엮은이의 말
부모와 학부모는 어떻게 다를까요
어린아이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영유아가 처음 보육·교육기관을 이용하는 나이는 평균 19.8개월「2024 보육 실태 조사」, 교육부로, 2009년30개월보다 무려 열 달이나 당겨졌습니다. 교육학에서는 아이가 교육기관에 다니는 것을 탈가족화, 학교사회화라 부릅니다. 가정을 벗어나 또 다른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옮기는 사건이 아니라 정체성과 역할이 재구성되는 사회적 전환점이기도 합니다. 가족의 보호 속에서 개인으로 존재하던 아이가, 제도를 매개 삼아 공적 존재로 인정받는 과정이기도 하지요.
아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학부모’란 이름을 얻게 된 부모들에게도 학교사회화가 필요한 듯합니다. 새로운 공간에서 사회화되는 아이를 돕기 위해 ‘학부모’란 이름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깊이 고민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학부모가 ‘내 아이의 부모’를 넘어 ‘학교와 교육을 함께 책임지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면, 자녀의 부모인 동시에 다른 아이들의 부모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요. 더 크게 보면 이 사회의 다음 세대를 키우는 일에 동참하는 존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각을 놓친 채 학부모 역할을 사적 이해관계의 대변인으로만 한정할 때 교육은 필연적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내 아이’만 바라보는 시각은 결국 내 아이조차 고립시킵니다. 주변에 위험요소가 있다면 내 아이도 안전하지 못할뿐더러, 그 위험을 모두 제거한다고 완벽한 안전이 보장되지도 않습니다. 결국 모든 아이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야 그 속에서 자라는 내 아이 역시 안전하고 건강한 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교권이 무너지고 가르치는 일이 힘들어진 요즘이야말로 학부모라는 이름에 담긴 공적 의미를 되새겨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부모 노릇도 제대로 해내기 어려운 시절에 학부모의 역할까지 고민해야 하다니 너무 어려운 과제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학부모는 어떻게 교육주체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결국 ‘이 사회에서 한 생명을 길러내고 있는 나는 어떤 존재인가’ 하는 실존적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나를 새로운 세상과 연결하는, 자식이라는 타인을 통해 나를 넘어서는 경험을 하게 되니까요. 사회적 부모 되기. 이 어렵고도 중한 숙제가 어쩌면 ‘나’로부터 해방되는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부모를 위한 교육지를 지향하는 《민들레》에서 꾸준히 발신해온 ‘학부모와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한데 묶어냅니다. 단단한 가족주의와 불안을 부추기는 양극화가 빚어낸 ‘내 새끼 지상주의’를 넘어 학부모의 개념과 존재 의미, 역할을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책을 펼친 분들이 ‘민주시민으로서의 학부모’로 성장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2025년 9월
장희숙
학부모와 교사,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
─ 김세인
“저도 엄마를 불러오겠습니다”
가끔 우스갯소리처럼 들리는 말이 현실일 때가 있다. 대학생 엄마가 성적 문제로 교수에게 항의를 한다거나 신입 직원의 아빠가 상사를 찾아간다는 이야기가 그렇다. 『공부란 무엇인가』의 저자 김영민 교수는 언젠가 맞닥뜨릴지 모르는 상황에 자신만의 대비책을 마련한다. “성적이 안 좋다고 여러분들 엄마가 연구실에 찾아와서 저를 괴롭히면, 저도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저도 엄마를 불러올 수밖에.”
그의 위트에 한참을 웃다가 문득 생각에 잠겼다. ‘설마’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과연 나는 그런 엄마가 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자식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분별력은 잠시 내려놓고 행동해도 된다는 생각이 내게도 잠재되어 있는 건 아닌가. 내 자식만 잘 키우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나는 알고 있는가.
얼마 전, 5학년 큰아이의 학부모 공개수업에 갔을 때다. 수업이 끝난 후 부모들이 모인 자리에 담임 선생님이 아닌 교감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요즘 우리 학년 선생님들이 잘 웃질 않으십니다.”
교감 선생님은 안경을 고쳐 쓰며 근엄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업무 과다로 선생님들이 피로하신가, 아니면 아이들이 말을 안 듣나 이런저런 생각이 스쳤다. 자신의 자녀가 원하는 선택 과목을 듣지 못했다는 학부모의 민원부터 크고 작은 학교폭력 문제까지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고 했다. 교감 선생님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학부모의 과한 개입과 이기적인 태도가 교사들을 지치게 만든다고 했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는 교사들이 교실에서 해야 할 교육을 방해한다고 말이다.
“어머님들은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만나러 교실에 들어갈 때 어떤 표정과 마음이길 바라십니까?”
교감 선생님은 부모들에게 이런 질문을 남기고 홀연히 떠나셨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설문조사2023에 따르면 66.1%의 교사가 가장 스트레스를 느끼는 요인으로 ‘학부모’를 꼽았다. 민원 스트레스 정도는 97.9%가 ‘심각한 수준’으로 나왔다. 수업 그리고 아이들과의 소통에 힘써야 할 교사들은 자신을 감정노동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악성 민원은 소수의 학부모들이 벌이는 일이지만 그 파장은 모든 학생과 교사의 일상을 흔들고, 진짜 중요한 교육적 동력을 잃게 만든다. 소소한 요구사항이나 불평을 너도나도 늘어놓게 되면 가장 피해를 입는 것은 바로 우리 아이들일 것이다.
학부모들이 잠시 잊은 건 아닐까. 학교는 아이가 자기 등보다 큰 가방을 메고 가도 부모가 그 가방을 대신 들어줄 수 없는 곳이라는 사실을. 이곳은 구청 민원처리실이 아니라는 것을. 전인적인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모두가 애쓰는 곳이라는 것을. 마냥 내 아이가 손 들고 발표하는 재롱을 보고픈 마음으로 공개수업에 참석했던 나는 그 자리에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되짚어보며, 아이들 앞에서 웃지 않는 선생님을 상상하며.
