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그날 국회 담을 넘은 사람들과
등을 내어준 사람들
1
바람처럼 담장을 넘고 우직하게 절차를 밟아
비상계엄을 해제한 대한민국 국회의장의 그날
우원식
68세, 제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렸다.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이란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정치권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헌정 사상 최초로 여소야대 국회가 열리고 군부독재의 그림자가 걷힌 자리에서 16년 만에 국정감사가 부활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열린 청문회는 TV 생중계를 통해 국민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민주주의가 꿈틀대던 그때, 감옥 철창을 나온 한 청년의 정치 여정이 시작됐다. 그로부터 35년 후 그 청년은 국회의장이 됐고 정치인생 가운데 가장 높은 담 앞에 서게 됐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는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첫 번째로 대한민국 국회의장이 된 사람입니다. 국회의장 중에 국회 담을 최초로 넘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노력했던 우원식 국회의장입니다.
2024년 12월 3일, 그날은 어떤 날이었나요?
불탄 공장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던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들을 아침에 만났어요. 그리고 마침 그날이 국회에서 김장을 하는 날이었어요. 오전에 국회 텃밭에서 키운 배추로 김장하는 행사가 있었죠. 가서 김장 열심히 하였고요. 오후에는 이주호 사회부총리와 면담하자고 해서 이런 저런 현안들을 상의했어요. 저녁때는 키르기스스탄 대통령하고 만찬을 하고요. 한마디로 아주 편안한 날이었습니다.
비상계엄 소식은 언제 어떻게 접하게 됐나요?
저는 몰랐어요. 공관에 들어가서 잘까, 아니면 뉴스를 좀 볼까 그러던 참이었어요. 그때 김민기 국회 사무총장이 전화를 걸어왔죠. “비상계엄이랍니다!” 그래서 “뭐? 무슨 비상계엄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거짓말이야. 혹시 가짜뉴스 본 거 아니야?” 했죠. 그런데 뉴스를 보니까 비상계엄 얘기가 딱 뜨더라고요. 그게 한 10시 31, 32분쯤 된 거 같아요.
TV를 통해 비상계엄을 확인한 순간,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황당했죠. 이게 진짜, 진짜네. 그리고 이어서 싹 생각난 게 ‘아, 이것 때문에 그랬구나’였어요. 비상계엄하려고 국회를 이렇게 함부로 대했구나. 또하나 든 생각은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대승하고 여당이 대패하면서 계획을 세워 본 거라면, 그러면 최소한 6개월은 준비한 건데 큰일났다! 이거 어떻게 막지!’ 그런 걱정이 확 들었어요. 그리고 국회가 비상계엄을 해제할 권한이 있으니 ‘나는 빨리 국회로 가야겠다’ 이 생각뿐이었죠.
사전에 징후를 느낀 적은 없었나요?
그해 8월경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비상계엄에 대해 얘기했어요. 하지만 비현실적인 얘기잖아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발전해 있는데 무슨 비상계엄이냐 싶었죠.
제가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2대 이사장이었는데, 그때 이사였던 한 분이 군인 출신이거든요. 육사 교수부장을 지낸 분인데, 그분이 전화해서 이런 말을 하기도 했어요.
“김용현은 굉장히 위험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장관이 됐다는 것은 어떤 위험이 초래될지 모르는 사인일 수 있습니다. 경계하십시오.”
또 김민기 사무총장도 비상계엄에 대해서 저한테 얘기를 많이 하던 사람이었어요. 농담으로 “혹시 비상계엄 터지면 의장님 이리로 숨어야 합니다” 늘 얘기하던 분이었어요. 그래서 비상계엄에 관해서 한 번 살펴보는 기회는 우리가 이미 가졌죠. 비상계엄 시 우리 국회가 어떤 권한을 가지고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할지 한번 보자,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계엄을 하게 되면 국회가 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또 계엄을 선포한 쪽에서는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하게 돼 있고요. 비상계엄 해제를 안건으로 삼아서 국회가 의결할 수 있다. 그리고 국회법 해석에 따르면 국회의장의 직권 상정할 수 있는 여러 요건들이 있는데, 그중에 계엄 해제 요구안도 직권 상정 요건이 된다, 이런 정도에 대해서 우리가 확인하고 있었죠. 그런 상태에서 12월 3일을 맞이했습니다.
비상계엄 가능성을 낮게 봤음에도 계엄 관련한 논의를 사전에 했는데, 특별한 이유나 배경이 있었나요?
국회와 윤석열 대통령의 관계가 너무 나빴으니까요.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를 완전히 무시했어요. 제가 2024년 6월 5일 국회의장에 취임했어요. 관례적으로 대통령이 전화로 축하 인사를 하거든요. 근데 전화가 없어서 ‘어? 이상하다, 어떻게 대통령이 전화를 안 하지?’ 그러고 있었죠. 그 다음날이 6월 6일이었어요. 현충일에 대통령과 만나게 돼 있었죠. 그때라도 축하한다고 하면 되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손만 내밀어 인사하고 지나가더라고요. 굉장히 무시당한 느낌이었어요.
