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9

어린이와 도서관의 현재를 고찰하고 미래를 논의합시다

저자소개

안찬수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상임이사. 시인. 시집으로 <아름다운 지옥> <한 그루 나무의 시>가 있고, 옮긴 책으로 <물고기는 물고기야> 외 몇 권의 어린이책과 <힌두 스와라지> <1968 :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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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기적의도서관 성년의 해를 맞아 과거와 현재를 고찰하고 미래의 어린이 독서문화 발전에 대한 방향을 모색하는 ‘제8회 순천 독서문화포럼’ 개최를 환영합니다. 


또한 올해부터 새롭게 펼친 「2022 어린이도서관·도서관 어린이서비스 우수사례 및 아이디어 공모전」에 참여하여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된 분들에게, 심사위원회를 대표하여 축하 말씀을 드립니다. 이번 공모전에서 뽑힌 우수사례 및 아이디어는 널리 알려져서, 우리나라 어린이도서관의 발전에 기여하고, 현장의 어린이사서 분들이 새롭게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2023년이면 순천기적의도서관이 20주년을 맞이합니다. 순천기적의도서관의 역사는 우리나라 어린이도서관과 도서관서비스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온 역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순천기적의도서관은 단지 하나의 공공도서관이 아니라, 전국의 1백여 관에 달하는 어린이도서관, 1천2백여 관에 달하는 공공도서관, 그리고 학교도서관 및 작은도서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어린이서비스의 모범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펼쳐진 「2022 어린이도서관·도서관 어린이서비스 우수사례 및 아이디어 공모전」은 순천기적의도서관이 앞으로도 더욱 선도적으로 우리나라 어린이도서관 서비스의 거점과 기지가 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천기적의도서관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어린이도서관 및 도서관서비스에 대한 발전적인 방향의 모색, 탐구, 실천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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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이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책이 역사적이며 사회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도서관도 역사적이며 사회적입니다. 도서관은 우리 인류가 수세기에 걸쳐 고안해낸 위대한 사회사업입니다. 


도서관에 대한 시민의 기대 수준도 무척 높아졌습니다. 도서관을 더욱 도서관답게 만들어가는 일은 단지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만의 몫이 아닙니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도 도서관을 도서관답게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몫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도서관 업무를 맡은 사서와 이용자인 시민이 함께 힘을 모아 과거의 도서관을 미래의 도서관으로 바꾸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무엇이 도서관을 훌륭하게 하고 위대하게 만듭니까? 『새로운 사서의 아틀라스』The Atlas of New Librarianship의 저자인 데이비드 랭크스R. David Rankes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쁜’ 도서관은 자료 형성에 중점을 둡니다. ‘좋은’ 도서관은 사람을 자료와 연결하는 장소로서 그 서비스 개발에 중점을 둡니다. ‘훌륭한’ 도서관은 지역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에 중점을 둡니다. 사람과 자료의 관계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더 중요합니다. 도서관의 질적인 성장은 바로 이러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더 높은 차원의 것으로 만들어 갈 때 가능할 것입니다. 


얼마 전에 출간된 윤송현의 『모든 것은 도서관에서 시작되었다―북유럽 도서관과 복지국가의 비밀』은 북유럽의 복지국가가 도서관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스웨덴, 핀란드도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걸 극복하는 사회운동을 도서관에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주민이라면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도록 접근성이 높은 곳에 도서관을 건립하였고 주민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학습하며 시민의식과 연대를 확산하였기에 성숙한 시민사회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도서관, 도서관의 질적인 발전, 도서관 문화를 바탕으로 더욱 성숙한 시민사회와 문화를 만들어가는 일에 함께하고 계신,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의 노고에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여기 2장은 경남대표도서관의 소식지 「도서관 가는 길」(통권 46호, 2022.7.5)의 칼럼, ‘사람과 자료의 관계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더 중요합니다.’를 줄인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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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공모전 심사평뿐만 아니라 ‘어린이도서관의 미래 방향성’에 대해 언급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저는 제 책장에 꽂혀 있는 『여연如然 김효정金孝貞 박사 화갑기념논문집』1997년, 중앙대 문과대학 문헌정보학과에 실려 있는 「어린이 도서관사서의 의식과 인식」도서관학보 제2집, 1973, 「어린이 환경과 도서관―어린이 도서관육성을 추구하며」도서관 vol.30. no.5, 국립중앙도서관, 1975, 「아동도서관운영과 Shera의 이론」중대논문집 제21집, 중앙대학교, 1977을 새롭게 읽어보았습니다.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라는데, 옛 글을 들쳐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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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문헌우주시대로 신속한 정보시대에 있으면서 우리나라 어린이는 국민학교까지도 도서관시설이 없거나 있어도 빈약하고 공공도서관에서도 그 봉사를 받을 수 없는 형편에 놓여 있어 조국근대화과정에서 문화국민으로서는 도서관봉사에 고아가 되고 있는 실정은 부인할 수 없다.(김효정, 앞의 책, 259쪽)


