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10

책에 대한 독자의 권리 ①

저자소개

안찬수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상임이사. 시인. 시집으로 <아름다운 지옥> <한 그루 나무의 시>가 있고, 옮긴 책으로 <물고기는 물고기야> 외 몇 권의 어린이책과 <힌두 스와라지> <1968 :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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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제정연대,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주최하는 오늘 토론회의 개최를 환영합니다. 오늘 토론회의 제목이 “어린이청소년 성평등 책이 유해도서? ㅡ 공공도서관을 향한 성평등 책 × 금서 요구, 무엇이 문제인가?”로 되어 있는데, 저는 주로 책, 독자, 도서관에 집중하여 발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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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질문, “어떤 특정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도덕적 지향을 지닌 개인 및 단체가 문제를 제기하며 공공도서관을 비롯한 각종 도서관에서 그 문제와 관련된 도서를 열람 제한, 제적 또는 폐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검열’censorship인가?”하는 문제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검열이다”입니다. 


(왜 그런가에 대해서는 이 발제문의 참고자료1에 첨부하는 「새로운 검열 시대와 독서·도서관의 자유」에서 자세하게 밝혀 놓았습니다. 그 글을 참고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사전제재’prior restraint에서 ‘자기검열’self-censorship로 이어지는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민간단체의 자체 심의 ②배제 목록 작성과 배포 ③언론을 통한 이슈 증폭 ④관계 당국의 행위 ⑤사실상의 금서조치 및 변형된 형태의 검열 ⑥자기검열의 확산.)


우리나라는 검열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헌법시행 1988. 2. 25. 헌법 제10호, 1987. 10. 29. 전부개정 제21조 제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검열 금지의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헌법 제21조 제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은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러한 검열이 허용될 경우 국민의 정신생활 및 의사형성에 미치는 위험이 클 뿐만 아니라 행정기관이 집권자에게 불리한 내용의 표현을 사전에 억제함으로써 이른바 관제의견이나 지배자에게 무해한 여론만이 허용되는 결과를 초래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헌법이 직접 그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헌법재판소, 2001. 8. 30. 2000헌바36, 헌법재판소 누리집 http://www.ccourt.go.kr/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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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질문. “도서관은 어떤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도덕적 지향을 지닌 개인 및 단체가 문제를 제기하는 도서에 대하여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더 나아가 문제가 제기되었기 때문에 그 도서의 열람을 제한하거나, 또는 제적 및 폐기함으로써 독자들이 읽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입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린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행위가 아니며 옳지 않다”입니다. 


도서관은 ‘광장’입니다. 도서관은 ‘정보와 사상을 위한 광장’forums for information and ideas입니다. 미국도서관협회가 1939년 「도서관 권리선언」The Library’s Bill of Rights을 채택하게 된 계기는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의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 때문이었습니다. 『분노의 포도』가 출판되었을 때, 이 작품은 큰 논란을 야기했습니다. 여론은 들끓어서 당시 지역신문은 엄청난 공격을 가했고, 의회에서는 의원이 이 소설을 탄핵하는 연설도 했습니다. 당연히 도서관도 공격을 받았습니다. 보수적인 정서를 지닌 지역의 도서관에서는 이 책이 부도덕하다고또는 ‘불쾌하다’고 열람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일어났습니다. 이런 ‘검열’ 행위에 대해 미국도서관협회는 적극적으로 저항의 목소리를 내었고, 그 결과물이 「도서관 권리선언」The Library’s Bill of Rights이었습니다. 


