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08

냉전체제의 부활인가? 동북아 평화의 길

저자소개

강성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 사회학(사회사, 법사회학, 정치사회학)을 전공했다. 한국과 동아시아의 사상 통제와 전향, 법과 폭력, 전쟁과 학살, 과거 청산, 점령과 군정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The Organization and Activities of the US Army Signal Corps Photo Unit”(2014), 「한국전쟁기 예비 검속의 법적 구조와 운용 및 결과」(2014), 「‘아카’ㅗㅗアカㅗㅗ.와 ‘빨갱이’의 탄생」(2013)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 『식민지 유산, 국가 형성, 한국 민주주의』(전 2권, 공저, 2012)가 있다.



강성현 │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
사회학(사회사, 법사회학, 정치사회학)을 전공했다. 한국과 동아시아의 사상 통제와 전향, 법과 폭력, 전쟁과 학살, 과거 청산, 점령과 군정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The Organization and Activities of the US Army Signal Corps Photo Unit”(2014), 「한국전쟁기 예비 검속의 법적 구조와 운용 및 결과」(2014), 「‘아카’アカ와 ‘빨갱이’의 탄생」(2013)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 『식민지 유산, 국가 형성, 한국 민주주의』(전 2권, 공저, 2012)가 있다. 


 


'냉전'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적을 삐라로 묻어라』의 저자 이임하는 이렇게 말했다. “냉전은 ‘공갈빵’과도 같다. 겉은 딱딱해서 잘 부서지지 않다가도 막상 깨물면 곧바로 금이 간다. 공갈빵 안은 더 기가 막히다. 둥그런 큰 빵 속에는 팥이나 크림은 하나도 없이 텅 비어 있다. 인류 역사가 지향해왔던 어떤 가치도 생산해내지 못한 채 속이 텅 비어 있다는 점에서 냉전은 공갈빵과 같다.” 기가 막힌 통찰력이다.

나는 어린 시절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칠해진 세계지도를 보며 냉전을 처음 접했다. ‘차가운 전쟁’冷戰이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지 못했다. 다만 지도가 보여주는 것처럼 세계의 중심에 미국과 소련이 있고, 미국의 자유 진영이 소련의 시뻘건 악의 무리와 대치하고 있지만, 언젠가 물리치고 승리할 것이라고 이해했다. 실제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악의 축 소련은 무너졌고, 냉전의 종언이 선언되었다. 이와 관련해 하나의 일화가 있다. 1991년 봄 고르바초프가 한소 정상회담으로 제주도를 방문했다. 제주도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제주 고’씨가 고향 방문한다고 우스갯소리를 꽤 진지하게 했다. 그해 말 고르바초프가 소련 해체를 선언했으니 고르바초프의 고향 방문은 결과적으로 제주도민에게 냉전의 ‘끝’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던 셈이다.

사실 제주도민에게 냉전은 생경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익숙하다. ‘제주4·3사건’ 때문이다. 주한미군정과 이를 이어받은 신생 이승만 정부가 제주도 전체를 빨갱이 섬으로 낙인 하면서 섬 주민들은 냉전의 탄생을 지독한 ‘열전’熱戰으로 겪었고, 수많은 주민이 학살당했다. 그 후 반세기 동안 소련과 북한의 지령을 받은 남로당이 제주도민과 폭동을 일으켰다는 ‘공산폭동론’이 제주도를 억눌러왔다.

저명한 냉전역사학자 존 루이스 개디스는 냉전을 ‘긴 평화’long peace로 정의한 바 있다. 미국과 소련 진영bloc 간에 ‘세력균형’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미국의 제1세계와 소련의 제2세계가 세계적으로 정면충돌하는 양상 없이 평화를 누려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탈식민 신생 독립국들의 경우 냉전의 탄생은 대량 폭력과 전쟁의 시대로 들어섰음을 의미했다. 제3세계 주민들에게, 한국인들에게, 제주 섬 주민들에게 냉전은 상상 속 차가운 전쟁이 아니라 정말로 뜨거운 전쟁이었다.

