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31

책과 함께하는 문화도시 20년을 위한 대화 ①

저자소개

안찬수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상임이사. 시인. 시집으로 <아름다운 지옥> <한 그루 나무의 시>가 있고, 옮긴 책으로 <물고기는 물고기야> 외 몇 권의 어린이책과 <힌두 스와라지> <1968 :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 등이 있다.

원주 한 도시 한 책 읽기 20주년 기념 포럼 '책과 함께하는 문화도시 20년을 위한 대화'. ⓒ원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1

책과 함께하는 문화도시 

20년을 위한 대화


반갑습니다. 오늘 ‘한 도시 한 책 읽기 20주년 기념 프로그램’인 ‘포럼-책과 함께하는 문화도시 20년을 위한 대화’의 기조강연을 맡은 안찬수입니다. 뜻깊은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주는 2004년 책 읽는 공동체 문화를 만들기 위해 ‘원주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을 민간 주도하에 시작하였습니다. 매년 시민들과 함께 읽을 도서 1권을 선정하여 지역사회 책 읽는 문화 확산에 기여하였고 다양한 활동도 진행하였습니다. 원주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이 올해 20주년을 맞이하였고, 더불어 원주는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 가입을 통해 문화도시 원주 만들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책과 함께하는 문화도시 20년을 위한 대화’는 저의 발제에 이어 오원집한도시한책읽기운동 운영위원장, 이상희(사)그림책도시 이사장, 신관선(전)원주시문화정책과장, 서계녀(전)원주교육문화관 사서, 임영규전국독서새물결모임 회장 등 소중한 분들의 말씀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원주 한 도시 한 책 읽기 20년’을 돌아보며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몇 가지 의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저의 발제 겸 기조강연을 대신하도록 하겠습니다. 



2

‘시카고의 앵무새 열풍’ 이후


우리나라에서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One City One Book이 전개된 것은 2003년의 일입니다. 


①하나의 지역사회에서, ②한 권의 책을, ③온 시민이, ④함께 읽고 토론한다는, 단순하면서도 개혁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책 읽기 운동이 확산된 계기가 된 것은 시카고의 ‘앵무새 열풍’ 이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책읽는사회문화재단’을 설립해 독서문화 운동을 주도한 도정일 선생은 『시네21』 2001년 9월 1일자에 「시카고의 앵무새 열풍」이라는 칼럼을 발표했습니다.(도정일,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문학동네2014, 30~32쪽 참조.) 


이 칼럼은 시카고시에서 그해 8월 25일부터 7주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시민 모두가 ‘함께 읽을 한 권의 책’으로 하퍼 리의 장편소설 『앵무새 죽이기』를 선정하고, 리처드 델리 시장이 직접 나서서 시민 참여를 호소하는 바람에 시 전체가 ‘앵무새 열풍’에 휩싸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여기 참여할지는 7주가 끝나는 10월 14일 이후에나 알 일이다. 그러나 이미 열풍은 열풍이다. 시립도서관 당국은 시내 각 공공도서관에 소설 4,000권을 사다 비치했지만 미처 책을 빌리지 못한 시민들이 서점으로 몰려드는 통에 시내 서점들에서는 책을 갖다 놓기 무섭게 없어진다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도정일 선생은 이 ‘앵무새 열풍’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이번의 앵무새 열풍은 말하자면 시카고판 ‘책 읽는 사회 만들기’ 운동이다. ‘온 시카고가 나서서 소설 한 권을 읽고 있다’는 소식은 우리에게 신문 토픽감으로 끝날 단순 화제가 아니라 생각할 거리이고 화두다. 시카고 같은 큰 도시가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가, 대도시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의 능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가? 시민들이 비디오나 게임에만 빠져 있을 것이 아니라 책 읽고 생각하고 독서문화를 유지하는 것이 그 자체로 소중한 가치이고 삶의 방식이며 경험이라는 판단이 ‘책 읽는 시카고’의 동기라는 것쯤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1년에 한 번만이라도 온 시민이 똑같은 책 한 권을 읽어 공통의 화제를 찾아내고 시카고의 문제이를테면 인종분할과 차별를 함께 생각해 보는 것도 대도시의 공동체적 가능성을 키우는 데 소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의 시점에서 돌아보았을 때, 이 칼럼을 통해 제시된 단순하면서도 개혁적인 책읽기의 아이디어의 파장은 네가지 독서문화 운동으로 확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1) 첫째는 MBC문화방송의 김영희 피디가 이 칼럼을 읽고 2001년 말 ‘느낌표-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추진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이 느낌표 프로그램에서 선정된 책의 판매수익금 일부와 저자들의 인세 수입 일부를 어린이 전용 도서관 건립기금으로 사용하며 ‘기적의도서관 건립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 2003년의 일입니다. 이 도서관 건립 프로젝트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매달 1권의 책을 선정하여 온 국민에게 책읽기 열풍을 일으켰는데, 그 책이 25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함께 읽기 프로그램은 25달 동안 이어진 것입니다. 당시 선정된 책은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비롯해서, 제인 구달의 『희망의 이유』까지 지금도 꾸준히 읽히고 있습니다.  


