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9

경련적인 유머

저자소개

권여선
1965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1996년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로 제2회 상상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소설집 『처녀치마』 『분홍 리본의 시절』 『내 정원의 붉은 열매』 『비자나무 숲』, 장편소설 『레가토』 『토우의 집』이 있다. 오영수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동리문학상을 수상했다.


그건 무엇이었을까. 내 속에서 예기치 않은 순간에 발사된 것은.


지금의 내 생각에 그건 아마 당시에 내가 가지고 있던 어두운 정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물네 살의 삶이 품을 수밖에 없던 경쾌한 반짝임 사이에서 빚어진 어떤 비틀림 같은 것, 그 와중에 발사되는 우스꽝스러움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어지간한 고통에는 어리광이 없는 대신 소소한 통증에는 뒤집힌 풍뎅이처럼 격렬하게 바르작거렸다. 턱없이 무거운 머리를 가느다란 목으로 지탱하는 듯한 그런 기형적인 삶의 고갯짓이 자아내는 경련적인 유머가 때때로 내 삶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발사된 건 아니었을까.


지금 나는 내 어두운 청춘의 한 시절에서 경서가 발견해 건져내준 유머 몇 조각이, 그 연약한 의미의 빛이 애틋해 미소를 짓지만 당시의 나는 그렇지 않았다. 경서는 내게 특별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편하게 대했다. 구선배나 승희를 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고 내 삶의 방식에 대해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를 대하는 게 썩 편하지만은 않았다. 나는 그의 눈빛, 그의 경청에서 그가 나를 흥미진진하게 읽고 해석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서서히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한편으로는 혹시 그가 내 내부에서 치명적인 진실들을 캐낼까 두려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내게서 아무것도 캐내지 못할까 두려웠다. 그 둘은 아마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두려웠던 건 내가 그를, 경서라는 인간을 도저히 읽어내지 못하리라는 절망감이었다.


내 속엔 그를 해석할 능력도 의지도 욕망도 없었다. 내 속엔 경서를 향한 아무것도 없었다. 경서가 아닌 다른 누구를 향한 것도 없었다. 나는 스스로 내 내부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 당시의 나는 감정적으로 완전히 폐허였고 욕망이 소진된 폐광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냥 그러니까 그런 거고, 그런 식이니까 그런 식이라며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이건 좀 이상한데, 뭔가 문제가 있는데, 라고 느끼면서도 꺼떡꺼떡 경서가 만나자면 만났고 그에게 내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이나 만난 사람들 얘기를 있는 대로 털어놓곤 했다. 내가 굳이 뭔가를 결정하지 않아도 어차피 어떤 파국이 와서 끝내줄 테니까 뭐, 그런 식이었다.



─ 권여선, 「기억의 왈츠」 『각각의 계절』, 문학동네2023, 218~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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