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31

책과 함께하는 문화도시 20년을 위한 대화 ②

저자소개

안찬수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상임이사. 시인. 시집으로 <아름다운 지옥> <한 그루 나무의 시>가 있고, 옮긴 책으로 <물고기는 물고기야> 외 몇 권의 어린이책과 <힌두 스와라지> <1968 :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 등이 있다.

원주 한 도시 한 책 읽기 20주년 기념 포럼 '책과 함께하는 문화도시 20년을 위한 대화'. ⓒ원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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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한 도시 한 책 읽기 20년과 
책읽는도시 원주를 위한 제언

원주 한 도시 한 책 읽기는 원주시립중앙도서관, 원주시립미리내도서관, 원주교육문화관, 문막교육도서관, 원주시작은도서관협의회, 강원도원주교육지원청, (주)원주투데이신문사,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원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원주시창의문화도시지원센터, 연세대학교미래캠퍼스, 대학적십자사인도법연구원 등 여러 민간단체와 기관이 함께하면서 20년의 역사를 일구어왔습니다. 

원주의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은 단지 한 권의 책을 읽고 토론의 마당을 만들었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의 문화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왔습니다. 이는 원주의 책 읽는 시민들의 역량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의 전반적 운영과 관련된 부분을 협의하는 운영위원회, 도서선정 작업과 독서운동을 추진하는 도서선정위원회, 운영과 실무를 담당하는 실무단이 각기 역할을 감당하면서 수준 높은 지역문화를 창출하고, 지역통합을 통해 행복한 원주를 만들기 위해 애를 써오셨습니다. 그런 노고에 감사의 말씀과 함께 경의를 표하면서 간략하게 원주 한 도시 한 책 읽기 20년과 책읽는도시 원주를 위한 제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그리고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을 포함하여 앞서 언급한  독서문화운동과 관련하여 반드시 언급하게 되는 것이겠습니다만 크게 4가지 요점과 관련하여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①지역사회의 비전과 리더십, ②사회적 문제와 도서 선정, ③시민참여와 토론, ④독서와 도서관의 가치 발견입니다. 

(1) 지역사회의 비전과 리더십

“시카고가 『앵무새 죽이기』를 선택한 것은 이 소설이 시카고의 심각한 인종 갈등에 소중한 통찰과 해법을 주기 때문이다.시카고 시장 자신도 그 소설의 애독자였다 한다.(도정일, 「시카고의 앵무새 열풍」에서) 이 문장은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의 확산에 기폭제가 되었던 시카고의 앵무새 열풍이 단지 한 권의 책을 선정하여 한 도시의 시민이 함께 읽자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민사회의 문제 해결을 겨냥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은 한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시카고의 경우에는 인종차별의 주요한 의제였습니다. 『앵무새 죽이기』는 “시카고에서 나온 책이어야 한다는 기준에는 맞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의 편견과 이해, 용서, 인종, 성별 갈등 등을 포함하여 ‘인종주의와 관용’이라는 시카고와 오늘의 세계에 관련된 보편적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선정되었다.”(윤정옥, 「‘한 책, 한 도시’ 독서운동의 동향과 의의」에서)

‘원주 시민 모두가 한 권의 책을 읽는다면?’이라는 원주 한 책 읽기 운동 소개 자료를 살펴보니, 다음과 같은 문장이 눈에 띕니다. 

원주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 추진 배경 의의
* 원주는 유난히 외지인들이 많고 개발을 앞두고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지역이다. 
* 서로 다른 배경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동일한 문제에 있어서도 다양한 가치와 의견을 제시하게 된다.
* 지역 개발을 앞두고 지역 발전을 위해 많은 문제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며 이런 지역의 문제를 풀어가려면 다양한 가치와 의견 속에서 가장 좋은 결론을 찾아가기 위해 ‘토론을 통한 합의’를 도출해내야 한다.
* 원주 시민들이 한 해 한 권의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문화적 체험을 공유함으로써 지역사회 구성원 간의 정서적 일체감을 형성하여, 문화적으로 성숙한 아름다운 지역사회를 구현해 나가게 될 것이다. 

