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테크놀로지, 테크닉 그리고 우리의 몸
미국의 만화작가 개리 라슨Gary Larson을 아는가? 풍자만화로 유명한 그의 만화 중 실험실에서 개 몇 마리가 쇠로 된 물건과 씨름하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 있다. 그림 하단에는 견공 동포들의 좀 더 윤택한 삶을 위해 ‘손잡이의 원리’를 터득하고자 노력 중이라는 설명이 있다. 뒷다리로 선 채 스크루 드라이버는 물론 현미경까지 다루는 강아지 과학자들이 해학적으로 묘사된 그림이다. 이 그림을 감상하노라면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과연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는 유일한 동물일까? 인간의 손은 동물의 발보다 얼마나 다재다능한가?
그런데 여러분이 더욱 놀랄 사실이 있다. 동물도 인간의 기술을 다루는 놀라운 능력을 갖췄다는 사실이다. 물론 동물이 인간의 도구 사용법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 나름의 방식을 개발해 그 지식을 자신들의 사회에 전달하는 동물이 있다. 산업화가 태동하던 19세기, 런던에 살던 쥐들은 듣거나 보지 않고도 가정까지 연결된 동 파이프에 물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갈증을 해소할 방법을 도저히 찾지 못할 때면 파이프를 갉아 구멍을 뚫어서 목을 축였다. 1930년대에 이르자 런던 지하에는 수도관에 이어 가스관도 설치되었다. 물을 찾아 이 관, 저 관을 갉아대던 쥐들은 가스관에도 구멍을 남겼고, 이 구멍 때문에 화재가 일어났다.
요세미티 국립 공원에 사는 곰은 앞발과 코로 땅콩버터 병을 돌려서 열거나 음식 보관함을 습격하고 침입 방지 장치의 구조를 역이용해 쓰레기통을 뒤지는 방법을 터득해왔다. 이 곰들은 인간이 보유한 다른 기술들을 정복하기 위해 협력한다. 예컨대 어미 곰은 인간들이 숨겨둔 음식을 꺼내기 위해 새끼들을 나뭇가지 위에 올려보낸다. 또한 새끼 곰들은 어미 곰을 관찰하며 어떻게 자동차 문을 부수어 열고, 뒷좌석과 트렁크 사이의 얇은 보호막을 뚫어 음식을 꺼낼 수 있는지 배운다. 공원 경비 대원들은 이러한 행위를 ‘클라우팅’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곰이 차의 브랜드와 모델을 인식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곰은 공격에 가장 취약한 차가 혼다와 도요타 세단임을 알고 있으며 차종별로 같은 수법을 써서 음식을 꺼낸다. 또 특정한 모델과 색상의 자동차에서 음식이 많이 발견되면 그때부터 곰들은 매일 밤 유사한 차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어미 곰은 새끼 곰에게 차 안으로 몸을 기댈 때 앞발로 문틀을 구부려 받침대로 쓰는 기술을 보여준다. 곰들은 또한 밴 타입의 차량 창문을 좀 더 쉽게 부수고자 주변 자동차에 기대어 일어서기도 한다.
비교 심리학자이자 동물 생존 기술에 일가견이 있는 벤저민 벡Benjamin Beck은 동물원 관리사들이 “‘오랑우탄’과 ‘할 수 없다’라는 말을 절대로 한 문장에서 함께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샌디에이고 동물원의 한 새끼 오랑우탄은 새끼용 침대에 달린 철망의 나사를 풀고 빠져나와 사육 시설을 헤집고 다니면서 전구를 돌려 빼는 소동을 일으킨 덕에 유명해졌다. 벡은 다른 유인원과 달리 오랑우탄은 스크루 드라이버와 같은 도구의 사용법을 이해하기에 이를 사용해서 우리 탈출에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오랑우탄들은 전기 울타리 시스템에서 나는 미세한 소리를 구분해 전원이 꺼졌을 때 탈출하는 법을 터득하기도 했다.