(2) 둘째는 오늘의 주제가 되고 있는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의 확산입니다. 2003년 도서평론가 이권우는 한국도서관협회의 후원을 받아 서산시에서 ‘한 도시 한 책 읽기’ 시범사업을 펼치며 이 운동의 확산을 촉발했습니다. 2003년의 선정도서는 황선미의 장편소설 『마당을 나온 암탉』이었습니다. 이권우는 『도서관문화』 2004년 6월호에 발표한 「‘한 도시 한 책 읽기’의 성과와 과제」에서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이 거둔 최대의 성과는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의 성과로 반드시 꼽아야 하는 것이 바로 책 읽기의 오랜 가치를 오늘에 되살려 놓았다는 점”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한 도시 한 책 읽기’는 이후 우리나라에서 서산뿐만 아니라 제1호 기적의도서관을 건립한 순천, 부산, 원주, 청주, 대전, 울산, 김해, 세종, 춘천, 서울, 부천, 안양, 의정부, 안동, 동해, 전주, 충주, 익산, 제주, 진천, 목포, 공주 등 여러 도시로 퍼져 나갔습니다.(2004년 6월 4일, 서울 COEX 컨퍼런스 센터에서 열렸던 『2004 서울 국제도서전 세미나: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 시범운동 경과와 향후 발전과제 모색』 참조. 이 세미나에서는 박미희,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서산시 시범사업 사례/ 부산광역시 교육청, 「책 읽는 시민, 생각하는 사회 만들기 위한 BBSBusan Book Start 범시민 독서생활화 운동/ 양동의, 「책 한 권, 하나의 순천 추진」 등이 발표되었습니다.)


청주시의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의 산파 역할을 감당했다고 할 수 있는 윤정옥 교수청주대, 문헌정보학는 2004년 7월 『한국문헌정보학회지』제38권 제3호에 「‘한 책, 한 도시’ 독서운동의 동향과 의의-해외 사례를 중심으로」에서 시카고의 ‘한 책 한 시카고’, 캘리포니아주의 ‘분노의 포도 읽기’ 및 캐나다의 ‘Canada Reads’의 사례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윤정옥 교수는 이후 『미국의 ‘한 책 한 도시’ 독서운동』조은글터, 2013을 펴낸 바 있습니다.) 윤정옥 교수는 당시 미국국회도서관 도서센터 등에 등록되어 있는 다양한 사례를 분석하여, 다음과 같이 4가지 특징을 추출하여 제시하였습니다. ①‘한 책’ 운동은 독서운동이면서, 독자가 책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토론할 뿐만 아니라, 그 책 자체나 주제, 작가 등에 연관된 영화, 연극, 전시회와 같은 여러 행사에 참가하게 함으로써 독서의 경험이 바로 다양한 문화적 체험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확장시켜 주고 있다. ②‘한 책’ 운동은 ‘한 책’이라는 동일한 구심점을 갖고 있지만, 지역사회마다 매우 다양하게 창의적인 형태로 수행되고 있다. 그 같은 개별적 특성은 도서의 선정, 프로젝트 명칭의 선택, 지역적 프로그램과 행사의 진흥 등에서 나타난다. ③‘한 책’ 운동은 많은 도서관들에서 전국적인 ‘선풍적 유행’에 편승한 단발적, 일회적 행사가 아닌 지속적, 안정적 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④‘한 책’ 운동의 주체인 공공도서관은 책 한 권을 들고 지역사회의 핵심으로 파고 들어간다Outreach. 그러나 공공도서관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개인, 학교, 각급 기관과 시민단체들로 하여금 도서의 선정 과정에서부터 독서와 토론, 행사의 진행에 적극 참여할 수 있게 독려하고, 그들의 긴밀한 후원과 협력이 있어야만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앞의 학회지, 62쪽 참조)


(3) 셋째는 독서동아리 지원과 사회적 독서의 확산입니다. 독서동아리 활동이나 사회적 독서를 간단히 말하면 ‘함께 읽기’입니다.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이 ‘독서동아리 지원센터’(http://www.readinggroup.or.kr/)를 만든 것이 2013년의 일입니다. 올해로 10년이 되었습니다. 