이 소개 글에서 핵심어를 추출한다면, 사회 통합, 다양한 가치와 의견, 토론을 통한 합의, 정서적 일체감, 문화적으로 성숙한 아름다운 지역사회 구현 등이 될 것입니다.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이 지역사회의 어떤 비전과 의제를 겨냥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그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 따라 각기 다를 것입니다. 그래서 꼭 이래야 한다, 이런 비전과 의제여야 한다는 것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지역사회의 비전과 의제가 세계사적인 전환예를 들어 기후 생태 위기, 에너지 위기, 식량 위기 등과 전혀 무관할 수 없다는 것도 자명한 일입니다. 저의 기억에 울산 지역에서 전개되고 있던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의 과정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건이 터진 후, 2014년 울산광역시 북구의 한 책 추진위원회는 김익중 교수의 『한국탈핵』한티재를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바 있습니다. 마침 울산북구기적의도서관을 방문할 기회가 있어서 그 선정 사유를 들으니, 월성원자력발전소의 소재지는 경주 양남면이지만 실제 울산 북구가 가장 근접한 곳이기에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한국탈핵』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이, 지난 20년 동안 원주의 한 도시 한 책 읽기의 과정을 되짚어보는 일은 과연 원주가 어떤 도시 비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는가를 살펴보는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과 도시 비전의 연관성과 더불어 한 가지 더 덧붙여야 할 것이 바로 리더십의 문제입니다. 앞서 시카고의 리처드 델리 시장도 『앵무새 죽이기』의 애독자였다는 것이 언급되었지만,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현실 속에서 시장으로 대표되는 ‘리더십’의 영향력은 적지 않습니다. 

인구 약 36만 명2023년이 거주하고 있는 원주시는 강원도 인구 4명 중 1명이 거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도시, 혁신도시, 건강도시, 레저관광·경제도시, 문화도시, 창의도시, 평생학습도시, 그림책도시 등등 다양한 도시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공공자치연구원의 『원주비전 2045 장기발전계획』2020.3. 원주시에 따르면, 원주시는 목표연도인 2045년까지의 원주시가 추구하여야 할 최종목표로서의 미래 비전을 ‘활력 있는 경제, 생명과 문화의 중심도시’로 삼은 바 있습니다. 이는 “원주의 미래핵심 성장동력인 생명산업과 문화산업을 통하여 시민들이 가장 희망하는 활력 있는 경제를 실현하고 이를 통해 중부권 중심도시로 성장함은 물론 원주시의 생명존중사상과 문화적 정체성을 지속 계승함으로서 시민 삶의 질 제고와 행복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원주의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이 장기 비전 속에서 지속되면서 원주시의 도시 비전을 실현하는 데 크게 기여하기를 기대하면서 동시에 이 과정에서 ‘리더십’의 영향력이 긍정적으로 발휘되기를 희망합니다. 한 도시 한 책 읽기를 통해, 도시 자체가 하나의 확장된 독서토론 그룹이 되도록 함으로써 시민의 독서환경을 조성하는 문제와 더불어, 도시 발전의 비전을 공유하고 사회적 통합을 이루며, 문화도시로 나아가는 일에는 리더십의 긍정적 영향력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2) 사회적 문제와 도서 선정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을 펼치기 위해 어떤 책을 선정하는가 하는 문제는 결코 간단치 않습니다.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관점이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시기마다 약간씩 선정의 기준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선 지난 20년 동안 원주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 역대 선정도서를 일별해봅니다. 이 목록은 매년 원주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을 위해 ‘올해의 책’을 선정하려고 애쓴 노고의 흔적이자 기록일 것입니다. 