그러니 개들이 손잡이의 원리를 터득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랄 필요도 없을 것이다. 메릴랜드주 타코마 파크에 거주하는 무고한 한 시민이 자신의 지하 아파트 침대에서 프린스 조지 카운티의 경찰견에게 습격당한 사건이 있었다. 그 경찰견은 경찰들이 강도를 찾으려고 그 집에 들여보낸 것이었다. 그런데 그 경찰견은 스스로 문손잡이를 돌려 피해자가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피해자는 그 일을 겪은 뒤 손잡이를 자물쇠로 교체했다. 이러한 일화들은 언뜻 기이해 보이지만 사실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손잡이든 가스관이든, 만든 이들조차 자신의 발명품이 어떻게 쓰일지 완전하게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어떤 목적에 맞게 환경을 변형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테크놀로지technology라고 정의한다면, 테크닉technique은 이런 변형을 실현하는 구체적 방법이다. 그러나 테크놀로지-테크닉 간의 관계는 상호보완적이다. 새로운 사물은 행동을 변화시키지만, 그 변화가 항상 발명가나 생산자의 예상대로만 진행되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행동 변화는 새로운 도구의 영감이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도구는 이어서 더 많은 혁신을 낳는다.
테크놀로지는 테크닉이다?
많은 유럽계 언어에서는 ‘la technique’나 ‘die Technik’처럼 하나의 단어가 사물과 행위를 동시에 가리킨다. 문화비평가인 자크 엘륄Jacques Ellul은 오늘날 인류가 테크놀로지를 지나치게 추앙한 탓에 테크놀로지와 테크닉을 분리할 수 없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술의 역사The Technological Society》에서 ‘기계는 단지 테크닉의 결과에 불과하며 그 원천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루이스 멈퍼드Lewis Mumford의 견해와 상반된다. 멈퍼드는 수력, 화력, 전력이라는 에너지원을 기반으로 역사 시대를 나누었지만, 엘륄은 동력원과 기계 장치들 이면에 있는 시대정신으로 역사를 이해하고자 했다. 그에게 테크놀로지는 고대 근동 지방의 산물이었다. 서양의 고대 사회들과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테크놀로지는 언제나 다른 사상에 종속되어 있었다. 르네상스기(14세기~16세기)와 17세기에도 기술적 능숙함보다는 인문학적 박식함을 추구했다.
18세기가 되고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면서 테크닉은 보편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한다. 우리가 아는 역사와 철학도 이 무렵에는 지적인 테크닉으로 대두되었다. 엘륄은 ‘산업화란 지적, 문화적 전환에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로 얻게 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산업이 급속히 발전함에 따라 19세기에는 인간의 삶과 테크닉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다. 테크닉이 더 이상 인간이 사고해 얻는 부산물, 결과물이 아닌 ‘그 자체로서 실재하고, 자기 완결적이며, 자신만의 법칙이 있고 그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인식된 것이다. 따라서 테크닉을 정치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은 착각에 불과하다. 이러한 새로운 관계를 통해 “무엇이 도덕적인가를 판단하고 새로운 윤리 체계를 형성하는 새로운 문명”이 창조되었다. 과거의 가치관과 결별한 인류는 “슬롯머신에 들어간 동전”이 되어 제어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움직임을 촉발한 것이다.
엘륄은 날카롭고도 뛰어난 논증에 설득력 있는 설명을 곁들인다. 지적 절차와 습관을 테크놀로지의 기반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그의 관점은 탁월하다. 엘륄도 아마 곰이나 개를 포함한 다른 생명체들 역시 동일한 기술적 체제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다. 산업 혁명 시대 한참 전, 그러니까 고대 시대부터 테크닉은 이미 힘을 가지고 있었다. 엘륄은 고대 그리스인을 테크닉을 경멸하고 순수 이론을 찬양했던 사람으로 묘사했다. 그는 아르키메데스가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사용했던 모델을 기하학적 검증을 마치자마자 파괴해버린 일을 근거로 들었다. 또한 그는 조화와 중용을 추구한 고대 그리스인 때문에 테크닉이 더디게 발전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명심할 점이 있다. 고대 그리스인이 추구한 이상과 테크닉의 발전이 대치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히포크라테스의 저서에서도 경험과 기교가 추상적 사고를 위해 무시된 사례는 매우 드물었다.
