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30

금서기행

저자소개

저자 · 김유태
기자 및 시인. 매일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2023년 7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연재 기획 ‘금서기행, 나쁜 책’으로 네이버, 다음 등 포털에서 6개월간 1000만 명의 독자를 만났다. 현재 문학·출판·영화 담당 기자로 일하며 ‘영화와 소설 사이’ ‘책에 대한 책’ ‘시가 있는 월요일’ 등을 연재하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 기획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했고,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을 다니다 중퇴했다. 문예지 『현대시』로 등단해 문단에 나왔으며 시집 『그 일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를 출간했다.

들어가며


안전한 책들의 칵테일 파티


(…)


3

흡족할 만한 글을 손아귀에 넣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나는 기사의 생산자에서 한 권 책의 독자로 돌아가기를 희망하였고, 그래서 주말마다 나를 달아오르게 만드는 도서관의 책장을 더듬었다. 그러다 펼친 책이 옌롄커의 『사서四書』였다. 이 소설은 강제수용소에 갇힌 지식인들의 비참을 몽환적인 설정으로 다루면서 문화대혁명 시기를 비판하는 책이다.


황허 강변 강제수용소 99구에 수용된 지식인들이 갇힌 장소는 감옥이나 형장이 아니라 노동 교화를 위한 농장이다. 옌롄커는 농장에 갇힌 지식인들에게 일반적인 이름을 붙여주는 대신 ‘작가, 학자, 종교, 음악, 실험’이라고만 명명한다. 『사서』를 이끄는 중심인물은 화자로 등장하는 ‘작가’다. ‘작가’는 국가 제일의 대문호라는 칭호를 받았던 자로 혁명기 이전 그의 말 한마디, 글 한 줄의 영향력은 컸다. 하지만 불온한 혁명이 일어나면서 ‘작가’가 속한 예술인 단체는 “사상 교화가 필요한 단 한 명의 반동분자를 선출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한데 모여 사흘간 반동분자 1인을 선출하는 회의를 열지만 실패한다. 아무도 희생자를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회의 끝에 한계에 다다른 문인들은 ‘작가’에게 단독 결정을 요청했다. “당신만이 한 사람을 반동분자로 만들 자격이 있다”는 설득이었다. 그러나 ‘작가’는 양심상 임의로 희생자의 이름을 댈 수 없었다. 결국 이들은 익명 투표를 진행하는데 개표 결과 투표용지에 가장 많은 이름이 적힌 사람은 바로 ‘작가’였다.


강제수용소 99구를 통치하는 절대자는 ‘작가’에게 파란색 잉크 한 병, 펜과 편지지를 지급하면서 “불충하게 행동하는 수용자들의 죄상을 글로 써서 제출하라”는 은밀한 지시를 내린다. ‘작가’는 오직 살아남기 위해 옆자리의 지식인을 고발하는 밀고서 『죄인록』을 집필한다. 하지만 절대자의 지시를 수용한 ‘작가’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작가’는 『죄인록』을 쓰면서 여분의 잉크와 종이로 자신이 쓰고자 했던 최후의 작품을 은밀히 남기려 한다. 국가 제일의 대문호에서 수용소에 갇힌 초라한 밀고자로 전락해 목숨을 유지하려 삿된 글을 써야 하는 비운의 주인공 ‘작가’가 하나의 펜과 몇 페이지의 종이로 자신을 억압하는 세계를 겨냥한 반역을 시도한 것이다. ‘작가’는 『죄인록』을 절대자에게 바치면서 동시에 자신의 내밀한 고백록인 『옛길』을 집필한다. 이러한 사실이 발각되면 ‘작가’는 처형을 당하므로 『옛길』은 말하자면 작중 금서다. 그런데 잘 알려진 대로 『사서』를 쓴 옌롄커는 중국 공산당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자국에서 이 책의 출판 금지 조치를 당했으며 그의 다른 작품들도 대부분 출판, 홍보, 유통이 금지되는 수모를 겪었다. 소설 속에서 『옛길』이 금서인데, 『사서』를 집필한 현실의 저자 옌롄커가 바로 이 책 때문에 금서 작가로 낙인찍혔다는 사실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상징적이다. 옌롄커는 중국 정부의 검열과 탄압 때문에 금서 작가로 유명해졌고 오늘에 이르러 바로 그 이유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곤 한다. 나는 한국에 출간된 옌롄커의 모든 작품을 읽었는데 그의 책은 지도에도 없는 감옥에 독자를 가둬버린다.


한 명의 독자로서의 나와 이 소설을 쓴 작가 옌롄커의 공명은 그가 쓴 책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분명한 사실로부터 온다. 금서의 작가와 금서의 독자는 서로 다른 하늘 아래 살아가지만 서로 같은 태양을 보고야 마는 것이다.


위험한 책에는 금서라는 딱지가 붙고 금서 중에서도 정말 위대한 책은 독자의 내면에 끊임없이 싸움을 걸어온다. 독서의 끝자락에서 어지럼증을 일으키는 책만이 불멸의 미래를 약속받는다. 옌롄커의 대다수 책이 그러한 것처럼 금서는 이중적인 드라마다. 하나는 책 내부에서 벌어지는 첨예한 드라마이고, 다른 하나는 이 작품이 독자를 만나기까지 치렀을 과정을 상상할 때 벌어지는 드라마다. 두 세계를 동시에 확인하는 여정은 적어도 정신적으로는 안전하지 못한 행위다. 그러나 금서로 지정되어 손가락질당했거나 논란 끝에 사멸될 위험까지 겪었던 벼랑 끝 책들은 오히려 그러한 역사성 때문에 더 큰 가치를 획득한다. 이때 우리가 마주하는 진실 역시 무섭도록 단순하다. 안전하지 못했던 책들이야말로 재생再生의 가능성을 확보하며 그것은 인간이 책을 사랑하기 시작한 이후의 역사에서 한순간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 말이다. 정권이 됐든 종교 지도자가 됐든 누군가가 독서를 금지한 책은 혼돈의 세월이 지나면 지하의 골방에서 지상의 광장으로 걸어 나와 우리 손에 쥐어졌다. 동서양 분서焚書의 긴 역사, 나치의 책 화형식, 공산주의 독재 정권의 검열은 굳이 이 자리에서 언급하지 않더라도 모두가 아는 사실이니 말을 줄인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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