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4

우리에게 ‘약속’은 있는가

저자소개

이문재
1959년 경기도 김포(현 인천시 서구)에서 나고 자랐다. 경희대 국문과에 재학중이던 1982년 『시운동』 4집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제국호텔』 『마음의 오지』 『산책시편』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가 있고 산문집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내가 만난 시와 시인』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 노작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강의하고 있다.


세 연으로 이뤄진 짧은 시다. 인과 관계가 뚜렷하고 비유가 어렵지도 않다. 어린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해와 상상문제 제기.은 다른 차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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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수준에서 읽으면 이 시는 식물의 한살이이다. 봄에 씨앗이 발아하고 마침내 꽃봉오리가 솟아오른다. 한여름을 견뎌내면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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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앞두고 뿌리와 줄기는 열매를 떨군다. 번식을 위한 이별인데 이별 속에 또 다른 만남이 내장되어 있다. 씨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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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씨앗이 여무는 순간을 차마 저버릴 수 없는 약속 하나가 생기는 순간이라고 썼다. 이 대목에서 시는 성큼, 인간 세계로 들어선다. 그런데 시인이 발견한 약속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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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칠 수 없는 약속은 하나가 아닐 테다. 열매를 떨군 나무는 이 자리를 지키겠다라고,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씨앗은 반드시 살아내겠다라고 다짐했으리라. 뿐이랴, 벌 나비는 물론 땅과 물, 해와 달도 동참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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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기, 열매=중장년기, 씨앗=노년기죽음과 탄생.. 이렇게 대입하면 이 시는 전혀 다른 맥락에 놓인다. 함께 캐물어 보자. 지금, 젊은이와 중년 그리고 노년 사이에 새로 생긴 약속은 무엇일까. 아니, 서로 약속하기는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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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서 씨앗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순환 고리가 조만간 끊어질지 모른다. 기후 대재앙이 닥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국가, 우리의 문명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않으려 한다. 어제 같은 오늘을 살고, 오늘과 다를 바 없을 내일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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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간, 지구 생태계가 이렇게 연일 사이렌을 울려대고 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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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농민신문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