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08

상품이 아닐 때 음식은 지속가능하다

저자소개

박병상
60+ 기후행동 상임공동대표. 도시와 생태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 헤매는 고집불통의 서생. 군 생활을 빼고는 태어나 한 번도 인천을 떠나지 않은 ‘환경운동을 하는 생물학자’다. 1976년 인하대학교에 입학해 학부와 석사와 박사 과정을 1988년까지 마치고, 가톨릭대학교에서 환경사회학 석사 과정에 입학했으나 졸업하지는 못했다. 여러 대학에서 ‘환경과 인간’이라는 주제의 강의를 생태적 시각으로 진지하게 혹 무성의하게 수행하다가 숱하게 잘렸다고 착각한다. 현재 인천 도시생태·환경 연구소 소장이다. 아내와 두 아들을 둔 가장의 책무를 망각하고 독자와 대중에게 ‘느림의 권리’를 함부로 주장하는 이중인격의 소유자로, 후손의 처지에서 생태계의 질서를 허무는 생명공학을 반대할 뿐 아니라, 생태계를 대규모로 파괴하는 개발과 지역의 소통을 거부하는 대형 중앙 집중 편의시설, 그리고 땅의 황폐화를 부르는 단작(mono culture)을 반대한다. 대신 제철 제고장 농작물 먹기, 생태계와 문화의 다양성 회복하기, 얼굴을 마주하는 대면사회의 회복을 주장하면서 언제나 힘에 부쳐 허덕거린다. 참여의 가치를 설파하고, 그를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시민운동이라는 점을 새삼 강조하면서, 독립운동에 이은 민주화운동이 있었기에 환경운동도 가능한 시절이 왔으니 이제 후손의 건강한 내일을 위한 행동에 나서자고 여러 신문과 잡지에 환경칼럼을 연재하며, 토론회와 공청회에서 개발에 반대하는 자로 악명을 쌓고 있다. 《파우스트의 선택》 《내일을 거세하는 생명공학》 《우리 동물 이야기》 《참여로 여는 생태공동체》 《녹색의 상상력》 《이것은 사라질 생명의 목록이 아니다》 등을 썼고, 다수의 공동 저서가 있다.


박병상 │ 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도시와 생태 문제를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 헤매는 고집불통의 서생. 군 생활을 빼고는 태어나 한 번도 인천을 떠나지 않은 ‘환경운동을 하는 생물학자’다. 1976년 인하대학교에 입학해 학부와 석사와 박사과정을 1988년까지 마치고, 가톨릭 대학교 환경사회학 석사과정에 입학했으나 졸업하지는 못했다. 그동안 여러 대학에서 ‘환경과 인간’이라는 주제의 강의를 생태적 시각으로 진지하게 혹은 무성의하게 수행하다가 숱하게 잘렸다고 착각하는 저자는 현재 인천 도시생태·환경 연구소 소장이다. 『탐욕의 울타리』 『파우스트의 선택』 『내일을 거세하는 생명 공학』 『우리 동물 이야기』 『참여로 여는 생태공동체』 『녹색의 상상력』 『이것은 사라질 생명의 목록이 아니다』 등을 썼고, 다수의 공동 저서가 있다. 


1970년대 말, 지금은 아파트 숲에 오랜 자리를 내준 인천 장수동의 너른 논밭은 농민들의 넉넉한 부지런함을 찾아갈 때마다 보여주곤 했다. 논이야 농번기를 제외하면 대체로 한적했지만 여러 채소가 자라는 크고 작은 밭은 옹기종기 모인 농부의 손길을 받아야 풍성할 수 있기에 카메라를 들고 간 우리에게 사람 소리가 나는 고즈넉한 전경을 언제나 허락해주었다.

사진 동아리의 졸업작품을 준비하려 찾아간 장수동은 마침 추수가 한창이었고 새참 시간이 되자 나이든 농부들은 어김없이 우리를 불러 앉혔다. 농주 한 주발 죽 들이키고 열무김치에 삶은 돼지고기 한 점 주섬주섬 먹기를 서너 번, 카메라를 치운 젊은이들은 그만 가을 햇살 아래 깜빡 잠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니 추수를 거의 마친 들녘에 작은 상이 차려 있었고, 거뜬히 비운 대학생들은 꾸벅 인사하고 서둘러 빠져나갔는데, 요즘 대학생들은 농부의 살가움을 만끽할 기회를 누릴 수 있을까?

