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30

책 읽는 나라 프랑스가 보여 준 발상의 전환

저자소개

저자 · 쓰지 유미
번역자이자 논픽션작가. 도쿄교육대학교 이학부를 졸업한 생물물리학 연구자였으나, 대학원 수료 후 파리에서 유학하면서 언어에 관심이 생겼다. 이를 계기로 독서교육, 도서관, 번역 등 책과 관련된 주제로 흥미로운 책들을 썼다. 대표적으로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번역과 번역가의 역사를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엮은 『번역사 산책』(1993), 일본과 파리의 도서관을 넘나들며 도서관을 이용한 경험을 공유한 『도서관에서 놀자』(1999) 등이 있다. 1996년 『세계의 번역가들』로 제44회 일본 에세이스트 클럽상과 제33회 일본 번역출판문화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도서관에서 다양한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역자 · 김단비
중앙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부산대학교 대학원 일어일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며 일본의 다양한 문학작품과 문화 에세이를 한국에 소개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도쿄의 부엌』 『그 남자, 그 여자의 부엌』 『오로지 먹는 생각』 『파노라마섬 기담/인간 의자』 『달의 얼굴』 『그럼에도 일본인은 원전을 선택했다』 『읽기로서의 번역』 『책이라는 선물』 등이 있다.

추천사


발상의 전환으로 이룬 프랑스의 독서 열기


실비 제르맹의 『마그누스』가 우리나라에 번역된 것은 2015년의 일입니다. 『마그누스』는 2005년 ‘고등학생들이 선정하는 공쿠르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최고 권위를 지닌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고등학생들이 선정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치는 것일까? 이 책, 『아이들은 어떻게 베스트셀러를 만들었을까』는 그 궁금증을 풀어 주고 있습니다.


저자인 쓰지 유미 씨가 어떤 분인지 먼저 살펴봅니다. 쓰지 씨의 이력이 흥미롭습니다. 쓰지 씨는 본래 생물물리학 연구자였으나 대학원을 수료한 뒤, 20대 후반에 파리에서 유학하면서 프랑스어를 깊이 공부한 후 번역가이자 작가로서 활동한 분입니다. 그의 번역 이력을 보면 1974년에 피에르 사무엘의 『이콜로지: 살아남기 위한 생태학』을 비롯해 생태학에 대한 다양한 책을 일본어로 번역했습니다. 또한 1996년 『세계의 번역가들』이라는 책으로 제44회 일본 에세이스트 클럽상과 제33회 일본 번역출판문화상 특별상을 수상했습니다.


쓰지 씨가 펴낸 책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이 『도서관에서 놀자』입니다. 어떤 계기로 썼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이 책의 맺음말에서 그 핵심적인 계기가 ‘프랑스의 언어 교육’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이용자의 눈으로 프랑스의 도서관 서비스를 소개한 책입니다. 『아이들은 어떻게 베스트셀러를 만들었을까』도 『도서관에서 놀자』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바탕이 된 원고는 계간지 『도서관 학교』에 실었던 「공쿠르 데 리세앙: 고등학생이 심사위원이 된 문학상 1, 지방도시 렌느가 즐기는 독서축제」인데, 쓰지 씨는 책으로 묶으면서 처음부터 다시 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무얼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쓰지 씨의 문장이 마치 르포 작가의 문장처럼 생생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서는 취재력이 필수입니다. 취재력이란, 글을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발로 쓰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기에 이 책은 계속 사람과의 만남을 전하고 있습니다.


쓰지 씨는 발품을 팔아 관계자들을 인터뷰하여 사실을 확인하고 기술함으로써, 책상머리에 앉아 자료를 정리하고 쓴 글과는 확연한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이런 ‘만남’ 가운데 가장 중요한 만남은 고등학생 공쿠르상의 명물 학교가 된 가스통 바슐라르 전기기술 직업고등학교의 모로코 출신 아미두와의 만남일 것입니다. 가스통 바슐라르 전기기술 직업고등학교의 학생 대부분은 아랍계와 흑인이고, 학생들은 졸업하면 철도나 공공시설, 공장 등에서 전기 기술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됩니다. 이 학교 학생들이 뽑은 ‘학급 3편’은 『내 나쁜 생각』, 『낭떠러지』, 『테러』. 그런데 아미두는 『마그누스』를 밀고 있었습니다. 이 해에 결국 실비 제르맹의 『마그누스』가 ‘고등학생 공쿠르상’을 받게 되는데, 이 이야기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일 듯싶습니다. 


쓰지 씨가 프랑스의 독서문화 현장을 조사하고 보여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이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며 던지게 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일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그것은 ‘발상의 전환’입니다. 쓰지 씨는 “독서 교육은 프랑스에서 끊임없이 논의가 이루어져 온 주제다. 아이들 개개인이 독립적인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 독서는 필수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라고 말합니다. 고등학생이 주는 문학상과 아이들이 뽑는 문학상의 핵심은 ‘위로부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그 방향을 바꾸어 독서를 한층 더 능동적인 행위로 바꿀 수 있음을 전하고자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등학생 공쿠르상이 여느 독서 교육과 다른 점은 발상의 전환이다. 보통은 학생들에게 양서 또는 뛰어난 책이라고 인정받는 책을 읽도록 권장한다. 하지만 고등학생 공쿠르상의 경우 학생들은 심사위원 입장에서 작품을 읽고 평가한다. 평가 기준을 정하는 것도 학생들 자신이다. 고등학생이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한 작품의 운명이 뒤바뀐다. 필연적으로 독서는 한층 능동적이며 책임이 따르는 행위가 된다.(43쪽)


어린이와 청소년 들이 주체적으로 스스로 책을 골라 읽고 토론하며 독립적인 시민으로 성장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런 물음은 우리나라에서도 교사와 사서, 부모와 양육자, 출판인과 서점인, 책과 문화 관련 시민단체 들이 끊임없이 고민해 온 주제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어떻게 베스트셀러를 만들었을까』는 ‘고등학생 공쿠르상’을 비롯해 프랑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례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발상을 전환하자. 위로부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학생들이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한층 능동적으로 책과 만날 수 있도록 하자.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이 소개하는 정도로 성공적이지는 못했습니다.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다시금 ‘발상의 전환’이 일어나서 새로운 시도가 생겨나고, 우리의 독서문화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2024년 4월

안찬수(책읽는사회문화재단 상임이사)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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