하겠어요. 그건 내가 생겨먹은 건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했지, 더 이상 못한 거에 대해서, 이건 약간의 자기 합리화도 있는데, 그런 생각을 조금 한 적이 있어요. 지금도 아쉬움이 있죠. 내가 조금 더 잘 해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요. 그런데 그런 잘 해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내가 잘 했을 것 같지는 않아요.



더 행복해지고 싶다면 독립하라


이혜인


그런데, 저는 제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굉장히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황상민 교수


네, 훌륭하네요.



이혜인


그런데 오늘 여기 오기까지는 그런 생각을 못하다가, 선생님이랑 언니, 오빠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드는 생각이 있어요. 애초에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도 독립을 굳이 하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고 꼭 필요하지도 않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여러 이유를 다 생각해봐도 그렇고, 제가 독립이 필요한 상황인지도 떠나서, 그냥 저는 여전히 기대고 싶어요. 왜냐면 그렇게 기댈 때, 제 마음이 편하고 나 대신 언니든 동생이든 엄마 아빠든 나에게 계속 신경을 써주는 사람이 있다는 자체가 제 삶의 만족도를 굉장히 높여주거든요. 그런데 지금 말씀하시는 걸 듣다보니 헷갈리는 게 있어요. 저는 막연히 독립은 하기 싫기는 한데, 너무 의존적인 것 같아서 또 독립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거예요.



황상민 교수


그렇죠. 그런 말은 무슨 말인가 하면 가족들이 평생 내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으면 상관이 없는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가족이 변할 뿐만 아니라 가족이 없어지게 되면 나에게 위기가 더 심하게 일어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혜인


네, 실제로 저는 할머니랑 어렸을 때부터 계속 같이 살다가,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자취를 시작하게 됐는데, 할머니와 저는 다른 가족들보다도 유달리 더 애착이 강했어요. 할머니도 저하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라 그런지 제가 자취를 시작하고서 할머니가 굉장히 많이 아프셨어요. 저도 그 소식을 들으니까 한동안 아팠어요. 그래서 그런 걸 생각해보니까, 이 책을 읽고도 나는 독립을 하기 싫어하지만 언젠가는 이게 나한테 독이 될 걸 알면 독립을 해야 될 것 같은데 그게 쉽지만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면 저는 할머니의 조그만 상태변화에도 민감하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황상민 교수


그런데 벌써 독립을 하는 한 가지 단계가 넘어간 건요, ‘아, 그렇게 할머니가 편찮으시면 나도 그렇게 영향을 받는구나’ 이런 관계에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됐잖아요. 그 부분을 인식하는 게 독립을 하는 첫 번째 단계예요. ‘내가 누구에게 의존하고 있구나.’를 확인하는 그 단계요. 그 다음에 그 의존도를 조금씩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면 어차피 할머니가 연세가 있으시니까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시잖아요.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 나도 같이 세상을 떠나야 되나? 그건 할머니도 원하지 않는 걸 거예요. 그럴 때, 할머니가 건강이 안 좋은 상황에서 거기에 똑같이 발 맞춰서 나도 건강이 안 좋거나 힘들면 그건 그 분이 원하는 게 아닐 거라고 생각해야 돼요. 그리고 할머니가 힘드시거나 건강이 안 좋으실 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도 물론 있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도 많잖아요. 거기에 맞춰서 나도 조금씩 할머니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 하는 부분도 생겨난다는 거죠. 그걸 내가 조금 의식하고 그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고 내 나름대로 할머니한테 아쉬움이 없게 하려면, 또 신경 쓸 수 있으면 그 부분이 독립해나가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이혜인


결국에는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독립인 거네요.



황상민 교수


그렇죠. 훌륭하네요. 이 인터뷰의 결론인 거 같네요. 그래서 결국에는 우리 모두의 삶은 나름대로 어느 누군가의 삶과 연결이 돼있고 그래요. 그렇지만 그 연결된 것이 나에게도 도움이 되고, 나하고 연결된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나의 삶을 만들어 가야해요. 또 ‘홀로 설 수 있는 자가 같이 설 수 있다’라는 걸 먼저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남녀사이의 독립, 인정과 홀로서기


김민경


남자와 여자 사이에 서로 다른 부분을 인정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황상민 교수


상대방이 자기와 다른 부분을 가지고 있는, 다른 독립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해요. 여러분 애인들이 싸우는 걸 보면, 주로 사소한 이유 때문이에요. 자기와 다른 부분을 인정하지 못해서죠. 결혼해서도 마찬가지에요. 실제로 전 결혼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부부들에게 조언을 해줄 때, 가장 먼저 두 사람의 성격검사를 해주고 두 사람이 얼마나 다른지를 먼저 이야기해줘요. 서로 다른 존재라는 걸 인정해야 그제야 '아. 이래서 우리가 싸운 거구나.'하고 더 쉽게 이해를 하니까.



김민경


제가 생각을 해봤는데 서로 다른 걸 인정한다는 것은 체념에 가까운 게 아닐까요?



