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10

월드컵은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적 행위다

저자소개

정윤수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 교수




오늘날 축구장과 야구장, 골프장과 포커판, 그리고 발리의 닭싸움장에서 숱한 문화적 경쟁이 벌어지는데, “거기서 싸우는 것은 표면적으로만 수탉일 뿐, 실제로는 인간”이다.

월드컵이 끝났다. 우승은 프랑스. 그리고 크로아티아가 전세계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경기장 안의 열광과 그 밖의 사회 상황까지 다 합쳐서 평가한다면 글쎄, 이번 월드컵의 진정한 챔피언은 블라디미르 푸틴이 아닐까.

푸틴은 1999년에 러시아의 총리이자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고 이듬해 권좌에 올랐으니 20년 가까이 러시아를, 그리고 세계를 휘어잡고 있다. 그 나라 헌법의 빈 틈을 슬쩍 활용하여 2008년에서 2012년 사이에는 총리로 한 단계 물러앉았으나 그 시기에 대통령 자리를 지킨 메드베데프를 실권자라고 여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번 월드컵의 시상식은 역대 시상식과 달리 ‘귀빈’들이 잔디로 내려왔다. 고대 로마 시대의 콜로세움처럼 피땀을 흘린 선수들이 저 높은 단상의 귀빈들에게 ‘올라가서’ 격려를 받는 방식이 아니라, 피파FIFA 회장과 프랑스와 크로아티아의 정상들, 그리고 개최국 러시아의 푸틴이 단상 아래로 ‘내려가서’ 선수들을 격려한 것은 작지만 의미 있는 의전이었다.



갑자기 폭우가 내렸다. 감독과 선수들 그리고 귀하신 분들과 행사 관계자들 모두가 폭우를 맞았다. 푸틴은 예외였다. 큰 우산이 그를 보호했다. 양 옆에서 인판티노 피파 회장,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콜린다 그라바르 키타로비치 크로아티아 대통령이 비에 흠뻑 젖었다. 잠시 후, 여러 개의 우산이 펼쳐졌지만 푸틴이 이번 대회 진짜 챔피언이었음이 두루 확인된 풍경이었다.

결승전 후 언론과 인터넷에서는 관련 나라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격려가 쏟아졌다. 특히 내전 상황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축구를 익힌 모드리치나 로브렌 같은 크로아티아 선수들에 대한 격려가 많았다. 모드리치의 할아버지는 내전 때 세르비아군으로부터 처형을 당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출생의 로브렌은 1992년 보스니아 내전 때 독일로 피난을 가야 했다. 그는 소속팀 리버풀 클럽의 미디어인 ‘LFCTV’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난민으로서 나의 삶』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사이렌이 울리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순간 나는 폭격이 시작되거나 아니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을 알았기에 엄청난 공포에 휩싸였다.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한참 지나고 나서 독일로 피난을 갔다. 그때 우리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입고 있던 옷, 그게 전부였다.” 

이런 상황에서 공 하나에 운명을 걸고 성장한 크로아티아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거꾸로 말하여, 축구선수들의 피땀어린 과정을 슬며시 가로채려는 각국의 정치가들, 특히 푸틴 같은 권력자들에게 약간의 비난을 보내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냉정히 말하여 러시아나 크로아티아의 정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박수와 격려는 일단 경기장 안에서 끝나야 한다. 그 안의 열정과 박수를 장외로 투사하거나 심지어 확산하는 것은 위험하다.

푸틴은 권력자이고, 그것도 거만한 권력자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푸틴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심정적으로 지지할 수 있으며 또 결승전 때 그라운드로 난입하여 푸틴의 일방주의에 저항하는 퍼포먼스를 한 ‘푸시 라이엇’을 지지할 수 있지만, 그러나 러시아로부터 전해지는 소식들은 푸틴에 반대한다고 해서 반드시 지지할 만한 사람인지 확정할 수 없다고 말해준다. 21세기의 차르에 저항한다는 것 자체가 신선하지만 말이다.

