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01

투기, 투자

저자소개

마강래
지방이 살아야 서울이 살 수 있다고 믿는 도시계획가. 중앙대학교 응용통계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도시및지역계획학 석사학위를, 런던대학교에서 도시계획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앙대학교 도시·부동산 연구소 소장, 국무총리실 부동산 특보팀 자문위원,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상임이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중앙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도시계획과 도시경제 분야에서 균형 발전을 위한 도시계획과 도시재생, 도시행정을 주제로 균형 있는 국토 발전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연구 중이다. 《부동산, 누구에게나 공평한 불행》에서 저자 마강래는 ‘부동산 거품을 만드는 근원적 힘’에 관해 설명한다. 그리고 수도권에 아무리 많은 주택을 공급해도 중단기적으로만 효과가 있을 것이라 단언한다. 주택 공급이 더 큰 수요를 부르기 때문이다. 목마른 사람이 바닷물을 마시면 더 큰 갈증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저자는 ‘수도권의 대항마인 메가시티를 지방에 구축하는 것’만이 부동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임을 강조한다. 지은 책으로 《베이비부머가 떠나야 모두가 산다》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 《지방도시 살생부》 《지위경쟁사회》 《부동산 공법의 이해》 《지역·도시 경제학》(공저) 등이 있다.

2017년 말 정부는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다주택자들에게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큰 혜택을 주겠다고 회유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주택자는 회유 대상이었다. 함께 잘해보자고 어르는 모양새였다.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데 있어 공공과 민간의 공생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후에도 집값은 끝을 모르고 상승했다. 정부는 입장을 180도 바꾸었다. 다주택자에게 핀셋을 들이댔다. 그리고 이들에게 투기꾼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다주택자들은 왜 자신들이 투기꾼이냐며 억울해했다.


투기꾼을 잡으려면 투기에 대한 정의가 명확해야 한다. 투기꾼들도 자신들은 투기speculation가 아닌 투자investment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투자와 투기는 무엇이 다른가. 투자 전문가들은 ‘위험도’가 이 둘을 구분 짓는 기준이라고 이야기한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고자 하는 이가 있다고 치자. 그가 부동산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계산했다면, 그것은 투자다. 대부분 장기적 시각에서 행해지는 행위다. 반면에 면밀한 검토도 없이 짧은 기간 내에 높은 수익을 바란다면 그것은 투기다. 하지만 위험도를 기준으로 한 구분은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다. 어느 정도의 위험이 진짜 위험한 것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일반인에게 투기꿈이 어떤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으면 “열심히 일하지 않고 큰돈을 버는 사람들”이라는 답을 가장 많이 내놓는다. 아쉽게도 이 또한 명쾌한 기준은 아니다. 근면하고 성실한 투기꾼도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투기와 투자의 구분이 어려우니, 내가 하면 ‘투자’ 남이 하면 ‘투기’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에는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는 기준이 있기는 하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단어를 보자. 예를 들어, 주식은 투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3억 원의 여윳돈이 있는 홍길동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가 3억 원의 주식을 사면, 그가 우리나라의 기업 발전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실제로 길동이가 A사의 주식을 샀다고 A사가 사업자금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홍길동이 3억 원을 주식에 투자해 3억 원(수익률 100퍼센트)을 벌면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노동의 대가치곤 너무 큰 액수가 아니냐고 비난하지 않는다. 하지만 길동이가 똑같은 3억 원으로 2채를 갭 투자한다면, 그는 부동산 시장을 교란하고 무주택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투기꾼으로 간주한다. 3억 원을 부동산에 투자해 3억 원을 벌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분노의 감정도 감추지 않는다.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홍길동의 입장에서는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돈을 벌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투기와 투자의 경계는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가다. 공익에 반하는 행위는 ‘투기’로, 그렇지 않으면 ‘투자’라 생각한다. 이 둘을 가르는 기준은 ‘행위의 파급효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당근마켓을 보자. 당근마켓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 간의 직거래를 주선하는 인터넷 중고시장 플랫폼이다. 당근마켓에는 산 다음 바로 가격을 올려서 재판매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10만 원에 중고 자전거를 사서 바로 15만 원에 내놓는 식이다. 이들은 애초부터 자전거를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되팔이가 많아지면 상품 가격이 올라간다. 당근마켓 이용자들이 불만을 가질 만도 하다. 당근마켓 측에서도 ‘당근마켓에서 구매 후 비싼 가격에 재판매해요’ 항목으로 신고할 수 있게 했다. 당근마켓에서의 되팔이는 그래도 눈감아줄 만한 수준이다. 이로 인해 가격이 약간 더 높아질 뿐이니까.


하지만 되팔이가 공분을 살 때도 있다. 사람들의 일상에 필요한 ‘필수품’을 사재기해서 되팔이할 때다. 코로나19가 발발한 직후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다. 사상 처음으로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되었고, 약국에서는 구매자의 생년월일을 일일이 확인하고 판매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이것을 기회 삼아 자영업자가 자동 클릭 프로그램을 이용해 4,000개가 넘는 마스크를 사재기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그에게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런 되팔기를 조금 어려운 용어로 ‘전매轉賣’라고 부른다. 아파트를 분양받을 권리인 분양권을 되파는 행위 또한 전매다. 분양권을 사고파는 행위는 투자일까 투기일까. 분양권 전매의 예를 보자. 아파트를 5억 원에 분양받아서 1억 원 프리미엄을 붙여 6억 원에 팔면 1억 원의 차익이 생긴다. 수익률을 계산해보자. 일반적으로 계약금은 10퍼센트이고, 중도금은 무이자로 대출받는 경우가 많다. 아파트가 5억 원이니 계약금은 5000만 원이다. 계약금 5000만 원에 1억 원의 차익을 얻으면, 수익률은 자그마치 200퍼센트다. 이런 분양권 전매 행위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말한다.


들어가 살 생각도 없으면서, 분양권을 사고 프리미엄을 붙여서 파는 행위는 100퍼센트 투기다. 분양권 투기를 하는 사람들은 심지어 집을 가질 생각도 없다. 분양권 거래 현황을 잘 뜯어보면, 당첨자 4명 중 1명이 이런 투기 세력이다. 이런 사람들이 집값 거품을 부풀리게 한ㄷ다. 전매 과정에서 프리미엄이 계속 붙기 때문에 마지막에 실제 거주할 목적으로 집을 사는 사람들의 부담만 늘어난다.


주택 텅약이 점점 더 어려워지자 프리미엄을 얹어서라도 분양권을 사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청무피사”(청약은 무슨, 피 주고 집 사라)라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요 지역에 분양권 전매제한 기한이 6개월 정도였다. 분양권을 사고 난 후 6개월간은 다른 이에게 팔지 못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시세차익을 노리고 분양권을 되파는 사람이 많아지자 정부가 규제 수위를 높였다. 규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분양권을 소유 주택수에 포함한 것이다. 분양권을 사 ㄴ것만으로도 집 1채를 더 가진 것으로 간주하니 세금이 크게 높아진다. 또 다른 하나는 부동산 등기부에 분양권자의 이름을 올릴 때까지 못 팔게 하는 것이다. 분양한 후 등기부에 이름을 올리기까지 2~3년 정도가 소요된다. 분양권을 사고팔며 한탕을 노리는 것을 차단한 것이다.


우리 사회가 생각하는 투기꾼에 대한 정의는 명확하다. 필수재를 이용해 돈을 벌면서 사회에 공익을 해치는 이들. 집값이 폭등하자 정부는 다주택자들도 사회의 공익을 해치는 일들로 규정했다. 이들에 대한 전방위적 규제가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