엘륄은 또한 18세기 이전의 군사적 테크놀로지의 능력을 특히 과소평가했다. 검술을 포함한 여러 무예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장인들을 통해 여러 세대에 걸쳐 교육되고 전승되었다. 그러나 테크놀로지와 테크닉의 구분은 유럽이 현대에 갓 접어들 무렵에서야 명확해진다. 네덜란드 독립군을 이끈 오랑예공 마우리츠Maurits, Prins van Oranje는 1594년에서 1607년 사이에 테크닉이 어떻게 테크놀로지를 변모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당시 화승식 소총은 무겁고 위험한 무기였다. 병사들이 한 손으로 무기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도화선에 불을 붙여야 했기 때문이다. 몇몇 사냥용 무기들은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이미 총신에 나선구가 달렸지만, 이 섬세한 소총들은 전장의 거칠고 사나운 환경에서는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보관하고 정비하는 데 주의가 필요했다. 군용 소총은 사냥용 소총과 달리 다루기 어려운데다 정확도도 떨어졌다. 마우리츠는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통해 조악한 소총도 효율적인 무기로 바뀔 수 있음을 간파했다. 사촌 빌렘 루이스William Louis의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얻은 마우리츠는 부관이었던 요한Johann에게 소총의 준비, 장전, 조준, 발사 과정을 각각 세부 단계로 분해하도록 했다. 요한은 각각 하나의 단계를 묘사한 그림이 새겨진 판화 43개를 만들었고 교관들을 통해 병사들에게 소총 조작법을 가르쳤다. 병사들은 횡대별로 전진하는 동시에 발사를 위해 무기를 준비하고, 후진하면서 다시 해당 절차를 반복해야 했다. 정확한 절차와 엄격한 질서를 유지하지 않으면, 자신과 동료가 심각한 부상을 입을 수도 있지만 테크닉에 숙련되면, 그 부대는 강력한 일제 사격을 반복할 수 있었다. 많은 개별 사격이 목표에 크게 빗나가더라도, 동시 사격을 통한 집중 사계는 여전히 강력한 효과가 있었다.
이는 헨리 포드Henry Ford보다 300년이나 먼저 움직임을 일치시켜 기술적 혁신을 이룬 사례다. 혹자는 소총이 하나의 테크놀로지로서 훈련 테크닉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물론 전장의 경험이야말로 어떤 혁신이 널리 퍼지게 될지 아니면 완전히 폐지되어야 할지를 결정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테크닉은 혼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또한 어떠한 도구를 운용하는 이들이나 지휘하는 이들이 그 도구가 가진 모든 가능성을 처음부터 완전히 파악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테크닉은 한계가 있지만 창조적이며 즉흥적인 면도 있다. 실제로 테크닉의 이 두 가지 특성은 상호보완적이다. 어떠한 하나의 기법이 스스로를 필연적이며 보편적인 것이라고 증명하는 바로 그 순간, 어떠한 개인이 또 다른 기법을 개발해 퍼트리기도 한다.
몸의 테크닉: 마르셀 모스
엘륄 역시 다른 기술 비평가들처럼 산업화된 세계와 비산업화 사회가 근본적으로 단절되었다고 믿었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는 엘륄이 현대 사회와 무관하다고 여긴 신체적 습관의 의미를 재조명한 뒤 이를 몸의 테크닉이라고 불렀다. 테크닉이라는 개념에 정신적인 관습과 사회적인 관습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엘륄의 주장은 옳았다. 하지만 그는 근대 이후로 복잡해진 사회에서 언뜻 단순해 보이는 몸의 테크닉에 얼마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지는 간과했다.
모스가 몸의 테크닉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은 우연에 가깝다. 이 개념은 1934년 프랑스 심리학 저널에 기고한 논문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는 “효과적”이고 “관습적인” 동시에 “기계적, 물리적 혹은 물리화학적”인 인간 행동들을 식별했다. 몸을 움직임으로써 배우는 이러한 방식들은 사회 공동체를 통해 형성되고 주입되어 행동 양식의 틀을 형성했다. 그는 이렇게 사회적으로 형성된 행위들을 ‘아비투스’라고 불렀다. 아비투스는 “사회, 교육, 교양, 유행 및 명성”에 따라 체계적인 차이를 보였다. 모스는 그 중 명성이 몸의 테크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며 그 때문에 아이들이 공적인 권한을 갖춘 어른의 행동을 쉽게 모방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몸의 테크닉에 대한 학습은 사회적이고 심리적이며 동시에 생물학적인 행위였다. 모스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원주민의 춤과 의식에서 예시들을 찾아냈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모스의 경험에서 비롯된, 20세기 초 스포츠와 관련되어 있었다.