2004년 장일순 『좁쌀 한 알』 도솔
2005년 김별렬 『독도를 지키는 사람들』 사계절 
2006년 한상복 『배려』, 위즈덤하우스
2007년 배유안 『초정리편지』 창비
2008년 안순혜 『숨 쉬는 도시 꾸리찌바』 파란자전거
2009년 이어령 『너 정말 우리말 아니?』 푸른숲어린이
2010년 손연자 『1940년 12살 동규』 계수나무
2011년 서지원 『지구 구출 대작전』 배틀북
2012년 박영대 『우리 그림이 들려주는 사람이야기』 현암사
2013년 이영득 『내가 좋아하는 물풀』 호박꽃
2014년 김려령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문학동네
2015년 김혜연 『코끼리 아줌마의 햇살도서관』 비룡소
2016년 진형민 『소리질러 운동자』 창비
2017년 김중미 『그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낮은산
2018년 손평원 『아몬드』 창비
2019년 정명섭 『미스 손탁』 서해문집
2020년 이선주 『맹탐정 고민상담소』 문학동네
2021년 이꽃님 『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 문학동네
2022년 유은실 『순례주택』 비룡소
2023년 문경민 『훌훌』 문학동네

과연 원주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의 역대 선정도서를 위해서는 어떤 분들이 어떤 논의를 했던 것일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원주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으나 잘 찾아지지 않았습니다. 원주시립중앙도서관의 한도시한책읽기 소개란*에 이들 도서를 선정하기 위해 참여한 분들과 그 논의를 기록으로 남겼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원주시립중앙도서관의 한도시한책읽기 소개란,   http://lib.wonju.go.kr/wj/contents/contentsView.do?lb_cnfs_cd=LIB_READBOOK)

한 도시 한 책 읽기와 관련된 여러 자료에서 추출한 ‘도서 선정’에 대한 논의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도시 비전 
가능하면 우리 도시와 연관이 있는 작가 및 작품 내용이라면 좋겠다. 
시민들이 매일 다루고 겪게 되는 보편적인 문제를 반영한 작품이라면 좋겠다.
지역사회의 비전과 연관이 있는 작가와 작품이라면 좋겠다.
문명사 및 문화사적인 전환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좋겠다. 

작가 
지역사회에서 펼쳐질 여러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작가라면 좋겠다. 
뛰어난 작품으로 이미 시민들에게 익숙한 작가라면 좋겠다.
시민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작가라도 시민과 함께 토론하며 도시 비전을 함께 토론할 수 있는 작가라면 좋겠다. 
작가와의 만남과 토론에 모시기 어렵지 않은 작가라면 좋겠다. 

시민참여와 토론 
성인 등 일반 독자뿐만 아니라 어린이, 청소년도 함께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면 좋겠다. 
독서토론, 작가와의 만남, 연극, 영화, 전시 등 각종 문화행사를 함께할 수 있는 작품이어서 시민참여를 적극 유도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좋겠다. 
책을 쉽게 구할 수 있고, 작품을 바탕으로 한 토론 자료를 만들 수 있는 작품이라면 좋겠다. 
토론을 통해 보편적 의제와 더불어, 지역사회에 도전적인 과제가 도출될 수 있는 작품이라면 좋겠다. 등등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논의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원주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의 지난 20년을 돌아보면서 과연 어떤 책을 어떻게 선정해왔는가, 무엇을 원주시민이 토론하고자 했는가를 되짚어보는 일은 필요할 듯싶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고자 하는 것은, 역시 『앵무새 죽이기』와 관련된 것입니다. 이 책,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는 미국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책이자 가장 금지된 책 중 하나입니다. 금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압도적인 다수는 n-word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닉 토도로우 Nick Todorow, 「앵무새 죽이기와 검열」 Censorship in To Kill a Mockingbird에서, 인터넷에서 인용, 
http://www.cas.udel.edu/dti-sub-site/Documents/curriculum/units/2015/1%20Censorship/15.01.08.pdf) 이 책에서 이제는 미국 사회에서 금기시되는 혐오적 표현이 ‘깜둥이’Nigger라는 단어가 모두 48번 사용되었고 이러한 표현이 사용된 작품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뿐만 아니라 책 읽는 시민대중에게 책을 제시할 때 가능하면 ‘도전을 받고 있는 책’challenged books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괜히 논란에 휩싸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카고의 앵무새 열풍의 이면에는 이런 도전을 받고 있는 책을 온 시민이 함께 읽어보자는 의도도 담고 있다는 점도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3) 시민참여와 토론

