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이서수 장편소설

저자소개

저자 · 이서수
201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젊은 근희의 행진』 『엄마를 절에 버리러』, 중편소설 『몸과 여자들』, 장편소설 『헬프 미 시스터』 『당신의 4분 33초』 등이 있다.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2023 젊은작가상, 황산벌청년문학상을 수상했다.

프롤로그


먹고살 게 없는 서른일곱이 되어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린 거리를 걸으며 지화 씨의 목소리를 들었다. 서로 사소한 안부를 묻고 나서, 지화 씨가 새로 팔기 시작한 연근샐러드에 대해 길게 말했다. 아무래도 가게에 손님이 없는 듯했다. 나는 근처 공원을 걷다가 하늘에 커다란 달이 떠 잇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교회 첨탑 옆에 다붙어 있었다. 첨탑 위에 올라 손을 뻗으면 닿을 것도 같았다. 나는 달을 바라보며 지화 씨에게 그 얘기를 다시 꺼냈다. 아무래도 장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지화 씨는 지난번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도대체 장사를 왜 하려고 그래?”


“엄마도 하잖아.”


“먹고살 게 없으니까 하는 거야.”


“나도 그래. 나도 먹고살 게 없어.”


지화 씨는 말문이 막힌 듯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내 딸은 어쩌다 먹고살 게 없는 사람이 되었을까. 아마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먹고살 게 없어서 장사를 해보려는 공마은. 그게 바로 나였다. 숫자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요즘 들어 수시로 내 나이가 떠올랐다. 3년만 지나면 마흔이라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어느 정도 내세울 만한 이력이 필요한 나이 같았지만 나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모아놓은 돈도 많지 않았다.


지화 씨는 긴 침묵을 깨뜨리며 어떤 장사를 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서울은 경쟁이 치열하니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고도 했다. 한발 물러난 목소리였다. 나는 지난주에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말했다.


“카페를 한다는 거지? 술도 팔 거니?”


“맥주만.”


지화 씨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여자 혼자 술장사하면 옛날 사람들은 물장사하는 여자라고 얕잡아 봤어.”


“엄마는 또 그 소리야.”


반세기도 더 전에 태어난 지화 씨의 선입견. 그 시대의 스탠스. 무엇보다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말. 나는 그걸 알면서도 화를 냈고, 요즘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못을 박았다.


오래전 지화 씨는 노포가 즐비한 거리에서 작은 호프집을 한 적이 있었다. 노가리와 부추전이 인기 메뉴였고, 밤마다 가게 앞에 야장을 깔아야 할 정도로 손님이 북적였다. 그러나 지화 씨는 오픈한 지 2년 만에 가게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취한 손님들이 지화 씨를 함부로 만졌기 때문이다. 한 달에 서너 번은 그런 일이 일어났다. 장난이라는 듯 아랫배를 쿡 찌르거나 엉덩이에 손을 슬쩍 가져다 대는 건 이골이 날 정도였고, 작정하고 끌어안거나 입술을 내미는 작자도 있었다. 단골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지화 씨는 그들과 친분이 제법 쌓인 상태였기에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큰 충격을 받았다. 물론 처음 온 손님이라고 얌전히 술만 마시다 가진 않았다. 부동산에 가게 열쇠를 넘기던 날 지화 씨는 내게 말했다.


“남편이 있었으면 계속했을 거다.”


사실 지화 씨에겐 남편이 있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지화 씨도 이 화상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고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공가철 씨의 부제가 익숙했다. 그가 없더라도 우리에겐 서로가 있었고, 지화 씨에겐 자매가 내겐 이모가 있었다. 택시 기사인 경화 이모는 우리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통화를 마치기 전에 나는 지화 씨에게 한 가지 다짐을 받아냈다. 더 이상 물장사 운운하는 말은 꺼내지 말아달라고. 엄마도 술을 판 적이 있으면서 그렇게 말하면 누군가 상처입지 않겠느냐고. 내가 하려는 카페는 전혀 다른 분위기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재차 말하면서. 가만히 듣기만 하던 지화 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겉으로 봐선 모르지. 사장 속이 새까매져도 손님들은 잘 몰라. 그래도 앞으론 그런 말 안 할게. 너 알아서 해.”


나는 개운하지 않은 마음으로 통화를 마쳤고, 지화 씨 역시 못 미더운 기색을 슬쩍 드러내면서 전화를 끊었다.



지화 씨는 울산에서 작은 반찬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스무 살 이후부터 서울에 터를 잡고 살았던 지화 씨가 울산에서 반찬 가게를 연 것은 공가철 씨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공가철 씨가 누구에게 얼마의 돈을 빌렸는지 우리는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다. 공가철이 빌려간 돈을 갚으라고 윽박지르는 사람들이 나타났을 때나 알 수 있었다. 한번은 칼을 들고 찾아온 아저씨도 있었다. 신문지로 둘둘 감싼 칼을 옆에 내려놓고 툇마루에 앉아 있던 그는 교복을 입고 대문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더니 등 뒤로 칼을 감추었다. 지화 씨는 나를 보며 어색한 표정으로 웃었다.


“배고프지?”


지화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가더니 밥을 안치고 김치를 꺼내고 두부를 잘랐다. 그사이 불청객은 칼을 품고 슬그머니 사라졌고, 지화 씨는 나와 마주 앉아 저녁밥을 먹다가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칼을 들고 왔어.”


나는 안다고 답했다. 찌르지도 못할 텐데 겁이나 주려고 들고 왔을 거라고 하자 지화 씨가 말했다.


“그 사람도 벼랑 끝에 있대. 그래서 그걸 들고 온 거야.”


공가철 씨와 이혼하기 전까지 지화 씨를 찾아온 빚쟁이는 모두 여섯 명이었으며 죄다 서울에 살았다. 지화 씨가 서울을 떠난 이유는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긋지긋한 얼굴들과 우연히라도 마주칠까 봐. 그러나 울산까지 가게 된 것은 우연이라고 해야 할지 운명이라고 해야 할지……


식당에서 찬모로 일하던 지화 씨는 반찬 가게를 열기 위해 부동산 몇 군데에 전화를 걸었다. 마침 버스로 열 정거장 떨어진 동네에 적절한 자리가 있었다. 분위기도 살필 겸 인근 공원을 걷던 지화 씨는 주민들이 한가롭게 산책하는 모습이 무척 여유 있어 보이고, 반찬도 자주 사 먹을 것 같아 여기서 해야겠다는 결심을 세우던 중 김미단 아줌마와 마주쳤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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