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7

이 성당이 고딕 양식이에요?

저자소개

이미선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수많은 성당과 교회를 보게 됩니다. 성당의 안내문에는 거의 항상 “이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라거나 “이 성당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라는 설명이 나오죠. 그런데 안내문을 읽지 않고도 성당을 보자마자, ‘아, 이건 로마네스크 양식이야,’ ‘저건 고딕 양식이네’라고 알아보실 수 있나요? 2013년에 친구들과 스페인 여행을 갔을 때까지만 해도 저는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물과 고딕 양식 건축물을 구분할 줄 몰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답답하더군요. 스페인의 산 세바스챤 대성당스페인어: Catedral del Buen Pastor de San Sebastián을 둘러보면서 친구에게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이 성당이 고딕 양식 건물이라는데 도대체 뭘 보고 고딕 양식이라는 거야? 너는 성당을 딱 보자마자 로마네스크 양식인지, 고딕 양식인지 알 수 있어? 성당이 엄청 높으니까 고딕 양식이라는 건가?” 


“나도 몰라. 보자마자 알 방법이 있으면 좋겠어.”


“좋아, 그렇다면 내가 집에 돌아가서 두 양식을 공부한 다음 방법을 알려줄게.” 


산 세바스챤 대성당, 1897년 헌당. 산 세바스챤.


스페인에서 돌아온 후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에 관한 책부터 사들였습니다. 그런데 책으로는 두 건축 양식의 특징이 정리가 안 되더군요. 전문 용어가 너무 많아서 혼란스러웠습니다. 우리말 건축 용어는 한자로 된 게 많아서 영어 용어보다 오히려 더 어려웠어요. 아치arch를 ‘홍예虹霓,’ 활 모양 아치를 ‘궁형弓形,’ 둥근 천장vault을 ‘궁륭穹窿,’ 공중 버팀벽flying buttress을 ‘비량飛梁’이라고 하더군요. 결국 책들은 구석에 처박아 두고 이번에는 동영상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간략하게, 비전문적으로, 중요한 특징만을 간추려서, 예시 건축물을 평면적인 사진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다각도에서 보여주는 동영상이 훨씬 이해하기 쉽더군요. 볼트의 형태나 성당의 내부 구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지만, 적어도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을 구분해 주는 한 가지 특징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특징을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혹시 저처럼 답답함을 느낀 분이 있다면 이 특징을 활용해 보시길 바랍니다.  

     

스페인 여행 후 일 년이 지난 2014년에 친구들과 대구에서 근대 골목 투어를 했습니다. 청라 언덕에 올라 이은상 작시, 박태준 작곡의 『동무 생각』도 흥얼거려 보고요. 이상화 고택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우리나라에서 고딕 양식으로 지은 세 번째 건물인 계산동성당이 근처에 있다는 안내문이 골목 벽에 붙어 있더군요. 골목을 따라 조금 걷다 보니 아담한 광장 안쪽에 자리 잡은 계산동성당이 보였습니다. 저녁때라 사진이 조금 어둡게 나왔어요. 저녁 미사에 온 신도들과 천막에 가려서 성당 입구가 잘 안 보입니다. 성당 입구를 확인할 수 있도록 문화재청 사진도 곁들입니다. 아래 성당 입구 오른쪽에 성당 안내문이 살짝 보이죠? 안내문 사진도 함께 봐주세요.  


계산동성당, 1902년. 대구.


계산동성당 입구. 문화재청 제공.


계산동성당 안내문, 2014년 7월 사진.


안내문에는 “이 건물은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 번째로 세워진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프랑스인 프와넬 신부가 설계하고 서울 명동성당의 건립에 참여하였던 중국인들이 공사에 참가하여 1902년에 완공하였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설명을 읽자마자 이상한 생각이 들더군요. ‘이 성당이 고딕 양식이라고? 아닌데?’ 성당을 보자마자 고딕 양식 건물이 아니라는 걸 혼자 힘으로 판단할 수 있다니 일 년 동안 공부한 보람이 있죠? 제 생각이 맞는지 일단 성당으로 들어가서 내부를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계산동성당 내부.


