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나이
장병만 씨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아무래도 그해 6월의, 사람들이 흔히 ‘6월항쟁’이라고 말하고 ‘민주화 대투쟁’이라고도 부르는 그 거대한 소용돌이와 열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장병만 씨와 내가 처음 만난 것이 바로 그해 6월 어느날, 소위 닭장차라고 불리는 경찰 호송 버스 안에서였기 때문이다.
그해 6월 어느 날이라고 했지만,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날은 바로 그 유명한 ‘6·10대회’를 며칠 앞둔 날로 거리의 분위기가 대단히 뒤숭숭하던 무렵으로 기억한다. 장병만 씨와 내가 하필이면 경찰 호송 버스 안에서, 그것도 무차별로 쏟아지는 사복 경찰의 발길질과 주먹세례 아래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으니 인연치고는 기구한 인연이라 할 것이다. 어쨌든 그와 내가 첫 대면하게 된 상황이 좀 별난 만큼, 그 앞뒤의 사정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시위 가담자로 경찰에 강제 연행된 것은 그날 오후 명동 입구의 코스모스백화점 부근에서였다. 사건의 발단은 내가 우연한 일로 그곳을 지나가다 마침 대학생들이 기습 시위를 감행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날 오후 백화점 앞 지하도를 막 빠져나오던 나는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고 걸음을 멈추었는데,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인파로 가득 메워진 주말의 명동 거리에 웬일인지 심상찮은 긴장감 같은 것이 감돌고 있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걸음을 멈춘 채 길 건너편의 롯데백화점 쪽을 바라보는 광경이었다. 길 건너편 백화점 앞은 주말의 흥청거리는 인파로 가득했을 뿐 얼른 보기에는 뭐 별다른 일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좀더 눈여겨본즉 백화점 건물 옆에 일단의 전투경찰들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거리에서 전경들을 만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지만, 거의 1개 중대 병력의 경찰들이 백화점 앞을 지키고 있는 것이나 또 사람들이 한결같이 고개를 빼고 그쪽을 지켜보고 서 있다는 것은 분명 뭔가 심상찮은 일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나는 내 곁에 선, 반팔 와이셔츠와 넥타이 차림의 삼십대 셀러리맨인 듯한 사내에게 물었으나, 그는 경계심 어린 시선으로 나를 훑어보며 그저 “글쎄요”라고만 대답할 뿐이었다. 그때 바로 내 뒤쪽에서 누군가의 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민 여러분, 7시 정각에 학생들이 롯데백화점 앞에서 독재 타도를 위한 가두 투쟁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애국 시민 여러분, 함께 떨쳐 일어나 살인 고문 자행하며 민중을 탄압하는 저 군부 파쇼 일당을 타도합시다!”
고개를 돌려보았더니, 그 목소리의 임자는 앳된 얼굴의 대학생이었다. 그는 자신의 얼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당차고 선동적인 목소리로 재빨리 말하고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서둘러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바야흐로 거의 7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학생들의 시위 계획은 이미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 같았다. 그 기습 시위의 정보를 입수한 경찰이 미리 시위 예정 장소를 점거한 채 철통같이 지키는 중이니 아무리 겁이 없다는 이 시대의 대학생들이라 할지라도 거의 가망이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자리를 얼른 떠날 수가 없었다. 학생들이 과연 약속을 지키고 그 시간에 나타날까 하는 궁금증과 어쩌면 시민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 있으니 뭔가 감동적이고 극적인 장면, 이를테면 시민들이 일시에 모두 호응해서 시위에 가담하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막연하고 헛된 기대에 불과했지만, 그러나 나는 그 헛된 기대나마 붙들고 있고 싶었던 것이다. 아마 그 자리에 모여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야, 왔다!”
그들이 나타난 것은 저 아래쪽 을지로 입구의 네거리 부근이었다. 먼발치에서도 학생들이 차도 가운데로 뛰어들어 이쪽을 향해 주먹을 쳐들며 무엇인가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네댓 명에 불과했지만, 거리를 가득 메운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데는 충분했다. 물밀 듯이 질주해 가던 차량들의 행렬이 갑자기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그 순간 나는 시계를 보았는데 정확히 7시 정각이었다. 이 살벌한 경찰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정확히 시간을 지켜 나타나주었던 것이다.
