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나를 이슈메일이라고 해두자.”
이 말은 문학계에서는 매우 유명한 첫 문장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나는 오랫동안 《모비 딕》을 읽지 않았다.
《모비 딕》은 읽지 않으면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오래전에 읽었어야 할 책의 범주에 있으면서도 좀처럼 끌리지 않았다. 내가 읽은 책 중 최악의 책으로 기억될까 봐 두려움이 앞섰던 이유도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다행히도 나는 그 책에 과감히 도전했고, 그 도전은 나의 인생을 바꿔버렸다. 나는 《모비 딕》을 읽으며 수학과 문학 사이의 연결고리를 탐구할 수 있었고, 그 결과는 이 책으로 이어졌다.
이 모든 것은 《모비 딕》에 사이클로이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동료 수학자의 말을 우연히 들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사이클로이드는 직선 위로 원을 굴렸을 때 원 위의 정점이 그리는 곡선으로, 아름다운 수학적 곡선이라고 할 수 있다.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그 곡선에 매료되어 사이클로이드를 떠올리면 극심한 치통도 잊을 수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 곡선이 고래 사냥에 응용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나는 호기심이 생겼고, 이 위대한 소설을 드디어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디 딕》에 가득 찬 수학적 비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멜빌의 책은 읽을수록 나에게 커다란 수학적 기쁨을 안겨주었다. 이후 나는 멜빌뿐만 아니라 레오 톨스토이는 미적분학, 제임스 조이스는 기하학을 다룬 글을 썼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서 코난 도일이나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Chimamanda Ngozi Adichie처럼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작가들의 작품에도 수학자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쥬라기 공원》의 기초가 되는 프랙털 구조나 다양한 형태의 시에서 발견되는 대수 원리는 또 어떠한가? 문학 작품에서 언급되는 수학의 예는 기원전 414년에 초연된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의 희극 〈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특정 장르나 작가의 수학적 측면을 다루는 학술 연구는 더러 있었지만 그 수는 현저히 적었고 내가 보기에 수학을 향한 친밀감이 너무나도 분명한 멜빌의 작품과 수학에 대한 논문도 소수에 불과했다. 수학과 문학 사이의 관련성은 마땅한 관심을 끌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목표는 수학과 문학이 불가분하게 그리고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연결고리들을 이해하면 두 분야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한층 풍성해질 수 있음을 깨닫게 도와주는 것이다.
시집 《루바이야트》의 저자로 알려진 11세기의 페르시아 학자 오마르 하이얌현대 학자들은 《루바이야트》가 여러 작가의 합작품이라고 보고 있다.은 수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400년이 지난 후에야 온전한 대수학 해법이 밝혀진 수학 문제에 대한 아름다운 기하학적 해법을 만들어낸 사람이다. 《캔터베리 이야기》를 쓴 14세기의 작가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는 천체 관측 기구 아스트롤라베에 관한 논문을 쓰기도 했다. 수학자이면서 작가였던 루이스 캐럴을 비롯하여 이러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이러한 연관성 외에도 문학에서 수학을 찾는 것에는 더 심오한 이유가 있다. 우주는 기본적인 구조와 패턴 그리고 규칙성으로 가득 차 있고, 수학은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다. 수학은 종종 우주의 언어라고도 불리며 과학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인간도 우주의 일부다. 그만큼 창의적 표현의 형태, 그중에서도 문학에 패턴과 구조의 성향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수학은 문학을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열쇠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수학자로서 그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나는 수학자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하기 전부터 패턴을 좋아했고, 그것이 단어든 숫자든 모양이든 상관없었다. 성장하면서 내가 수학자가 되리라는 것은 점점 더 분명해졌다. 그런데 수십 년간 영국의 교육제도에서 수학은 인문학과는 거리가 먼 과학 분야로만 취급받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영어 수업을 들었던 것은 1991년이었는데, 선생님은 내가 좋아할 만한 책들을 잔뜩 적은 멋진 손 편지를 건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널 실험실에 빼앗기게 되어 유감이다.”
그런 말을 듣자 나 역시 길을 잃은 것 같아 유감스러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길을 잃지 않았다. 한 분야를 선택해야 한다고 해서 다른 길을 잃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언어를 사랑하고, 단어가 서로 맞물려가는 방식을 사랑한다. 문학이 수학처럼 상상의 세계에서 한계를 창조하고, 언어를 요리조리 가지고 놀고, 끝없이 시험하는 방식을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수학을 공부하기 위해 옥스퍼드로 향했다. 그리고 내 어린 시절 문학 영웅이었던 C. S. 루이스와 J. R. R. 톨킨이 매주 만나 그들의 작품을 논의하던 술집에서 한 블록 떨어진 거리에 살게 되어 매우 기뻤다. 영국 북부 맨체스터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마친 나는 2004년에 런던으로 옮겨 버벡대학교에서 강의하게 되었고, 2013년에 정교수가 되었다. 이 모든 시간 동안 내 본업은 군론Group Theory이라고 알려진 추상 대수학 분야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이었지만, 나는 수학의 역사, 특히 수학이 어떻게 우리의 폭넓은 문화적 경험과 관련이 되는지에 점점 더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리고 항상 수학자로서의 내 일이 문학이나 음악과 같은 창조적 예술과도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좋은 글과 마찬가지로 좋은 수학에도 구조, 리듬, 패턴이 담겨 있다. 위대한 소설이나 완벽한 소네트를 읽을 때 느끼는 감정, 즉 모든 구성 요소가 조화롭고 완벽하게 어우러진 아름다운 작품에 감탄하는 것은 수학자가 아름다운 증명을 읽을 때 느끼는 경험과 같다. 수학자 G. H. 하디는 이렇게 썼다.
“수학자는 화가나 시인처럼 패턴을 만드는 사람이다. 수학자의 패턴은 화가나 시인의 패턴처럼 아름다워야 하고, 그 아이디어는 그들의 색이나 단어처럼 조화롭게 서로 맞아떨어져야 한다. 아름다움이야말로 첫 번째 시험대다. 이 세상에 추한 수학이 설 자리는 없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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