지금 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아이들의 담임 선생님 휴대폰 번호를 모른다.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공개수업과 학기 초 15분간의 개인 면담, 두 번이다. 연락이 필요한 상황에는 ‘하이클래스’라는 앱으로 선생님께 메시지를 남기거나 통화할 수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나의 어린 시절처럼 휘황찬란하게 날리던 학부모의 치맛바람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누구 엄마가 반 아이들에게 간식을 돌리거나 화분을 사오거나 선생님께 봉투를 건네는 일도 상상하기 어렵다. 스승의 날에 꽃 한 송이 사 가는 것도 어색한 일이 되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학교에서 교사는 지금보다 권위적인 위치에 있었다. 학생들을 향한 불합리한 강압과 통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30년 동안 교사생활을 하셨던 아빠는 서울대 원서를 쓰도록 강요하는 학교와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지원하길 고집하는 제자 사이에서 갈등했던 상황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이십대 청년들이 자주 들락거렸다. 대학생들은 박카스 한 박스를, 취직한 이들은 홍삼을, 결혼을 앞둔 이들은 청첩장을 들고 우리 집 벨을 눌렀다. 아빠의 제자들이었다.
청년들은 밤늦도록 아빠와 함께 학창 시절 이야기를 나누며 킥킥거리고 폭소를 터뜨렸다. 낯익은 오빠들이 놀러 오는 날이면 나와 동생은 오빠들 손을 잡고 슈퍼마켓에 가서 마음껏 과자를 고를 수 있었고, 아빠는 엄마 눈치를 보며 밥상을 폈다. 아빠는 제자들이 오면 부모님의 안부부터 물었다. 학생들의 가정환경을 세세히 파악하고, 아이들의 문제행동부터 성적과 진로까지 깊은 대화를 나눴던 학부모님들과 아빠는 오랜 세월 서로를 기억했다.
10년 전, 나는 한 사람 고등학교의 교사였다. 아빠처럼 몇 년 전 졸업한 제자의 뒤통수만 보고도 그의 국어 성적과 짝꿍을 기억해내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의 얼굴에 걱정이 스치면 교정을 한 바퀴 같이 돌면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쌍둥이 동생의 가출로 걱정하던 아이, 좌절감 때문에 자꾸 게임을 하게 된다는 아이, 성적 때문에 부모님과 갈등을 겪던 아이…. 아이들은 내 앞에서 부모님에게 보이지 못하는 속내를 꺼내기도 했다.
그 시절 학부모님들은 모든 것이 어설펐을 신입 교사를 지지하고 믿어주셨다. 나에게 연락할 일이 있으면 정중히 통화 가능한 시간을 물었다.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의 부모님은 아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가정환경을 이야기해주었고, 야간 자율학습을 ‘땡땡이’ 친 학생의 부모님은 아이를 호되게 혼내주십사 부탁했다.
사람은 말투와 눈빛, 목소리로도 상대를 향한 태도를 느낄 수 있기에 나는 존중받는 한 교사로 그들에게 마음을 열 수 있었다. 아이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를 부모님에게서 들었고, 부모님이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아이들로부터 들었다. 그렇게 나는 한 아이, 한 아이의 퍼즐을 맞추어나갔다. 부모님들과 나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를 조심스럽게 대하면서도 온전히 아이들을 중심에 두고 소통하는 일만은 적극적으로 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학부모님과의 소통은 아이들을 섬세하게 바라보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아이들 교육에 집중할 수 있었던 그 시절, 나는 40여 명의 반 아이들과 마음껏 웃고 울 수 있었다.
급변하는 교육환경 속에서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아빠의 동료들이 많아지고, 교단에 설수록 짙어지는 아빠의 회의감을 눈치채는 건 나에게도 서운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아빠도 나도 교실에서 행복했다. 고군분투하는 한 아이의 성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응원하는 건 값진 일이었으므로, 교무실을 함께 쓰는 동료 교사가 밉더라도 교실에 들어가면 아이들과 웃을 수 있었고, 아이들과 학부모, 교사는 서로를 판단하고 비난하는 대상이기보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공동체 구성원이었다.
학교는 빠르게 변했고, 학생과 학부모의 목소리가 커졌고, 그들이 교사에게 꺼내는 말들은 달라졌다. 무너진 교사의 권위, 축소된 사회로서의 역할을 잃어가는 학교는 교육에 대한 무력감에 빠졌다. 10년 전쯤 타지로 이사를 하면서 육아를 위해 교사를 그만둔 후, 가끔 옛날 동료들을 만나면 그들은 내가 부럽다고 했다. 복직하면 스트레스로 몸 상하고 월급보다 병원비가 더 들 수도 있으니 집에 가만히 있으라고, 그렇게들 말했다.
얼마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 강남 지역 고등학교의 전 교장 선생님이 출연한 것을 보았다. 그는 오랜만에 돌아간 학교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학생들이 마음 놓고 엎드려 자는 곳, 수업 시간에 학원 숙제를 하는 곳, 내 새끼에게 조그마한 불이익이라도 있으면 학부모들이 거칠게 항의하는 곳이더라고. 그는 꼴찌도 행복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세심하게 그들의 자존감과 마음을 챙기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마음을 담아 학부모들에게 편지도 보냈다.
“여기는 사람을 교육하는 학교이지 성적으로 먹고사는 학원이 아닙니다. 명문대 몇 명 갔는지 궁금해 마시고 내 아이가 무얼 할 때 행복한지 살펴봐 주십시오.”
그의 편지는 학교라는 장소가 아이들에게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했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