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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관행
“우리나라의 삼중수소 배출량이 일본보다 많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지난 8월 3일, 국무조정실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일일 브리핑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의 삼중수소 방출량을 밝혔다. 우리 정부가 발간한 자료집에 국가별 삼중수소 배출 통계가 담겼는데, 일본 배출량은 2019년 데이터를 사용하고, 우리나라 배출량은 2022년 데이터를 사용해 일본 배출량을 축소한 것 아니냐는 언론 지적에 대한 정부 답변이었다.
처음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일본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에 포함된 삼중수소는 미국이나 중국, 한국에서 방류하는 삼중수소의 양보다 적다는 점을 강조했다. 너도나도 바다에 방사성물질을 버리고 있는데, 왜 후쿠시마 오염수만 갖고 문제를 제기하느냐는 것이었다. 2020년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오염수 방류에 대해 “국제 관행에 부합한다”라고 발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핵폐기물을 바다에 버려온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1946년 미국은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약 50km 떨어진 패럴론제도에 핵폐기물을 버렸다. 핵무기 실험실과 각종 연구실에서 나온 핵폐기물이었다. 1970년대까지 이곳에는 약 4만 7,500배럴의 핵폐기물을 버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초기 핵 과학자들에게 ‘바다는 넓은 곳’이었다. 핵폐기물의 위험성은 알고 있었지만, 태평양의 넓은 바닷물에 잘 희석된다면 그 위험성은 크지 않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무엇보다 바다에 핵폐기물을 버리는 것은 간편하고 경제적인 처분방법이었다. 별도의 차폐시설 등을 고려하지 않고 철제 드럼통을 그대로 바다에 던져버리는 방식만큼 쉬운 것은 없었다.
이런 관행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던 ‘핵전쟁 방지 국제의사회IPPNW’와 ‘핵 없는 미래 재단’,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 등은 2020년 《우라늄 아틀라스》를 발간했다. 이 책의 저자들은 IAEA 자료를 종합한 결과 구소련, 영국, 스위스, 미국, 벨기에,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1993년까지 바다에 핵폐기물을 버렸다고 밝혔다. 핵폐기물을 버린 장소로는 대서양과 북극해가 가장 많고, 미국 동부와 서부 해안, 우리나라 동해와 일본 동해, 오호츠크해와 베링해 등 북반부 해안선을 따라 거의 모든 지역에 걸쳐 있다. 이 중에는 중저준위 핵폐기물도 있지만, 핵 추진 잠수함의 원자로나 사용후핵연료도 포함되어 있다. 최소 16기의 핵 추진 잠수함 원자로가 해양투기되었다고 IAEA가 인정했다. IAEA에 보고되지 않은 해양 핵폐기물 투기나 보고는 되었더라도 핵종이나 전체 방사선량을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어서 실제로는 더 많은 해양투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93년 러시아가 백서를 발간하면서 공개된 우리나라 동해 핵폐기물 투기처럼 뒤늦게 해양투기 사실이 알려진 경우도 있다. 구소련은 1960년대부터 우리나라 동해에 액체와 고체 상태의 핵폐기물을 버렸고, 그 양은 2만t 정도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콘크리트나 금속 컨테이너에 둘러싸인 상태로 투기했다고 했지만, 수십 년 이상 바닷물 속에 있으면 이들이 방사성물질을 계속 차폐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동해 핵폐기물 투기에 강력히 항의했던 일본
러시아의 핵폐기물 해양투기가 알려지자 한국과 일본 정부는 강력히 항의했다. 국내에서도 연일 언론보도가 이어지는 등 당시 매우 중요한 환경이슈로 동해 핵폐기물 해양투기 문제가 부각되었다. 하지만 두 나라의 대응은 너무 달랐다. 일본정부는 항의 서한을 내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았다. 1975년 런던협약이 발효되어 고준위 핵폐기물 투기는 금지되었지만, 중저준위 핵폐기물 해양투기는 금지되지 않았다. 중저준위 핵폐기물은 대륙붕이나 내해가 아니어야 하며, 수심이 4,000m 이상이며, 위도가 남북위 50도 이내의 지역에 한해 해양투기할 수 있었다. 일본정부는 이를 개정해서 모든 종류의 핵폐기물 해상투기를 막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그 결과 1993년 6월 런던에서 열린 G7 정상회담 준비회의에서 일본정부는 핵폐기물 해양투기 문제를 의제로 제기했고, 같은 해 11월 열린 런던협약 당사국총회에서 모든 핵폐기물 해양투기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그해 2월 언론보도를 통해 백서의 실체가 드러나고 3월 러시아정부가 백서를 공개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물론 런던협약 개정을 통해 모든 핵폐기물의 해양투기가 금지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일본정부는 수십 년 동안의 관행을 끊고 핵폐기물 해양투기에 대한 국제 여론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은 너무나 미진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런던협약에 가입조차 안된 상황이었다. 동해 핵폐기물 해양투기로 국내 여론이 들끓자, 6월부터 런던협약 가입을 추진했으나, 국내 언론에는 런던협약에 가입하면 매년 200t씩 바다에 버리던 산업폐기물을 못 버려 처분비용이 증가한다고 보도하였다. 또 런던협약 가입으로 국내 핵발전소 액체 핵폐기물을 못 버리게 되는 것 아니냐는 보도에 대해 “그건 상관없다”는 정부의 해명이 이어지기도 했다. 러시아의 해양투기에는 분노하지만, 우리나라의 해양투기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내로남불’식 태도가 있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뒤늦게 시작한 런던협약 가입 절차가 빠르게 진행될 수는 없었다. 국회 동의 등 절차는 지연되었고, 결국 10월 초였던 가입 신청 마감을 지키지 못해 우리나라는 1993년 11월 열리는 당사국총회에 당사국으로서 참석하지 못했다.