독서동아리는 함께 읽기 모임입니다. 사람들이 함께 만나 자유롭게 책에 대한 자신의 감상과 의견을 나눕니다. 온라인·오프라인 모임, 정기·비정기 모임, 자유독서·지정독서모임 등 독서동아리 구성원들의 취향과 여건에 맞춰 다양한 형태로 모임을 꾸릴 수 있습니다. 독서동아리를 하면 좋은 점은 무엇보다도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독서동아리지원센터의 슬로건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책이 만나다’입니다. 함께 읽으면 혼자 읽기와 달리 책에 빗대어 나누는 각자의 경험, 더 풍성한 책에 대한 해석, 새로운 장르의 책과의 만남 등이 이루어집니다. 또한 능동적인 독서와 토론은 시민의 역량을 키우는 사회적 독서 활동입니다. 이러한 독서동아리 지원센터의 활동은 독서문화진흥법에 따른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2019~2023의 첫 번째 전략 ‘사회적 독서 활성화’로 정식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사회적 독서 활성화의 필요성에 대해 “소유 및 개인 독서에서 공유 및 사회적 독서로 패러다임 전환, 함께하는 독서공동체 확산”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4) 넷째는 초·중·고등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 학기 한 권 읽기’입니다. ‘2015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은 학생들에게 인문학적 소양과 소통능력, 창의력, 꾸준한 독서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도입하였습니다. 2018년에 초등학교 3학년부터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적용된 것을 시작으로 이후 중학교, 고등학교 3학년까지 확대해 한 학기에 한 권의 책을 함께 읽는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한 학기 한 권 읽기’는 국어 수업 시간에 책 한 권을 온전히 읽고, 생각을 나누고, 표현하는 수업을 통해 삶의 연속성 위에서 학생이 참여하는 가운데 배움이 일어나게 하고, 바람직한 독서 습관을 형성하기 위해 도입된 것입니다. 교육계에서는 읽고 이야기하고 표현하는 활동은 맥마흔과 라파엘의 책 모임 모형과 비고츠키의 사회적 구성주의 이론을 학문적인 근거로 한 ‘언어활동 통합 모형’에 기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이화, 서울특별시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독서·인문사회교육팀 장학관, 「2015 개정 교육과정과 한 학기 한 권 읽기」, 『서울교육』 2018년 봄호, 230호 참고) 


내일신문 2021년 3월 18일자 송현경 기자의 보도 「10년 동안 20권 토론…성장하는 학생들」에 따르면,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자리 잡은 것은, 15~20년 전부터 독서 교육에 적극적인 교사들 사이에서 진행돼 온 수업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지은 정책입안자현 충북교육청 장학관는 “초등 온작품읽기 활동, 중등 교사들의 모임인 전국국어교사모임 독서교육분과 물꼬방, 책으로따뜻한세상만드는교사들 등 교과서가 아닌 책 한 권을 완독하고 토론으로 깊어진 생각을 쓰는 수업을 많은 학교, 교사들이 하고 있었다”면서 “이것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실제 배움이 일어나는 학습경험’이었기에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으로 끌어올렸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어 “하향식 정책은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도 정책 실효성을 담보하기 쉽지 않은데 한 한기 한 권 읽기는 현장 사례 등을 담은 책들도 많이 집필됐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같은 기사에서 서수현 광주교육대학교 교수는 “기존 학과 교육에서는 배워야 할 분량이 많아 독서 시간을 보장할 수 없었다”라고 하면서 “수업 시간에 긴 글을 긴 호흡으로 읽을 물리적인 시간을 확보하고 교사들의 자율권을 보장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의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일신문의 기획기사, ‘한 학기 한 권 읽기’는 http://www.naeil.com/news_view/?id_art=381730 참조)


 

★2023년 10월 14일에 열린 '원주 한 도시 한 책 읽기 20주년 기념 포럼: 책과 함께하는 문화도시 20년을 위한 대화'의 기조강연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