냉전의 이해와 체험을 유럽 중심의 ‘상상의 전쟁’으로 하는 것과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에서의 ‘실제 대량 폭력과 전쟁’으로 하는 것 사이에는 꽤 거리가 있다. ‘긴 평화’라는 언명 이면에서 말 그대로 오랫동안 고립된 채 소외되었던 제3세계의 냉전 인식과 체험의 목소리들은 어떻게 자신을 스스로 표출했을까?

아이러니하게 베를린장벽의 붕괴1989와 소련의 해체1991가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고 본다. ‘끝내 이기리라’를 실현했던 제1세계의 자신감은 ‘역사의 종언’, ‘탈냉전’ 선언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 후 펼쳐진 세계는 ‘탈냉전’처럼 보이지 않았다. 잠깐의 해빙 국면을 지나 전지구적 테러와 내전 양상이 물밑에서 떠오르더니 ‘신냉전’을 말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전 지구적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미·소, 미·중의 대결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데올로기적 적대와 대결이 아닐 뿐이다.



탈냉전의 랜드마크이자 상징인 베를린장벽과 소련의 붕괴가 냉전의 ‘끝’이 아니었던 거다. 권헌익의 『또 하나의 냉전』은 냉전이 하나의 양상과 단일한 것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듯이, 냉전을 끝내는 과정도 하나일 수 없다는 것을 논의한다. 냉전은 미·소와 그 동맹국의 정치, 군사, 외교의 차원에서 전개되었을 뿐 아니라 사회제도, 문화, 일상생활의 일부로 사람들의 친밀한 영역에서 체험되었기 때문에 한칼에 끝내지는 것이 아니다. 문화 냉전 또는 냉전 문화에 대한 사회사적 접근은 이를 잘 보여준다.

냉전을 주체적으로, 그리고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전환cultural turn과 함께 지역적 전환regional turn도 염두에 둬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유럽의 냉전에 대한 시각에서 아시아의 냉전, 다시 말해 냉전 아시아의 탄생과 그 끝에 관해 물을 필요가 있다. 

전쟁이 끝나면 평화가 온다고 생각하지만, 동아시아에서 ‘전후戰後체제’는 평화체제가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중심부 유럽의 평화와는 달리 주변부 동북아시아에서는 중국 내전과 한국전쟁이 계속되었고, 그 이후에도 전쟁도 평화도 아닌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하였다. 치열한 심리전과 문화 냉전뿐 아니라 중국·대만 양안兩岸 간 포격전이나 남북한 간 유격전, 납치, 테러가 지속하였다. 탈식민과 국가 형성, 전쟁이 중첩되는 동아시아적 이행기를 거쳐 형성된 것이 남한-북한 및 중국-대만이라는 두 쌍의 분단국가, 그리고 미국의 오키나와 신탁통치일본 본토와 오키나와의 분리를 중핵으로 하는 ‘동아시아 냉전·분단체제’다.

유럽 냉전이 정치·군사적으로 해체될 때 동아시아 냉전·분단체제도 그러했는가? 남북한만 놓고 보면, 한러수교1990, 한중수교1992, 그리고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훈풍이 불기도 해지만, 사이사이에 ‘북핵 위기’로 냉탕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한반도가 해빙 국면을 맞이했던 것은 분명하다. 이것이 과연 한반도 냉전·분단의 해체였을까? 아니면 70년대처럼 2차 화해에 불과했을까? 전자라면 2010년 ‘천안함 침몰사건’ 이후 현재의 상황은 신냉전체제로의 돌입이고, 후자라면 동북아에서 냉전의 ‘끝’이란 없었다. 

2016년은 계속되는 한반도 냉전사에서 이정표가 될 듯하다. 이례적으로 한 해에 두 차례 ‘북핵실험’이 있었고, 한반도 사드 배치가 결정되었을 뿐 아니라 며칠 전에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이 다수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 체결되었다. 냉전 박물관으로 들어갈 것 같았던 한·미·일 삼각동맹과 북·중·러 삼각동맹의 냉전적 대결과 반목이 본격적으로 부활하고 있다. 