모스는 수영과 다이빙을 배우던 때를 회상하며, 물에 뛰어들 때는 눈을 감고 잠수한 이후에 뜨라고 배웠던 것을 떠올렸다. 몸의 테크닉에 대한 그의 연구가 발표되던 1930년 무렵, 아이들은 가능한 한 이른 시기에 물속에서 눈을 뜨고 있는 것에 익숙해지도록 교육을 받았다. 눈을 감으려는 본능을 훈련으로 조절하기 위해서였다. 수영 역시 다른 테크닉과 마찬가지로 도제식으로 학습하지만 변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모스의 세대는 머리를 물 위에 놓고 헤엄치는 평형을 배워야 했지만 1930년대에는 크롤의 변형된 영법들이 유행했다. 수영하는 사람들은 증기선이 된 것처럼 물을 들이켰다가 내뱉는 행동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스는 여전히 그러한 방식이 아니고서는 수영을 할 수가 없었다.
걸음걸이도 문화마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테크닉에 속한다. 모스에 따르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군 병사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걸었다. 영국의 우스터 연대는 1914년 엔 전투에서 프랑스 보병과 함께 용감히 싸워 무훈을 세웠고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나팔수와 고수로 구성된 군악대를 대동하는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들의 조합은 의도와 달리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우스터 연대는 프랑스 장단에 보조를 맞추며 영국식 행진을 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음악과 걸음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도 한 미국인 관찰자는 영국 부대가 “우리에 비해 몸의 힘을 빼고 무릎을 가볍게 움직이며” 프랑스 병사들에게서는 “어깨 전체를 앞으로 밀어내며 크게 휘젓는 팔 동작”이 두드러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왜 이러한 특성이 나타나는 것일까? 각국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군대에서 양식화되어 표현된 것일까? 아니면 이미 오래전에 은퇴한 훈련 교관이 고안했던 독특한 보조가 국가마다 훈련 교본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것일까?
지휘관들은 이러한 독특한 동작으로 병사의 군기를 형성할 때도 있다. 군대뿐 아니라 시민 역시 장단에 맞추어 행진한다. 모스는 미국과 프랑스 여성의 걸음걸이가 다르며, 프랑스 사회에서도 양육 방식에 따라 걸음걸이가 눈에 띄게 다른 것을 관찰했다. 수녀원에서 자란 소녀들은 주먹을 쥐고 걷는다. 모스 역시 선생에게서 ‘왜 바보같이 손을 펴고 퍼덕이며 걷고 있느냐’며 혼났던 경험을 회상했다. 모스는 이러한 차이점이 대개 신체적 특성에서 비롯된다고 믿었다. 이를테면 모스는 영국 군인이 프랑스 군악대 장단에 적응하지 못한 것은 훈련으로 익힌 독특한 걸음걸이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신장의 차이 때문이라고 보았다. 다리를 곧게 뻗는 걸음걸이인 구스 스텝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 이론에 따르면 구스 스텝은 프랑스인의 짧고 휜 다리와 대비되는 독일인의 긴 다리의 보폭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모스는 신체적 차이를 지나치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실제로 구스 스텝은 18세기 초 고안된 프로이센 군대의 행진법이 과장된 형태에 불과하다. 군인들이 무릎을 곧게 편 채 다리를 뻗는 훈련을 했던 이유는 규율을 상징하는 극단적인 직립 자세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손을 펴서 소총의 총신을 때리는 동시에 뒤꿈치로는 땅바닥을 침으로써 보조에 음향적 효과가 강화되었다. 매우 까다롭고 구속도 많은 구스 스텝을 기동과 전투에 적용하는 것은 군인에게 재앙이 아니었을까? 프랑스 군대는 이러한 보조를 기피하는 대신 기동성과 유연성을 강조하는 스타일을 선호했다. 그러니 우스터 연대를 불만스럽게 했던 것은 신체 비율보다는 이러한 행진 훈련 방식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자동화와 테크닉의 역습
테크닉이 반드시 필요할까? 먼저 세상 모든 문명의 이기가 얼마나 사용하기 쉬워졌는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그런 다음 현대인의 삶이 얼마나 복잡해졌으며 그러한 삶에 적응하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교육이 필요한지를 살펴보겠다.