러시아 ‘민주화’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거의 유일한 푸틴의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뽑아야 할 충치에 비유하는 인종주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난민과 이민의 물결을 반대하는 젊은 세대를 민족주의로 자극하기도 한다. 푸틴의 장기집권과 국영기업의 부패를 폭로하기도 하지만 키로프 주정부 산하 기업의 자산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5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방송인으로 유명한 크세니야 소브착도 젊은 여성 정치 리더로 주목을 받고 있지만 선정적인 리얼리티쇼 진행자 출신에 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을 지낸 아버지가 푸틴의 정치적 멘토로 불리는 인물이라서, 단지 푸틴에 반대하면서 일정한 정치적 지위 상승을 추구할 뿐 나발니 수준의 민주화를 위한 행보를 보인 인물은 아니다. 



 
크로아티아의 사회 사정과 정치 상황도 그 나라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두브로브니크와는 전혀 다르다. 치솟는 실업률에 따른 경제위기는 우파의 정치 영향력을 확대시켰다. 정치, 행정, 그리고 축구에 이르기까지 부패 냄새가 곳곳에 넘쳐난다. 가톨릭 세력도 공공연히 인종 혐오를 앞세운다. 이럴 때 월드컵 준우승의 쾌거는 크로아티아의 정치 선전 도구로 쓰일 수도 있다.

왜 그런가. 우리가 경험적으로도 잘 알고 있지만, 클리포드 기어츠 같은 사람들의 문화적 분석에 의하면 고대의 제의와 주술, 중세의 놀이문화, 그리고 현대의 스포츠 같은 비정치적·비생산적 활동이야말로 오히려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적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올해 초 이 지면에서 권헌익과 장병호의 『극장국가 북한』을 소개하면서 썼듯이, 기어츠가 보기에 닭싸움은 “발리인들이 전력을 다해서 열정적으로 매달리는 대중적인 행사”다. 이를 섬세하게 들여다 보면 열렬한 문화적 행위와 권력의 통치방식 간의 상호작용을 알 수 있다. 그의 표현을 다시 빌리면 오늘날 축구장과 야구장, 골프장과 포커판, 그리고 발리의 닭싸움장에서 숱한 문화적 경쟁이 벌어지는데 “거기서 싸우는 것은 표면적으로만 수탉일 뿐 실제로는 인간”이다. 그리고 그 작동원리와 실제 수행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생중계 화면의 일부 장면만으로 프랑스를 ‘톨레랑스의 나라’라고 곧바로 축하하기 어렵고, 푸틴이 우산을 혼자서 썼다고 해서 러시아의 복잡한 상황을 속단하기도 어렵다. 

그러니 다시 기어츠의 고전 『문화의 해석』을 살피게 된다. 이 책은 기어츠의 주요 논문을 엮은 것이다. 그러나 짚이는 대로 모은 게 아니라, 기어츠 자신이 서문에 썼다시피 “무엇을 해왔는가를 혹은 무엇을 하려고 했었는가를 회고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묶음”으로 “명백하게 문화의 개념에 관련되고 있는 것들만을 이 논문집에 포함”시켰다. 왜냐하면 기어츠는 “경제발전, 사회조직, 비교역사학, 문화생태학 등의 영역에서 상당한 정도의 연구”를 했기 때문에 이 수많은 영역의 중요 논문을 한꺼번에 묶기보다는 “문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생활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그것을 제대로 연구하는 것인가”에 관련된 것만 엮은 것이니 『문화의 해석』이란 제목에 걸맞은 선집이다. 이 서문의 몇몇 대목이 복잡한 사회·문화적 행위를 살펴보려는 독자의 호기심을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한마디 더. 이 책에 수록된 논문 ‘문화 개념이 인간 개념에 미친 영향’에서 기어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 행위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란 “복잡한 것을 단순한 것으로 환원”하는 게 아니라 “잘 이해되지 않는 복잡성을 보다 더 알기 쉬운 복잡성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뭐라구? 아무래도 『문화의 해석』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 이 글은 2018년 7월 30일자 주간경향에 연재된 칼럼으로, 필자의 동의하에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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