게다가 11월 4일로 예정된 2025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에도 오지 않았어요. 시정연설은 내년에 국가를 어떻게 운영할지 국민의 삶을 어떻게 책임질지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보고하는 거예요. 대통령의 당연한 의무죠. 여기에 안 오는 건 국회를 무시하는 것을 넘어서 국민을 무시하는 거다, 당시 제가 국회의장의 입장에서 아주 단호하게 한마디 했었어요. 그렇게 6개월 동안 국회를 완전히 무시했죠.
그러다 비상계엄을 맞았는데, 국회로 어떻게 이동했나요?
경호팀이 있다는 생각을 처음엔 못 했어요. 우리 처한테 “당신 운전해야겠어. 얼른 나랑 같이 가자” 했더니 “여보, 여기 경호팀 있어” “아, 맞아, 맞아. 경호 있지” 이런 대화를 나눴죠. 보통 당직하는 사람이 한 사람 남아요. 마침 경호관 한 사람이 그날 당직이었고 경호대장이 그 날 당직이 아닌데도 그때까지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쪽으로 전화해서 집 앞 상황을 좀 봐달라고 했었죠. 저는 당연히 국회의장을 체포하러 와 있을 거다, 이렇게 생각했죠. 그래서 뒤에 쪽문이 있어서 그쪽으로 나가기로 하고, 그것도 막혀 있으면 쭉 둘러보고 뒷담으로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경호팀이 CCTV를 보더니 아무도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경호대장하고 경호관하고 저하고 셋이 같이 나섰죠. 가는 내내 사람들한테 전화가 오더라고요. 그때부터는 전화를 안 받았어요. ‘누가 추적하는 거 아닌가? 누가 쫓아오는 거 아닌가? 가다가 잡히면 꼼짝 못 하는 거니까요. 보통은 한남동에서 국회까지 차로 오면 한 삼십 분 남짓 걸립니다. 그날은 10시 37분, 38분에 출발해서 도착한 게 55분이니까 굉장히 빨리 왔죠.
국회에 도착했을 때의 상황은 어땠나요?
10시 55분경에 도착해서 보통 진입하는 3문, 그러니까 의원회관 들어가는 쪽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려고 했었죠. 그런데 도착하는 순간에 경찰 버스가 후진으로 3문을 딱 막더라고요. 경찰은 국회를 지키라고 국회경비대를 둔 거지, 국회 문을 막으라고 경비대를 둔 게 아니란 말이에요. 화가 나서 한마디할까 하다가 생각해보니까 내가 계엄군 피해서 왔는데 경찰하고 싸우다 잡혀가면 꽝 아니에요. 그래서 마음을 접고 그냥 담을 넘어가야겠다, 담 넘어갈 수 있는 데를 한번 살펴보자, 하고서 천천히 봤죠.
막상 담을 넘어가려니 어렵더라고요. 서로 일직선으로 만들어서 발 디딜 데가 없거든요. 그래서 조금 가다보니까 식물원 쪽, 거기 문이 닫히지 않고 문에는 문양이 있으니까 발 디딜 데가 있잖아요. 그쪽으로 넘어갔죠. 김성록 국회경비대 의장경호대장(경감)이 먼저 넘어갔어요. 그다음은 제가 넘어가는데 경호대장이 사진을 찍었죠. 그래서 월담하는 사진이 남아 있고요, 덕분에 어렵지 않게 넘어갔습니다. 제가 오늘도 자전거 타고 왔는데 평상시에도 운동을 좀 하거든요. 그런 도움을 많이 받은 거지요.
담을 넘을 때 어땠습니까?
1980년 비상계엄 당시 저는 군대에 있었어요. 제대한 게 1980년 7월이었고요. 그 다음해인 1981년 5월에 시위하다가 구속돼서 감옥살이를 했는데요. 학생운동하는 과정에 담 넘고 하는 일들이 많았죠. 근데 국회의장이 돼서 국회 담을 넘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어요. 40여 년 만에 벌어진 비상계엄에서 내가 비상계엄을 해제하기 위해서 대뜸 담을 넘긴 했는데요, 담을 넘을 때 참 슬프더라고요. 우리가 그동안 싸워서 지켜왔던 민주주의, 정말 어렵게 한 발 한 발 디뎌온 민주주의인데, 이걸 한 방에 이렇게 해칠 수 있나? 이 사람이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인가? 비상계엄을 통해서 군사력을 동원하겠다는 이 사람은 뭐고? 우리 헌법이 이렇게 허약해서 담을 넘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구나. 슬프더라고요. 담을 넘을 때 마음은, 되게 슬펐어요.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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