한 도시가 한 권의 책을 함께 읽는다는 것은 다양한 형태의 토론 모임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때 사실 목표는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에 있다기보다 오히려 토론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고 이를 통해 참여하는 독자가 누구나 토론의 인도자가 되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은 다양한 생각을 나누며 토론할 수 있는 책을 선정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목소리도 발견하게 되는 기쁨을 누리도록 하는 것은 매우 창의적인 과정입니다. 그런 창의적인 과정은 작가와의 만남이나 강연을 단지 만남과 강연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민참여와 토론의 전체 과정 속에서 더욱 토론을 촉발하는 계기로 삼으려 할 것입니다. 지역의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독서토론, 낭송회, 대학과 초중고 학교, 교회, 서점, 복지관 등등에서 벌어지는 열린 독서토론회는 무형의 독서환경을 만들어냄으로써 지역사회의 문화적 역량을 더욱 키워낼 것입니다. 그렇기에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의 전 과정은 정직한 독자를 필요로 하며, 토론하는 독자를 필요로 합니다. 

이런 사례로 서울 성북구의 한 책 읽기 운동**은 도서 선정 과정부터 시민참여를 적극 유도하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성북구에서는 7~8월 누구나 쉽게 참여하여 한 책 최종 후보도서에 대한 정보를 얻어갈 수 있는 문턱 낮은 소토론회인 ‘후보도서데이’를 엽니다. 8월 말에는 청소년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계층별·생활권역별 100명 이상의 주민들이 한 자리에 모여 토론을 통해 한 책을 선정하는 대토론회인 한책선정토론회/선포식을 엽니다. 9~11월에는 올해의 한 책과 관련된 작가, 출판사, 평론가 등 초청 특별 강연을 열고, 8~11월에는 서평, 그림, 음악 등 한 책 관련 콘텐츠 발굴 및 연계 전시를 운영하며, 9~11월에는 찾아가는 한 책 주민/아동/청소년 독서토론을 펼칩니다. 성북구의 한 책 읽기 운동은 가능하면 시민참여의 통로를 확대하고 이를 통해 토론을 촉진하고자 하는 사례일 것입니다. (**성북구 한 책 읽기 참고. http://www.sblib.seoul.kr/library/menu/11146/contents/40209/contents.do)

(4) 독서와 도서관의 가치 발견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이 지난 20년 동안 각 지역사회에 확산되고 뿌리를 내린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 운동이 앞서 언급했듯이 ①하나의 지역사회에서, ②한 권의 책을, ③온 시민이, ④함께 읽고 토론한다는, 단순하면서도 개혁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을 통해, 한 권의 책을 함께 읽음으로써 시민과 시민의 만남과 토론을 촉진하고 책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이 개발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은 독서와 도서관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의 과정은 지역사회에서 책 읽는 분위기의 확산과 도서관 문화의 성숙과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마다 독서환경의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한마디로 재단하기는 어렵겠으나, 이 운동의 전개과정에서 거둔 유형, 무형의 성과의 핵심은 독서와 도서관의 가치를 발견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을 통해 독서와 도서관의 가치가 더욱 새롭게 발견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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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도시 원주를 위하여

