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들이 살 수 있는 기회는
몇 번 있었을까?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면,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
영화 〈스포트라이트〉2015에서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추적하는 《보스턴 글로브》 기자에게 피해자들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아동학대 가해자는 소수의 악마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가 ‘주연’이라면 그와 아이를 둘러싼 사회와 정부는 적어도 ‘조연’이다.
2020년 한 해 동안 3만 905명에 이르는 아이가 학대를 당했다. 그 가운데 43명은 학대받다가 숨졌다전국 아동보호 전문기관을 통해 접수된 사례만이다. 접수되지 않은 사건을 포함하면 수치는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가해자는 주로 부모였다. 전체 아동학대의 82.1%,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 사건의 86.3%를 친부모, 계부모, 양부모가 저질렀다.
어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은 오늘 일어난 더 끔찍한 사건으로 덮여 대중의 기억 속에서 멀어질 정도로 사건은 점점 더 잦고 참혹해지고 있다. 도대체 왜 부모들은 자기 아이를 학대하다가 급기야 죽이기까지 하는 걸까. 아이들이 더 이상 자기 집에서 자기 부모 손에 죽어나가지 않기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이를 죽인 ‘악마’만 처벌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아이가 왜 죽었을까’를 찾는 것은, ‘만약 무엇이 달랐다면 그 아이가 살 수 있었을까’를 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발견되는 ‘빈틈’을 채우는 방법도 함께 찾아보고자 했다. 이미 많은 아이들을 잃었지만, 앞으로 다시 반복될 게 분명한 이 비극을 단 한 건이라도 막을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느 ‘리틀맘’의 하소연
2017년 11월 김주미 씨33는 ‘중고나라’ 사기를 당했다. 인터넷 중고물품 거래 사이트에서 아이 분유를 사기로 하고 판매자에게 9만 원을 입금했는데 물건이 오지 않았다. 판매자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환불을 미뤘다. 알고 보니 비슷한 피해자가 여럿 있었다. 주미 씨가 독촉 문자를 계속 보내자 판매자는 자기가 애가 셋인데 애가 아프고 남편이 다리 한쪽이 ‘아작 나’ 병원에 입원해 있어 정신이 없어서 그랬다고 말했다. 주미 씨가 믿어주지 않자 그 판매자는 다섯 식구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힌 주민등록등본과 세 아이 사진을 전송해주기도 했다.
이런저런 하소연을 하던 판매자는 스스로를 ‘리틀맘’이라고 불렀다. 열여덟 살에 첫아이를 갖고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고, 그런데 남편이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라고, 철없는 엄마 아빠 건강하게 커주는 아가들이 고마울 뿐이라고도 말했다. 긴급생계비 신청을 해뒀으니 그 돈이 들어오면 바로 환불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얼마 뒤 주미 씨 통장에 정말로 9만 원이 들어왔다. ‘리틀맘’은 남편 의료비 등을 제외하고 5인 가족 생계비로 난방비 포함 99만 원을 받았다며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난 새해 첫날 주미 씨는 끔찍한 뉴스를 들었다. 하루 전날 새벽 광주광역시 두암동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세 아이가 죽었다는 뉴스였다. 다섯 살, 세 살, 두 살 세 남매였다.
경찰에 따르면 불이 났을 때 스물세 살 아빠는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고 스물두 살 엄마는 술에 취해 있었다. 베란다에서 홀로 구조된 엄마는 밖에서 술을 먹고 들어와 가스 불에 라면 물을 올린 걸 깜빡 잊어버린 것 같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담배를 피우던 중 막내가 울어 급히 끄다가 불이 난 것 같다고 진술을 바꿨다.