인지 심리학자이자 컴퓨터 공학자인 도널드 노먼Donald Norman은 오늘날 익숙한 도구들도 발명될 당시에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기교를 익힌 뒤에나 사용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한 오래된 설명서에는 이런 주의 사항이 적혀 있었다. “축음기를 사용하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중략)… 며칠만 공부하면 축음기에 대해 전반적인 것을 배울 수 있으며, 몇 주만 연습하면 사용에 필요한 기교까지 익힐 수 있다.” 초기 진공관 라디오 사용자들은 수신, 동조, 검출, 증폭, 재생에 이르는 각각의 절차에 숙달되어야 했다. 선과 관의 배치도 열두 가지 이상의 절차로 이루어져 있었다. 초기 자동차는 시동을 걸기 위해 차 앞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크랭크를 돌려야 했고, 초크와 같이 오래전에 사라진 각종 조절 장치를 조작해야 했다. 조지 이스트먼George Eastman 이전 사진사들은 독성이 무척 강한 화학약품들을 다루는 방법도 배워야 했다.
어떤 테크놀로지는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테크닉을 요구하는 쪽으로 발전하다가 어느 순간 다시 단순해지기도 한다. 19세기 후반 전신 기사들은 개개인의 전송 스타일을 통해 서로를 식별할 수 있었고 그들이 사용하던 아름다운 전신 키들은 여전히 박물관에서 추앙받고 있다. 그러나 전화와 자동 자판 장비들은 궁극적으로 그들의 문화를 파괴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8장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겠다. 최초의 전화는 최초의 자동차처럼 크랭크를 돌려야 했으며, 교환수와 연결되는 방식이었다. 그 후 다이얼식 전화가 등장했다. 다이얼 방식은 사용자가 다이얼을 멈추개까지 부드럽게 돌린 후에 손가락을 빼는 방법이었다. AT&T는 다이얼을 사용하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1937년에 이르기까지 벨 시스템에 다이얼 방식의 도입을 지연시켰다. 오늘날에는 버튼과 톤 방식이 보편적으로 쓰이며 전화기는 토스터기와 마찬가지로 설명이 필요 없는 도구가 되었다.
직선형 면도날도 여전히 생산되고 있다. 이를 사용하는 이발사는 몹시 드물지만 몇몇 애호가들은 삼중 날의 최신 일회용 면도날보다 직선형 면도날을 더 높게 평가한다. 비디오 레코더의 프로그래밍 기능이 복잡하다고 불평하는 소비자들은 아마도 이보다 더 복잡했던 오픈 릴 방식의 테이프 녹음기를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더 예전 기술인 필름 프로젝터는 말할 필요도 없다. 케이블 텔레비전은 안테나 방향을 움직여 신호 강도를 높이는 기교가 필요치 않도록 해주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들은 각각 교환 가능한 카세트테이프처럼 패키지 형태로 모듈화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1900년에 등장한 코닥의 브라우니 카메라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이유였다. “당신은 버튼만 누르세요. 나머지는 우리가 합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코닥의 설립자 이스트먼은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테크닉은 정말 버려지고 마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일까? 자동차의 경우를 다시 생각해보자. 미국 운전자들은 더 이상 수동 기어가 장착된 차를 구매하지 않는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자동 기어가 더 부드럽게 움직이고 경제적이어서만은 아니다. 자동 기어를 사용하면서 새로운 동시에 위험하기도 한 기술, 즉 운전 중 아이 달래기와 휴대 전화 사용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에어백은 전적으로 수동적인 장비처럼 보이지만, 이 역시 우리가 몸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미국 자동차 협회는 과거 운전자 교육 과정의 표준이었던 10시와 2시 방향이 아닌 9시와 3시, 혹은 그보다 더 낮은 위치인 7시와 5시 방향으로 운전대에 손을 놓으라고 권장한다. 에어백이 터질 때 손에 화상을 입거나 손이 얼굴을 강타하는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지지자들은 이 방식으로 위험 상황에서도 손을 떼지 않고 핸들을 더 크게 돌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몇몇 전문가들은 손을 겹쳐 핸들을 돌리는 전통적인 테크닉이 급커브에서는 효율적이지만 에어백 때문에 팔이 골절되고 스트레스 상황에서 오버스티어, 즉 코너에서 핸들을 과도하게 꺾는 위험한 행위까지 야기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자동차에 측면 에어백이 설치된 경우, 뒷좌석의 아이들에게 옆으로 기대지 말고 똑바로 앉도록 지도해야 한다. 