‘책읽는도시’의 비전과 정책이 펼쳐지는 현상은 지방행정, 도시발전의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최근 몇몇 지방자치단체가 ‘살 만한 도시’를 만드는 데 가장 핵심적인 사업으로 ‘책 읽는 도시’ 혹은 ‘도서관의 도시’를 만들겠다고 나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런 정책을 주목하게 되는 까닭은 그것이 기본적으로 도시발전의 패러다임을 기존의 ‘개발’과 ‘건설’이 아니라 교육-문화-복지로 삼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여 이런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났을까. 그것은 시민들의 책 읽기, 그리고 도서관문화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도서관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꽃피우기 어렵듯이 시민들이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없다면 제대로 된 시민 역량을 키워내는 것도 어렵습니다. 지식정보화 시대, AI시대에 돈이 없어서 책을 읽을 수 없는 환경이라면 그것은 사회적 불평등이 해소된 사회라고 할 수 없으며 복지사회를 실현한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첨단산업을 유치하면서 첨단산업을 지속시킬 수 있는 각종 첨단 정보의 유통에 관심이 없다면 그 첨단산업은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시민들의 자기 계발과 평생학습, 여가와 휴식에 필요한 사회문화공간인 도서관을 확충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의욕이 없이 어떻게 행복도시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안찬수, 「책 읽는 도시, 도서관의 도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너울』 2007년 9월호.)

그 패러다임 시프트는 한 도시 공동체의 발전을 물질적 풍요의 관점이 아닌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행복의 경제학happiness economics’이라는 측면에서, 도시발전이란 시민들의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시민들의 행복은 결코 물질적 풍요만으로는 충족되지 않습니다. 물질적 풍요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도시발전의 패러다임 시프트라는 측면에서, ‘책읽는도시’의 정책은 “사람들이 공동체의 삶에 적극 참여하고 공동체를 함께 일구고 운명을 자기 손으로 결정하는 민주적 자율성”을 높이고 있는가 하는 문제와 연계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책읽는도시의 비전은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비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도서관 및 독서문화, 그리고 출판문화는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복리 증진뿐만 아니라 이 나라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주민들이 가능한 한 평등하게 정보와 지식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책 읽는 문화를 바탕으로 성숙한 시민사회와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책 읽는 문화공동체 속에서 시민들 각자 자기 삶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관점에서 ‘책읽는도시 원주’의 정책과 원주의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을 되짚어보며, 앞으로 10년 20년을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2018년 11월 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던 ‘전국책읽는도시협의회 창립총회’의 기조강연 끝부분에서 말씀드렸던 것을 다시 언급하면서 저의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은 닐 게이먼Neil Gaiman, 『신들의 전쟁』 『북유럽 신화』 등이 번역되어 있습니다이 영국의 리딩 에이전시Reading Agency의 연례 강의 시리즈에서 2018년 10월 14일에 행한 연설의 한 대목입니다. 강연 제목은 ‘왜 우리의 미래는 도서관, 독서, 백일몽에 달려 있는가’Why our future depends on libraries, reading and daydreaming입니다. 닐 게이먼은 이 강의에서 두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미국의 커다란 성장 산업인 교도소 산업에 대한 예측을 이야기하면서 “그들교도소 산업 예측 연구자들은 매우 간단한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미래를 매우 쉽게 예측할 수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10~11세의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는가 없는가를 살펴보는 것을 기반으로 교도소 산업 예측 보고서를 작성했던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중국 공산당 당국이 오랫동안 공상과학소설SF을 비승인해 왔다가 최근 승인으로 큰 변화를 보였는데 왜 그렇게 했는가. “그들중국 공산당 지도부은 미국의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에 대표단을 보내어, 새로운 미래를 열어 나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발견한 것은 어린이 청소년들이 모두 소설을, 그것도 공상 과학 소설을 읽었음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이상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3년 10월 14일에 열린 '원주 한 도시 한 책 읽기 20주년 기념 포럼: 책과 함께하는 문화도시 20년을 위한 대화'의 기조강연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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