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14

《15》‘아우를 위하여’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황석영(1943~)의 단편 「아우를 위하여」와 이문열(1948~)의 이상문학상 수상작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놀랄 만큼 유사한 서사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 유사성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1987년에 발표된 이문열의 소설이 1972년작인 황석영의 작품을 표절하지 않았다면 의식적으로 ‘다시 쓰기’를 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을 정도이다. 연배도 낮고 등단은 더욱 늦은 후배 작가 이문열이 습작기에 황석영의 단편을 접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개연성이 떨어지는 추측이다. 그런데도, 큰 상을 받고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며 이문열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논하는 평자들이 「아우를 위하여」와의 관계에 대해 그저 입을 다물고만 있는 것은 놀라운 노릇이다.
 

황석영 ⓒ박재홍              이문열 (사진 민음사 제공)

두 작품이 어떻게 유사한지를 우선 살펴보자. 두 작품은 모두 초등학교(국민학교) 고학년 교실을 무대로 삼아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아우를 위하여」의 주인공들이 6학년으로 짐작되는 데 비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5학년에서 6학년으로 올라가는 아이들을 등장시킨다. 두 작품 모두 1인칭 화자 ‘나’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그 둘이 갓 전학 온 처지라는 점도 동일하다. 「아우를 위하여」의 ‘나’ 김수남은 “피난지 부산의 학교에서, 수복되고도 수년이 지난 서울로 전학을” 왔으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나’ 한병태는 반대로 “서울의 명문 초등학교를 떠나 한 작은 읍의 별로 볼 것 없는 초등학교로 전학을” 왔다. 그렇게 전학을 간 학교와 학급을, 동급생들보다 두세 살은 많으며 힘도 센 반장이 휘어잡고 있다는 정황도 약속이나 한 듯 똑같다. 수남의 반에는 “눈이 가늘게 찢어지고 어깨가 바라진(…)벌써 다리에 털이 돋은 열다섯 살배기” 이영래가 역시 새로 전학을 와서는 기존의 급장을 몰아내고 급장 자리를 꿰찬다. 병태가 전학을 해 간 반은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있어 뵐 만큼 큰 앉은키와 쏘는 듯한 눈빛”의 소유자인 엄석대가 이미 반장으로서 카리스마를 휘두르고 있다(두 반장 주위에는 그들과 비슷하게 키가 크고 힘도 센 아이 두셋이 포진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그들의 담임 선생님이 이런 반장들에게 학급 운영을 거의 떠맡기다시피 하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공통점이다. “무슨 가게인지를 부업으로 벌여놓고 있었는지라(…)툭하면 자습시간을 주고선 하루 온종일 밖으로 나돌아다녔”던 수남네 담임은 영래가 급장이 된 뒤 “학급에 기강이 서고 자치능력이 향상된 데 대하여 만족했고,” 병태네 담임은 “청소 검사?숙제 검사, 심지어는 처벌권까지 석대에게 위임하는(…)그 눈먼 신임이 그의 폭력에 합법성을 부여해 그를 그토록 강력하게 우리 위에 군림하게 했다.”

동급생들을 압도하는 물리력에 급장이라는 합법적 권위, 그리고 담임의 신임이라는 후광까지 거느린 두 인물은 자신들의 지위와 권력을 악용해 동급생들을 억압하고 착취한다. 영래는 부잣집 아이들을 위협해서 금품이나 비싼 물건을 가져오도록 하는가 하면, 이런저런 명목으로 돈을 모금해서는 그 중 일부를 개인적 용도로 착복하기도 한다. 엄석대 역시 아이들의 도시락 반찬을 뺏어 먹거나 제가 마실 물을 아이들더러 떠 오도록 시키는가 하면 탐나는 물건을 ‘빌린다’는 명목으로 빼앗거나 “환경 정리를 한다고 비품 구입비를 거두어 일부를 빼돌”리기도 한다. 반 아이들을 강제로 동원하고 독려함으로써 반 대항 축구와 운동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점에서도 두 반장은 놀랍도록 닮은꼴이다.