전 세계에서 배출되고 있는 (액체·기체) 핵폐기물
마침 올해는 이런 일들이 있은 지 딱 30년이 되는 해이다. 그사이 국제협약은 개정되어 지금은 모든 핵폐기물의 해양투기가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이번 오염수 사태에서 드러나듯 이것으로 완벽하지 않다. 런던협약과 그 개정 의정서에서 핵폐기물의 투기dumping는 금지되어 있지만, 배출discharge은 허용되어 있다. 런던협약이 처음 만들어질 당시부터 주요 쟁점은 선박이나 항공기, 또는 석유시추선 같은 해양 인공구조물에서 폐기물을 바다로 버리는 행위를 막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핵폐기물 드럼통을 바다에 던지는 행위이다. 현재 오염수 방류는 육상시설에서 터널을 통해 바다에 방류하고 있어서 이는 ‘배출’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 일본정부의 논리이다. 더 나아가 이런 행위는 전 세계 핵발전소와 핵재처리시설에서 진행되고 있기에 “모두가 다 하는 행위를 왜 우리만 못하게 하느냐”는 항변까지 함께 하고 있다.
향후 일본정부의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면, 국제사법재판소 등을 통해 오염수 방류 터널이 ‘해양 인공구조물’에 해당하는지 등에 대한 오랜 법정 공방이 이뤄질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현재 국제협약에 이번과 같은 오염수 방류를 막기 위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장 오염수 방류를 막는 것이 우선이겠으나, 과거 일본정부가 국제 여론을 바탕으로 런던협약 개정을 이끌었던 것처럼 전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오염수 방류 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작업이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핵폐기물을 바다에 버리는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이 밝힌 2022년 액체·기체 핵폐기물 배출 현황을 보면, 우리나라 5개 핵발전소 부지에서 지난 1년간 총 388TBq1TBq=1012Bq의 액체·기체 핵폐기물을 배출했다. 이 중 대부분은 삼중수소로 배출량 총 356TBq 중 216.3TBq이 액체였고, 나머지는 기체 상태의 삼중수소였다. 일본정부가 희석을 통해 배출하겠다는 삼중수소의 양이 매년 22TBq 정도이니 삼중수소의 양만 따지면 우리나라에서 배출되는 액체 삼중수소의 양이 훨씬 많다.
물론 핵폐기물을 다룰 때 단순히 방사선량만 따져서는 안된다. 핵종에 따라 반감기가 다르고,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후쿠시마 오염수는 핵연료에 직접 닿은 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액체 핵폐기물보다 더 많은 핵종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쟁점이 되는 삼중수소의 양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의 삼중수소 배출량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특히 경주에 있는 월성 핵발전소는 중수로형으로 다른 발전소에 비해 삼중수소가 더 많이 배출된다. 현재 운영 중인 핵발전소 25기 중 월성의 핵발전소는 단 3기뿐이지만 액체·기체 삼중수소 배출량은 전체의 37.3%나 차지한다. 이처럼 삼중수소 배출량이 많다 보니 인근 지역주민들의 건강에 위협이 된다. 최근 환경부에서 수행한 주민건강영향조사에서 월성 핵발전소 반경 5km 이내 거주 주민의 77.1%의 소변에서 삼중수소가 검출되었다. 또 반경 10km 이내 주민들이 반경 10~20km 이내 주민들보다 암 발생이 1.31배, 갑상샘암이 1.42배 높게 나타난 것은 현재 상태에서도 적지 않은 건강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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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통권 제183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