황상민 교수 


체념은 다른 것에 대한 인정을 포기하는 거예요. 상대방의 나와는 다른 부분을 있는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존재하지 않는 부분이라고 생각해버리는 것.



김민경


인정하기가 힘들어요. 서로 다른 부분이 어쩔 수 없이 있을 때, 제 경우 ‘너도 반 양보해라 나도 반 양보할게’ 하고 중간 정도 합의점을 찾거나, 결국 안 맞춰지면 '이건 내 마음대로 할 테니까, 그 대신 너도 저건 마음대로 해.' 하고 일정부분에 대해 포기해버려요. 이 방식은 결국 인정은 아니잖아요.



황상민 교수


그러면, 그렇게 서로 양보를 하면 편안하던가요? 안 편안하죠? 이 말은 사람들이 어떤 갈등이나 차이가 있을 때 그걸 해결하는 방법을 잘못 배웠다는 거예요. 서로 합의점을 찾는다는 건 사실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미봉책으로 남겨두는 거예요. 우리는 내 친구가 내 애인이 나와 다르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참 불편해해요. 나의 존재를 내 친구나 애인을 통해 확인하고 싶은 거예요. 상대방에게서 나와 같은 생각을 이끌어내고 그걸 통해서 나를 제대로 인정받고 확인받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그런 기대 자체가 자신에 대한 인식이나 정체성이 불명확하기 때문이죠. 실제로 사람들은 '나는 어떤 사람이다.'하고 스스로를 설명하기를 어려워해요. 기껏 해봤자 '저는 서울대학교 학생인데요.', '전 누구누구의 딸인데요.' 나라는 존재에 대해 다른 존재를 빌려서 설명하는 거죠. 이건 여러분이 자라면서 자기에 대한 인식을 하도록 요청을 안 받아서 그래요. 그리고 이 문제 때문에 갈등이 많이 생기죠.



김민경


만약 그 인식이 제대로 된다면 억지로 인내하거나 양보하는 게 아니라,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가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황상민 교수


인내하거나 양보를 안 한다는 게, 자기 스타일이나 주장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분명하게 보이는 거죠. 근데 한국 사회에서는 자기 생각이나 주장이나 의견을 분명히 내보이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다른 존재를 빌려 스스로를 설명하니까. 게다가 그런 사람이 있으면 재수 없는 인간이라고들 생각하죠. 여기에서부터 우리의 삶 자체가 독립하기가 힘들게 만들어진 상황인 거예요.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를 불편해해요.



전체


왜요? 



황상민 교수


자기 생각이나 주장을 과도하게 밝히기 때문이에요. '어쩜 저렇게 당당해? 지가 얼마나 잘났다고. 교수니까 그러겠지만 밥맛이야.' 이런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해요. 



김민경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주장이나 의견을 강력하게 이야기하면 배척당할까봐 두려워하는데요.



황상민 교수


배척당하기 쉽다고 생각을 하죠. 그건 바로 두려움이에요. 실제로 어떤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무시당하거나 손해를 보는 부분도 훨씬 많아요. 오히려 과감하게 어떤 이야기를 해서 호감을 얻는 경우도 많고요.



Epilogue


이혜인


이 책의 표지가 의자 그림으로 되어 있는데, 이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언젠가 의자 그림만 있는 개인전에 간적이 있어요. 거기에서 작가분이 의자는 화가의 자화상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고요. 혹시 의자가 상담 받는 사람, 혹은 사람들의 자화상과 같은 역할을 하나 추측해보았습니다.



황상민 교수


네, 그렇게 볼 수 있겠죠. 의자는 의자에 앉아서 상담을 하는 사람을 상징해요. 돌려놓은 의자에 앉아 누군지 자기 얼굴을 보이지 않더라도 상담을 하는 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 돌려놓은 의자를 선택했죠. 



여인혁


‘서른이 넘으면 자기 마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말을 봤을 때, 왜 서른일까? 궁금했어요. 또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황상민 교수 


아, 그 말 하고 또 비슷하죠. 대체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독립을 하는 나이는 정해져있지 않아요. 마흔 혹은 쉰이 넘어서도 힘든 사람도 있죠. 신체적으로 어른이 되는 나이가 스무 살이라면, 마음, 윤리적으로 어른이 되는 나이는 서른쯤이지 않을까. 공자님은 40이 돼서 불혹이라고 했죠. 어쩌면 우리의 삶에서 본격적으로 독립을 이야기 하며 사는 시기는 서른 살쯤 되겠다는 생각도 좀 있었어요. 그렇다고 꼭 서른에 국한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결국 서른이라는 시기에 크게 의미를 가질 필요는 없겠다는 이야기죠.



전체


아, 그렇군요.



명변석


선생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인혁


밝은 데로 이동해서 사진 한 장 찍을까요?




2012년 5월 11일 그날 밤, 우리는 각자 인생에서 자신만의 ‘독립’을 꿈꾸며 앞으로 펼쳐질 인생길을 향해 또 한 발 내디뎠다. 그 길을 황상민 교수가 밝은 빛으로 비춰주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