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동아리에게 묻다
책 읽을 시간을 만들고 독서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마을이, 아니 온 나라가 나서야 가능한 시대에 살면서 10년 20년씩 활동을 이어가는 독서동아리들의 소식을 접하면 의문이 생깁니다. 이들의 자생력과 지속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독서동아리를 지원하는 활동들에 참여하면서 동아리를 하고 있거나 시도해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관심과 지원을 계기로 회원이 늘고 책 읽기가 깊어진 사례도 있었지만, 길게 이어가지 못한 동아리도 보았습니다. 독서동아리를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도 자칫 의존적인 모임이 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독서동아리의 자발성을 위협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지혜를 모아, 주위 사람들과 토론하고 함께 책을 읽는 일이 지역사회에 작은 변화의 토대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독서모임들이 우리 일상의 버팀목으로 늘 가까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질문과 바램을 담아 몇 가지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독서동아리
새로운 커뮤니티의 제안
‘책을 읽거나 토론을 하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 혹은 ‘각종 책모임을 조직하고 기획하는 사람들’의 유무형의 커뮤니티. 사무실이나 대학, 상가나 병원처럼 직장을 포함하여 자주 모일 수 있는 장소에서 같은 관심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점에서 마을 공동체와는 다릅니다. 공간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책꽂이 하나면 시작할 수 있습니다. 『동네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의 저자 이소이 요시미쓰가 말하는 ‘동네도서관’ 프로젝트는 ‘커뮤니티 디자인’이라는 조금 특이한 디자인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접근성과 모임의 규모를 10명 이내의 최소 단위로 정하고 책을 매개로 하는 점을 봐서는 우리가 아는 독서동아리에 가까우며, 폐쇄적이지 않고 강좌나 이벤트를 주체적으로 기획하는 등 교류와 공유를 즐기는 모습에서 열린 공간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임을 하는 위치에 따라 동네도서관@○○가게, 동네도서관@○○치과, 동네도서관@○○건축사, 동네도서관@○○대학처럼 장소를 이름에 넣기도 하고 아이의 이름을 붙이기도 하면서 공간을 내어주고 놀이처럼 만남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일컫는 명칭이기도 합니다.
동네 모임에는 갑작스런 이별로 마음이 무너진 사람, 좀처럼 자신의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가족과 이웃의 손에 이끌려 나오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삶의 터전 바로 그곳에 이들 모임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서로 응원하는 모습들이 사소하고 개인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조직보다 개인의 열정이 크고, 열정으로 자립한 개인의 연대가 사회를 변화시킨다”며 ‘사회적’이나 ‘조직적’이라는 말의 무거움을 가볍게 넘어섭니다. 지금은 개인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더욱 소통하고 싶은 개인의 욕망이 큰 시대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커뮤니티는 개인들이 문을 열고 나오는 다양한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변화하는 커뮤니티의 도구
지난 2년간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는 비대면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내었고 어느덧 익숙해진 자신에게 놀라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독서동아리들이 교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빠른 시기에 메타버스를 경험하게 된 것도 신기한 일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획기적으로 전환된 소통의 도구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지역의 개념도 너와 나의 거리도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더욱 가까워진 것인가요.
한편으로 ‘문화 지체’라로 불리는 현상도 급부상하였습니다. 온라인 플랫폼에 진입하지 못하면 사회적 소통의 장에서 밀려나게 된 것이지요. 디지털 리터러시라는 새로운 문해의 벽 앞에서 생각해 봅니다. 속도와 균형은 어떻게 맞춰나갈 수 있는 것일까요.
여러 해 전 도서관 관계자들과 바다 건너 먼 나라 북유럽의 도서관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도서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도서관, 책보다 사람을 생각하는 도서관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어제 도착한 이민자를 위해 고민하는 도서관’까지. 인종과 국적은 이미 문제의 대상이 아닌 것으로 보였습니다. 존중받아야 할 개인을 위해 도서관이 하는 일은 모두 국가정책이었습니다.
소통의 공간인 것을 보여주는 수많은 ‘커뮤니티 룸’과 열린 공연공간들을 점유하고 있는 수많은 모임들. 인구 만 명 당 한 개관의 도서관 수와 아름다운 건축물로서의 도서관을 가지고 있는 나라. 앞서 말한 ‘동네도서관’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마이크로 라이브러리라면, 북유럽 사람들은 이를 ‘동사형 도서관’이라 부르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중심에 두고 보면 도서관이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모습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도서관이 유연하게 변화하는 커뮤니티를 담아낼 수 있다면 문화 지체를 해결할 사회적 방법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동네 골목과 모퉁이에서 반짝이는 것들
지역의 독서환경이나 독서생태계를 거론하자면, 도서관이 아파트 단지 안에 위치해 있는지 아니면 버스를 갈아타고도 언덕을 한참 올라가야 하는지를 우선 생각하게 됩니다. 이어서 우리 동네 사거리에 있던 서점이 사라지고 휴대폰 가게가 들어섰다는 것도 떠오릅니다.
