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08

자본주의와 그 미래, 다섯 권의 책

저자소개

홍기빈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7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같은 대학 외교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국제 정치경제를 공부했으며, 석사학위 논문 <칼 폴라니의 정치경제학―19세기 금본위제를 중심으로>를 제출했다. 2009년 토론토 요크 대학 정치학과에서 조나단 닛 잔 교수의 지도 아래 공부하여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저서로는 《투자자 국가 직접소송제―FTA의 지구정치경제학》, 《소유는 춤춘다》 등이 있으며,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우리 시대의 정치 경제적 기원》,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를 비롯해 《다수 문명에 대한 사유 외》, 《자본의 본성에 관하여 외》, 《권력 자본론―정치와 경제의 이분법을 넘어서》, 《자본주의―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현재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온·오프라인의 여러 매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홍기빈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KPIA 연구위원장과 「뉴레프트리뷰」 한국어판 편집위원을 맡고 있고, 팟캐스트 「홍기빈의 이야기로 풀어보는 거대한 전환」을 진행하고 있다.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등의 책을 쓰고, 『E. K. 헌트의 경제사상사』 『칼 폴라니,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거대한 전환』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자본주의는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변모해왔다.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 및 비판 그리고 대안적인 방향 제시의 내용도 끊임없이 변모해왔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그 바람직한 출구를 모색하기 위해 읽어야 할 책의 목록도 결코 고정될 수는 없다. 이 주제에 관해서는 너무나 많은 명저와 고전이 있지만, 2016년이 끝나가는 지금의 시점에서 가장 도움이 될 만한 책으로 추려보고자 한다. 


먼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이해로는 데이비드 하비의 『자본의 17가지 모순』과 칼 폴라니의『거대한 전환』을 권하고자 한다. 전자는 자본주의의 가장 오랜 불구대천의 적이라 할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가장 업데이트된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할만한 저서이다. 저자인 하비는 마르크스주의의 거장이지만 또한 그에 국한되지 않는 폭넓은 시각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교조적이고 기계적인 마르크스주의의 설명이 아니라,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의심하기 시작한 이들에게 우리 삶의 문제들과 자본 축적의 논리가 어떻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더 좋은 점은 다분히 하릴없는 탁상공론으로 끝나기에 십상인 ‘이론적 비판’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대안을 마련할 것이냐는 관점을 계속 견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폴라니의 저서 『거대한 전환』은 이제 시장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과 비판으로서 고전의 위치를 차지한 명저이다. 하지만 출간된 지 70년이 넘은 이 책을 2016년에 다시 읽기를 권하는 이유는 단순히 이름값 때문이 아니다. 그가 이 책에서 제기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이 가장 첨예하게 현실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때가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과 화폐 즉 사회적 구매력은 과연 상품이 될 수 있는가? 시장 경제에서 형성되는 가격 체계는 과연 인간의 자유와 도덕은 물론이고 효율성과 희소성조차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가? 산업 문명은 자본 축적에 기초한 시장 자본주의와 과연 양립할 수 있는가? 인간의 개인적‧집단적 “좋은 삶”이 보장되는 사회와 산업 자본주의의 효율적 작동은 과연 무엇이 수단이며 무엇이 목적인가? 이는 물론 산업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태동한 19세기 초 이래 항상 존재했던 문제들이며, 이 책이 출간되었던 2차 대전의 시점에서도 그러했다. 하지만 지독한 계급투쟁, 사회혁명, 세계 대전 등의 대사건이 인간 세상을 뒤집어 놓았던 것이 당시였는지라 이러한 질문들은 그 사건들 배후에 대한 철학적 성찰의 형태로만 제기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 그나마 비정규 일자리에서마저 걸핏하면 잘리고 있는 사람들, 지구적 환경 재앙으로 위기에 처한 생명 영역 전체, 갈수록 정글이 되어가면서 해체 일로에 들어선 세계 각국의 ‘사회’가 모두 이러한 질문들을 절박한 현실의 문제로 만들고 있다. 이 저서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시장과 자본주의의 위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시각의 범위와 깊이에 있어서 가히 필적할만한 저서가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마르크스주의가 영향력을 발휘하던 20세기 초라면 자본주의의 문제로 주로 이야기되는 핵심어가 ‘전쟁’과 ‘착취’였을 것이다. 대은행가 집안의 부르주아 도련님 지외르지 루카치가 러시아 혁명의 소식을 듣고서 처음으로 내뱉었던 말이 “인류가 전쟁과 자본주의에서 벗어날 길이 드디어 열렸다!”였다고 하니까. 하지만 세월은 흘렀고, 오늘날 자본주의를 둘러싸고 제기되고 있는 쟁점과 논쟁들의 핵심어는 사뭇 각도가 달라지기도 했다. 크게 세 가지 주제를 생각해 보도록 하자. 첫 번째는 지금 진행 중인 이른바 4차 산업혁명과의 관계 속에서 과연 자본주의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논하는 책으로, 국내에는 『탐욕의 종말』의 저자로 알려진 영국의 저널리스트 폴 메이슨Paul Mason이 저술한 『Postcapitalism: A Guide to Our Future』이다. 번역되지도 않은 원서를 내놓는 이유는 이 책이 워낙 유명하여 국내에서 근래에 출간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며, 만일 그렇지 않을 경우엔 누군가가 어서 번역 출간을 추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저자는 트로츠키주의와 마르크스주의에 우호적인 영국의 유명 좌파 저널리스트로서, 최근 더욱 발전의 가속도를 내며 그야말로 ‘특이점’을 향해 치달리고 있는 디지털 혁명의 와중에서 자본주의의 종말과 더 평등한 사회의 도래를 내다보고 있다. 이 과감한 추론과 주장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책은 곳곳에서 논리의 비약이 나타나고 객관적인 입증이 실종되어 있는 부분도 적지 않다. 하지만 지금 이 주제에 관해 누가 그런 시도를 하고 있는가? 칼 마르크스도 150년 전에 『강요』에서 자동화의 진전으로 노동가치론이 소멸한 사회의 생산과 소비에 대해 대담하고 상상력 넘치는 사변을 전개한 바 있다. 기존의 물질적 경제법칙이 전혀 통용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가 태동하고 있는 지금, 그 누가 확실한 논리와 경험적 증거로 예측다운 예측을 내놓고 있단 말인가? 

