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17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

저자소개

신형철
1976년에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했다. 2005년 봄에 계간 《문학동네》로 등단해 평론을 쓰기 시작했으며, 아름다운 문장과 정확한 비평이 함께하는 본인 고유의 스타일로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저서로는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2008),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2011), 영화 에세이 《정확한 사랑의 실험》(2014)이 있다. 현재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이며, 2014년 3월부터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비평론을 가르치고 있다.


   착한 사람이 될 필요 없어요.


   사막을 가로지르는 백 마일의 길을


   무릎으로 기어가며 참회할 필요도 없어요.


   그저 당신 몸의 부드러운 동물이 사랑하는 것을 계속 사랑하게 두어요.


      ― 메리 올리버, 「기러기」 중 일부


(…)


미국의 많은 학생이 기숙사 방 벽에 이 시를 붙여놓았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이 시에 담겨 있는 일종의 치유적 효력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이미 느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 힘을 명료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가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어떤 시와 만난다.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문장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모른다. 어느 날 어떤 문장을 읽고 내가 기다려온 문장이 바로 이것임을 깨닫는다.’ 나는 이 시를 읽은 미국과 한국의 독자들이 그와 유사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그런 힘은 첫 두 문장에서부터 이미 발휘된다. “착한 사람이 될 필요 없어요. 사막을 가로지르는 백 마일의 길을 무릎으로 기어가며 참회할 필요도 없어요.” 이 구절에는 확실히 반종교적 뉘앙스가 있다. 자신이 따르는 도덕적 이상에 오히려 억압당해서 자신을 언제나 죄인 취급 하고 고행에 가까운 참회를 각오하는 어떤 ‘종교적’ 독자에게 이 시는 그것이 어리석은 자기학대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구절의 호소력은 그보다 더 보편적이다. 자신이 충분히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고 자책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고질적 습관이 아닌가. 이 시의 도입부는 바로 그런 대다수 독자의 자학적 자의식을 바로 옆에서 들리는 음성처럼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 신형철, 『인생의 역사』, 난다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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