『노란 불빛의 서점』은 빈센트 반 고흐의 ‘언젠가 저녁 무렵 노랗게 물든 서점을 그려봐야겠다고, 나는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어둠 속 영롱한 빛 같은 풍경을’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샌프란시스코의 히피와 펑크족, 각양각색의 혼혈 가족과 여행객들이 만들어내는 거리 풍경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북스미스’와 비틀스 그룹의 회동 장소로 유명한 50년 역사의 ‘시티 라이츠’ 등 손꼽히는 서점명소들을 소개하며 이런 곳들이 책과 사람으로 이루어진 책의 도시라고 말합니다. 파리의 명물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영화 ‘비포 선셋’에서 작가를 초청해 대담을 나누는 첫 장면으로 길모퉁이 작은 서점은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문화명소가 되었습니다. 오래된 서점과 그곳을 사랑하는 사람들. 평생을 그 공간과 사람들 속에서 살아온 저자는 이 오묘한 분위기를 ‘노란 불빛’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따뜻함, 추억, 그리움, 환상, 은밀함들이 어우러져 뿜어내는 책공간의 아우라에 대한 적절한 묘사인 듯합니다.
유서 깊은 서점들은 이름에서도 그 서점의 역사와 취향을 읽을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어린이도서관이 ‘책을 통한 기쁨’이거나 ‘즐거운 시간’이라는 멋진 이름을 갖고 있는 것에 놀랐던 적이 있는데, 이 책에서 발견한 파리의 ‘찾을 수 없는 책’이라는 서점은 아예 책을 찾는 사람들의 열망을 파는 상점 같았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 서점이나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으로 사회의 문화적 성숙 정도를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독립서점’이라고도 불리는 동네서점들이 골목 어귀에 하나둘 생겨나고 있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색깔과 지역의 특성을 잘 담아 십 년 백 년을 이어 독립적으로 운영해 나갈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독서동아리는 지역을 변화시키는가
민관협력 독서 연대기
관악구에서는 2013년부터 독서동아리 활성화 사업을 추진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관악구 독서동아리들에 대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바에 의하면, 조금 부풀려졌을 수도 있겠지만 동아리가 계속 만들어져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동아리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독서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는 교육을 비롯하여 활동비 지원, 컨설팅, 리더 교육, 독서동아리 한마당 등을 기획하고 꾸준히 진행해 온 것이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치단체의 정책과 예산이 때때로 더욱 위중한 곳으로 사용되기에 중심 정책이 아닌 경우 일관된 방향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치단체와 독서동아리주체들이 민관협력의 기조를 꾸준히 지속하며 독서동아리의 활성화와 활동가의 성장을 도모한 것은 주목할 부분입니다.
2020년 관악구 독서동아리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담은 문집을 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독서동아리가 ‘읽기’에서 말하기와 듣기로, 무게 중심을 ‘소통’으로 이동해 온 것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독서의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독서동아리들의 글쓰기와 문집 제작은 보다 적극적인 소통의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살고 있고 스스로가 살아온 이 장소와 시간을 기억하는 기록의 방식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 치유와 긍정의 시그널을 갖고 있다는 것도 다시 새겨봅니다.
이야기가 시작된 곳을 기억하다
청주의 독서동아리 ‘체홉’은 지역 사람들에게 ‘책 좀 읽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독의 의미가 아니라 ‘제대로 읽는다’는 것이 맞겠습니다.
예전에 이 모임에서 임꺽정 전편읽기를 하면서 책 속의 한 문장, 인물 한 명을 새기며 여정을 따라 걷는 독서를 한 것은 특별한 의미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충북의 괴산에는 저자 홍명희의 생가가 있습니다. 책 속 인물들이 넘나들던 들과 산과 강은 지역 사람들의 집과 가족이 있는 공동의 장소성을 갖습니다. 자신들의 기억을 더해 이야기는 확장됩니다. 하나 더 덧붙여 이들의 걷는 독서행위는 일종의 시위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지역의 작가를 기억하고 그가 전하는 이야기를 우리가 이어가겠노라는 선언 같은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이런 기억을 떠올리는 것도 그들의 의도가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것이겠지요.
이웃과 세대를 잇다
독서동아리 활동사례에는 동네에서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어머니들의 책모임이 꽤 많이 보입니다. 지역 책모임은 육아의 시기에 공통의 관심사와 고립된 환경에 있는 어머니들에게는 쉼터이자 작은 사회의 역할을 합니다. 아이와 함께 읽을 그림책을 추천하기도 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로 대화를 나누며 건강성을 지켜나갑니다. 조금 더 들어가면 이 모임들이 도서관이나 학교에서 지역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나눔 활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아이들이 이웃 어머니들이 읽어주는 그림책을 통해 이야기의 세상을 만났습니다. 북스타트 활동가들의 책모임은 책을 매개로하여 사회적 관계를 이어가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자신의 육아경험과 독서경험을 마을의 초보 양육자들과 나누는 실천적인 독서입니다. 이러한 책모임은 이웃 간에 손을 내밀어 더불어 살아가는 도구로서 작동합니다. 함께 하는 독서의 경험은 시야를 넓히고 귀를 기울이는 태도를 갖게 합니다.
독서동아리 활동은 다양한 형태로 지역사회의 변화에 기여한다는 생각의 중심에는 개인이 있습니다. 개인의 자각이 변화의 시작인 것이지요.
제가 참여한 모임에서는 우리의 이름을 기록집에 남겨 서로 기억해주기로 하였습니다. 지역사회의 변화의 씨앗은, 바로 우리 자신이니까요.
★ 11월 22일에 열린 「2022 사회적 독서 콘퍼런스: 독서동아리와 지역공동체」에서 기조강연으로 발표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