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30

차별과 위험으로 박음질된 일터의 옷들

저자소개

저자 · 경향신문 작업복 기획팀
취재기자 3명, 사진기자 2명, 데이터저널리즘팀 기자 2명, 영상 PD 2명으로 구성된 경향신문 기획팀. ‘당신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하시나요’(2023)를 만들었다. 옷 한 벌을 함께 짓는 마음으로 작업복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냈다. 모두가 안전한 옷, 몸에 맞는 옷, 일에 도움이 되는 옷을 입고 일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작업복 기획팀 구성원 글: 김한솔‧김정화‧박하얀 사진: 성동훈‧권도현 뉴콘텐츠(영상): 최유진‧모진수 데이터저널리즘(인터랙티브 콘텐츠): 박채움‧이수민

1부

오물을 뒤집어쓰는 옷


“맨홀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때?”


지하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옷을 들여다보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온 건 작업복 기획팀의 회의가 한창 진행되던 무렵이었다. 우리는 본격적인 취재를 시작하기 전부터 어떤 직업군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함께 논의했다. 미나리를 재배하는 농사꾼의 작업복은 어떨까. 석탄발전소에서 일하는 사람은 또 어떨까. 반대로 IT 직군 개발자처럼 복장 규정이 아예 없는 곳은? 세상 모든 일터가 다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때쯤 맨홀이라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우리가 매일같이 보고 그 위를 걸어가지만, 존재조차 잘 인식하지 못하는 구멍. 그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옷은 어떨까?


맨홀은 땅속에 묻은 수도관이나 하수관, 배선 따위를 검사하거나 수리·청소하기 위해 사람이 드나들 수 있게 만든 구멍이다. 지면에서 땅 아래로 바로 이어지는 이 작은 구멍을 통해 우리는 물이 잘 흘러가는지, 통신 장비가 망가진 건 아닌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서울 시내만 해도 수십만 개의 맨홀이 있는데, 이 중 하나만이라도 작업자를 따라 직접 들어가보면 좋지 않을까. 이게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지 깨닫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맨홀이라고 다 같지 않다. 맨홀 아래 상·하수도관, 도시가스관, 통신관 등 설치되어 있는 것이 전부 다르고, 따라서 관리 주체도 다르다. 하수도의 경우 지자체에서 직접 관리하고 있지만, 최근엔 수리나 정비가 필요할 때마다 용역 업체와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바뀌는 추세다. 밀폐 작업 때 발생하는 안전사고나 도로 한복판에서 작업할 때 벌어지는 교통사고 등 각종 위험 때문이다. 통신선이나 난방선이 흐르는 맨홀은 그 아래로 들어가 사진과 영상을 촬영할 만한 공간조차 확보하기 어려웠다.


고민 끝에 하수처리장으로 범위를 넓혀보기로 했다. 맨홀 아래 하수도관을 따라 흐르는 물은 어디로 흘러갈까. 물은 어떤 작업을 거쳐 방류될까. 거기서 오수를 직접 다뤄야 하는 작업자들은 무슨 옷을 입고 일할까.


서울을 비롯해 수도권 곳곳의 하수처리장에 연락했다. 하지만 대부분 취재 요청을 거절했다. ‘작업 환경이 좋지 않다 보니, 언론에 그 모습이 드러나는 게 꺼려진다’는 게 이유였다.


경기 하남시에 있는 유니온파크는 사진 촬영을 허락해준 유일한 시설이었다.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포함해 총 세 번을 다녀왔다. 하수처리장에 처음 가던 날, 나는 여벌의 옷을 챙겨 갔다. 전화로 먼저 인터뷰했던 작업자 이승훈씨가 “옷에 냄새가 다 밴다. 정말 괜찮겠냐”며 몇 번이나 물어봤기 때문이다.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그를 따라 하수처리장에 내려갈 때도 그는 계속 내가 악취 때문에 고생할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정작 본인은 덤덤했다. 작업 과정을 설명하는 와중에도 목장갑 하나만 끼고 아무렇지 않게 오물을 만졌다. 고작 몇 시간 둘러보기만 하는 주제에, 나 혼자 유난을 떨어댄 것 같아 머쓱해졌다.


하수처리장의 구조는 예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웠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크기의 파이프 사이사이를 가로질러 가는가 하면, 쇠판으로 된 사다리식 계단을 밟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기계를 점검해야 한다. 머릿속으로 그렸던 하수처리장은 수조 정도였는데, 실제로 본 공간은 거대한 기계실에 가까웠다.