한반도 및 동북아에서 탈냉전은 요원한 것인가? 어떻게 하면 냉전을 종식하고 평화체제를 정착시킬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김학재의 『판문점체제의 기원』은 매우 흥미로운 제안을 한다. 전쟁냉전의 기원이라는 문제의식에서 평화의 기원이라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제안한다. 저자에 따르면, 전쟁냉전의 기원에 대한 연구들은 전쟁의 결과들을 전쟁을 시작한 적들의 책임으로 귀속시켜 단죄하기 위한 ‘형법적 사고방식’을 깔고 있었다. 소련과 북한을 절대 악으로 만드는 측과 그 정반대에서 미제의 책임으로 돌리는 측 둘 다 형법적 사고방식에 매몰되어 ‘비난 게임’을 강화해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도에서는 한국전쟁이 두 ‘자유주의 평화기획’의 계보칸트적 보편 기획/홉스적 차별 기획의 갈등과 경합 속에서 전개되고 ‘정전’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 정전상태를 제대로 ‘종전’시키고 평화를 시작할 구상을 담지 못했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전투중지→휴전→정전이 평화로 가는 세 단계지만, 그 자체로 ‘평화상태’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기에 영구적인 반 전쟁으로서의 평화 구상이 있어야 한다고 논의하고 있다. 저자가 아직은 설익은 뒤르켕의 ‘사회적 연대로서의 평화’ 기획을 시급히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저자가 논의하는 대안적 평화 기획이 한반도 및 동북아의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사회적 연대로서의 평화라는 생각을 국가 간 관계내셔널-인터내셔널 스케일에서의 평화 기획으로 제한시키지 말고 지역적 스케일로컬-리저널 스케일에서 그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것은 어떨까? 특히 유럽의 주변인 동아시아, 그것도 분단의 경계에 위치한 지역에서 영구적인 반 전쟁으로서의 평화 구상과 실천은 가능할까? 동아시아 냉전·분단의 경계 지역인 한국의 서해 5도, 일본의 오키나와, 대만의 금문도에서 평화를 상상할 수는 없을까? 이와 관련해 최근 출간된 오키나와에 관한 책 두 권과 금문도에 관한 책이 주목된다. 



“경계는 교류와 이동을 막는 장벽이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사상이나 문화가 만나 질적인 전환을 이루는 접점”이다. 내셔널-인터내셔널 스케일에서 보면, 이 경계는 갈등과 충돌이 이루어지는 장소로만 주목받지만, 로컬-리저널 스케일에서는 교류와 흐름의 관문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정근식·김민환이 공동으로 편집한 『냉전의 섬 금문도의 재탄생』은 양안관계의 갈등과 화해의 최접점에 있었던 금문도라는 지역을 깊이 있게 다룬다. 이를 통해 본래 하나였던 생활권이 외부의 힘으로 냉전·분단되었다가 다시 내부의 힘에 의해 이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궁극적으로 하나의 생활권으로 수렴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금문도의 ‘냉전경관’을 한국의 서해 5도의 그것과 연결해서 다룬 것 등을 보면, 이 책은 중국·대만 양안관계의 평화적 관리를 최근 나날이 경색되어가는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되돌리기 위한 실마리로 모색하고 있다.



개번 매코맥과 노리마쯔 사또꼬가 공저한 『저항하는 섬, 오끼나와』와 가와미츠 신이치가 쓴 『오키나와에서 말한다』는 섬 주민들의 반전 평화 사상의 구상과 실천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보여준다. 오키나와는 ‘류큐 처분’으로 일본 영토로 편입되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천황제 유지를 위한 협상에 시간벌기용으로 일본군에 의해 ‘버려진 돌’이 되었다. 그냥 버린 것이 아니라 일본군은 주민들에게 ‘공생공사’를 강요했고, ‘강제적 집단사’로 몰아넣었다. 일본을 대신해 오키나와를 점령한 미국은 한국에서는 저항에 직면해 퇴출당하였던 신탁통치를 들고 왔다. 1951년 대일평화조약은 미국을 유일한 시정권자로 하는 신탁통치를 규정했고, 오키나와 섬 전체는 전쟁 때보다 더 기지화 되었다. 이에 대해 오키나와 주민들은 ‘섬 전체 투쟁’으로 대응했다. 이는 섬 전체의 기지화로 인한 피해자 됨의 인식과 함께 미국 신탁통치 하의 미군기지 섬에 사는 한 구조적으로 전쟁의 가해자에 서게 된다는 인식이 얽혀 들어가면서 더 강렬해졌다. 오키나와 섬의 미군 기지들이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의 후방 출격 기지가 되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의 반기지 운동은 미군 기지가 있는 아시아 지역의 주민들과 연대하는 운동으로 이어졌다. 한국에서는 평택 대추리 반기지운동과 제주 강정해군기지 반대의 연대로 연결되었다. 군사 안보상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로컬들의 리저널한 반전·반기지 평화 연대였다.