이런 부당한 상황 속에 놓인 두 소설의 화자 ‘나’가 그에 대해 문제의식을 지니고 상황을 타개하고자 애쓴다는 점에서도 두 소설은 닮았다(두 소설 모두에서 ‘나’는 성적이 뛰어난데다 불의와 모순 앞에 저항적 태도로써 맞서는 정의감 넘치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그 결과 학급의 폭군이었던 반장들이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결말까지 공통점은 이어지는데, 그런 결말에 이르는 세부 과정에서 두 작품 사이에는 비로소 의미 있는 차이가 나타난다. 그러나 폭군의 퇴진이라는 결실을 맺는 데에 기존의 담임이 아닌 새로운 선생님의 출현이 핵심적인 계기가 된다는 사실만큼은 역시 두 소설에 공통적이다.

어떤가. 이 정도의 소개만으로도 두 소설이 거의 동일한 작품이라 할 만큼 닮았다는 사실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제는 두 소설의 차이가 어디에서 나타나는지, 폭군의 몰락 과정을 비교 검토해 가며 살펴보자. 「아우를 위하여」에서 화자인 수남은 영래의 횡포에 불만을 품고 있던 중 예쁘고 친절한 교생 선생님의 격려와 자극에 힘입어 ‘행동’에 나서기로 한다. “눈빛처럼 흰 여학생 칼라 뒤로 얌전히 빗어 묶은 머리를 길게 땋아 늘였고, 목소리가 노래하는 듯 다정한” 교생 선생님은 부임 첫날부터 수남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매일같이 아무 생각 없이 들었던 영래의 ‘차렷’ 구령소리가 그날따라 나를 수치에 떨게 만들 줄은 몰랐다”는 구절은 여자 교생 선생님을 향한 소년의 마음을 짐작하게 한다. 게다가 부임 이후 학급을 담당하면서 영래의 횡포를 알게 된 교생 선생님은 어느 날 영래와 관련해서 수남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겠는가.

“혼자서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사람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면 여럿이서 고쳐줘야 해요. 그냥 모른 체한다면 모두 다 함께 나쁜 사람들입니다. 더구나 공부를 잘한다거나 집안 형편이 좋은 학생은 그렇지 못한 다른 친구들께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영래의 전횡을 보고만 있지 말라는 은근한 부추김은 수남으로 하여금 결행의 순간을 엿보게 만든다. 영래 패거리가 새로 온 교생 선생님에 대한 ‘성의 표시’ 명목으로 아이들에게 돈을 거둬서는 외제 스타킹을 선물했다가 꾸지람을 들은 뒤, 수업 시간에 교생에 관한 욕설과 추잡한 그림이 곁들여진 쪽지를 돌린 사건을 계기로 수남은 분연히 떨쳐 일어선다: “나는 드디어 더 이상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결심했다.” 두려움을 누르고 영래 패거리에 정면으로 맞선 수남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원군이 따라붙는다. 반 아이들이 수남을 편들며 영래와 그 패거리의 지난 잘못을 하나씩 들춰 가며 따져 묻자 “영래는 자기가 반 아이들에게서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는 걸 알았는지 얼굴이 샛노랗게 질려 있었”으며, 쪽지를 돌린 그의 수하 종하는 마침내 수남의 요구를 받아들여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까지 하기에 이른다. 폭군에게서 항복 선언을 받아 낸 셈이다.

「아우를 위하여」가 어린 폭군의 횡포와 몰락을 비교적 단순한 스토리 라인에 실었다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그 과정은 한층 복잡하고 굴곡이 많은 궤적을 그려 보인다. 처음에 서울의 명문 초등학교를 떠나 시골 소읍의 보잘 것 없는 학교로 전학을 온 한병태는 엄석대의 폭력과 불합리에 모든 가능한 방식으로 맞서고자 한다. 그러나 적어도 성적만큼은 자신 있어 했던 그는 엄석대가 일제 고사에서 학년 수석을 차지하는 결과 앞에 망연자실할 따름이다. 엄석대의 횡포를 담임 선생님에게 일러바쳐 보았지만, 반 아이들을 상대로 한 익명의 고발장 접수 결과는 엄석대의 비리를 밝혀 내기는커녕 오히려 한병태 자신의 소소한 잘못을 들춰 내는 것으로 귀결될 뿐이었다. “너는 내게 달려오기 전에 아이들부터 먼저 네 편으로 돌려놨어야 했어.(…)나는 반 아이들 모두의 지지를 받고 있는 석대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 담임의 말은 한병태가 싸움에서 완패했음을 보여준다.

