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7

희귀 서적 수집가가 안내하는 역사상 가장 기이하고 저속하며 발칙한 책들의 세계

저자소개

역자 · 최세희
국민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번역을 하는 틈틈이 여러 매체에 대중음악 칼럼을 쓰고 있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 『깡패단의 방문』, 『킵』, 『렛미인』,『블루베리 잼을 만드는 계절』, 『예술가를 학대하라』,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날들』, 『런더너』, 『힙스터에 주의하라』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서문


“책은 시대의 거대한 바다에 우뚝 선 등대다.”

   ― 에드윈 퍼시 휘플


아버지 손에 이끌려 간 경매장에서 입찰자 패들경매 진행 중 입찰 의사가 있을 때 드는 팻말 신세로 전락했을 때, 난 첫돌을 넘긴 아기였다. 고서를 사고파는 게 일인 부모를 둔 아이는 책으로 지은 집에서 살게 된다비유인 동시에 실증적 사실이다. 그런 집에는 벽마다 온갖 휘황찬란한 색깔의 가죽 장정에 짓눌려 신음하는 서가가 세워져 있다. 거기엔 모로코염소 가죽로 만든 빨간색 표지, 고급 독피지결이 고운 송아지 가죽로 만든 흰색 표지, 군청색, 진녹색, 순금색, 낡고 칙칙한 앤티크 브라운 색의 표지까지 색색의 옷을 입은 책들이 저마다 채도가 다른 금박 글씨로 반짝인다.


이 책들은 숨도 쉰다. 숨을 내쉴 때마다 해묵은 종이 냄새와 가죽 향을 뿜어낸다. 수 세기를 간직한 그 냄새 속에서 책마다 다른 출생지와 시대를 분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낭만적인 분위기는, 당연하지만 한낱 어린아이에겐 코 끝에 닿기도 전에 휘발되어버린다. 적어도 처음엔 그렇다. 열 살 때는 오래된 책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지루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열여덟 살 되던 해엔 정신을 차려보니 런던의 한 경매회사에서 24시간 책에 둘러싸여 살고 있었고, 이윽고 책과 대책 없는 사랑에 빠져버린 스물다섯 살에는 식비나 집세를 빼돌려 나의 알량한 서가를 채우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 구글의 어느 팀에서는 그전까지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계산을 마쳐가고 있었다. 구글북스가 2002년부터 현존하는 모든 종이책을 입수해 전자책 사본으로 만드는, 코드명 ‘프로젝트 오션’을 8년째 추진하고 있던 것이다. 사업을 완수하려면 팀에서 감당할 책의 권수부터 대충이라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팀원들의 생각이었다. 미국 의회 도서관과 월드캣온라인 컴퓨터 도서관 센터OCLC 글로벌 협동조합에 가입한 총 만 2000개 도서관의 도서 목록을 열람할 수 있는 웹 사이트에 이어 세계 각국의 출판 목록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는 기록을 빠짐없이 모았고, 마침내 10억을 웃도는 수치와 마주하게 되었다. 이어서 알고리즘을 이용해서 이 숫값을 깎기 시작했는데, 이 과정에서 중복된 판본, 마이크로피시, 지도, 영상물, 오래전 어느 만우절에 누군가 장난으로 도서관 장서 목록에 등록하는 바람에 책의 탈을 쓰고 있던 육류용 온도계를 탈락시켰다. 그런 후에야 전자책이 될 수 있는 책의 총계에 가까운 수치를 얻을 수 있었으니, 모두 1억 2986만 4880권이었다. 그들은 여기서 한 권도 빼놓지 않고 전부 스캔할 작정이었다.