천장은 고딕 양식이 맞더군요. 그런데 본당 회중석 양옆의 기둥과 제대가 있는 맨 앞쪽 후진의 창문들은 고딕 양식이 아닙니다. 자, 여기서 문제 나갑니다. 제가 무엇을 보고 고딕 양식과 고딕 양식이 아닌 것을 구분했을까요? 고딕 양식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1. 반원형 아치

2. 뾰족한 아치

3. 평면 천장

4. 직사각 창문 


고딕 양식 건축물로 널리 알려진 쾰른 대성당과 바르셀로나 대성당, 우리나라의 명동성당 사진을 보시고 답을 찾아보세요. 맨 위에 있는 산 세바스챤의 대성당도 역시 고딕 양식의 건축물입니다. 쾰른 대성당과 바르셀로나 대성당의 설명에 ‘헌당’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성당 일부가 완공된 후 헌당식을 올리고 나서 이후로도 몇백 년 동안 공사가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바르셀로나 대성당, 1058년 헌당. 바르셀로나.


쾰른 대성당, 1322년 헌당. 쾰른.


명동성당, 1898년. 서울.


계산동성당 입구와 네 성당, 산 세바스챤 대성당, 바르셀로나 대성당, 쾰른 대성당, 명동성당의 입구가 다르게 생겼죠? 무엇이 다른가요? 계산동성당의 입구는 ‘반원형 아치semi-circular arch’인 반면, 산 세바스챤 대성당과 바르셀로나 대성당, 쾰른 대성당, 명동성당의 입구는 ‘뾰족한 아치pointed arch’ 형태입니다. 이런 뾰족한 아치를 건축 용어로 ‘첨두尖頭형 아치’라고 부르더군요. 고딕 양식 건축물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이 뾰족한 아치입니다. 그렇다면 계산동성당은 고딕 양식 건축물일까요? 아닙니다. 반원형 아치 형태를 이루고 있는 성당 입구와 창문 윗부분으로 봐서는 계산동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이 확실합니다. 계산동성당과 로마네스크 양식의 다른 건축물을 한번 비교해 보시겠어요? 아래 첫 번째 사진은 스페인의 칸타브리아 지방에 있는 산티야나 델 마르 대학 교회스페인어: Colegiata y Claustro de Santa Juliana이고 두 번째 사진은 전동성당입니다.     


산티야나 델 마르 대학 교회, 12세기. 칸타브리아.


전동성당, 1908년. 전주.


계산동성당의 입구가 산티야나 델 마르 대학 교회와 전동성당의 입구와 똑같죠? 이 세 성당은 입구가 모두 반원형 아치 형태로 이루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입니다. 그런데 산티야나 델 마르 대학 교회에서는 고딕 요소를 한 가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교회는 견고한 외관에 창문이 없는 두꺼운 벽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입니다. 그런데 입구 양쪽의 탑 중 종탑처럼 생긴 왼쪽 탑의 창문은 뾰족한 아치 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 하나 드리겠습니다. 중세의 대표적인 건축양식인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 중 어느 게 시대적으로 앞설까요? 로마네스크 양식이 먼저 1000~1200년 사이에 유행했고, 고딕 양식은 1140~1500년 사이에 유행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교회에 고딕식 창문이 있는 것은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에 후기 고딕 양식이 가미됐기 때문입니다. 12세기에 이 교회를 지을 때는 로마네스크 양식이 유행했는데 나중에 고딕 양식이 추가된 거죠. 자연스러운 현상 아닐까요? 그런데 계산동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에 시간이 지나면서 고딕 양식이 추가된 것이라기보다는 설계 단계에서 건물 전체 구조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잡되, 뾰족한 아치 형태로 이루어진 원통형 천장 같은 고딕적인 요소를 가미한 것이겠죠. 사실 명동성당도 엄밀한 의미에서 고딕 시대의 건축물은 아닙니다. 전통적인 고딕 양식을 근대에 되살린 신고딕neo-Gothic 양식이라 할 수 있죠. 아, 전동성당에도 종탑에는 비잔틴 양식이 가미됐다고 합니다. 비잔틴 양식의 특징 중 하나가 반구형 돔이거든요. 돔이 있는 비잔틴 양식 건축물의 대표적인 예로는 비잔티움Byzantium; 현재의 이스탄불Istanbul에 있는 아야 소피아Hagía Sofía 모스크가 있습니다. 원래는 성당이었지만 15, 16세기에 모스크로 개조됐죠. 