이 사건 이후 한병태에 대한 엄석대의 탄압은 한층 심해진다. 아무도 그를 놀이에 끼워 주지 않으며, 석대의 사주를 받은 아이들은 수시로 그를 괴롭히고, 복장 단정이니 청결이니 예절이니 하는 규범을 어길 때마다 예외 없이 적발하고 남보다 혹독한 처벌을 받게 만든다. 한 학기 동안 따돌림과 차별에 시달린 병태는 외로운 싸움에 차츰 지쳐 가고, 어느 날 오후 자신의 유리창 청소 검사를 몇 차례에 걸쳐 고의로 퇴짜 놓는 석대 앞에 결국 울음을 터뜨림으로써 항복 의사를 표한다. 마침내 유리창 청소 합격을 선언한 석대에게 병태는 이튿날 아끼던 샤프 펜슬을 바치는 것으로 굴종의 의식을 마무리한다.

“그 굴종의 열매는 달았다.(…)석대의 은혜는 폭포처럼 쏟아졌다.” 노회한 폭군 엄석대는 항복한 ‘적장’을 최대한의 예를 갖춰 대접함으로써 상황을 공고화하고자 한다. 그는 병태를 사실상 이인자로 취급하면서 그를 자신이 구축한 체제의 확고한 일원으로 삼으려 한다. “그가 내게 바라는 것은 오직 내가 그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 그리하여 그가 구축해 둔 왕국을 허물려 들지 않는 것뿐이었다.” 불합리하고 폭력적인 체제에 대한 저항 의지를 불태우던 주인공이 그 체제의 일부로 편입되는 사태는 확실히 「아우를 위하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국면이다. 억압과 저항, 불합리와 이성의 대결이란 그리 단순한 것만은 아니라고 작가는 말하려는 듯하다.

그러나 해가 바뀌고 6학년에 올라간 주인공들의 학급을 “사범 학교를 나오신 지 몇 해 안 된 젊은” 선생님이 맡게 되면서 상황은 갑작스러운 반전을 맞게 된다.

“저 화려한 역사책의 갈피에서와는 달리 우리 반의 혁명은 갑작스럽고 약간은 엉뚱한 방향에서 왔다. 그 이듬해 담임 선생이 갈린 지 채 한 달도 안 돼 그렇게도 굳건해 보였던 석대의 왕국은 겨우 한나절로 산산조각이 나고 그 철권(鐵拳)의 지배자는 한낱 범죄자로 전락해 우리들의 세계에서 사라져 간 것이었다.”

엄석대 체제의 균열은 그의 ‘전교 일등’ 신화의 붕괴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새로 온 담임은 그의 ‘전교 일등’이 공부 잘하는 몇몇 아이들이 자신의 시험 답안에 제 이름이 아닌 엄석대의 이름을 써 넣는 부정행위의 결과라는 사실을 적발한다(새 담임의 적발에 앞서 병태 자신이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체제의 단맛에 흠뻑 취한 그는 그 체제가 영속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진실에 눈 감는 쪽을 택한다). 엄석대를 교탁 앞으로 불러낸 담임은 그의 엉덩이에 무자비한 매를 안기고 그 광경은 병태를 비롯한 학생들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온다: “석대도 매를 맞는다. 저토록 비참하고 무력하게”. 게다가 매를 동원한 담임의 추궁에 석대가 내뱉은 “잘못… 했습니다”라는 말은 아이들을 더욱 커다란 충격에 빠뜨린다: “석대도 항복을 한다”. 그 장면을 목격하는 아이들이 그동안의 왜곡되었던 이미지를 벗어 버리고 진실에 눈뜨게 되는 장면의 묘사는 인상적이다.

“그 전의 석대는 키나 몸집이 담임 선생님과 비슷하게 보였고,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하면 오히려 석대 쪽이 더 큰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날 교탁 위에 꿇어앉은 석대는 갑자기 자그마해져 있었다. 어제까지의 크고 건장했던 우리 반 급장은 간 곳 없고 우리 또래의 평범한 소년 하나가 볼품없이 벌을 받고 있을 뿐이었다. 거기 비해 담임 선생님은 키와 몸집이 갑자기 갑절은 늘어난 듯했다. 그리하여 무슨 전능한 거인처럼 우리를 내려보고 서 있는 것이었다.”