이 선언의 3항을 보면 도서관을 “민주적인 삶을 교육하는 기관”institution to educate for democratic living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시 도서관을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사상의 상호 교환을 위하여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는 기관으로 본 것입니다. 그런데 1980년 개정된 「도서관 권리선언」Library Bill of Rights에서는 도서관을 “민주적인 삶을 교육하는 기관”이 아니라 “정보와 사상을 위한 광장”forums for information and ideas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개정에 대해 당시 미국도서관협회 지적자유위원회 위원장인 프란시스 딘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은 어떠한 의견과 견해에 대해서도 개방되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광장’forums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을 ‘민주적인 삶을 교육하는 기관’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도서관이 반민주주의적인 자료를 검열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심어주는 결과가 됩니다. 지적자유의 관점에서 본 우리들의 사회에서 도서관의 역할은 다수결의 원리가 아니고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 구체적으로 나타난 원리에 입각하고 있습니다. 즉 다수가 싫어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소수의 견해는 경청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적자유를 수호하는 기관으로서 도서관의 근본적인 가치를 우리가 지킬 수 없다면 아마도 우리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을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우리의 민주적 과정에 대한 비판정신을 새롭게 불어넣는 사상의 자유로운 전파에 의존합니다. 시민들은 독자로서 온갖 지식과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하여 자신의 생각과 판단과 견해를 형성할 자유를 갖고 있습니다. 


민주공화국은 언론과 출판의 자유, 도서관과 독서의 자유가 필수적입니다. 민주주의적 여론 형성의 원칙에 의거하여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지식과 정보의 유통을 자유롭게 해야 합니다. 만약 공권력에 의해 지식과 정보의 원천적인 접근 금지, 특정 지식과 정보의 금지, 도서 검열, 금서목록의 작성 등의 적극적인 통제나, 자유로운 지식과 정보의 유통을 막고자 예산 수립과 보조금 지급 등에 영향을 미치거나, 인사상의 불이익과 차별 취급 등의 간접적인 통제가 이루어진다면 우리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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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질문. “좋은 책, 나쁜 책은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좋은 책, 나쁜 책은 없다”입니다. 


먼저 언급하고자 하는 책은 『성경』입니다. 『성경』도 금서였던 적이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종교개혁의 길을 열었다고 일컬어지는,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년경~1384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라틴어 성서를 영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의 사후 31년이 지난 1415년, 당시 교황과 교회는 콘스탄츠공의회를 통해 위클리프를 이단으로 판결하고 그의 저작을 불태웠으며 무덤을 파헤쳐 이른바 부관참시를 했습니다. 그의 죄목은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것이었습니다.『성경』과 『아레오파기티카』  부분은, 장동석, 『금서의 재탄생』, 북바이북, 2012.을 참조했습니다.  


오직 라틴어 성경만이 아무런 오류가 없는 『성경』이며, 오직 사제만이 『성경』을 읽을 수 있고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대에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성경』은 ‘나쁜 책’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영어로 번역된 『성경』, 우리말로 번역된 『성경』을 ‘나쁜 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음으로 언급할 책은 『실락원』의 시인,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의 『아레오파기티카』Areopagitica, 1644입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언론 자유의 경전’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박상익 옮김, 소나무, 1999년 전면개정판, 인간사랑, 2016년 청교도혁명요즘엔 잉글랜드 내전English Civil War이라고 일컫고 있습니다의 기치를 높이 들고 찰스 1세를 제압한 의회공화파가 반혁명에 맞서 혁명을 수호한다면서 검열 제도를 다시 부활시켰을 때 집필하고 출간한 것이라는 점이 이 책을 주목해야 할 이유입니다. 청교도혁명처럼 극심한 양극화의 시기에 의회공화파가 언론 출판의 자유를 축소하려 하자 밀턴은 실정법을 어기면서까지 스스로 ‘금서’를 출판했던 것입니다. 이를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에 거칠게 비유하여 말한다면, 이런 일일지 모릅니다. 즉 A정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집권하여 반대파인 B정파 정치 지도자의 도서를 도서관의 장서에서 제적하거나 폐기하라고 주장하자, 그런 행위는 말이 안 된다, 오히려 도서관에는 B정파 정치 지도자의 책도 있어야 한다고 밀턴은 주장했다고 말입니다.