롯데백화점 앞에 도열해 있던 사복 경찰들이 그쪽을 향해 돌진해 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길 연도에 모여 서 있던 시민들 속에서 ‘우우’ 야유에 찬 함성이 터져 나왔고, 뒤이어 사람들 속에서 ‘우우’ 야유에 찬 함성이 터져 나왔고, 뒤이어 사람들 틈에 섞여 있던 대학생들이 먼저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
시민 몇 사람이 그 구호를 따라 외치기 시작했고, 곧장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갔다. 그것은 확실히 전에 볼 수 없던 광경이었다. 소위 선량하고 말 없는 다수가 마침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집단 속에서 사람들은 얼마든지 용감해질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방패막이로 삼으면서 구호를 외치고 경찰에 야유를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경찰이 다가오면 다시 선량하고 말 없는 다수 속에 섞여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나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시민들의 호응이 예상 외로 커지자, 길 건너편에 있던 경찰들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헬멧을 뒤집어쓰고 방독 마스크까지 한 사복 경찰들이었다. 그들이 가까워오자, 학생들은 재빨리 모습을 감추었고, 일반 시민들 역시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거나 내가 언제 구호를 외쳤냐는 듯한 표정으로 시치미를 떼고 입을 다물었다. 나 또한 말 없는 선량한 시민 같은 표정을 꾸미고서 어서 그들이 지나쳐 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마악 내 앞을 지나쳐 가는가 싶던 그 사복 경찰 중 한 명이 갑자기 내게로 돌아서더니 “이 새끼 잡았다!”라고 벼락같이 소리치며 내 멱살을 틀어쥐는 것이었다. 아마 그들은 길 건너편에서부터 내가 손뼉을 치고 대학생들을 성원하는 모습을 보고 미리 나를 점찍어두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아니 이거 왜 이래요? 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이러는 거요?”
당연히 나는 반항을 하였지만,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질질 끌다시피 하며 길가에 세워둔 경찰 버스 쪽으로 끌고 갔다.
“놓아주세요. 왜 선량한 시민을 강제로 끌고 가는 겁니까?”
나는 온몸으로 버티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주위의 시민들에게 이 억울하고 기가 막힌 상황을 호소하려고 둘러보았으나 이미 내 몸은 체구가 우람한 수십 명의 사복 경찰들로 겹겹이 둘러싸여 시야가 차단되어 있을 뿐이었다.
“시민 여러분, 이럴 수가 있는 겁니까? 법치국가에서 경찰이 무고한 시민을 이런 식으로……”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소리쳤다. 그러면서도 그 순간 내가 하고 있는 저항이라는 것이 지극히 부질없는 짓임을 나 자신이 너무나 똑똑히 느낄 수가 있었다. ‘법치국가’니 ‘무고한 시민’이니 하는 말들이 내 귀에조차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운 말로 들렸을 정도였다. 내가 저항을 계속하자 갑자기 몇 걸음 저쪽에 있던 또 다른 헬멧이 몸을 날리듯 달려들더니 구둣발로 내 사타구니를 여지없이 걷어찼다. 급소를 강타당한 나는 순간 격심하나 고통과 함께 땅바닥에 축 늘어지고 말았다. 나중에 어느 대학생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그와 같이 급소를 발로 차는 것은 시위 가담자의 체포를 주 임무로 하는 소위 백골단의 상투적인 수법이라는 것이었다. 시위 현장에서 학생들을 붙잡을 때 반항을 하거나 도망치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 일단 그렇게 신체의 가장 예민하고 취약한 부위를 걷어차놓고 본다는 것인데, 그 말대로라면 그 수법은 내게 여지없이 적중한 셈이었다. 나는 더 이상 반항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참을 수 없는 고통 때문에 땅바닥에 반쯤 널브러진 채 몸을 비비 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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