여기에 사람의 손을 타서 훼손된 책, 자연재해에 집어삼켜진 책, 탑처럼 쌓인 채로 불태워지는 등 의도적으로 파기된 책, 혹은 2013년 26킬로미터에 달하는 영국 M6 유료 도로 공사 때 아스팔트의 침입도를 높이려 밀스앤분에서 나온 소설책 250만 권을 분쇄해 시멘트 반죽에 뒤섞었을 때나 영국 정치가 어거스틴 비렐1850~1933이 너무 지루하다는 이유로 18세기 성공회 작가인 해나 모어의 전집 열아홉 권을 모두 자신의 집 정원에 묻어버렸을 때 인류가 잃어버린 책들까지 고려하면 이 수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스스로 ‘책벌레’임을 온몸으로 증명하려 말 그대로 책을 꿀꺽 삼킨 경우도 있다. 고대 중국에선 상형문자가 새겨진 갑골을 용의 뼈로 여기곤 불로장생의 영약을 만든다며 이를 곱게 빻아 가루를 낸 사람들이 있다. 1370년, 이탈리아 밀라노 공화국 군주 베르나보 비스콘티는 교황이 칙서를 들려 보낸 두 명의 사절에게 분노의 표시로 칙서와 칙서를 묶은 비단 끈과 밀봉에 쓰인 납까지를 강제로 먹였다. 17세기, 독일 법률가 필리프 안드레아스 올덴부르거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책을 쓴 벌로 문제의 책을 먹어야 했고, 다 먹을 때까지 채찍으로 맞았다. 런던에서 고급 양장본 제조업에 몸담았던 앨버토 생고스키와 프랜시스 생고스키 형제가 만든 책은 이 분야에서 가장 극적인 희생양이다. 형제는 미국의 애서가 해리 엘킨스 와이드너에게서 『루바이야트』 사본 제작을 의뢰받은 후 꼬박 2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표지에만 천 개가 넘는 값비싼 보석을 장식한 책 『위대한 오마르』를 완성했다. 1912년, 와이드너는 이 보물을 들고 신이 나서 고향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그 배의 이름이… 타이타닉이었다.


1억 2986만 4880권이라는 숫자에는 지금까지 살아남은 위대한 고전계속 연구되고 증쇄되고 회자되는과 역사의 정수가 담겨 있다. 다만 코드명 ‘프로젝트 오션’이 말해주듯, 유구하고 무한한 책의 바다에서 고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단 몇 방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자나 깨나 관심을 가지고 찾아 헤매는 책들은 이 어마어마한 잔여의 암흑 속에서 반짝이는 보석들, 버려져 잊히고 만 별종들이다. 이 책들은 너무 이상해서 어떤 범주에도 집어넣을 수 없지만 한 뿌리에서 나와 명성을 떨친 책들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을 만큼 매혹적이다. 짐작건대 이런 책들은 공간, 시간, 예산의 구애를 전혀 받지 않는 한 명의 수집가가 기이한 책들을 망라해놓은 위대한 서가에 꽂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 책들이 예상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면, 그 책을 쓴 사람들과 그 책이 쓰인 시대에 대해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면 어떨까?


그러기 위해 통과해야 할 첫 번째 관문은 기이한 책이란 게 정확히 어떤 성격의 책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기이한 책은, 두말할 것 없이 주관적인 개념이다. 어떤 책을 두고 ‘기이하다’고 말할 때는 그 책을 읽고 소유한 사람이 보기에 그렇다는 뜻이다. 그러나 십 년 가까이 전 세계의 도서관과 경매장을 돌고, 고서 전문 판매업자들의 카탈로그를 샅샅이 뒤져가며 여러 단서들과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한 일화들을 따라다니면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기이하고 괴이쩍은 책들을 여럿 만났다. 저마다 내용은 물론이고 뒷이야기까지 대단히 흥미로웠다. 손에 넣는 기이한 책들이 많아질수록 주제별로 책을 명확히 분류할 수 있게 되었다. 주제별로 분류할 수 없는 책들 중에선 제작자나 주문자의 요청에 따른 특이한 만듦새가 눈에 띄는 책들이 있었는데, 그런 책들은 ‘주문 제작bespoke 장르’로 분류하기 시작했고 이 책에도 일부 소개하였다. 예를 들어 ‘살과 피로 만든 책’에선 인피제본인간의 피부로 만든 책의 역사와 함께 책의 소개로 신체 일부를 쓴 엽기적인 사례들을 고찰한다. 이런 관행이 고릿적 얘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가까운 사례 중에는 2000년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명령으로 제작된 605쪽 분량의 피로 쓰인 코란이 있다. 저술에만 2년 넘는 기간이 소요된 책으로, 사담 후세인 본인의 피 약 27리터로 쓰였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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