미 도로 교통 안전국에서는 어린이용 카시트가 잘못 장착되어 있거나 아이가 위험한 자세로 앉아 있는 차량이 전체 차량 가운데 90퍼센트 이상이라고 추정한다. 새로운 안전 장비들로 인해 우리는 한때 안전을 위해 배웠던 테크닉들을 새로운 것들로 바꾸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위험한 상황에서, 특히 눈이나 비가 내린 후 노면에서 차량을 다루는 방법을 정식으로 교육받은 운전자는 드물며 이러한 조작을 안전하게 연습할 수 있는 장소도 거의 없다. 그럼에도 브레이크 잠김 방지 장치인 ABSAntilock Brake Systems와 트랙션 컨트롤을 비롯해 여러 혁신적인 테크놀로지는 운전자들에게 이러한 기술이 적용되더라도 여전히 특별한 테크닉이 필요한 위험 상황에 도전하도록 부추긴다. 이러한 자동화된 장비를 활용할 때도 테크닉적인 요소는 존재한다. ABS가 단기간 내에 모든 차량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운전자들은 차량이 미끄러질 때를 대비해 적절한 대응법을 숙지해야 한다. 기존의 브레이크가 장착된 차량에서는 반복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떼는 동작을 취해야 하는 반면, ABS가 장착된 차량에서는 일정한 세기로 브레이크를 밟고 있어야 한다.
본질적으로 위험한 도구를 사용하기 쉽게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문제점들을 낳는다. 9밀리미터 권총은 단순한 구조 때문에 오히려 더 숙련된 기술을 요구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1980년대 수많은 미국 경찰서가 마약 상인들의 자동 소총에 대항하기 위해 기존의 탄창 회전식 연발 권총을 베레타, 글록, 루거 등의 회사에서 생산된 반자동 무기들로 교체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다루기 어려웠으나 지금은 반자동 권총이 연발 권총보다 높은 안정성을 보이며 사용과 유지 보수도 쉽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단순함이 테크닉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워싱턴 D.C.가 1988년 글록 17을 도입했을 때, 경찰관들은 특히 외부 안전 자물쇠가 없다는 점에 환호했다. 글록 17에는 우발적인 격발을 막고자 세 가지 메커니즘이 장착되어 있었는데, 방아쇠를 당긴 후에는 이들이 모두 해제되었던 것이다. 안전을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사격 전 방아쇠를 당기는 동작이 하나 추가되었고, 이로 인해 시가전을 벌이는 경찰관들은 즉시 사격을 하기 위해 방아쇠를 미리 당겨놓기도 했다.
군대에서는 “사격 규율”을 세움으로써 우발적인 교전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 워싱턴에서는 새로운 권총을 도입한 이후 10년 동안 120회 이상의 우발적 격발이 발생했는데, 1998년도에는 3개월 동안 무려 140만 달러가 넘는 합의금이 발생했다. 경찰 조직 내 많은 글록 권총 애호가들은 권총 자체는 본질적으로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사용자는 그저 손가락을 방아쇠에 올려놓은 상태에서 정확히 언제 사격이 시작되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특별한 훈련을 받으면 된다. 단순함과 사격의 용이함이 결국, 테크닉을 익히기 위한 더 많은 훈련을 필요로 하는 셈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의외로 손재주가 필요한 테크놀로지도 있다. 뉴욕 광역 교통국에서 사용하는, 마그네틱 띠가 달린 교통 카드가 그 예다. 교통 카드는 지하철 회전문에 놓인 슬롯에 강하고 부드럽게 통과되어야 하며 제대로 읽히지 않을 경우 같은 절차를 반복해야 한다.
몇몇 연구소에는 장비의 후면과 하단에 뱀이 똬리를 튼 것처럼 꼬여있는 선들을 전문적으로 정리해주는 기술자들이 있다. 그들의 전문 분야에는 케이블 관리라는 명칭이 붙어 있으며 이들이 받는 급료는 연구소 예산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사람들은 마우스를 단순하고 직관적인 도구로 인식한다. 하지만 실제로 마우스는 가속도나 더블-클릭 속도 조절 등 사용자의 테크닉에 따라 재구성과 조정이 필요한 도구다. 볼마우스는 먼지가 끼면 쉽게 고장 나므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일부 인체 공학자는 마우스를 적절한 손목 자세로 사용하지 않을 경우, 키보드보다 신체에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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