시험 부정 행위가 들통난 것을 계기로 엄석대의 체제는 순식간에 몰락한다. 아이들은 새 담임에게 엄석대의 지난 횡포와 비리를 낱낱이 까발리고, 새로운 급장을 뽑는 선거가 진행되는 동안 석대는 결국 교실 문을 박차고 나가며 그 길로 다시는 학교로 돌아오지 않는다.

「아우를 위하여」였다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야 마땅하리라. 그러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그 다음 이야기를 마련해 놓고 있다. 그리고 어쩌면 여기서 주인공은 엄석대에서 한병태로 옮겨 갔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엄석대의 체제에 가장 먼저 이의를 제기하고 저항을 시도했던 병태지만, 새 담임의 출현 이후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엄석대의 몰락과 그에 대한 아이들의 열광을 그는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는 아무래도 느닷없는 그들의 정의감이 미덥지 않았다.(…)내 눈에는 그 애들이 석대가 쓰러진 걸 보고서야 덤벼들어 등을 밟아 대는 교활하고도 비열한 변절자로밖에 비춰지지 않았다.” 결국 새 급장을 뽑는 선거에서 기권표를 던지는 것으로 병태는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표시하는데, 그로부터 삼십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그 시절을 회고하는 화자 ‘나’의 엉뚱한 고백이 또한 눈길을 끈다: “변혁을 선뜻 낙관하지 못하는 내 불행한 허무주의는 어쩌면 그때부터 싹튼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이 소설이 발표된 것이 ‘변혁’을 향한 담론과 행동이 한창 달아올랐던 80년대 중후반이라는 사실, 그리고 작가 이문열의 그 이후의 행보를 감안해 보면 이 구절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일종의 후일담 역시 예비해 놓고 있다. 어른이 된 ‘나’는 고단한 삶의 행로를 거쳐 오는 동안 “이런 세상이라면 석대는 어디선가 틀림없이 다시 급장이 되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곱씹고는 한다. 그러나 여름 휴가를 떠난 강릉역에서 사복 형사들에게 붙잡혀 가는 비루한 범죄자로서의 엄석대를 우연히 목격하게 되면서 그의 상상은 여지없이 박살이 나고 만다. 엄석대라는 ‘영웅 신화’가 최종적으로 무너져 내린 것이다.