이것이 1970년대 초, 우리나라 어린이와 어린이 도서관 서비스의 실정이었습니다. 2000년대 이후 어린이도서관의 발전과 공공도서관 및 학교도서관 등의 어린이서비스의 발전을 생각하면 큰 변화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아직까지도 ‘도서관봉사에 고아’가 되고 있는 어린이는 없는가 하고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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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를 중심으로 하는 계통적인 학습보다는 어린이성장이나 발달에 맞는 교육을 시도하고, 습관이나 주입에 대한 어린이의 흥미를, 모방하는 재현이나 기계적 반복적 학습에 대한 창조적인 자기표현을, 단체훈련에 대한 사회적 적용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김효정, 앞의 책, 262쪽)


김효정 선생이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어린이도서관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도서관이 아니라, 어린이가 주인공이 되는 도서관이라는 생각으로 연결됩니다. 루소J.J.Rousseau의 사상에서 자극을 받고, 엘렌 케이Ellen Key의 『어린이 세기』Jahrhundert des Kindes, 1900의 영향을 받아, 192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보급되어 온 ‘어린이로부터’의 생각을 다시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효정 선생께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소파 방정환 선생의 ‘어린이’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파 선생은 1922년 ‘어린이의 날’ 선언, 1923년 어린이날을 기념하여 ‘어린이날의 취지’와 함께 ‘소년운동의 기초조건’, ‘어른들에게 쓰는 글’ ‘어린이에게 쓰는 글’을 발표하였는데, 이는 세이브 더 칠드런의 창시자인 에글렌타인 젭Eglantyne Jebb, 1876~1928 여사가 1923년에 만든 아동권리선언의 초안이 1924년 국제연맹에서 제네바선언으로 채택된 것보다 앞선 것이기도 합니다. 


마침 올해 순천기적의도서관은 2022년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이하여 어린이의 권리 보호와 지위 향상을 위한 다채로운 행사와 함께 ‘순천 어린이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그 선언문을 함께 읽어봅시다. 


1. 어린이들과 한 약속은 꼭 지켜주세요.

1.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우리의 마음을 들어주세요. 어른들과 달라도 들어주세요. 

1. 어린이를 혼자 두지 마시고 옆에 있어 주세요. 

1. 어린이도 이름이 따로 있어요. ‘야’라고 하지 마세요.

   (이하 생략)


시간을 내시어, 이 선언문, 꼭 읽어주세요. 