물이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 소리, 기계가 돌아가는 소음이 뒤엉켜 상대방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인터뷰를 제대로 하기 어려울 것 같아 걱정하던 와중에 한 공간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하수처리장 안에서도 가장 낮고 깊은 지하에 자그마한 사무실이 있었다. 하수처리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니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물론 제대로 된 환기 시설이 없고, 소음도 크게 차단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작업자들에게는 소중한 휴게 공간이다.


문과 벽으로 나름 분리되어 있는데도 냄새가 너무 심해 1급 방진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나를 보고 다른 작업자가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인터뷰를 하느라 1시간이 넘어가자 머리가 띵하게 아파왔다. 눈을 뻑뻑하고, 입은 바짝 말라갔다.


이런 곳에서 도대체 어떻게 매일 일할 수 있을까. 왜 여기서 계속 일하는 걸까. 이런 질문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이승훈씨의 답은 간단했다. ‘좋아하는 일’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사람들이 쓴 더러운 물을 깨끗이 만들어 다시 강으로 돌려보내는 일, 아무도 알아보지 않지만 사람들의 생활과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시설이, 환경이 안 좋다고 자꾸 가리고 숨기면 더 나빠지기만 한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이 일이 얼마나 보람차고 의미 있는 일인지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뭐라도 바뀐다.”


작업복 기획 시리즈의 첫 시작을 연 하수처리 노동자편은 이렇게 아무도 모르는 지하의 이야기를 지상으로 퍼 올린다는 마음으로 썼다.



지하 세계의 노동자


경기 하남시에 있는 환경기초시설 유니온파크의 지하 하수처리장. 5월의 푸릇푸릇한 녹지대 아래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자, 지하 4층에선 마치 다른 세상처럼 후텁지근하고 눅눅한 공기가 훅 끼쳤다.


숨을 한번 들이마시자 너무나 익숙하지만 결코 적응하기 어려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온몸이 찌르르 떨릴 정도의 암모니아 냄새다. 나도 모르게 헙, 하고 입을 다물자 하수처리 작업자 이승훈씨가 옅게 웃었다. “오늘은 그래도 약한 편이에요. 원래 오수 찌꺼기 처리 작업 때 냄새가 정말 많이 나는데, 마침 그 기계가 고장 나서…… 평소엔 이 냄새의 몇 배인데요, 뭘.”


땅속 25미터, 우리가 쓰고 버린 물을 처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휘황한 복합 쇼핑시설 스타필드와 신세계백화점에서 딱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갈 수 있는 하남 유니온파크는 지상에 전망대와 물놀이장, 풋살장이 꾸며져 있어 지역 주민들에게 인기가 많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어느 누구도 그 아래에 노동자가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이곳은 시민들이 매일 화장실에서, 목욕탕에서, 식당에서 쓰고 버린 물을 한강으로 방류하기 전 정화하는 시설이다. 이승훈씨의 말마따나 “똥물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처럼 더럽고 어렵고 위험하지만, 이들은 수백만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분투한다. 


이날 이승훈씨가 맡은 작업은 수조 청소였다. 폴리에스터 작업복 셔츠와 바지를 입은 그는 그 위에 부직포 재질의 방진복을 껴입고, 마지막으로 헬멧을 쓴 뒤 가슴장화어깨장화까지 신었다. 어촌에서 갯벌 체험을 할 때 볼 수 있는 복장이었다. 기다란 장대가 달린 청소용 솔을 들고 철제 계단을 밟아 수조로 내려가자, 물은 그의 허리 아래에서 찰랑거렸다.


오물·악취와 싸우며


빛이 들지 않는 건 물론이고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 이곳에서 이승훈씨를 비롯한 노동자들은 악취, 더위, 습기와 싸운다. 작업을 시작한 지 10분 만에 휴대용 온·습도계에 ‘30도’, ‘84퍼센트’라는 숫자가 찍혔다. 여름철 장마 기간 평균 습도와 비슷하다. 거기다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옷까지 껴입으니 갑갑함은 배가 된다. 마치 물속에 있는 것처럼 눅진한 공기 탓에 방진 마스크를 쓴 그는 연신 뜨거운 숨을 몰아쉬었다. 안경엔 김이 서려 미끈거렸다.


“현장이 지하여서 굉장히 습하고 답답해요. 그러니까 안전모나 보안경은 지급돼도 안 쓰는 경우가 많죠. 땀이 너무 많이 나니까요. 한 번만 작업해도 땀이 옷이랑 안전모에 달라붙어서 계속 덥고, 축축하고, 냄새가 빠지질 않아요.”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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