아야 소피아 모스크, 537년. 이스탄불.


건축양식을 살펴볼 때 다른 건 다 잊어버려도 괜찮습니다. 반원형 아치냐, 뾰족한 아치냐 이것 하나만 기억해 두면 세계 어느 곳에서건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물과 고딕 양식 건축물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정말 간단하죠? 이 기준 하나면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물과 고딕 양식 건축물을 어느 정도는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반원형 아치가 있는데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탈리아어: Basilica di San Pietro in Vaticano1506~1626은 로마네스크 양식이 아니라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입니다. 일단 지붕에 돔이 있고 건물 꼭대기에 그리스 신전에서 볼 수 있는 ‘삼각형 모양의 박공pediment’이 있습니다. 사각형 창문도 섞여 있을 뿐만 아니라 창문이 다양한 형태로 장식되어 있고요. 르네상스 건축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르네상스 회화와 마찬가지로 균형과 조화입니다. 양쪽 창문과 기둥이 정확히 반반이죠? 건물을 반으로 접으면 데칼코마니처럼 정확히 일치할 겁니다. 그러니 반원형 아치가 있다고 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은 아닌 거죠. 로마네스크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을 구분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돔의 유무일 겁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에는 돔이 없습니다. 피렌체 대성당이탈리아어: Duomo di Firenze1296~1436 역시 돔이 있는 르네상스 양식의 대표적 건축물입니다.       


성 베드로 대성당, 1506~1626년. 바티칸 시국.


주변 건물에서도 고딕 요소를 의외로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의 교회 종탑에도 뾰족한 아치와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있더군요. 


뾰족한 아치가 있는 교회 모습.


교회뿐만 아니라 일반 주택에도 고딕 요소가 가미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랜트 우드Grant Wood, 1891~1942의 『아메리칸 고딕American Gothic1930에서 고딕 요소를 한번 찾아보세요. 


그랜트 우드, 『아메리칸 고딕』, 1930년. 판자 위에 유화, 78 × 65.3 cm. 시카고 미술관, 시카고.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Grant_Wood_-_American_Gothic_-_Google_Art_Project.jpg#/media/File:Grant_Wood_-_American_Gothic_-_Google_Art_Project.jpg 제공.