어린이도서관의 사서 선생님들과 함께 워크숍을 할 때, 저는 소파 선생의 ‘어른들에게 쓰는 글’1923의 한 대목을 놓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것은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치어다보아 주시오.” 여기서 ‘치어다본다’는 것은 ‘올려다본다’는 것입니다. 존중의 뜻을 담고 있는 말입니다. 이는 곧 “사람이 하늘이며, 만물이 곧 하늘이다”라는 인내천사상人乃天思想을 구체화한 것입니다. 어린이도서관 운동, 어린이도서관 서비스의 정신은 이런 사상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도서관에서 일하는 분들, 어린이도서관을 가꾸는 분들은 이 점을 꼭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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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기적의도서관에서 2009년부터 펼쳤던 ‘어깨동무 책동무’라는 사업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이 프로그램은 초등학교 저학년 읽기부진 어린이들을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대도시의 어린이들은 5-6세가 되면 글자를 익히고 그림책도 제법 읽고 학교에 입학하지만 소외 지역과 소외 계층의 어린이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제대로 된 ‘읽기’ 교육을 받지 못한 채, 학교에 입학해 초등학교 2-3학년이 되어도 읽기부진의 상태인 경우가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적정 연령 때에 읽기부진을 겪으면 이는 학습장애로 이어집니다. 또한 읽기부진의 상태에서는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뚜렷한 자존의 느낌을 갖기 어렵습니다. ‘어깨동무 책동무’는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이 ‘낙인효과’ 없이 친구와 함께 도서관에서 함께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읽기를 할 수 있도록 기획했던 프로그램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독서소외인’을 “시각 장애, 노령화 등의 신체적 장애 또는 경제적·사회적·지리적 제약 등으로 독서 문화에서 소외되어 있거나 독서 자료의 이용이 어려운 자를 말한다.”고 규정독서문화진흥법 제2조 3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규정의 ‘독서소외인’의 범위는 매우 협애한 것입니다. 스웨덴의 ‘읽기쉬운책재단’의 대표인 브로르 잉게마르 트론박케가 작성한 「읽기 쉬운 책을 위한 IFLA 지침서」에 따르면 ‘독서소외인’이란 지적장애인, 딕스렉시아, 자폐증, 언어습득 이전의 청각장애, 시각장애인, 실어증 환자, 고령자, 이주자, 미세 뇌기능장애, 주의력ㆍ운동ㆍ인지 장애뿐만 아니라 기능적 문맹자, 교육적 불이익을 받는 사람, 어린이 등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독서소외인’이란 신체적 장애의 범위를 넘어서는, 매우 폭이 넓은 개념인 것입니다. ‘책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 모든 사람들’이‘독서소외인’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린이를 존중하고,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 서비스를 생각한다는 것은 독서소외인 모두를 생각하고 존중하며, 이들 독서소외인을 생각하며 도서관서비스를 개발하고 실천한다는 말과 같은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이 부분은 안찬수, 「독서능력 향상과 읽기부진 퇴치」,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어깨동무 책동무 자료집』, 2011년, 여는 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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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에 공공도서관봉사와 교육제도의 발전으로 형태를 갖추게 된 어린이도서관은 공공도서관의 어린이부와 학교교육기관의 도서관으로 대별된다. 엄밀히 고찰하면 ①공공도서관의 어린이부 ②어린이교육기관의 도서관국민학교도서관, 유치원의 도서관 ③독립된 전문적인 어린이도서관 ④공공기관에 부설된 도서실 ⑤어린이문고corner로 세분된다.(김효정, 「어린이에 대한 도서관봉사」, 『도서관실무편람』, 서울 도서관협회, 1966; 김효정, 앞의 책 267쪽)


앞에서 어린이도서관은 어린이를 위한 문화기관이며 교육기관이고 봉사기관임을 살피었으며 그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이를 운영하는 데는 사람이 해야 하고 시설과 자료가 있어야 하며 예산이 충분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시설과 자료가 구비되었어도 인적 자원인 도서관인圖書館人이 없으면 제대로의 기능을 다할 수 없는 것이다.(김효정, 앞의 책, 272쪽)


이 두 단락을 인용한 이유는 ‘어린이도서관 사서司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2017년 제3회 순천 독서문화포럼 때이던가요? 하리카에 게이코 선생張替惠子, 도쿄어린이도서관東京子ども図書館 이사장이 도쿄어린이도서관에서 연수를 받고 있는 젊은 사서 두 분과 함께 참여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도쿄어린이도서관1974년 개관 설립자인 마츠오카 쿄코 선생松岡享子, 1935~2022, 올 1월에 작고하셨습니다.은 일본의 어린이도서관 서비스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소명을 안고 미국 유학까지 하였고, 미국 공공도서관에서 어린이서비스를 감당한 경력도 있었지만, 일본의 관료적 공공도서관 시스템 안에서는 ‘어린이도서관 사서’로서 계속 활동하기 어렵게 되자,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걸쳐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던, 이시이 모모코石井桃子 등의 ‘아동문고’児童文庫, じどうぶんこ와 결합하여 도쿄어린이도서관을 설립하게 되었다는 사연이 있습니다.


현 시점, 기적의도서관을 포함하여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의 어린이 서비스 발전에 가장 긴요한 과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 지난 20년 가까운 세월에 우리는 과연 ‘어린이도서관 사서’를 얼마나 키워내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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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어린이도서관 사서의 의식과 인식이 뚜렷해지면 올바른 어린이도서관봉사가 일어질 것이며, 바람직한 어린이도서관봉사가 이루어질 때 어린이 교육의 방향이 올바르게 형성되는 것이다.(김효정, 앞의 책 277쪽)


이 말씀을 오늘의 결론으로 삼고자 합니다. “바람직한 어린이도서관 사서의 의식과 인식이 뚜렷해지면!” 


우리가 오늘 어린이도서관의 발전을 생각하면서, 어린이와 도서관의 현재를 고찰하고 미래를 논의하고자 했을 때, 바로 이 문제, ‘어린이도서관 사서’의 현재와 미래를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포럼이 ‘바람직한 어린이도서관 사서의 의식과 인식’이 더욱 뚜렷해지는 데 큰 기여가 있기를 기대하면서,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 11월 9일부터 10일까지 열린 「제8회 순천 독서문화포럼: 어린이도서관의 미래를 묻다」에서 기조강연으로 발표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