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다. 책 제목에서 말하는 동네는 우리가 아는 마을이 아니고, 도서관은 공공도서관이 아니고 작은도서관과도 조금 다르다. 도서관이라는 복고양식을 요즘 청년들의 사고방식으로 재조명한 현대적인 커뮤니티에 대한 제안이랄까. 저자인 이소이 요시미쓰가 2008년 자신의 고향 오사카에서 시작한 ‘동네도서관’ 프로젝트는 2013년 일본의 ‘올해의 도서관상’과 ‘굿디자인상’을 받았다.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일본의 굿디자인상은 모든 생활분야와 산업분야와 관련된 모든 것을 심사대상으로 한다. 주목할 부분은 ‘공간디자인’이 아니라 ‘커뮤니티 디자인’이라는 점이다. 새로운 발상보다 이를 발견하고 인정하는 안목이 더 신기했다.
저자가 제안하는 도서관은 책을 소장하고 관리하며 이를 이용하는 사람이 있는 도서관이 아니다. ‘책을 읽거나 토론을 하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 혹은 ‘각종 책모임을 조직하고 기획하는 사람들’의 유무형의 커뮤니티 그 자체다. 사무실이나 대학, 상가나 병원처럼 자주 모일 수 있는 장소에서 같은 관심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점에서 마을 공동체와도 다르다. 공간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책꽂이 하나면 시작할 수 있다고 하니 아주 가벼운 도서관이라고 짐작이 됐다.
개인의 시대, 세계는 개인에서 시작된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쉽게 시작할 수 있다. 함께 읽거나 소개하고 싶은 책은 각자 가져온다. 서로 교환하기도 하고 책꽂이에 꽂아 놓고 돌려보기도 한다. 모임의 규모를 10명 이내의 최소 단위로 정하고 있는 점을 봐서는 언뜻 독서동아리를 떠올리기도 했는데, 폐쇄적이지 않고 강좌나 이벤트를 기획하는 등 교류와 공유를 즐기는 모습에서 열린 공간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엿보였다.
저자는 동네도서관@○○가게, 동네도서관@○○치과, 동네도서관@○○건축사, 동네도서관@○○대학처럼 장소를 이름에 넣기도 하고 아내나 아이의 이름을 붙이기도 하면서 공간을 내어주고 놀이처럼 만남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마이크로 라이브러리 네트워크’를 만들어 경험을 나누고 서로 응원하는 모습들이 익숙한 듯하면서도 시작과 과정이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점은 우리와 조금 다르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저자는 “조직보다 개인의 열정이 크고, 열정으로 자립한 개인의 연대가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말로 나의 우려와 머뭇거림을 가볍게 넘어섰다. 그의 말처럼 지금은 개인의 시대다. 그래서 더욱 소통하고 싶은 개인의 욕망이 큰 시대다.
지난달에 북유럽의 도서관을 탐방할 기회가 있어 열흘 동안 도서관 관계자들과 바다 건너 먼 나라를 방문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도서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도서관, 책보다 사람을 생각하는 도서관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어제 도착한 이민자를 위해 고민하는 도서관’까지. 인종과 국적은 이미 문제의 대상이 아니었다. 존중받아야 할 개인을 위한 도서관은 국가 정책이었다. 짊어지고 갈 수 있을 만큼 책을 빌릴 수 있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소통의 공간인 것을 보여주는 수많은 ‘커뮤니티 룸’과 열린 공연공간들을 점유하고 있는 수많은 모임들. 인구 만 명 당 한 개관의 도서관 수와 아름다운 건축물로서의 도서관을 가지고 있는 나라. 북유럽사람들에게 익숙한 ‘동사형 도서관’은, 일본의 ‘동네도서관프로젝트’보다 훨씬 낯선 용어이자 풍경이었다. 하지만 공통으로 이들이 보여주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 아닌가. 북유럽국가의 국민들은 도서관에서 해법을 찾으며 세계에서 살기 좋은 복지국가를 만들어냈고, 저자가 시도해 온 일본의 동네도서관프로젝트는 개인의 배움과 소통에 대한 욕구를 소박하게 담아내면서 시대를 디자인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동네도서관은 어디서나 시작할 수 있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찾기 쉬운 시스템이다. 앞으로도 이 활동에 참가하는 사람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수만큼 새로운 동네 도서관이 탄생한다. 자신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고, 그것을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 ‘메시지의 캐치볼’이 시작되는 것이다. 동네도서관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마이크로 라이브러리다”라는 저자의 이야기는 사람을 중심에 둔 도서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 동네 작은 도서관들의 시작도 다르지 않다. 공간을 열어 사람을 만나고 싶은 사람, 작은 배움을 이어가는 사람, 취미가 같은 사람, 마음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 친구를 사귀고 싶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이유로 만나 소중한 공간으로 키워가는 곳이다. 이렇게 개인들의 열정으로 꾸려가는 작은 책공간들이지만 이들이 연대하면 폭력과 테러에 몸서리치는 세상도 바꿀 수 있다니 해볼 만한 일이다.(*)
★ 본 기고글은 충북인뉴스에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서, 필자의 동의 아래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