뉴스 속 새까맣게 그을린 세 남매 집 거실 사진을 보고 주미 씨는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한 달여 전 중고나라 판매자가 보내준 세 남매 사진 속 배경이 거기 있었다. 꽃무늬 벽지, 이불 무늬, 흰색 3단 기저귀함 위치까지 똑같았다. 사진 속에서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V자를 그리던 세 남매는 작은 방 안 이불 속에서 불에 탄 채 발견됐다. “철없는 엄마 아빠 밑에서 건강하게 커주는 아가들이 고마울 뿐”이라던 세 남매 엄마는 아이들이 화장장 불 속에 들어가던 날 경찰 손에 이끌려 현장 검증에 나섰다. 경찰은 중과실치사·중실화 혐의로 엄마 정미애 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벼랑 끝 세 남매 가정에 벌어진 비극
“아이들 데리러 온 엄마는 ‘오늘 고기반찬 먹자.’ 하면서 밝게 손 흔들었어요. 아마…… 실수였을 거예요. 아이들이 어디라도 아프면 눈물 글썽이며 울먹였던 사람이에요.”
광주 세 남매 승리, 승진, 솔이가 다녔던 어린이집 원장은 “애들 엄마는 그럴방화나 학대를 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빠도 막내딸 보면 눈에 하트가 뿅뿅한 ‘딸바보’였고……. 나이도 어린데 아기자기하게 살아가는 거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승리가 다니던 유치원의 담임교사도 엄마 미애 씨에 대해 “준비물도 빠트리지 않고 학부모 관련 참석할 일에도 열심이었다.”라고 말했다. 근처에서 장사를 하는 요구르트 판매원은 “선하고 착하게 생긴, 가끔씩 요구르트 한 봉지씩을 사 간, 외상을 진 적이 있지만 이내 갚은” 세 남매네 부부를 기억했다.
하지만 적어도 1년 전부터 세 남매의 가정은 서서히 벼랑 끝으로 다다르고 있었다. 광주광역시 두암동 주민센터 직원에 따르면 1년 전 미애 씨의 시아버지가 찾아와 “아들네 사정이 궁핍한 것 같다.”라며 대신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요청했다. 증명 자료를 요구하자 세 남매의 아빠 김정훈 씨가 다음 날 각종 체납 통지서들을 갖고 왔다. 부양가족 수가 많아서 기대했지만 미애 씨의 친정 부모가 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 신청에서 최종 탈락했다.
세 남매의 부모는 일정한 직업이 없었다. 정훈 씨는 PC방이나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사건이 일어나기 한 달 전 (중고나라 분유 구매자가 들은 것처럼) 실제로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했고, 사건 발생 당시 실직 상태였다. 미애 씨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콜센터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세 아이의 육아와 오래 병행할 수 없었다. 전에 살던 집 월세도 밀렸고 새로 이사 간 임대아파트 관리비를 한 번도 못 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은 “전기도 끊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고 말했다.
1년 내내 다섯 식구는 긴급생계비로 버텼다. 2017년에는 2월부터 7월까지 5인 가족 앞으로 137만 원씩 여섯 차례 지급됐다. 아빠 정훈 씨가 다리를 다친 뒤 추가로 한 번 더 지급된 긴급생계비 125만 원을 받아 가면서 엄마 미애 씨는 동사무소 직원에게 연방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긴급생계비 외에 확인된 이 가정의 소득이라곤 중고나라에서 분유 허위 판매로 얻어낸 ‘사기 수익’ 정도다. 미애 씨는 분유 사기로 돈을 벌고 피해자들에게 다시 돈을 입금해주기를 반복했다. 분윳값으로 6만 원을 입금한 피해자에게 그녀는 “애들 아빠가 가정에 책임을 안 져서 그랬다.”라며 9일에 걸쳐 하루 5000원이나 1만 원씩 나눠 갚았다. 아이들이 숨지기 나흘 전 부부는 협의 이혼했다. 주변 사람들과 경찰의 말을 종합해보면 아이들을 보육원에 보내는 문제를 두고 갈등이 심했다고 한다. 엄마 미애 씨가 세 남매의 양육을 맡고 아빠 정훈 씨는 매달 양육비 9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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