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10

책에 대한 독자의 권리 ②

저자소개

안찬수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상임이사. 시인. 시집으로 <아름다운 지옥> <한 그루 나무의 시>가 있고, 옮긴 책으로 <물고기는 물고기야> 외 몇 권의 어린이책과 <힌두 스와라지> <1968 :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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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독자의 권리, 독서 및 도서관의 자유에 대한 이러한 ‘일반론’이 2023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 상황에 어떤 도움이 될까요? 그리고 우리들 독자讀者는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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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우리 국민은, 우리 시민은, 우리 독자는 책을 자유롭게 읽을 권리를 포기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최근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성교육과 관련하여 유해성이 우려된다고 지적된 도서목록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우리들 독자는 과연 그 책이 왜 누군가가 그렇게 유해성이 우려된다고 말하는지 스스로 찾아 읽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백 권, 이백 권제가 찾아본 자료에는, 268권이라는 것도 있고, 또 어떤 자료에는 112권인 것도 있으며, 또 어떤 자료에는 117권이라는 것도 있습니다을 모두 구입해서 읽을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전국의 각종 도서관이 이렇게 ‘문제가 제기된 책’challenged books을 잘 갖추어 놓도록 하고, 우리 국민이, 우리 시민이, 우리 독자가 스스로 찾아 읽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인 독자A가 그렇게나 ‘나쁜 책’이라고 말하는데, 독서B도 그 책을 읽고 왜 독자A가 ‘나쁜 책’이라고 말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이용하고 계시는 공공도서관 등에 ‘문제가 제기된 책’이 소장되어 있지 않다면 ‘책바다 서비스’를 이용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책바다 서비스’는 “이용자가 원하는 자료가 해당 도서관에 없을 경우, 협약을 맺은 다른 도서관에 신청하여 소장 자료를 서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전국 도서관 자료 공동 활용 서비스”입니다. 협약에 참여하는 도서관의 종류로는 국립중앙도서관, 지역대표도서관, 공공도서관, 장애인도서관, 작은도서관, 대학도서관, 전문도서관(각 부처의 행정자료실 포함), 학교도서관이 있습니다.(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도서관의 공공도서관지원서비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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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우리 국민은, 우리 시민은, 우리 독자는 도서관이 정보와 사상의 광장이 될 수 있도록 도서관의 권리와 자유, 그리고 지적자유를 함께 지키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도서관의 권리와 자유, 그리고 지적자유를 지키는 일은 우리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독서문화와 도서관문화의 역사에는 오랫동안 자기검열을 내재화할 수밖에 없었던 규제와 압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흑역사입니다. 그런데 이런 흑역사가 다시금 반복되고 있습니다. 최근의 사태에서도 ‘골치 아파서’ ‘문책당하기 싫어서’ 혹은 ‘괜히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어서’ 논란이 일어난 책이나 일어날 만한 책을 제적하거나 서가에서 빼내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도서관은 우리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인 ‘알 권리’를 국민에게 보장하기 위해 각종 자료와 시설을 제공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임무로 삼고 있습니다. 도서관은 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①자료수집의 자유 ②자료제공의 자유 ③검열을 거부하고 반대할 자유 ④도서관 자유가 침해될 때에는 이를 배제할 권리도 갖고 있습니다. 


어떤 특정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도덕적 지향을 지닌 개인 및 단체가 이런 책이 ‘나쁜 책’이고 또 이런 책은 ‘좋은 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언제든지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독자가 어떤 책을 어린이와 청소년에 유해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고 해서 그 책을 도서관에서 제적하거나 폐기할 것을 요구하는 일은, 지금까지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다른 독자의 알 권리, 독서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빼앗는 일로써 매우 부당한 일입니다. 


우리의 도서관에는 도서관 운영의 전문가들인 사서司書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또한 도서관운영위원회 및 도서선정위원회를 두고 지역주민과 학생 청소년 등 이용자인 시민을 위해 한정된 예산으로 최적의 장서를 구축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도덕적 지향이 올바르다는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민원民願의 형태로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한다면 이 또한 매우 부당한 일입니다. 오늘부터라도 제발 이런 형태의 민원民願은 멈추어 주십시오. 


