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개장의 용도
처음 자개장으로 들어간 날, 나는 엄마의 절반만 했다. 내 느낌으로는 말이다.
볕 밝은 오후였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가는 중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자개장 앞에 서 있었다. 엄마가 자개장의 오른 문에 그려진 보름달을 가리켰다. 자개로 만든 원에 우리 둘의 얼굴이 비쳤다.
엄마가 속삭였다. 이건 공놀이 같은 거야.
먼저 가고 싶은 곳의 이름을 생각해. 머릿속으로 그려도 보고, 그다음 달 위로 던지는 거야. 소리 내서 말해도 좋고, 손끝으로 써도 좋아. 마음속으로 그리기만 해도 괜찮아…… 이제 기다려, 달 위의 얼굴이 투명해질 때까지. 네가 어디로 갈지 정확히 알고 있다면 자개장이 받아쳐줄 거야.
내 어깨에 얹힌 손에 힘이 실렸다.
자, 한번 해보자.
눈을 가늘게 뜨자 달에 비친 얼굴들이 물에 잠긴 양 흔들렸다. 나는 머릿속으로 갈 곳의 이름을 거듭 되뇐 후 엄마의 손을 잡았다.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고 자개장을 열었다. 우리는 자개장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첫번째 걸음에는 자개장 바닥에 깔아둔 얇은 천이 밟혔고, 두번째 걸음에는 타일 바닥이 발끝에 닿았다. 고개를 들자 갈매기 무늬 천장 아래로 한쪽 면이 트인 복도가 펼쳐졌다. 오른편에 회색 현관문이 보였다. 이모네 집이었다.
엄마가 어깨에 맨 가방에서 운동화와 슬리퍼를 꺼냈다. 나는 운동화를 신으며 뒤돌아보았다. 자개장도, 거실도, 건넛방에서 엎드려 자던 아빠와 동생도 없었다. 우리는 아주 낯선 곳으로 건너온 것이다.
이모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이야? 재차 물으면서도 주스와 케이크를 꺼내 주었다. 이모가 주는 모든 것이 달콤하거나 부드러웠다. 베란다 너머로 내다보이는 도심의 풍경은 우리 집 주변과 하나부터 열까지 달랐다. 모든 것이 높았고, 새하얗게 빛났다. 세상에는 이런 도시가 셀 수 없이 많겠지. 현기증이 일었다.
엄마는 비틀거리는 내 손을 잡고 이모네 집을 나왔다. 마을버스로 세 정거장을 간 다음 급행열차로 여섯 역을 지나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사이 어지럼은 가라앉았고, 마땅히 해야 할 질문들이 떠올랐다. 나는 버스 맨 뒷좌석에 자리를 잡은 뒤 물었다.
자개장은 갈 때밖에 못 쓰는 거야? 돌아오려면 지금처럼 버스나 지하철을 타야 해?
맞아. 그래서 자개장에 들어갈 때는 조심해야 해.
엄마가 내게 안전벨트를 채우며 말했다. 자개장을 쓸 땐 돌아올 거리부터 계산하라고. 앞으로 갈 곳에서 자기 힘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먼저 가늠해야 한다. 그래야만 집으로부터 너무 먼 곳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고.
증조할머니가 오일장에서 이 가구를 발견한 날 모든 게 시작되었다. 80여 년 전 장바닥에 놓인 자개장은 당시에도 무척 아름다운 물건이었다. 너비가 약 넉 자에 높이는 여섯 자. 양쪽 문을 가로지르는 자개 장식과 검게 옻칠한 나무 모두 보석처럼 빛났다.
가구상은 황해도의 장인이 이 장을 만들었다고 했다. 자개 장식 하나하나를 혀로 핥아 붙이고, 옻칠을 거듭하느라 손톱까지 빠져가며 만든 것이라고. 그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 길은 없었다. 다만 물건 보는 눈이 유달리 좋던 증조할머니에게도 자개장은 귀한 사물로 보였다. 왼쪽 문에서 오른쪽 문까지 자개로 새긴 태양 달 산 물 학 불로초 돌 구름 소나무 사슴 거북이 모두 다른 싸구려 장식과 비할 바 없이 오색영롱했다. 오른 문에 상감된 보름달은 한층 비싼 재료로 빚었는지 유달리 매끄러운 빛을 띠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얼굴이 비칠 정도였다. 증조할머니는 싼값에 좋은 물건을 들였다며 뛸 듯이 기뻐했다.
