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대책의 틈을 채울 7가지 새로운 모색
서문
인구 정책 패러다임을 바꾼 책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출간된 뒤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코로나19,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등 전 세계를 위협하는 많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다사다난했던 지난 5년간 변하지 않은, 아니 악화하고 있는 현상이 있습니다. 바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초저출산 현상입니다.
2018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자녀 수은 0.98이었습니다. 2023년에는 0.72로 더 낮아졌습니다. 비록 합계출산율은 떨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물론 사회 여러 부문에서 인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 책이 초저출산 현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맬서스와 다윈의 대화에서
찾은 실마리
‘근대 인구학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맬서스와 진화론을 집대성한 다윈이 만일 우리나라의 초저출산 현상에 대해 대화한다면?’ 하는 착상에서 이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탐구해본 것이 7장 ‘맬서스와 다윈의 상상대담: 한국의 초저출산 원인과 해법은?’입니다.
핵심 내용은 명료합니다. 우리나라는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는 동안 서울과 수도권으로 자원이 집중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구, 특히 결혼과 출산을 앞둔 청년층이 양질의 교육과 일자리 등의 기회를 찾아 서울로 몰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자원이 집중되어도 인구 밀도가 높아지면 경쟁을 피할 수 없지요. 물론 어느 정도의 경쟁은 혁신을 낳는 원동력이 됩니다. 하지만 밀도가 너무 높아 감내할 수 없는 수준으로 경쟁적인 사회가 되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생존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겠지요.
살아남기 위해 ‘스펙’을 쌓아야 하고, 높아진 스펙은 삶의 만족도 기준을 높입니다. 4장에서 심리학자인 허지원 교수가 설명한 것처럼 만족스러운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준비 기간이 점점 더 길어집니다. ‘완벽한 부모’의 기준이 더 높아지면 결혼과 출산은 남의 일이 되어버리죠. 보육 환경이 아무리 좋아져도,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위한 수많은 제도가 생겨도, 집값이 떨어져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에 취업해도, 부부가 가사노동과 육아의 책임을 동등하게 나눈다 해도 소용없습니다. 서울과 수도권의 높은 인구 밀도와 그로 인한 과도한 경쟁이 해소되지 않으면 청년들이 결혼하거나 자녀를 낳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 대화의 끝에 맬서스와 다윈은 우리나라 정부와 사회에 정책적인 제안도 덧붙였습니다. 정책이 효과를 내는 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울과 수도권 편중을 완화해야 비로소 초저출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요.
개념 논의를 넘어
경험적인 학술 연구로 발전
이 책을 통해 최초로 우리나라 초저출산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높은 인구 밀도를 제시한 뒤 저와 진화심리학자 장대익 교수는 인구 정책에 관해 발언하는 자리가 있을 때마다 주장해왔습니다. 서울과 수도권 편중이 극복되지 않으면 인구 과밀과 경쟁 과열이 해소되지 않아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상황은 심화할 것이라고요. 맬서스와 다윈의 입을 벌려 이 책에서 제안한 것처럼 지역의 발전과 성장을 도모하는 것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강변한 것입니다.
당시 제 연구실과 장대익 교수 연구실은 책 기획과 출간 전부터 인구 변화를 주제로 교류하고 있었는데요. 책 출간 이후 초저출산 현상과 인구 밀도 간의 관계를 경험적으로 검증하는 연구를 함께 진행했습니다. 연구의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습니다. 우리나라 230여 개 시군구의 합계출산율과 실제 사용 가능한 면적만을 고려한 인구 밀도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경제, 사회, 복지, 부동산, 고용, 사교육 등 다양한 사회구조적인 요인들과 관련된 변수들이 통제되었는데도 말이지요.
또, 저출산 현상이 진행 중인 55개 국가와 초저출산에 가깝거나 이를 경험한 21개 국가를 대상으로 주요 도시의 인구 과밀도와 출산율 간의 관계를 분석했는데, 한두 지역에 인구가 편중된 국가의 출산율이 모두 낮다는 사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는 우리나라가 독보적이었지요.
그런데 저출산 현상을 인구 밀도를 통해 설명하는 시도가 곧바로 학계나 정부의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열악한 양육과 보육 환경이 주요 원인이다. 사람이 동물인가? 밀도가 높아 경쟁이 심하면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주장은 ‘낭설’에 불과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지요. 저와 장대익 교수는 양육과 보육 환경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 것이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더 근본적인 조건인 밀도와 경쟁이 해소되지 않으면 아무리 양육과 보육 환경이 개선되어도 출산율이 상승하기는 어렵다고 말한 것이 핵심입니다. 근본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는 융합적인 관점이 필요하며, 그래서 이 책 집필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해 인간 내면부터 사회 시스템까지 우리가 맞닥뜨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찰한 것이고요.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초저출산 현상의 근본 원인
공감은 점차 많은 사람에게 확산되었습니다. 다른 연구진에 의해서도 수도권 인구 집중이 초저출산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요소라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여론을 선도하는 언론에서도 이제는 수도권 인구 집중과 지역 청년 인구 감소에 주목하기 시작했지요사실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소개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TV 강연 프로그램에서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살고 있는 현실이 초저출산 현상의 근본 원인이라고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EBS의 간판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다큐프라임〉에서도 3부작으로 편성해 우리나라 초저출산 현상의 원인을 조망하면서 수도권에 몰려 살 수밖에 없는 현실, 그 속에서 겪게 되는 극심한 경쟁과 경쟁감, 아기를 가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연애하기도 힘든 일상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한 외국인 교수가 우리나라 저출산 상황을 보면서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라고 말하는 밈 아시죠? 바로 이 프로그램의 한 장면입니다).
이처럼 2019년 이 책이 최초로 제기했던, ‘수도권 인구 집중이 우리나라 초저출산 현상의 근본 원인’이라는당시에는 매우 생경하던 주장이 이제는 ‘낭설’이 아니라 학계는 물론 언론을 통해서도 ‘정설’이 되었습니다. 정설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것은 이 책에서 처음 소개된 내용들이 이제 가설 수준을 넘어 이론으로까지 발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인구 집중과 그로 인한 경쟁과 심리적인 경쟁감이 높은 사회는 출산율이 높을 수 없다는 설명이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적용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출산율이 매우 낮은 국가들의 공통점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0.7까지는 아니어도 1.0에 가까운 합계출산율을 보이는 국가들이 있습니다. 싱가포르, 홍콩, 마카오 등입니다. 세 국가의 공통점은 밀도가 높은 도시국가라는 것입니다. 밀도는 높은데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그러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죠. 당연히 이 국가들의 출산율은 낮습니다. 최근 중국의 출산율도 크게 낮아지고 있습니다. 2017년 1.8이었던 합계출산율이 2022년 1.09까지 떨어졌습니다. 중국도 지난 30년간 경제성장을 거듭해 오면서 동해안으로 사람과 자원이 몰렸습니다. 베이징과 상하이를 비롯해 다롄, 칭다오, 항저우, 톈진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주요 도시들이 모두 동쪽에 몰려 있죠. 수많은 청년을 빨아들였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서울과 수도권처럼 말이죠. 소수의 도시로 과도하게 인구, 특히 청년 인구가 집중되면 결과는 뻔합니다. 이 책에서 설명한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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