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9

신세

저자소개

황모과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단편 부문 대상 수상작 〈모멘트 아케이드〉로 데뷔했다. 단편 〈증강 콩깍지〉가 MBC 시네마틱드라마 〈SF8〉으로 제작되었다. 소설집 《밤의 얼굴들》, 중편소설 《클락워크 도깨비》, 《10초는 영원히》, 장편소설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 《서브플롯》,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 등을 출간했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소재로 한 SF 단편소설 〈연고, 늦게라도 만납시다〉로 2021년 SF어워드를 수상했다. 2022년 양성평등문화상 신진여성문화인상을 수상했다.


중간 감독관인 후쿠다는 강둑 위에서 담배를 피울 때면 조선인 일꾼들을 내려다보며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너희는 주먹밥 하나 먹어도 감지덕지하잖아? 우리가 받는 월급의 10분의 1만 받아도 그 돈 가지고 고국 돌아가면 부자 된다며? 좋겠다. 우리가 너희보다 미래가 없는 신세라니까. 정말 부러워.”


그는 진심으로 부럽다는 표정을 짓곤 했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도 일해서 번 돈으로 가난한 나라에 가서 대부호처럼 떵떵거리며 살고 싶다고도 말했다. 대대로 농사짓던 땅도 버리고 공장에서 일하다 조선으로 건너간 친구가 자신을 부를 때도 진지하게 고민한 후쿠다였다. 평세는 그의 말을 다 알아듣고도 딴청을 부렸다. 굳이 달출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없었다.


달출도 그때 평세의 태도를 보고 현장 감독이 좋은 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의 앉은 자세나 뿜어대는 담배 연기 모양만 봐도 훤했다. 여기서 하는 품새를 보자니 그는 조선이든 어디서든 자신의 사소한 자산이 가치를 상실할 때까지만 살 만한 곳이라 여길 사람이었다. 



― 황모과, 『말 없는 자들의 목소리』, 래빗홀, 50~5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