사실 처음 이 그림을 봤을 때는 이 그림이 건축양식과 관련된 것인 줄 상상도 못했어요. 그림 속 두 인물이 자아내는 분위기가 음산해서 제목에 ‘고딕’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았을까 막연하게 추측만 했죠. 공포 소설과 로맨스가 결합한 고딕 소설이라는 장르가 있으니까요. 나중에 그림을 다시 보니까 박공지붕 아래 뾰족한 아치 형태의 고딕식 창문이 있더군요. 그러니까 ‘아메리칸 고딕’이라는 제목은 미국식으로 변형된 고딕 양식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유럽의 고딕 양식을 미국식으로 주택 건축에 활용한 것을 ‘목수 고딕Carpenter Gothic’ 양식이라고 부른답니다. 그림 속 두 사람은 아버지와 딸이지만, 두 사람을 부부로 보는 평론가도 있더군요. 부부라고 하기에는 두 사람의 나이 차가 너무 나죠. 작가 자신이 두 사람을 부녀 관계로 설정했다고 밝혔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고딕 양식은 로마네스크 양식과 더불어 중세를 대표하는 건축양식입니다. 이 그림에서는 고딕 양식의 주택이 무엇을 상징할까요? 고딕 양식은 교회의 건축양식이고 교회는 기독교와 연관됩니다. 중세의 기독교는 엄격하고 철저한 종교 원리와 연결되고요. 나이 든 농부 아버지가 쇠스랑을 들고 단호하게 지키고자 하는 것은 중세적인 종교적 가치일 겁니다. 이 중세적인 가치관에는 집뿐만 아니라 딸 혹은 아내마저 자신의 소유물로 간주하며 가족 위에 군림하려는 가부장적인 남성중심주의도 포함되고요. 그림 속 고딕 양식의 집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구시대적인 가치관을 상징하는 겁니다. 이것은 은유일까요? 아니면 환유일까요? 환유입니다. 고딕 양식의 집이 인접성에 의해 구시대적 가치관으로 연관되는 거니까요. 그런데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표정은 어떤가요? 사랑과 존경의 눈길이 아니라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하죠? 사실 저는 두 사람을 부부로 봐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구시대적인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보수적인 남편을 못마땅해하는 아내의 표정도 딱 저럴 테니까요. 다만 두 사람이 아버지와 딸이라면 세대 갈등이 작품의 중요한 주제로 부상할 겁니다. 고딕 요소가 가미된 주택의 모습이 배경에 등장하지 않고 쇠스랑을 든 늙은 농부와 더 젊은 여성만 그림 속에 있다면 그림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을 겁니다. 주택의 고딕적인 양식이 이 작품을 이해하는 열쇠 역할을 하는 거죠. 주변에서 고딕 요소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다가 샛길로 너무 멀리 와 버렸죠? 고딕 양식의 두 번째 특징으로 되돌아가 보겠습니다.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을 구분하는 첫 번째 차이점이 반원형 아치와 뾰족한 아치라면 두 번째 다른 점은 천장 형태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천장 형태는 ‘원통형 궁륭barrel vault’ 혹은 ‘터널식 궁륭’입니다. 이 원통형 궁륭도 반원 형태가 있고, 또 뾰족한 아치 형태가 있습니다. 원통형 궁륭이 반원형 아치면 로마네스크 양식이고, 뾰족한 아치 형태이면 고딕 양식이죠. 그러니까 결국 천장 형태도 첫 번째 차이점인 반원형 아치냐 뾰족한 아치냐의 연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원 형태의 원통형 궁륭이 있는 전동성당의 내부 모습을 먼저 보여 드리겠습니다. 


전동성당 내부, 전주.


천장도, 양옆 기둥도 모두 반원형 아치로 이루어져 있죠? 전동성당 내부는 전형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입니다. 반면에 뾰족한 아치 형태의 원통형 궁륭으로 이루어진 계산동성당의 천장은 초기 고딕 양식의 특징이죠. 다음은 계산동성당과 천장이 비슷하게 생긴 프랑스 퐁트네의 시토회 수도원Cistercian Abbey of Fontenay의 천장 모습입니다.        


퐁트네의 시토회 수도원, 12세기. 퐁트네.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Abbaye_Fontenay_eglise_interieur.jpg#/media/File:Abbaye_Fontenay_eglise_interieur.jpg 제공.


전동성당의 반원 모양의 원통형 천장과는 확실히 다르죠? 계산동성당의 천장은 초기 고딕 양식이라면 명동성당의 천장에서는 전형적인 고딕 양식의 리브 볼트rib vault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건축 용어로 늑재 궁륭肋材穹窿이라 부르더군요. 표현이 너무 어렵죠? 갈비뼈 뼈대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위키백과」에는 늑재 궁륭이 “원통형 궁륭 두 개 또는 세 개가 교차하면서 만들어지는 궁륭으로서 궁륭의 뼈대인 홍예가 드러나 있는 궁륭이다”라고 정의돼 있는데 사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큰 소리로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분이 많을 거라 믿습니다. 조금 쉽게 풀어보면, 원통형 혹은 터널형 지붕이 무너지지 않게 하려면 석재를 견고하게 접합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지붕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많은 양의 석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러면 벽이 두꺼워지고 창문을 내기가 힘들어지죠.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에는 창문 수도 적고 크기도 작습니다. 그러니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에 들어가면 실내가 어두울 수밖에 없죠. 이런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천장 형태를 갈빗살 모양으로 만든 것이 늑재 궁륭인 리브 볼트입니다. 양쪽 기둥 사이를 터널식으로 연속해서 석재로 쌓는 것이 아니라, 기둥 사이를 가로지르는 단단한 몇 개의 아치를 서로 엇갈리게 걸쳐 놓은 다음 갈빗살 사이의 삼각형 부분을 가벼운 자재로 메우는 거죠. 다음은 명동성당과 파리의 옛 법원 청사이자 교도소인 콩시에르주리Conciergerie의 리브 볼트입니다.  


