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0

비장애인 우월주의

저자소개

이치카와 사오
1979년생. 와세다대학교 인간과학부 통신교육과정 인간환경과학과 졸업. 「장애인 표상과 현실사회의 상호 영향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졸업논문은 오노 아즈사 기념학술상을 수상했다. 2023년 중편소설 「헌치백」으로 제128회 《문학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데뷔했고, 나아가 이 작품의 제169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으로 문학계는 물론 사회적 대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일약 스타 작가로 떠올랐다. 선천성 근세관성 근병증의 중증 장애인으로 인공호흡기와 전동 휠체어 등에 의지하고, 집필에는 태블릿을 사용한다. 아쿠타가와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으로 전자책과 오디오북 추가 보급 등 ‘독서 배리어 프리’를 호소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편한 일로서 20대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지난 20여 년 동안 해마다 각 문학상에 SF, 판타지 등의 장르소설과 라이트노벨을 응모해 왔다. 절박한 심정으로 집필한 첫 비장르소설이 「헌치백」이었다. 존경하는 작가로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 일본문학 대표 작가 시마다 마사히코, 라이트노벨 작가 와카기 미오 등을 꼽았다.


미국 대학에서는 ADA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 1990년에 제정된 미국 장애인법.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고 자유롭고 평등할 권리를 보장한다.에 의거해 전자교과서를 보급하는 것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이 상자에서 꺼내 곧바로 사용 가능한 사양의 단말기가 아니면 배포물로서 채용해 주지 않는다. 일본 사회에서는 애초에 장애인은 없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그런 적극적인 배려는 없다. 책 때문에 고통받는 꼽추 괴물의 모습 따위, 일본의 비장애인은 상상해 본 적도 없을 것이다. 종이책 한 권을 읽을 때마다 서서히 등뼈가 찌부러지는 것만 같은데도, ‘종이 냄새가 좋다, 책장을 넘기는 감촉이 좋다’라는 등의 말씀을 하시면서 전자서적을 깎아내리는 비장애인은 근심 걱정이 없어서 얼마나 좋으실까. NHK 교육방송의 「배리버라」「모두를 위한 배리어 프리 버라이어티」의 약칭.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 어려움을 느끼는 모든 마이너리티를 주제로 하는 복지정보 방송이다.였던가? 그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던 E하라 씨는 줄곧 독서 배리어 프리를 주장하셨는데 얼마 전에 심장이 안 좋아져 돌아가셨다. 간병인이 옆에서 책장을 넘겨주지 않으면 읽을 수 없는 종이책의 불편함을 그녀는 열심히 호소했다. ‘종이 냄새가’, ‘책장을 넘기는 감촉이’, ‘왼손에서 점점 줄어드는 남은 페이지의 긴장감이’라고 문화적 향기 넘치는 표현을 줄줄 내비치기만 하면 되는 비장애인은 아무 근심 걱정이 없어서 얼마나 좋으실까. ‘출판계는 비장애인 우월주의마치스모예요’라고 나는 포럼에 글을 올렸다. 연약함을 강조하여 마지않는 문화계 여러분이 사갈蛇蝎처럼 꺼리는 스포츠계가 그 한 귀퉁이에나마 장애인이 활약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두고 있지 않던가요. 출판계가 지금까지 장애인에게 했던 일이라고는 1975년 문예 작가 모임에서 도서관의 시각장애인 대상 서비스에 시비를 걸어 폐지 시켜 버린 ‘사랑의 테이프는 위법’ 사건*, 그런 것뿐이잖습니까. 그 일로 얼마나 시각장애인의 독서 환경이 정체되었는지 알고 계실까요.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진즉에 텍스트 데이터 제공이 의무가 되었는데….(45~47쪽)


*1979년, 도쿄의 한 도서관에서 ‘사랑의 테이프’라는 이름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해 문예서를 포함한 각종 도서를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여 대출 중이라는 게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일본 문예저작권보호동맹에서는 ‘악용하는 건 아니나 공공기관이니 만큼 법을 지켜주기 바란다’라고 이의를 제기했고, 이후 공공 도서관에서는 저작권자의 허락을 얻지 않고서는 녹음 자료 제작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다만 2010년부터 저작권법 개정에 따라 현재는 도서관 등의 공공시설에서 녹음 도서 등의 장애인 서비스가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가능하다. 



독서만이 아니라 글을 쓰는 데서도 마치스모를 느끼신 적이 있습니까? 


네, 그런 게 있죠. 원래 서양에서 온 이성주의는 생각하고 발신하는 것을 인간으로서의 기본으로 여기지만, 그건 인간의 정의로서는 너무 협소하다고 생각해요. 인간에게서 태어나 인간의 총체의 일부를 이루는 건 인간입니다. 생각하지 않더라도, 말하지 못하더라도, 쓰지 못하더라도. 하지만 이 사회는 읽고 쓰고 말하는 것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어요. 말할 수 있는 사람, 쓸 수 있는 사람의 언어가 강한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중증 심신장애인의 대량학살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글쓰기를 신성시하는 건 이성주의를 강화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127~128쪽, 「제169회 아쿠타가와 수상 인터뷰」에서)


 

― 이치카와 사오, 『헌치백』, 양윤옥 옮김, 허블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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