“너희들은 당연한 너희들의 몫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 몰랐고, 불의한 힘 앞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그것도 한 학급의 우등생인 너희들이… 만약 너희들이 계속해 그런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앞으로 맛보게 될 아픔은 오늘 내게 맞은 것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그런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만들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이것은 엄석대의 부정 행위를 적발한 담임 선생이 그의 시험 부정에 가담한 우등생들을 꾸짖으며 한 말이다. 「아우를 위하여」에서 교생 선생이 수남이에게 한 말을 떠오르게 한다. 앞서 두 소설 모두에서 부당한 반장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에 새로운 선생이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주었노라고 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차이 또한 적지 않다. 「아우를 위하여」에서는 교생 선생님의 격려를 받은 아이들이 스스로 폭군을 몰아낸 반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는 새 담임 선생이 직접 행동에 나서 상황을 정리한다. 「아우를 위하여」의 교생이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새 담임이나 고전 극이론에서 말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결정적인 국면에 극의 논리 바깥에서 출현한 구원자)임에는 차이가 없지만, 후자쪽에서 그 역할이 더 적극적이고 결정적이다. 두 소설은 모두 정치적 알레고리로서의 성격이 강한데, 「아우를 위하여」가 폭군에 맞서는 민중의 정의와 자발적 항거에 초점을 맞춘 반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석대가 몰락한 뒤 반 아이들이 보인 행태를 통해 그들의 우중(愚衆)적 면모를 냉소적으로 그려 보인다. 그렇다면 황석영과 이문열이라는 두 작가의 상반된 정치 이념이 이 두 소설에 집약되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전상국학교 교실을 무대로 삼아 폭력과 권력의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 두 소설과 함께 살펴볼 만한 작품이 전상국(1940~)의 단편 「우상의 눈물」이다. 이 작품은 비록 앞의 소설들처럼 초등학교 고학년 교실이 아닌 고교 2학년 교실을 무대로 삼았지만 여러 모로 앞선 두 작품과 비교할 만하다. 우선 두 작품의 이영래와 엄석대에 해당하는 최기표의 존재가 주목된다. 기표를 필두로 한 ‘재수파’들은 포악성과 완력으로 반 아이들 위에 군림한다(소설은 화자인 ‘나’가 “학교 강당 뒤편 으슥한 곳에 끌려가 머리에 털 나고 처음인 그런 무서운 린치를”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다만 여기서는, 앞의 두 소설들과는 달리, 기표가 반장이라는 합법적 권위를 후광으로 둘러쓰지는 못한다. 오히려, 급장인 형우가 담임 교사의 교묘한 사주와 협력을 등에 업고 기표를 서서히 무너뜨린다. 형우는 재수파들에게 끔찍한 폭행을 당하고도 끝까지 그들을 두둔함으로써 학생들 사이에서 일약 영웅으로 떠오른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가 우등생들을 겁박해서 시험 부정과 점수 조작에 동원했던 것과는 달리, 여기서 형우는 기표를 비롯한 재수파들의 또 한번의 유급을 막자며 동료 학생들에게 시험장에서의 ‘협력’(=부정행위)을 요청한다. 더 나아가 동료 학생들의 도시락을 빼앗아 먹는 기표네들의 행위 역시 끔찍한 가난 탓으로 돌리고 그들을 위한 모금운동을 주창함으로써 그들을 한갓 동정 받아 마땅한 가난뱅이의 처지로 내몬다(“남의 찬 도시락을 훔쳐 먹어야 했던 우리의 가난한 이웃을 우리는 너무나 모르고 지냈습니다.”).

「우상의 눈물」의 화자인 ‘나’ 이유대는 표면적인 악당 최기표와 교활한 권력 형우 사이의 싸움을 지켜보는 관찰자의 자리에 머문다. 아니, 그는 형우 및 담임 교사보다는 오히려 최기표 쪽에 좀 더 기울어 있는 듯한데, 기표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악함에 비해 형우와 담임 교사의 위선과 모략이 더 나쁘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형우의 관점에서 각색된 기표의 이야기가 신문에 미담으로 실리고 나아가 영화로까지 만들어진다는 소문이 도는 가운데 기표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는 기표의 편지는 그가 형우 및 담임과의 싸움에서 여지없이 패배했음을 보여준다. 한편 기표의 실종 소식에, “내일 천일영화사 사람들하고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잖냐? 그런데 이 망할 새끼가…”라며 아쉬움을 곱씹는 담임의 모습은 ‘나’의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관찰이 올발랐음을 확인시켜 주는 셈이다.

1980년에 발표된 「우상의 눈물」은 말하자면 「아우를 위하여」「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사이를 잇는 매개와도 같은 작품이다. 세 소설 모두 교실을 무대로 삼아 권력의 형성과 몰락, 그리고 그 바탕을 이루는 정치적 메커니즘을 알레고리적 수법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 「아우를 위하여」「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서사 구조의 유사성이 주목되는데, 유사성 속의 차이에 투영된 두 작가의 상반된 정치 의식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두 소설은 흥미로운 독서 경험을 제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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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최재봉
<한겨레 > 문학전문기자이다. 지은 책으로 『역사와 만나는 문학기행』, 『간이역에서 사이버스페이스까지-한국문학의 공간탐사』, 『최재봉 기자의 글마을 통신』이 있고, 옮긴 책으로 『에드거 스노 자서전』, 『클레피, 희망의 기록』, 『에리히 프롬, 마르크스를 말하다』 등이 있다. 지금은 시와 소설 속 사랑의 명장면들을 찾아가는 '사랑의 풍경'을 신문에 연재하고 있으며, 한국문학 작품의 제목들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정리해 책으로 낼 준비를 하고 있다. 문학과 대중의 거리를 좁히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있다.
 

※ 본면의 기고·칼럼은 나비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