메이슨의 저서가 어떤 결함이 있는지와 무관하게, 그가 던지고 있는 질문들과 그의 시선이 닿고 있는 문제들이 무엇인지 아는 것 자체가 지금 자본주의 진화의 최전선이 어디인가를 알아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와 (불)평등의 문제는 워낙 고전적인 주제이며, 2016년 현재 지구촌 어디라 할 것이 없이 가장 뜨거운 문제이다. 특히 최근 미국 자본주의의 불평등에 관해서는 조셉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나 로버트 라이히의 『자본주의를 구하라』 등이 있지만, 나는 오히려 케케묵은 고전이라 할 R. H. 토니의 『평등』을 권하고 싶다. 기독교 사회주의자의 깊고 정직한 목소리로 어째서 평등이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며 자본주의와 충돌할 수밖에 없는가를 절절히 이야기하는 고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21세기에 새로이 제기된 생태적 관점에서의 자본주의 비판 및 대안적 방향 제시와 관련하여 세르주 라투쉬의 『탈성장사회』를 권하고 싶다. 생태적 관점은 인간과 자연의 균형과 공존이라는 차원을 넘어, ‘자치와 자율’을 통해 인간이 스스로의 삶을 계획하고 만들어 가는 ‘총체적인 산업 문명 재편 프로젝트’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 책의 주장과 관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으며, 그것들이 과연 당장 실현가능한지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 인류 문명의 미래로서 유일한 선택지이며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확신만큼은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


서두에 말했듯이 자본주의는 세월이 흐르면서 끝없이 변모해왔고, 이를 포착하고 극복하기 위한 지적인 노력도 긴 여정을 거쳐왔다. 냉전 시기에는 자본주의라는 명사를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불온사상을 가진 자로 몰리기도 했으며, 또 반대로 90년대 이후에는 전 세계의 보수파들과 자본 세력이 자본주의의 영구적 승리를 자축하는 승승장구의 팡파레가 울려 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무지몽매의 안개와 비합리적 거품이 모두 걷혔고, 2010년대 우리들 눈앞에 보이는 자본주의와 그 미래의 모습은 장밋빛도 아니요, 그렇다고 사멸해가는 단말마의 모습도 아니다. 이 중요한 주제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모든 신화와 편견을 내려놓고 차분히 그 모습을 응시하는 것이다. 위에 소개한 다섯 권의 책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히 격렬하고 뜨거운 주장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읽어보면 바로 그러한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 것으로 확신한다. 성경 말씀을 약간 바꾸어 표현하자면, “입에는 불같이 뜨겁지만, 뱃속에서는 얼음처럼 차갑게 느껴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