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세이도서점의 아저씨들
책거리 오픈일은 2015년 7월 7일. 점포를 얻어 실내 공사를 그해 5월 말부터 시작하였다. 책장이나 카페용 테이블은 한국에서 직접 제작해서 조립만 하면 되었지만 주방을 새롭게 내고 조명을 설치하는 일, 무엇보다 입구에서부터 동선에 맞춰 어떤 책을 배열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물론 책장을 설계할 때부터 어느 책장에 무슨 책을 배열할지는 염두에 두었지만 실제로 책들을 꽂아보니 왠지 어색하고 안정적이지 않았다. 책을 꽂았다 뺐다 하며 처음부터 다시 작업해야 했다. 좁은 공간이다보니 어떤 책을 들여놓았는가 하는 큐레이션도 중요하지만 어떤 순서로 책을 배열하는가도 중요했다. 손님이 원하는 책을 찾은 후 그 옆에 있는 책들에게도 눈길이 가도록 만들 궁리가 필요한데, 정답이 따로 없는 일이라 감각에 의존해 동작을 반복해야 하니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도 쉬 지쳤다.
우선 책방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곧바로 내가 운영하는 쿠온CUON 출판사에서 만든 책이 보이게 하고, 그다음 한국에서 들어온 책들을 표지가 보이게 꽂아두었다. 반대편에는 그림책을, 역시 표지가 보이게 진열했다. 본격적으로 책장이 시작되는 곳에는 한국어 원서와 일본어판을 나란히 두었다. 그 부분 책장은 아랫단을 넓게 만들어 그곳에 문구와 잡화를 놓았다. (책방을 오픈하고 나서야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손님들이 책장보다 그곳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었다.) 다음 책장에는 인문, 역사서, 소설, 에세이, 시집, 일러스트에세이를, 그다음에는 만화, 그림책, 전집류, 사진집, 영화, 미술, 음악 관련 서적, 한국어 학습서, 마지막으로 번역에 관한 서적 순서가 되도록 코너를 꾸렸다. 이렇게 되기까지 수도 없는 시행착오가 있었다. 책방이 오픈하기 전이라 스태프들이 없는 상태에서 나 홀로 분투가 매일같이 이어졌다.
그날도 한밤이 될 때까지 혼자서 작업하고는 책방 안쪽의 출판 업무를 보는 곳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창문을 활짝 열자 초여름의 비릿한 바람 냄새가 훅 들어왔다. 그리고 갑자기 “곤방와” 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책거리는 3층이고 창문 밖으로 맞은편 건물이 꽤 가깝게 붙어 있긴 하지만 거기는 창이 없는 옥상 공간인데……. 밤 10시가 넘어선 시간. ‘곤방와’라는 저녁 인사는 시간상 맞는 인사지만 설마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기에 공포심이 확 들었다. 놀란 모습이 상대에게도 보였는지 그는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잇세이도서점의 사카이입니다”라고 인사해왔다.
잇세이도서점은 책거리의 바로 옆 건물에 자리한 고서점이다. 진보초에서 보기 드문 석조건물로 양서와 화서和書를 같이 취급하는 서점이다. 개업한 지 120년이 넘어 진보초 고서점가를 빛내는 곳이기도 하다. 돌기둥이 웅장해서 그 앞을 지날 때면 괜스레 위축되곤 했는데, 그 잇세이도의 사카이씨라니. 사카이씨는 잇세이도서점의 3대째 주인으로 진보초 근처인 오차노미즈 쪽에 살아서 종종 늦게까지 남아 서점 일을 한다고 말했다. 초창기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직원들끼리 같은 건물에서 숙식하면서 일하기도 했단다.
잇세이도서점의 기역 자 건물은 서점과 창고로 나뉘는데, 우리 책방 안쪽에서 보이는 것이 창고 부분의 옥상이었고 그곳은 알고 보니 사카이씨의 정원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각종 식물들을 가꾸고 있었는데, 낮에 다시 보니 키가 큰 벤자민나무며 고무나무의 잎들이 햇살을 받아검게 빛나고 있었고 심지어 토마토도 긴 화분 가득 줄지어 심어져 있었다. 그는 옥상으로 나와 낮에는 긴 호스로 식물들에게 물을 주었고 밤에는 담배를 피웠다. 처음 인사를 나눈 뒤부터는 무서워하지 않고 틈틈이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어느 날 햇볕이 좋은 오후였다. 역시 창문을 열고 일하는데 사카이씨가 옥상에서 나를 불렀다.
“김상, 블루베리가 잘 익었어요. 나눠줄게요!”
그러면서 블루베리를 내 손에 쥐여주었다.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 이런 멋진 이웃이 있다니.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 비유가 아니라 실제다.
참고로 일본의 가게는 사장과 마스터가 나뉜 곳이 있다. 마스터가 곧 사장인 경우가 많지만 매니저나 점장 같은 직원인 경우도 있다. 잇세이도서점은 후자로, 마스터는 마키타씨다. 매일 아침 책방 앞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해주신다. 진보초에 처음 왔을 때 이분이 사장인 줄 알았는데 직원으로 50년 넘게 일하는 중이라고 하셨다. 책거리를 못 찾고 헤매는 손님들은 어김없이 잇세이도서점의 인상 좋은 마키타씨에게 위치를 묻고, 이 사람 좋은 아저씨는 군소리 없이 책거리를 안내해주신다. 책거리 웹사이트도 체크하시는지 우리가 최근 무슨 이벤트를 열었고 어느 매체와 인터뷰를 했는지도 다 꿰고 계신다. 아침 인사 나누면서 아는 척해주시는 이 아저씨가 실은 항상 고맙다. 책거리가 잘 굴러가는 것에는 이 잇세이도서점 아저씨들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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