어느 연말, 사업하는 친구 덕분에 고급식당을 찾았다. 부유해 보이는 가족이 많이 들어왔는데 초등학생 입학 전으로 보이는 아이의 음식 투정이 심했다. 달래는 할아버지는 어렸을 때 구경도 못 한 음식을 싫다며 고개를 돌리는 손주에 못내 서운해하면서도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는데, 그 모습을 곁눈질하다 불현듯 불안해졌다.

손주의 입에 넣으려는 음식은 수입 식재료를 사용한 고급 요리와 열대과일이었다. 그 진귀한 음식들, 누가 어떤 방식으로 재배하거나 사육했으며 어떻게 요리했을까? 수입하느라 우리는 얼마나 많은 돈을 써야 했을까? 우리나라는 식량의 4분의 3 이상을 수입한다. 쌀을 제외하면 95% 이상에 달한다.

아직까지 돈이 넉넉하다지만 인구가 넘치는 우리나라에 자급을 허용할 농토는 턱없이 부족하다. 온실가스 증가로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세계적으로 농작물의 생산량이 줄어드는 마당이고 그에 따라 식량 가격이 치솟기 시작했다. 거대한 기계와 독한 화학 농업으로 광활한 농토를 경작하는 농업은 생산량이 아무리 많아도 그저 상품일 뿐이다. 이웃과 나눌 음식으로 바뀌기 어렵다.

돈이 없으면 외국의 남아도는 농작물과 음식도 그림의 떡인데, 석유가 없으면 산업은 마비된다. 공업이 주도하는 우리 수출경제도 막을 내릴 텐데, 석유는 머지않아 고갈을 예고할 것인데 식량은 괜찮을까? 부족한 식량을 나누던 사람들이 신기루 같은 풍요로움에 정신을 빼앗긴 요즘, 아이들은 어려움을 전혀 모른다. 수입 식량은 언제까지 식탁을 풍요롭게 할까? 해마다 수십조 원에 달하는 음식 쓰레기를 버리는 우리는 다가올 위기를 감지하지 못하는데.



쌀이 남아돈다고? 그래도 우리나라는 쌀을 수입한다. 이익에 눈이 먼 자본주의는 논보다 집을 지어서 돈을 더 벌어야 한다고 속삭인다. 쌀이 남아도는 마당이라고 핑계를 대지만 우리는 쌀만 먹지 않는다. 나머지 반찬은 어쩌나? 수입하면 그만이라고? 농업이 세계화되었으니 그 방법이 더 이익이라지만 돈이 먼저가 아니다. 모든 생명체는 음식으로 생명을 잇는다. 농업경제학자 윤병선은 애가 탄다. 용어와 수식이 전문적이라 이해하기 다소 어려워도 『농업과 먹거리의 정치경제학』에서 농업마저 산업화로 이끄는 자본주의 체계를 소농으로 전환하는 대안을 반드시 모색해야 한다고 절규한다. 




일주일 21번의 끼니 중 우리는 밥을 얼마나 먹을까? 절반? 빵과 라면, 햄버거와 피자, 술로 대신하거나 이튿날 아예 건너뛰니 7번은 되려나? 그나마 양이 적다. ‘그린필드’라며 아이들이 고개 돌린다는 핑계로 올라오는 해산물과 고기반찬, 그리고 가공식품이 밥보다 훨씬 많은데, 허남혁은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라며 사람, 자연, 그리고 사회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먹는 음식이 무엇인지 살피자고 청한다. 자연에서 멀어진 음식일수록 몸과 사회와 생태계에 해롭다는 사실을 다양한 예를 들며 알기 쉽게 풀어간다.




햄버거나 피자 같은 패스트푸드는 동일한 회사 제품이라면 세계 어디서나 맛과 크기가 똑같다. 그리 표준화하려고 획일적으로 가공했다. 그 과정에 인체는 물론 생태계에 해를 주는 화학물질이 적지 않게 들어가고 농작물과 가축의 다양성은 위축되었다. 그뿐인가? 햄버거의 재료가 되는 가축을 키우고 도살해 포장하는 과장에서 노동자들은 혹사당하고 식당에서 규칙대로 요리하는 비정규 직원은 저임금에 허덕인다. 탐사보도 기자인 에릭 슐로서는 『패스트푸드의 제국』에서 산업화된 식품 세계에 횡행 되는 사회부정의, 생태부정의, 경제부정의의 적나라한 실상을 고발해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고, 저명한 식품운동가가 되었다.