우리나라에서 자라고 있는 다음 세대를 더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고 길러내자는 마음은 우리 기성세대라면 누구나 다 똑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그런데 2022년 12월에 발표된 「2022 개정 초중등학교 교육과정」교육부 고시 제2022-33호 가운데 중등교육 과정의 보건 과목에서 말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교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과연 우리 청소년들에게 어떤 책을 권하면 좋을지, 토론은 충분했던 것일까요?


[9보03-01] 성의 개념과 성역할 및 영향요인에 대해 성인지적 관점에서 탐색하여 안전하고 행복한 성문화와 성의식의 필요성을 이해한다.

[9보03-02] 청소년기 성적 발달과 관계, 신체상에 대해 알아보고 사회적 조건을 이해하며 건강하게 관리한다.

[9보03-03] 성적자기결정권을 균형 있게 탐색하여 안전하고 행복한 대처전략을 세우고 이성 교제 시 경계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를 갖는다.

[9보03-04] 성폭력ㆍ성매개감염병 등 성 건강 위험요소를 미디어 문해력 및 성문화와 관련지어 탐색하고 건강하게 관리ㆍ옹호한다.

[9보03-05] 임신, 피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십대의 임신과 미혼 부모 문제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건강에 유익한 선택과 자원을 지지한다.

[9보03-06] 청소년의 성 건강과 관련하여 사회적 쟁점이 있는 이슈들에 대해 다양한 입장의 근거와 맥락, 고정 관념, 차별, 불평등한 상황을 파악하여 균형 있고 평등한 성문화를 조성하려는 자세를 갖는다.


 *2022년 12월 22일(목), 대한민국 교육부(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이주호)가 확정·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 가운데 ‘중학교 교육과정【별책 3】의 보건-선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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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문제가 제기된 책’이라고 해서 각종 도서관에서 열람을 제한하거나, 제적 및 폐기하려고 하는 조치가 있습니까? 만약 그러한 조치가 있다면 그것은 즉각 취소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며, 거듭 말씀드리지만, 우리 국민, 우리 시민, 우리 독자는 ‘책을 읽을 권리’를 회복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발제문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몇몇 보도에 따르면, 충남도의회 지민규 의원이 2023년 7월 25일 충남도의회 본회의장에서 진행된 긴급 현안질문을 통해, 충남 지역의 여러 도서관에 비치된 책의 내용을 거론하며, “아이들이 건강하고 건전하게 성을 배울 수 있도록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도서의 향후 조치 방안에 대해 충남도와 충남교육청이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2023년 7월 25일 굿모닝충청, 이종현 기자의 보도, ‘충남 학교·공공도서관에 비치된 성교육 도서 논란’에서 인용.


이에 대해 김태흠 충청남도지사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회의록이 현재까지 충청남도의회 누리집에 올라와 있지 않았습니다. 아래 인용문은 필자의 녹취 초고입니다.


“한편 여성가족부에서 회수 조치한 도서를 살펴보았는데, 낯 뜨거운 표현이 대부분으로 아이들의 교육 목적으로 보기 어려웠습니다. 연령대, 수용성 등을 감안해야 하는데, 교육 목적에 부적절한 내용이라 생각하여 도내 36개 도서관 전체의 열람을 제한했습니다. 젠더 문제와 소수자 권익 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면,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차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경우 주에 따라 성 소수자의 공공장소 입장을 제한한다든가 트랜스젠더 화장실 이용 제한 등 차별을 두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에선 그렇지 않습니다. 심지어 수간 등 여러 가지 낯 뜨거운 용어가 담긴, 아이들 성교육 자료를 만드는 것은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성 소수자 옹호를 내세우는 의도를 보면 일반인보다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되어 이 부분에 대해선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http://council.chungnam.go.kr/viewer/video/minutes/3330.do?pos=5700#app


김태흠 충청남도지사의 발언만으로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가 취해졌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진짜 어떤 책을 대상으로 열람 제한 조치가 취해졌습니까? 거듭 강조해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만약 그런 조치가 취해졌다면 그 조치는 취소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 우리 시민, 우리 독자는 그 책들을 읽을 권리를 회복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상으로 발제를 마치고자 합니다. 고맙습니다. (*)



〈부록 1~4〉

미국도서관협회와 미국출판인협의회, 「독서의 자유 선언」 외



〈부록 5〉

한국도서관협회, 「도서관인 윤리선언」







★ 2023년 8월 1일, 충남 내포혁신플랫폼에서 열린 토론회 「공공도서관을 향한 성평등 책 금서요구, 무엇이 문제인가」의 발제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