전쟁과 기지를 반대하는 섬 주민들의 운동은 단지 ‘반대’부정로 끝나지 않고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것이 『오키나와에서 말한다』에서 다루는 가와미츠의 ‘류큐공화사회헌법안’이다. ‘공화국’이 아니라 ‘공화사회’에 방점이 찍혀 있다. 국가와 영토 개념을 거부하고 ‘센터 영역’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공화 사회가 존립하는 상징적·지리적·공간적 범위로서 지리학상의 류큐제도에 포괄되는 섬들아마미, 오키나와, 미야코, 야에야마을 설정한다.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이 그리는 세계와 흡사한데, 일견 유토피아적 관념의 결과로 보이는 이 헌법안의 주장국가부정 및 절대 평화주의 사상은 오키나와 비무장의 전통과 지정학적 위치의 성찰이라는 현실적 토대 위에서 제출된 것이다.

이러한 사상적 시도가 한국에서 갖는 함의는 무엇일까? 장소, 주체, 방법으로서 오키나와가 발화하는 것과 한국에서 발화하는 것은 완전히 같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한국에서 국가를 부정하는 사상화는 어렵겠지만, 절대 평화를 사상화 하는 것, 다시 말해 오키나와라는 방법을 거쳐 한국에서, 더 나아가 동아시아에서 사상으로서 평화를 말하는 것의 내용은 무엇이 될까?

나는 한반도에서 ‘신냉전’이 도래한 것처럼 보였던 2010년으로 돌아가 생각해본다. ‘천안함 침몰사건’과 ‘연평 포격사건’ 같은 키워드는 모든 말의 의도와 맥락을 블랙홀처럼 잡아먹는다. 이 단어들은 ‘안보’라는 허울 속에서 극우적인 정치·군사적 시각, 그리고 중앙의 시각에 의해 압도적으로 전유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연평도 주민, 서해 5도 주민, 더 나아가 냉전·분단의 경계에 있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커져야 하며, 이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섬 주민들은 생계의 터전인 바다로의 접근을 제약받고 있으며, 삶을 위협받고 있다. 북한이 도발하고 한국이 ‘원점 타격’을 얘기했을 때, 그리고 주민의 일부를 피난민으로 만들어 섬 밖으로 내보내고 찜질방에 내버려 뒀을 때, 또한 남아있는 주민들을 (경비) 계엄으로 통제했을 때, 그들의 (지역) 생활권은 이른바 (중앙) 안보와 주권에 의해 크게 침식되었다.

이것은 비단 연평도나 NLL 상의 섬 주민들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동북아로 시야를 넓히기만 해도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여럿 보인다. 대만의 금문도와 중국의 하문 사이 8km는 가까운 거리만큼이나 쌍방 포격이 일상적이었다. 오키나와는?

지난날 미국의 냉전적 주도권으로 봉합했던 동아시아 각국 간의 경계 장소들이 갈등분쟁 지역으로 급변하고 있다. 이 갈등적 로컬-주변을 어떻게 하면 완충형 리저널-중심으로 바꿀 수 있을까?

하나의 실마리는 갈등적 로컬-주변에서 삶을 살아가는 지역민, 섬 주민들의 생활권이 강조되는 것이다. 그리고 경계의 생활권이 홀로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 동아시아 경계의 생활권 네트워크를 구축해 국민국가 단위로 상정되는 주권론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