명동성당 내부, 1898년. 서울.


콩시에르주리, 13세기. 파리.


리브 볼트 덕분에 천장이 가벼워지니 벽이 얇아지고 창문을 많이 내도 무너질 위험이 줄어듭니다. 창문이 많아지고 커지면서 이 창을 장식할 스테인드글라스도 발달하고요. 알고 보면 리브 볼트도, 스테인드글라스도 뾰족한 아치 형태의 산물인 겁니다. 


산 세바스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산 세바스찬.


뾰족한 아치 형태 때문에 생긴 고딕 양식 건축물의 또 다른 특징이 공중 버팀벽입니다. 뾰족한 아치는 아치가 높다 보니 기둥으로 하중이 쏠리는 구조죠. 이 하중을 분산시키면서 바깥쪽으로 무너질 수 있는 건물의 균형을 잡아주는 장치가 외부의 버팀목인 공중 버팀벽flying buttress입니다. 이것을 ‘버팀도리’라고 부르기도 하더군요. 버팀도리는 “건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외벽에 덧댄 구조물인 부벽 중 벽체와 완전히 분리된 독립된 벽”으로 “고딕 건축 양식의 건축물에 사용되며, 아치 모양의 팔로 외벽의 압력을 지탱하는 형태”「위키백과」랍니다. 위에 있는 쾰른 성당과 아래 노트르담 성당의 사진에서도 이 버팀도리를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성당에 비해 높이도 낮고 규모도 작은 명동성당에는 공중 버팀목이 없습니다.  


노트르담 성당, 1345년. 파리.


뾰족한 아치 형태 하나가 이렇게 한 시대의 건축양식을 바꿀 수 있다니 놀랍죠?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의 차이점에 대해 알았으니 다시 계산동성당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계산동성당의 정확한 건축양식은 무엇일까요? 반원형 아치로 이루어진 입구와 창문, 기둥을 보면 로마네스크 양식이고, 뾰족한 아치로 된 천장을 보면 고딕 양식입니다. 계산동성당의 건축양식은 고딕 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인 거죠.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세워진 고딕 양식의 성당”이란 설명은 잘못된 겁니다. 오지랖 넓은 제가 다음에 어떻게 했을지 이미 짐작하시죠? 집에 돌아와서 먼저 성당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안내문은 대구광역시 중구청 관할이라고 하더군요. 중구청 홈페이지에 안내문에 대해 메일을 남겼더니 며칠 후 담당 직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문화재청 자료를 검색한 결과, 계산동성당이 ‘고딕 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이 확실하다며 안내 표지판과 안내 책자의 설명을 수정하겠다고 하더군요. 제 말보다는 문화재청의 유물 데이터베이스를 신뢰한 결과입니다. 몇 달 후 근대 골목 투어 안내문이 아래 사진처럼 바뀌었습니다.           


계산동성당의 새 안내문.


바뀐 안내문에는 “이 건물은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 번째로 세워진 고딕 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이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고딕 양식 성당으로는 세 번째가 맞겠지만, “고딕 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으로도 세 번째일까요? 더 이상 따지지 않기로 했습니다.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성당을 구분하는 방법을 안다고 뭐가 대단히 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의 『샘Fountain1917이나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의 『아비뇽의 처녀들프랑스어: Les Demoiselles d'Avignon1907처럼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죠. 그래도 안내 표지판을 바꿀 수는 있답니다. 


 

★『미술초보의 미술수다』는 이번 글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연재되었던 글은 곧 단행본으로 묶여 출간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