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24

용감

저자소개

이미나
나지막한 동네의 작업실에서 풀과 동물들, 선과 색깔들에 둘러싸여 그림책을 만듭니다. 넓고 깊은 바다와 검은 하늘에 빛나는 별,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조용한 세계를 상상하며 이 그림책을 만들었습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 《터널의 날들》과 《나의 동네》가 있습니다.

언젠가 먼 곳에서 온 새를 만난 적이 있어.

이곳이 바다를 닮았다고 하더라.


나는 동쪽 언덕 너머 깊은 숲에서 왔어.

무리에서 떨어진 사슴을 쫓아왔지.

 

혼자 다니는 짐승을 잡는 건 아주 쉬워!

이렇게 몰래 다가가서…….


앗, 차가워!


사실 단단한 발굽에 뺨을 맞거나 쫄딱 젓은 날에는

늑대답지 못하게 눈물이 세 방울 정도 났어.


배를 곯은 지 하루, 이틀, 그리고 닷새. 사슴은 점점 멀어지고…….


그날 밤에 나는 보고 싶은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렸어.

우리가 다 같이 사냥을 한다면 참 좋을 텐데.


한 녀석이 망을 보고 한 녀석은 사슴을 몰고

나는 그저 노래나 부르면 좋을 텐데.

 

가장 용감한 늑대는 가장 배고픈 늑대라고

친구들이 말했었지. 목소리는 달빛 사이로 들려왔어.

 

텅 빈 내 배 속과 날카로운 송곳니 사이에서 들려왔어.

 

사슴 발굽 소리 사이로.

밝아지는 그림자 속에서.

 

지금이야.

 

목소리는 쏜살같이 사라져 버렸어.

 

나는 배를 불리고 말없이 자리를 내어 주었지.


사슴은 먼 바다처럼 고요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