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20세기가 금지한 음악
21세기에 접어들고 20년이 지난 시점, 워싱턴 D. C.의 ‘연방정부 건물 재미화再美化 사업’이라는 대통령령이 발표되었다. 새로 짓는 미국 연방정부 건물은 고대 로마의 건축 양식을 ‘디폴트 스타일’로 하라는 명령이었다. 세간의 예상대로, 이 대통령령을 접한 사람들은 대거 분노했고 미국의 보수층공화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진보층민주당과 이른바 혁신주의자들 사이에 가상의 전선戰線이 형성되었다. 역시 세간의 예상대로, 2021년 2월 24일 취임한 지 고작 5주밖에 안 된 민주당 출신 신임 대통령 조 바이든은 1년 전 발표된 대통령령을 철회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명령을 뒷받침하는 당위는 아름다움이었다. 그들은 일관성 유지와 과거 전통을 참조하는 방식으로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소동은 예술과 음악의 역사에서 가장 논쟁적이고 모순적인, 그러나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고 있는 시기를 떠오르게 한다. 바로 2차 대전 후 유럽의 비非나치화 과정과 뒤이은 냉전의 시대, 그리고 미 공화당 행정부가 아방가르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던 시기 말이다. 소비에트가 정책적으로 아방가르드를 배척한 데 맞서 미국 정부는 아방가르드라는 매우 낯선 예술 양식을 내세워 미국은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임을 천명했다. 소비에트는 구상주의적 시각 예술과 조성 체계의 오랜 전통을 따르는 음악만을 인정했다. 다시 말해 사과를 그린 그림은 사과처럼 보여야 했고, 음악 또한 첨예한 갈등과 시비를 걸어오는 듯한 도발성으로 가득할지라도 반드시 희망찬 승리로 마무리되어야만 했다. 소비에트 음악은 대중이 듣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특히 중요했다. 한편 무솔리니 정권과 히틀러 정권이 매우 유사하게 반反실험적인 예술론과 미학론을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미군정은 전쟁 기간 동안 비조성 음악을 쓴 사람은 당연히 나치도 아니요, 파시스트도 아닐 거라고 믿었다. 이렇게 작곡가들은 요상한 면죄부를 얻었다. 정책이 초래한 예상치 못한 결과도 있었다. (이런 표현이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으나) 비非아방가르드 클래식 음악―전통적인 교향곡, 오페라, 실내악―을 쓴 작곡가는 자신이 나치나 파시스트와는 무관하다는 결백을 따로 입증해야만 했다.
냉전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전통주의를 추종하는 소비에트와 급진적으로 새롭고 도전적이며 인습 타파적인 것―음악에서 아름다움은 부적절하며 천박하다고 보는 시각―을 껴안은 서방 세계가 맞붙은 싸움터가 되었다. 그러나 ‘새롭다’는 개념은 1909년 발표된 『미래파 선언』에서 비롯된 이론에 근거하고 있었다. 대중이 새로운 음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신경 쓸 것 없다. 그건 1910년대에도, 1960년대에도, 그리고 말이야 바른 말이지 2020년대에도 마찬가지니까. 동시대 음악에 대한 관점은 예나 지금이나 철학 투쟁이자 정치 투쟁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음악과 예술은 늘 어느 정도 정치의 졸병 노릇을 해왔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왕과 교황의 노리개였던 것이다. 잘츠부르크 대주교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좋아하다가 어느 날 돌연 마음을 바꾸었다. 대중은 언제나 그들만의 노래와 춤을 가지고 있었고, 지배층 역시 그들만의 노래와 춤을 즐겼다. 그러다 간혹 대중의 여흥과 지배자의 여흥이 교차할 때도 있긴 했다. 조지 2세가 1749년 런던의 인기 작곡가 조지 프리데릭 헨델에게 의뢰한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이 바로 그랬다.
건축은 음악과 비슷한 면이 있다일부 그렇다는 말이지 전적으로 그렇다는 건 아니다. 건축도 음악도 우리는 시간을 통해 경험한다. 생래적으로 구조를 중시한다는 점도 양자의 공통점이다. 다만 음악의 구조는 시간에 의존하며 눈으로 볼 수 없다. 건물은 대기 중에 노출되어 풍화의 과정을 거치고 때로는 파손과 폭발이 일어나기도 해서 세월이 지나면 변하기 마련이다. 음악은 침묵하게 하면 사라진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이는 공공연한 행위인 경우도 있고 그저 흥미가 없어서 그렇게 되기도 한다. 제아무리 훌륭한 건축적 성취라 하더라도 급변하지 말란 법은 없다. 이를테면 6세기에 가톨릭 성당으로 지어졌으나 한 세기 후 종과 제대를 내버리고 기독교 모자이크화 위에 회칠을 덮고 외부에 미나레트첨탑를 세워 모스크로 바꾼 사례도 있지 않은가.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는 1935년 일반 박물관으로 용도가 변경되었다가 2020년에는 다시 모스크로 분류되었다. 그러니 앞으로도 건축상의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음악은 존재하기 위해 반복되지 않을 수 없으므로 항상 변화의 상태 속에 놓여 있다. 설령 그 반복이 음반에 의한 정확한 반복이라손 치더라도 그에 대한 인식만큼은 같지 않을 것이다. 그걸 듣는 사람이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기에 해석이 전과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은행, 교회, 학교 건물의 외관을 보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의 낌새를 알아차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 정도면 될 일을 도발적인 행정 명령까지 발동할 필요가 있을까. 상식적으로 처리하면 될 일 같은데 말이다. 고대 로마를 참조한 현대 건물은 우리의 집단적 기대에 관해 뭔가를 “말하는” 셈이다. 『뉴욕 타임스』 사설 제목의 문구를 빌려 말하자면, 미국 문화와 세계 문화의 상당 부분이 뿌리를 두고 있는 유럽 문화는 “가짜 로마 사원”으로 가득하다.
이미 워싱턴 D. C.의 많은 관공서 건물이 로마 건축물을 본떠 지었다.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문도 그러하고 파리의 개선문도 마찬가지다. 이런 건물들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절에 지어진 게 아닐 테니 전부 다 가짜라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미국 수도의 정부 건물도, 브란덴부르크문도, 개선문도 저들이 지어지던 당시 사람들이 건축물에 기대하던 바에 대해 저마다 뭔가를 말하고 있다. 게다가 에펠탑이나 바르셀로나에 있는 안토니오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정 성당, 빌바오에 있는 프랭크 게리의 구겐하임 미술관 같은 급진적인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이들 모두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상징인 점도 틀림없다. 반드시 보수 대 현대의 대립일 필요는 없다.
로마 제국의 건축물 중 상당수 역시 엄밀히 말하자면 가짜였다. 고대 로마인들은 이미 기원전 200년경 콘크리트 제작 기법을 완성했고, 따라서 건물을 떠받치는 기둥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음에도 그리스 건축의 ‘외관’을 고수했다. 그러니까 저 인상적인 로마 기둥은 그저 장식에 불과한 셈이다. 이러한 가짜배기 건축적 표현은 사람들에게 국가의 저변에 깔린 힘, 승리감, 안정감 등을 느끼게 해주는 구체적 매개였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