가공이 복잡할수록 우리는 누가 어떤 상태의 재료를 어떻게 요리했는지 모르는 음식을 먹는다. 밥과 제도로 안전을 도모한다지만 위험한 것은 음식만이 아니다. 수많은 화학물질에 노출된 세상에서 안전기준치는 신뢰할 게 못 된다. 농작물을 직접 재배하면 문제를 없애겠지만, 어디 쉽나?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이가 생산한 농작물이나 축산물을 구입해 집에서 조리해 식구나 이웃과 나눈다면 비로소 안심할 수 있다. 탈이 나도 그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 바로 ‘로컬푸드’다.

로컬푸드는 생산자와 떨어진 거리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내가 키운 농작물과 축산물을 먹는 이가 누구인지 아는 농부라면 농약이나 호르몬을 아무렇게나 투입할 리 없다. 일손이 부족할 때 달려오는 소비자에게 농부는 건강한 농축산물을 제공한다. 그런 식재료의 가격이 다소 높더라도 소비자는 이해하고, 안전한 식재료로 요리해 가족과 이웃이 나누는 음식이 ‘슬로푸드’다. 『슬로푸드, 맛있는 혁명』의 저자 카를로 페트리니는 “얼굴이 있는 음식”을 이웃과 나누자며 세계를 돌아다닌다. 가장 온전한 음식이므로. 



대부분의 동물은 자연에서 바로 먹을거리를 찾는다. 인간의 조상도 마찬가지라서 자연스러울수록 음식은 온전하다. 산업적으로 대량 생산해 한꺼번에 가공하는 음식은 어디까지나 상품이다. 안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석유 위기와 지구온난화 시대에 식량 위기를 조장한다. 먹는 음식의 절반 이상을 가공식품과 외식에 의존하는 요즘, 슬로푸드는 식구와 이웃의 건강을 위한 배려다. 그렇다면 『소농은 혁명이다』 외치면서 전희식은 희망농촌을 꿈꾼다. 소농이 아니라면 다가올 식량 위기를 도저히 극복할 수 없다고 그는 확신한다.




어쩌면 우리는 쌀이 남아돈다고 착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경제원리에 따라 남아도는 쌀이 저렴해지는 건 양해할 사항이라 생각하지만 쌀은 식량 주권의 마지막 보루다. 쌀마저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면 우리는 순식간에 수출 국가에 종속되고, IMF 사태에서 일찍이 경험했듯, 주머니의 돈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면 처참한 희생을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석유가 지배하는 산업축산과 농업은 머지않아 한계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농업정치학자 원톄쥔溫鐵軍은 ‘삼농’을 강조한다.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산업화한 다국적기업의 농업이 아니라 농민과 농촌을 배제하지 않는 지역의 농업을 말한다. 바로 이웃을 배려하는 소농이다. 소농이 정착되길 희망한다면 로컬푸드와 로컬푸드로 즐겁게 나누는 슬로푸드가 일상화되어야 한다. 바로 멀지 않았던 조상이 살아오던 방식의 농업과 음식이다. 자연스럽고 지속가능한 예전의 모습을 회복하자는 대안인데 우리는 준비가 돼 있는가?

다채로운 생물의 서식처이며 홍수와 가뭄 같은 풍수해를 완충하는 논은 도시에 가까울수록 열섬화를 방지해 시민에게 쾌적함을 선사한다. 다정다감한 이웃과 만나며 가족의 건강을 돌볼 수 있는 텃밭이 회색도시에서 지친 시민에게 숨 쉴 공간을 제공한다면 자연스런 농업을 지향하는 소농은 다음 세대의 생명을 보장한다. 자본의 이익에 충성하는 상품보다 이웃과 나누는 음식으로 가족과 생태계의 건강을 되찾아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면, 인식 고양을 위해 앞에 소개한 5권의 책을 펼쳐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