밀턴의 말입니다. “나쁜 풍속은 비단 책이 아니더라도, 제지할 수 없는 수천 가지의 다른 경로를 통해 완벽하게 습득되며, 사악한 교리는 책이나 교사의 안내 없이도 썩 잘 전파되므로, 교사는 굳이 글을 쓰지 않더라도 그것을 퍼뜨릴 수 있으며, 따라서 이를 막을 길도 없습니다. 나는 검열이라는 교묘한 계획이 어떻게 해서 수많은 헛되고 불가능한 시도들 중의 하나로 여겨지지 않는지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검열을 시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공원 문을 닫음으로써 까마귀를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무모한 사람과 다를 것이 별로 없습니다.”(59~60쪽) 


“우리가 검열제와 금지조치를 취한다면 그것은 부당하게도 진리의 힘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진리와 거짓으로 하여금 서로 맞붙어 싸우게 하십시오. 자유롭고 공개적인 경쟁에서 진리가 패배하는 일은 결단코 없습니다.”(108쪽)


세 번째로 언급할 책은 나치Nazis의 대표적인 인물인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의 저서 『나의 투쟁』Mein Kampf입니다. 이 발제문을 정리하면서 국립중앙도서관을 검색해보니 1961년 이윤환李潤煥이라는 분이 번역한 책新太陽社부터 거의 100권에 달하는 책이 검색되어 나옵니다. 또한 충청남도의 여러 공공도서관에도 현재 다수 소장되어 있다고 검색됩니다. 잘 아시다시피 히틀러가 이끌었던 나치스는 독일인을 폐쇄적 민족주의에 사로잡히게 만들어 결국에는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지옥도를 만들어내었습니다. 나치스는 ‘우리 독일’과 ‘우리 독일이 아닌 적’으로 세상을 양분화했습니다. 『나의 투쟁』은 이런 지옥도를 만들어 낸 히틀러의 책입니다. ‘나쁜 책’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끔찍한 지옥도를 만들어 낸 히틀러의 책을, 2023년 현재 대한민국의 독자들은 읽고 토론합니다. 물론 아무도 이 책을 도서관에서 열람 제한, 제적, 폐기해야 한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의 투쟁』을 읽는다고, 읽고 토론한다고 그 독자가 나치스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미국의 「독서의 자유 선언」1953의 한 대목을 고쳐 써 보았습니다. “독서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시도는 평범한 개인이 비판적 판단으로 선을 택하고 악을 거부하리라는 민주주의 기본전제를 부인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장된 정치적 선전이나 오보를 판별하여, 무엇을 읽고 무엇을 믿을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해로우리라 짐작되는 무언가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언론과 출판과 독서의 자유라는 유산을 희생하지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 시민들이 여전히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지지한다고 믿습니다.” 


‘평범한 개인이 비판적 판단으로 선을 택하고 악을 거부하리라는 민주주의 기본전제’는 ‘수동적 독자’가 아니라 ‘능동적 독자’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수동적 독자’ 즉 ‘나쁜 책’을 읽으면 ‘나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되는 독자가 아니라, ‘능동적 독자’ 즉 스스로 ‘(다른 사람이) 나쁘다고 말하는 책’을 읽더라도 그 책의 ‘나쁜 면’을 비판적으로 판단하면서 선을 택하고 악을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독자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다른 사람이 ‘좋은 책이야’라고 말한다고, 또는 다른 사람이 ‘나쁜 책이야’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을 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 독자’로서 “내가 그 책을 읽고 내가 판단할 거야.”라고 말하는 독자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어떤 독자讀者A가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도덕적 믿음과 신념이 옳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어떤 책을 ‘나쁜 책이야’라고 말할 권리도 당연히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독자讀者B에게 어떤 강제적 수단과 압력을 동원하여 자신의 믿음과 신념을 받아들이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독자A가 ‘책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는 것처럼 독자B도 ‘책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A가 읽고 자신이 ‘나쁜 책’이라고 판단했다면 독자B도 그 책을 읽고 좋은 책인지 나쁜 책인지, 왜 독자A가 이 책을 ‘나쁜 책’이라고 판단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독자A에게는 독자B의 ‘책 읽을 권리’를 뺏을 권리가 없습니다. 이것이 ‘책에 대한 독자의 권리’입니다.  





★ 2023년 8월 1일, 충남 내포혁신플랫폼에서 열린 토론회 「공공도서관을 향한 성평등 책 금서요구, 무엇이 문제인가」의 발제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