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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지와 친해지게 된 계기는 닮은 외모였다. 면역력을 높이는 데 고강도 운동이 좋다고 하기에 큰맘 먹고 크로스핏을 등록하러 갔다. 그런데 바로 앞에 등록한 사람 이름이 하필 이맹지였고 나는 그 이름을 보고 작게 웃었다. 그러자 팔뚝이 두꺼운 관장이 맹지의 이름과 나를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오, 그러고 보니 닮았네요. 석주씨하고. 정말 헷갈렸는지 그날 이후로 체육관 선생님들은 자연스럽게 나와 맹지의 이름을 바꿔 불렀다. 맹지씨,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맹지씨, 자주 나와야죠. 석주씨는 일주일에 세 번씩 나와요. 그들은 나와 맹지의 이름을 무려 한 달 동안이나 바꿔 불렀다. 그 한 달 동안 나도 맹지도 구태여 그것을 정정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내 나름대로 버피 테스트 최고 기록을 찍은 후에야(물론 다른 수강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지경으로 처참한 성적이었지만) 선생님이 보드에 적은 맹지라는 이름을 지우고 내 이름을 적었다. 딱 한 달 만이었다. 부러 아주 천천히 글자를 써내려갔다. ㅅㅓㄱㅈ…… 선생님은 내 이름을 빤히 보더니 급히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던 중 회원님, 으로 시작하는 장문의 사과 메시지를 받았다.
자세가 너무 똑같은 거예요. 마스크도 썼는데 하필이면 머리 길이도 비슷해서. 사실 기분이 아주 나빴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처음으로 맹지와 같이 운동을 하게 된 날에는 살짝 안 좋을 뻔했지만. 왜냐하면 내가 봐도 맹지의 스쾃 자세가 형편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자세는 맹지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는데 하필이면 선생님이 나와 맹지를 한 팀으로 짝지어줬다. 우리는 남들이 하는 스쾃 개수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턱걸이도 못했다. 발목이 불안정해 박스 점프도 못했다. 우리는 주어진 오십 분 동안 비칠거리며 스쾃을 몇 개 해내고 턱걸이 대신 봉에 걸린 운동용 고무줄로 등 운동을 했다. 그리고 박스 대신 벤치프레스용 플레이트 위로 낮게 점프하고 내려오길 반복했다.
너 나 할 것 없이 땀이 뚝뚝 떨어지는 와중에 먼저 말을 건 이는 맹지였다. 어디 사세요? 내가 이 근처에 산다고 하자 자기도 이 근처에 살고 있다고 했다. 같이 운동해요. 맹지가 그렇게 제안하며 내 번호를 물었다. 그렇게 우리는 운동은 별로 안 하고 밥 먹고 술 먹고 PC방이나 가는 사이가 되었다. 맹지는 십 킬로그램을 감량하기 위해 크로스핏을 시작했다고 했다. 십 킬로? 내가 되묻자 맹지는 우물쭈물하면서 그렇다고 했지만 김치찌개 먹을 때는 밥을 두 공기나 먹었다. 그러더니 소주를 한 병 반쯤 비웠을 때 슬그머니 고백했다. 남친이 뺐으면 좋겠다고 해서.
나는 그 순간 이 여자는 다시 보긴 어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2차로 〈오버워치〉를 하러 PC방에 함께 가면서 마음을 바꿨다. 함께 소주를 먹고 〈오버워치〉를 할 수 있는 삼십대 친구는 만나기 쉽지 않았다. 우리는 그날 밤 집에 잘 들어갔냐는 카톡으로 시작해서 서로에게 모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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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왕 맹지는 밥을 먹고 주로 커다란 아파트 단지(물론 우리는 이곳에 살지 않았다) 뒤에 조성되어 있는 산책로를 걸었다. 산책로는 안산과 이어져 있었다. 우리는 안산에 오르기 직전까지만 걷다가 되돌아오길 반복했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늦깎이 의대생인 맹지의 애인이 매일 졸음을 쫓기 위해 물파스를 눈 밑에 바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눈 밑에 물파스 바르는 사람 좋아해? 내가 묻자 맹지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근데 얘 말고 다른 남자가 없어.
“너 남자 없이 못 사냐?”
“어, 나 못 사는 거 같아.”
“질린다, 진짜.”
“넌 살아?”
“난 살고 있어.”
“살아서 뭐해.”
“그냥 사는 거지.”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엄청 많을걸. 너 좋아하는 사람. 그러자 맹지가 눈을 빛내며 왜? 하고 물어왔다. 네가 날 닮았잖아.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앞질러 걸어갔다. 그리고 정자에 앉아 유튜브를 켰다. 이거 봐봐. 이걸 하면 자신감이 생긴대.
내가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온라인 교육 플랫폼 회사는 카테고리별로 여러 강의를 송출했다. 그 강의를 전부 검수하여 편집점을 찾아내는 게 나의 주요 업무였다. 사주 풀이나 창작 교실과 같이 재미있는 강의도 많았고 타 플랫폼에 비해 퀄리티도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묘하게 다른 나라를 비난하거나 인종차별의 소지가 있는 내용이 더러 눈에 띄어 송출 전에 잡아낸 적도 있었다.
사장은 내가 그런 부분에서 예리하다며 좋아했다. 요즘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시대라서 이런 것들은 기민하게 캐치해 사전에 전부 편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들을 초 단위로 표시해둔 뒤 맥락 전부를 문서에 기록하고 특히 문제 될 여지가 있는 대사를 빨간색으로 표시해 두었다.
― 허대리님. 이거 나 페미 같아요?
― 그 정도는 아니에요.
― 이 부분은요?
― 팀장님께 물어봐야 할 듯.
그즈음 내가 상사와 나눈 카톡 대화는 거의 이랬다. 특정 강사들은 성차별적 언사가 유독 두드러졌다. 특히 정신분석이 가볍게 다뤄지는 강의에서 그런 태도가 많이 나타났다. 나는 일을 하면서 문득 내가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는데, 분명 문제인 것 같지만 문제라고 말하는 게 더 문제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장이 예리하다고 칭찬까지 해준 마당에. 그때 우연히 본 게 자신감 훈련에 관한 유튜브 영상이었다.
“이걸 하라고? 지금?”
“응, 이렇게 손을 뻗어서.”
정자에 눕듯이 앉아 있는 맹지에게 직접 시범을 보여주었다. 팔을 쭉 뻗어서 비행기 자세를 하고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웃기 시작하면서 무릎을 펴며 빠르게 걸었다. 그렇게 비행고도가 올라갈수록 더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그리고 다시 무릎을 굽히며 내려가면서는 웃음소리를 점점 죽였다. 그걸 몇 번 반복했다.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흘긋거렸다. 나는 그들을 애써 무시하려고 노력했다. 맹지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난 못 해. 나는 앉아 있는 맹지를 일으켰다. 맹지는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 실랑이하면서 깔깔거렸다. 아, 알았어. 하면 되잖아. 맹지가 양팔을 쭉 뻗었다. 그러더니 꽤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비행기 탈 준비를 하는 맹지의 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귀여운 녀석. 맹지는 하얗고 이마가 동그랬다. 나도 하얗고 이마가 동그랬다. 하얗고 이마가 동그란 사람은 운동을 못하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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