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4

혼잣말

저자소개

이승우
1959년 전남 장흥군 관산읍에서 출생하였으며, 서울신학대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중퇴하였다. 1981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에리직톤의 초상』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있다. 1991년 『세상 밖으로』로 제15회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1993년『생의 이면』으로 제1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고, 2002년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로 제15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하여 형이상학적 탐구의 길을 걸어왔다. 2007년 『전기수 이야기』로 현대문학상을, 2010년 『칼』로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오영수문학상,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생의 이면』, 『미궁에 대한 추측』 등이 유럽과 미국에 번역, 소개된 바 있고, 특히 그의 작품은 프랑스 문단과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2009년에는 장편 『식물들의 사생활』이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폴리오 시리즈 목록에 오르기도 했는데, 폴리오 시리즈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문고본으로 세계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을 엄격한 기준으로 선정해 펴내고 있으며, 한국 소설로는 최초로 그의 작품이 선정되었다. 소설집으로 『구평목씨의 바퀴벌레』, 『일식에 대하여』, 『미궁에 대한 추측』, 『목련공원』,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심인 광고』, 『신중한 사람』 등이 있고, 장편소설 『에리직톤의 초상』, 『생의 이면』, 『식물들의 사생활』, 『그곳이 어디든』, 『캉탕』 등이 있다. 이 외에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을 살다』, 『소설가의 귓속말』 등의 산문집이 있다. 『생의 이면』, 『미궁에 대한 추측』 등이 유럽과 미국에 번역, 소개되었고 특히 프랑스 문단과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2009년에는 장편 『식물들의 사생활』이 한국 소설 최초로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폴리오 시리즈 목록에 오르는 등, 다수의 작품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로 번역되었다.


혼자 있는 사람이 혼잣말을 한다. 드물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혼잣말을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도, 있지만 혼자 있는 사람이다. 자기 앞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한 누구도 혼잣말을 하지 않는다. 혼잣말은 자기 안에 타인을 상정하고 나누는 말놀이, 역할놀이이기 때문이다. 앞에 타인이 없을 때 안에서 타인이 출현한다. 앞에서 타인이 말을 걸지 않을 때 안에서 말을 거는 타인이 태어난다. 앞에서 타인이 말을 들어주지 않을 때 안에서 말을 들어줄 타인을 등장시킨다. 이 출현과 등장은 자아의 분열에 다름아니다. 분열을 통하지 않고 안에서 타인을 등장시키는 방법은 없다. 분열을 통해 한 주체는 나와 너, 주와 객으로 바뀌고, 심지어 나와 너희들, 하나의 주와 수많은 객들로 바뀌고, 그러면 비로소 대화가 가능해진다.


말이 소통을 위해 고안된 것이라면, 소통을 할 필요가 없는 상태혼자에 있는 사람은 말을 하지 않으면 되는데 굳이 말을 하기 위해 자기를 주와 객으로 나누는 것은 왜일까. 주와 객으로 자기를 나누어서까지 굳이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널리 퍼진 생각과는 달리 말이 소통을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말을 사용하지 않는 동물들의 소통 능력이 말을 사용하는 인간보다 뛰어나다는 것은 이에 대한 방증이 될 수 있다. 소통에 대한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사람은 말을 하려고 하지 않는가. 말을 하려고 자기 안에 타인을 만들어내기까지 하지 않는가. 말을 하는 것이 사람의 존재조건이기 때문이 아닐까. 소통이 아니라 존재의 증거이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살아 있다.’ 이것은 선언이다. 호흡과 맥박과 피의 순환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음을 입증하는 요인이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 이승우, 『소설가의 귓속말』, 은행나무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