넉 달이 지났을 때 증조할머니는 자개장을 인 채 마당으로 나갔다. 눈보라가 몰아치던 새벽이었다. 증조할머니는 새빨갛게 언 맨발을 눈 속에 파묻고 자개장을 끌었다. 마당을 지나는 내내 갈라진 입술로 되뇌었다. 이걸 버리자. 아주 먼 곳에 갖다 버려야 한다. 남편과 자식들이 그를 붙들었다. 무슨 일이냐, 왜 멀쩡한 물건을 버리느냐. 몇 차례 몸싸움이 오가고 증조할머니가 자개장을 놓았다. 그는 대문 앞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증조할머니는 태도를 정반대로 바꿨다. 그는 거듭 말했다. 이 자개장은 우리 가보다. 한정 없이 귀중한 물건이니 내가 물려주기 전까진 누구도 건들지 말어라. 집안사람 모두 증조할머니의 성미를 알았으므로 순순히 그 말을 따랐다. 그가 악을 쓰면서까지 버리려 한 자개장이 내심 찜찜한 탓도 있었다. 오로지 내 할머니만이, 그러니까 제 어미처럼 야무지다 못해 영악하다는 평까지 듣는 막내딸만이 그 말을 귓등으로 흘렸다. 어린 할머니는 매일 자개장 앞에서 얼쩡거렸다. 가끔 그 안에 들어가기도 했다. 장 안에서 잠들면 좋은 꿈을 꿀 수 있다는 희한한 핑계까지 댔다.
왜인지 몰라도 증조할머니는 그런 딸을 전혀 혼내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세 아들을 제치고 막내딸에게 곧장 자개장을 물려주었다.
할머니는 자개장을 유용하게 썼다. 남편과 싸운 날이면 제일 좋은 구두를 꺼내 신고서 자개장 문을 열었다. 할아버지는 단 한 번도 할머니를 찾아내지 못했고, 결국에는 싸움이 끝나는 순간마다 무릎 먼저 꿇게 되었다. 부탁이니까 앞으로는 휙 사라지지 말고 얘기부터 하자면서.
엄마는 삼 남매 중 장녀였다. 그의 할머니나 어머니처럼, 엄마 역시 영악하다 못해 교활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엄마는 할머니가 구두를 신고 자개장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열일곱 살이 된 해에 엄마는 그 구두를 훔쳐 신고 자개장 앞에 섰다. 아주 많은 시행착오를 지나 보낸 후, 그는 자개장의 용도를 완벽하게 깨우쳤다.
엄마는 서울로 향했다. 펜팔 친구의 집에서 사흘 밤을 머물렀다. 나흘째에 할머니에게 발각되었고, 양 뺨이 퉁퉁 부은 채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튿날부터는 다시 학교에 가고 집을 치웠으며 동생들의 밥을 챙겼다. 모두가 일상이 제자리를 찾았다고 생각할 무렵, 엄마는 다시 자개장을 열었다. 몇 차례 비슷한 과정이 되풀이되었다. 네번째 탈출부터는 누구도 엄마를 잡지 못했다.
엄마는 서울 곳곳을 쏘다녔다. 공장 슈퍼 버스 식당 승강기 사무실 백화점에서 헐값에 일했다. 펜팔 친구와 결혼했고, 함께 포장마차를 열었다가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두 사람이 빈털터리 신세로 고향으로 돌아온 날 할머니는 엄마의 양 뺨을 때린 후 자개장을 주었다. 그냥 네가 가져라, 나는 이제 지긋지긋하다, 면서.
엄마가 말했다. 나는 그걸 좀 다르게 쓰고 싶었어.
그리하여 엄마는 비밀을 나눠 가졌다. 처음에는 아빠, 다음에는 내게 자개장을 열어주었다. 동생도 나만큼 키가 크면 자개장의 용도를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버스 차창에 기댄 엄마의 이마 위로 저물녘의 붉은빛이 너울거렸다. 엄마는 중얼거렸다. 네 할머니들이 이걸 알면 엄청나게 화내시겠지. 차라리 자개장을 부수라고 하실 거야. 그런데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최선인 것 같아. 이해하겠니? 나는 무엇 하나 이해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무언가를 이해하는 것은 고사하고, 졸음과 싸우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태였다. 엄마가 웃더니 내 의자를 젖혀주었다. 눈 좀 붙여, 말하는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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